2016년 2월 26일 금요일




    스카보로 장터에 가는 길이세요?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와 타임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거기 사는 이에게 소식 전해줘요      Remember me to one who lives there,

    그이는 나의 참된 사랑이었습니다    For once was a true love of mine.


    <Scarborough Fair>, 이하 번역 필자


    세상은 사랑을 노래한다. 내가 시를 관둔 것은 사랑 때문이었지만, 세상은 정말로 사랑을 노래한다. 어쩌면, 노래하는 법을 몰라 작시(作詩)를 접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온갖 음식 내음 맡고 다니는 장터의 객처럼 산다. 이 마을 저 마을 부단히 옮겨 다닌다. 어려운 시를 읽는 날이 있고, 수 백 년 전의, 아니, 수 천 년 전의 글귀를 읊는 날도 있다. 무명의 누군가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남겨 지금까지 이어지는 노래도 있고, 마음 깊은 대가들의 펜촉 끝에서 항간에 한 방울의 잉크로 떨어진 노래도 있다. 아, 그 모든 것은 아프다. 곧 봄이 온다. 산에 올라 진달래 향을 맡겠지만, 꽃은 슬프다. 나는 왜 피어나는 것들을 두고, 봄의 노을을 먼저 생각하는가. 왜 별자리를 바라보며 무궁한 영원을 꿈꾸는가. 왜 대가들은 시를 쓰는가, 왜 사람들은 노래하는가. 사랑은 무엇인가.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입술 언저리에서 맴도는, 장터의 채소들. 고등학생 때였다. 한창 눈 가리고 글 쓰던 무렵, <Scarborough Fair>를 처음 들었다. 부모님과 사이먼&가펑클을 이야기했고, 새벽에는 새러 브라이트만의 (여성의 시점으로 된) 개사를 들었다. (영국 배우 에이미 너틀의 2005년 앨범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17세기 무렵, 잉글랜드의 민중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던 노래. 이룰 수 없는 사랑, 불가능한 일. 어린 마음에는 선율만이 남아있을 수밖에. 그리고 10년이 지나 다시 듣는다. 나는 그 사이 사랑을 했었고, 사랑을 노래할 수 없음을 알았고, 그럼에도 세상은 무수한 사랑을 무수히 읊조리며 기억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무수한 것들을, 나는 모른다. 그런 까닭에 사랑과 시와 노래를 모아 모래의 성을 쌓고, 최후의 파도를 기다리며, 끝내 나의 모든 것이 부서져 사라지길 기다리며, 석양 속에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자가 노래한다. “그이에게 삼베옷 한 벌을 만들어달라고 해줘요. 바느질로 실땀 하나 남기지 않는다면 그이는 나의 참된 사랑일 테니.”(Tell her to make me a cambric shirt, /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 Without any seam or needlework, / Then she shall be a true love of mine.) 이어지는 노래에서는 그 옷을 ‘물 한 번 솟지 않았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우물(Where never sprung water or rain ever fell)’에서 빨 수 있다면, 그이는 자신의 참된 사랑이 될 거라고 한다. 이렇게 여자는 세 개의 불가능한 과제를 받는다. 이에 여자는 “그이가 내게 일감 셋을 줬군요. 나의 참된 사랑이 되려면, 그이도 나만큼 많은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할 텐데.”(Now he has asked me questions three, /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I hope he'll answer as many for me, / Before he shall be a true lover of mine.) 하며 바란다. 남자도 과제를 받는다. 불가능함의 사이에서 여자와 남자가 하나같이 말하는 것은 a true love of mine, 참된 사랑이다.


    우리나라의 고려 시대에 한 남자는 이런 노래를 남겼다. <Scarborough Fair>와는 달리 어떤 선율이 붙어있는지 알 수 없지만, 시공간을 넘은 인간은 사랑을 불가능에 빗대며 실로 그 ‘참됨’을 갈구한다.




    <악장가사(樂章歌詞)>에 수록된 정석가(鄭石歌)다.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대가들은 물론이고 재야의 원로들 사이에서도 이 노래를 둔 논쟁이 여전하나, 이 자리를 빌려 나의 전공 세부를 열거하고 싶진 않다. 정체를 몰라도, 사랑하는 마음은 이렇게 고스란히 느껴지니까. 바삭바삭한 잔모래가 있는 땅에, 그것도 그 땅의 벼랑에 밤을 심습니다. 모두 다섯 되가 되는 구운 밤입니다. 그 밤이 움 돋아 싹이 난다면 (명사어간 움[芽]은 뒤이어지는 ‘싹 나다’와 의미가 다르다. 앞의 것이 조짐이라면, 뒤의 것은 발아된 상태다.) 덕이 많으신 당신을 여읠 수 있겠습니다. 어찌 여읠 수 있을까. 이어지는 노래에도 가련한 아름다움이 있다. 옥으로 새긴 연꽃이 무려 삼백 송이가 피어야 하고, 철실로 주름 박은 융복(고관대작 의복)이 다 헐어야 하며, 무쇠 황소가 쇠나무 산의 모든 쇠풀을 먹어치워야 한다. 당신을 여읠 수 없다는 마음, 하지만 여읠 수밖에 없는 진실. 진실은 늘 마음을 배신하며, 마음은 늘 진실을 능가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당신을 여의고, 저는 천년을 삽니다. 이 마음이 못 살 것도 없지요. 하지만 그 믿음이라는 것이 끊어지겠습니까? 당신을 향한 마음은 옥으로 새긴 삼백 송이의 연꽃이요, 기필코 헐지 않을 철실로 된 융복이며, 이 세상에는 피지 않는 쇠풀과 이 세상에 없는 무쇠 황소, 그리고 쇠나무 산입니다.


    그이가 일감을 모두 끝냈다면              When he has done and finished his work.

    파슬리, 세이지, 로즈메리와 타임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오, 내게 와서 삼베옷 받으라 전해줘요    Oh, tell him to come and he'll have his shirt,

    그이는 나의 참된 사랑일 겁니다.          And he shall be a true lover of mine.


    여자는 삼베옷을 만들었다. 바느질로 실땀 하나 남기지 않았다. 세상에 없는 옷을 한 벌 지었다. 그리고 남자를 기다린다. 우리는 이 노래의 결말을 모른다. 400여 년이 지났어도 그 누구도 끝을 맺지 못한 노래다. 수많은 개사가 있었으나, 이는 노래를 옆으로만 살찌울 뿐이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누구나 결말을 안다. 남자는 장터의 여자를 찾아갔을 것이다. 삼베옷을 받아든 그는 여자의 부탁으로 마련해둔, 바다의 소금물과 모래사장 사이 1 에이커의 땅으로 함께 갔을 것이다. 물과 뭍 사이, 틈이라고는 한 치도 없는 경계에 봐뒀다는 천 평이 넘는 땅으로. 그이는 나의 참된 사랑이니, 믿음이야 끊어지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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