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0일




    그러나 왕은 친구가 될 수 없었다고 한다.


    다자이가 한 말이 아니다. 그는 「달려라 메로스(走れメロス)」를 덜컥 끝내버린다. 메로스와 세리눈티우스는 죽지 않았다. 왕은 둘을 살려줬고, 둘은 부둥켜안은 채 엉엉 울었다. 군중은 환호했다. 짧은 이야기는 깨끗이 끝났다.



*   *   *



    어디 보자, 남은 것들을 주섬주섬 챙기다 별로 든 것 없는 두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점심이나 먹어야지, 설이니까 가족과 만둣국을. 오후에는 미학을 읽었고, 밤에는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와 만났다. 그래서 추웠다. 이불을 덮고, 새벽에는 니체를 읽을까, 하다가 다시 다자이를 펼쳤다. 왜. 뭔가 결단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럴 순 없다. 내 주제에 무슨 칼날을 들이대려고. 하지만 손에 든 것이 없었다. 미련 탓에 다시 읽었다. 세 번을 읽었다. 네 바퀴 째가 되자, 창밖으로 목성이 비스듬한 직선인양 둥글게 지나갔고 ㅡ


    ㅡ 졸음이 몰려왔다. 내일은 니체를 읽어야지. 빈 주머니도 있는 법이야. 내가 언제부터 야무진 척을 했었나. 누웠다. 등으로 방바닥의 온기를 머금으며 늘어지며 늘어지다, 시의 교각이 기초공사도 없이 올라가는 것처럼, 늘 그러했듯, 나는 생각했다. 제 3자로 밀려나버린 왕의 모습이 순식간에 밀려들어왔다는 말이다.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겠나? 부탁이니 너희와 친구하고 싶다. 제발 들어주면 고맙겠다.”(다자이 오사무, 김욱송 옮김,「달려라 메로스」, 237쪽) 그리고 왕은 말이 없었다. 다자이는 왕을 침묵에 가두고 군중을 환호시킨다. 세리눈티우스가 메로스에게 말을 건다. 친구를 살리기 위해, 하지만 자신은 죽기 위해 맹렬히 달려온 메로스는 알몸이었다. 그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소설이 끝난다. 그리하여 왕은 둘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왕의 등 뒤에 조용히 서있었다. 환호하지 않았다. 군중아, 떠들어라. 그 환호를 틈타 왕의 얼굴을 보고 싶다. 중무장한 근위대가 곁에 있으니 쉽게 볼 수 없다. 이름을 불러볼까. 전하!, 하고 외치면 돌아봐줄까. 불을 켜고, 조용히 앉아 다시 읽었다. 글을 써내려갔다. 왕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래도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핑계 삼아 이런 혼잣말을 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왕은 친구가 될 수 없었다고 한다.


    메로스와 세리눈티우스의 우정, 그 이야기는 어찌됐든 상관없다. 그럴 줄 알았다. 모를 독자가 어디 있나. 둘 중 하나가 죽고, 남은 하나가 왕을 죽이는 기상천외한 복수극이나, 뭐 둘 중 하나의 유령이 갑자기 소환되는 허무맹랑한 미스터리로 전락할 일은 없겠지. 『인간실격』의 다자이가 그런 파렴치한 작가일쏘냐. 눈총으로 읽으며 벼렸던 모든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고, 그래서 뭐든 주워가려고 했던 나, 이 독자의 주머니는 수확을 마친 보람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다 옳은 이야기. 아무런 결함도 없는 이야기. 이 매끈매끈함이 주는 현기증. 표면에 반사되는 밝은 빛의 거북함.


    어떻게든 틈을 찾아보자. 독자의 몫이란 그런 것이니까. 도대체 이 소설에서 빠져나갈 검은 구멍이 어디에 있는가. 이런 마음이 새벽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다. 그렇다. 너무나도 큰 균열이 있다. 누웠다 발견해서 깜짝 놀랐지만. 근묵자흑을 이런 자리에서 빌려보면, 어두울 때만 보이는 게 있는 법이기도 하니. 여하튼 갑작스런, 하지만 충분히 그럴싸했던 환호가 무지막지한 데시벨로 균열을 지워버렸던 것이다. 의심해본다. 왜 거기서 군중이 마치 짜고 친 한 동패처럼 우르르 소리를 몰아갔어야 했나. 왜 환호로 대답이 지워져야만 했는가. 의도했든 안 했든, 결과는 이미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75년도 더 지난 옛날에. 다자이는 왕을 지워버렸다. 교묘한 작업이다. 그리스 이야기를 읽었거나 실러를 읽었거나 했으리라. 그렇다면 그 이야기의 전말도 훤히 알았을 것. 거대한 우정 속에서 지워진 한 장면. 소설에는 없다. 그것은 다자이가 할 말이 아니었을지도.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조용히 다른 장소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왕은 친구가 될 수 없었다고 한다.


    다시 앞으로. 왕의 폭정에 분노한 메로스가 왕을 죽이려다가 역으로 죽을 입장이 된다. 왕은 어이가 없다. 위엄 있게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네놈이 말이냐?”(218쪽)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더니 돌연 고독을 아느냐고 묻는다. 대체 무슨 고독이 사람을 죽이는 일로 이어지는가. 그 고독을 사람을 불신하여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통째로 번역해본다. 왕이 죽이려고 하는 건, 따라서 사람이 아니라 불신 그 자체다. 그 비열한 영토를 제거해야 고요해질 것이다. “나 역시 평화를 바라고 있다.”(218쪽) 침착한 어조와 한숨에 섞여 나온 이 말의 뜻은 그렇게 해석된다. 메로스가 비웃으니 폭군은 “입으로는 무슨 말인들 못 할까.”(219쪽)라고 외친다. 보고 싶다는 뜻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는 모습을. 하지만 끝까지 의심한다. 그래, 너 메로스와 네 녀석의 죽마고우라는 세리눈티우스의 목숨을 놓고 한 판의 실험을 해보자.


    이제 뒤로. 메로스는 세리눈티우스와 포옹을 한 뒤 집으로 돌아가 급박하게 여동생의 혼사를 치러주고는 죽음의 길에 오른다. 다리가 끊어진, 맹렬한 바다와 같은 강물을 건너고, 산적 셋을 만나 물리친다. 목이 말라 죽을 뻔했지만 다시 달린다. 달려라, 메로스. 의지가 꺾일 때마다 번뇌한다. 세리눈티우스, 내가 늦어버리면 자네는 나 대신 죽고, 그러면 나도 죽을 것이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아, 나를 비웃어라.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 여동생네와 함께 살 것이다. 땅도 있다. 그 부부가 이 몸을 내치진 않겠지. 하지만 메로스의 의지는 불굴이다. 질풍으로 달려 도착하고, 세리눈티우스를 살려낸다.


    왕은 어떠했을까. 상황을 보아하니, 이미 형장에는 명이 떨어진 후였다. 세리눈티우스는 목이 졸려 죽을 판이었다. 군중들은 동요했다. 살려줘라.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왕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목소리는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살려줘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친구가 되고 싶다. 그는 “군중들 뒤에서 두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236쪽) 있었다. 권세의 거드름 따윈 없다. 그토록 바라던 신뢰의 증인을 살리고자 하는 건 그의 오래된 바람이었다. 그 반대의 일이 그를 폭군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반대의 일이란 무엇이었나? 한 노인의 증언을 다시 듣는다. “그래, 처음에는 자기 여동생 남편을 죽이더니 그 다음에는 세자를 그리고 여동생과 그 여동생의 자식들을 죽였지. 그리고 황후도 죽였어. 그러고 나서 그 어질고 충성스러운 알렉스 님까지 말이야.”(217쪽)


    의심. 저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일방적인 닫음. 곁에 있는 이에게 가장 먼저 자물쇠를 걸어버리는 일. 폭군 디오니스는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이다. 누군가 고자질을 한 것일까? 아니면 거짓부렁을? 왕이시여, 실은 제가 은밀히 들은 바인데 말입니다… 신뢰의 벽에 균열을 내는 건 대단히 쉬운 일이다. 추호의 의심도 없다?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건 맹신이다. 사람을 맹신하지 않는 한, 우리는 버릇처럼 의심한다.


    디오니스는 병들었다. 믿지 않는 병이 그의 권세와 결합하여 연쇄적 죽음을 불러온다. 왕족 일가를 죽이고, 충신을 죽이고, 볼썽사나운 귀족들도 죽인다. 그는 죽음으로도 걷어낼 수 없는 의심의 백야 속에서 뜬눈으로 밝은 밤들을 지샜을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죽일 거라는 의심이 아니었을까. 몸수색을 너무 쉽게 받아버린 메로스의 경우로 보건대, 그랬을 것이다. 권세와 권세가 겨루는 장에 대해서는 우리도 잘 아는 바이고. 덧붙이자면, 이 소설에는 디오니스가 백성을 죽였다는 기록은 한 군데도 없다. 그런데 백성 메로스가 와서 자신의 의심을 거둬줄 줄이야. 왕은 그리하여 매우 기뻐했지만 ㅡ


    그러나 왕은 친구가 될 수 없었다고 한다.


    둘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달려라 메로스」의 원판은 이렇다. 피타고라스학파인 다몬과 퓌티아스가 시라쿠스(고대 그리스어로는 수라쿠사이)를 찾았다. 당시 시라쿠스의 군주인 디오뉘시우스 1세는 폭군이었다. 정의의 퓌티아스가 이에 항거할 뜻을 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거사가 발각되어 사형이 언도됐다. 그는 타향에서 횡사할 운명을 달래기 위해 고향에 가서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왕은 거절했다. 하지만 다몬이 대신 잡혀있겠다고 나서자 허락했다. “네 벗이 오지 않으면 네 목숨을 빼앗겠다.” 퓌티아스는 고향에서 돌아오는 도중 해적에게 배와 함께 통째로 잡혔다가 바다에 내팽개쳐졌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살아서 제때 도착했다. 왕은 둘을 살려줬다. 실은 대단히 감동했다.


    그래서 간절하게 원했다.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겠나? 부탁이니 너희와 친구하고 싶다. 제발 들어주면 고맙겠다.”(다자이의 소설, 237쪽, 재인용) 그러나 거절당했다. 믿음을 확인한 그는 믿음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다몬과 퓌티아스, 아니, 메로스와 세리눈티우스의 한복판으로. 왕위는 무엇이고, 영토는 또 무엇이며, 그 모든 것의 위를 덮은 자신의 권세는 무엇이냐,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성취한 바가 없다. 믿음은 확인했다. 그러나 거절당함으로써 그는 다시 의심의 공간 속에 방치된다.


    다시 말해, 그에게는 아무런 친구도 없다. 머리를 조아리며 죽음의 판결을 기다리는 이들만이 남았다. 이 소설, 하나도 좋게 끝나지 않았다. 형장에 남겨진 왕이 스스로 목을 매는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죽을 수가 없다. 의심하는 나를 죽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메로스와 세리눈티우스도 잠시나마 그랬던 적이 있다. “다몬과 퓌티아스(Damon and Pythias) 같다”는, 우리 식대로 하면 막역지우(莫逆之友)를 뜻하는 관용어 안에서마저 불현듯 튀어나오는 게 의심이다.



*   *   *



    새벽이 지나간다. 왕의 뒷모습을 보고 일어나 지금껏 왕을 생각했다. 비슷한 처지가 아니었다면 애당초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았겠지. 나 역시 한 명의 군중에 지나지 않았을 것. 하지만 그렇다. 왕을 보게 되는 독자들이 있다. 독자의 몫을 찾으려는 이들. 소설의 빈틈을 찾아 그곳을 뚫고 나가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이들이 있다. 넘어졌다는 고백을 하려니, 창피하다. 알몸으로 선 메로스만큼이나 얼굴이 붉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새벽. 목성도 이미 건너편 아파트 옥상 너머로 사라졌고, 오늘은 달도 없다. 불을 끄고 누우면, 다시 일어나면 사라질 부끄러움이다. 이제 그만 눕자. 나는 ㅡ


    ㅡ 낮과 함께 이 책의 우정으로 돌아왔다. 이제 해가 지려고 한다. 어딘가 시공의 틈이 있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의심의 가스를 환기시키는 것이 우리의 삶임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나는 오늘도, 그리하여 굳건하게 버텨왔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왕을 만나러 나는 이 형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의심’이라는 이름이다. 이 이름을 거쳐왔으니,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른 방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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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29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 이어 짧은 이야기 하나가 더 실려 있었다. 「직소(直訴)」라는 제목의 단편으로 ‘유다의 고백’이라 번역되기도 한다. 그렇다. 유다에 대한 이야기다. 제사장과 장로들 앞에서 예수를 팔아넘기는 유다의 독백이다. 정신 사납게 쏟아지는 발언을 듣고 있으면 그의 표정이 그려진다. 경멸한다. 화를 낸다. 운다. 분노한다. 단념한다. 자기 자신도 모르겠다는 표정. 다시 오열. 웃음. 뭐 이런 걸, 30냥 따위. 그래도 받아두며 나는 장사치라는. 그리고 하하하, 깜빡했는데 제 이름은 유다. ‘유다’라는 이름만 들어도 발작할 이들을 위해 굳이 이렇게 말하겠는데, 이건 영지주의니 ‘유다의 사랑’이니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이 나오긴 한다. 그러나 그 단어는 「직소」의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기이한 형태의 집착이다. 아무도 그걸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 부르는 순간 병자로 분류되겠지. 그리하여 진실은 오직 엇나간 채 모습을 드러낼 뿐이고. 들여다볼 일이다.


    보리슬라프 페키치의 『기적의 시대(Vreme čuda)』가 떠올라 ‘힌놈의 죽음’ 부분을 다시 읽었다. 두 작품을 나란히 놓는 건 무리다. 길이도 길이겠거니와 일단 다자이의 작품은 유다의 독백만을 다루므로 별다른 사건이 없다. 고발의 현장 자체다. 보리슬라프의 작품이 훨씬 복잡하고 극적이다.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뽑아내는 자기 고뇌, 죽음을 두려워하는 예수를 닦달하면서 반드시 예언을 성취시켜야만 한다고 느끼는 자기 강박, 유다-예수-야훼의 삼위일체를 선언할 거라고까지 말하는 거대한 목적성, 하지만 결국 “성서의 말씀의 올가미”(보리슬라프 페키치, 이윤기 옮김, 『기적의 시대』, 346쪽)가 목을 죄는 두려움에 이르는. 자살로 위장된 죽음까지. 파문이 일겠지만 이걸 영화로 만든다면 관객은 유다의 고뇌에 압도당하는 착각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이런 생각도 가능한.


    하지만 두 작품은 비슷한 선상에 있다. 같진 않다. ‘힌놈의 죽음’은 보리슬라프가 『기적의 시대』 말미에 이르러 예수 대신 키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결국 예수의 죽음이 없으니 구원도 없다는 도발적인 해석에 이르는 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유다는 자살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예수는, 유다가 닦아놓은 예언의 길을 따라가는, 아니, 따라가는 것조차 겁을 내는 그 예언자는 이 소설 이전에 지니고 있던 모든 권위를 잃어버린다. 그래서 번역을 맡은 이윤기 씨도 말미에 보리슬라프의 작품을 옹호했다. 이단이 아니라고. 다자이도 그렇게 봐야 한다. 그가 개신교 신자였고 성경에 무척이나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 그리고 일본이라는 종교 환경을 고려해봤을 때, 물론 보리슬라프보다는 일부 독자들의 단죄에 일격을 받을 가능성은 낮겠지만.


    나름의 글로 유다의 고백을 다시 써봤다.



*   *   *



    나는 유다. 내가 아니었으면 저 무능한 제자들과 함께 어딘가에서 객사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대는 세상의 적이자, 나의 스승, 주인으로 나이는 같다. 뒷바라지를 열심히 해줬는데도 고맙다는 기색이 적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서운하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내가 이리저리 변통해서 꿔다가 해낸 것이 아니더냐. “마술의 조수 노릇”(다자이 오사무, 김춘미 옮김, 「직소」, 『인간실격』, 143쪽)을 그렇게나 해줬는데. 하지만 그자는 아름답고, 나는 그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따라다니는 일에 득이 없는 줄 알면서도 떠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제자들이 다 떨어져나가도 좋다. 아니, 그 편이 좋겠다. 늙은 나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밭도 있는 나의 집에 가서 그대의 어머니 마리아와 셋이 안락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 그걸 꿈꿔왔다. 간절하게, 그대를 사랑하는 만큼. 천국이니 하느님이니 이스라엘의 왕이니, 이런 것들은 당초 믿지도 않았다. 거짓말쟁이. 하지만 아름다우니,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하지만 베다니의 시몬 네에서 한 짓은 무엇이었느냐. 마르타의 동생년, 그 마리아가 향유를 그대의 머리에서 발까지 붓는 무례를 범했음에도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발만 적신 걸로 되어 있다.) 오히려 두둔하다니. “추태의 극치”(다자이의 책, 149쪽), 그렇다, 그대는 베다니의 마리아를 사랑하는 것이었는가! 이 분노는 무엇인가. 나도 젊고 훌륭한 청년이다. 집 없고 돈 없는 제자 나부랭이들과는 다르다. 저년이, 마리아가 나한테서 그대를 빼앗아갔다. 아니, 그대가 내 여자를 뺏었다. 이 무슨 말인가. 모르겠다. 남은 것은 분노요, 또한 그대를 향한 사랑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던 그대의 모습은 참으로 초라했다. 길가에 있는 늙어빠진 당나귀에 올라탄 그대를 연민하면서, 나는 아름다울 때 내 손으로 잘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꽃을 꺾어버리는 일처럼. 간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라! 신기하게도 군중들이 꼬여들었고, 저 우둔한 제자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울었다. 나 역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성전에서 노기를 부리며 불쌍한 장사치들을 쫓아낸 것은 무어냐. 허세다. 그대는 제사장들에게 잡혀 죽을 생각으로 자포자기한 것이다. 드디어 미쳤구나. 그러니 내가 한 장사꾼에게 제사장과 장로들이 그대를 죽이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대를 팔아 남기는 것이야말로 나의 임무라 생각한 건 당연했다. 이 사랑의 행동을 이해해주지 못해도 상관없다. “나는 영원히 남의 미움을 사리라.”(다자이의 책, 155쪽) 그래도 상관없기에 이 사랑, 참으로 위대하지 않은가.


    아, 최후의 만찬이 없었더라면. 후대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더라. 살과 피의 성스러운 이야기와, 그런 보잘것없는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칭송하더라.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그보다는 그대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불쌍한 장면이야말로 성스러운 것이었거늘. 단, 그건 모두가 깨끗하면 좋을 것이라며 나를, 정확히 이 유다를 겨냥한 한 마디 말로 내 속의 분노를 다시 끄집어내기 전까지의 일을 일컫는 것이다.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변을 쏟아내지 않아도 됐겠지. 그리고 그대는 마지막 식사를 조용히 하더니 빵 한 덩어리를 내 입에, “개나 고양이한테 던져주듯이 한 덩어리의 빵 조각을 내 입에 쑤셔 넣고”(다자이의 책, 160쪽)는 보란 듯이 제자들 앞에서 쪽팔림을 주었다.


    이자들 앞에서 굽실거리며 30냥을 받아들고는 나 자신을 장사치라고, 유다라고 뒤늦게 소개한다. 군병들이 추궁하는 대로 나는 게쎄마니로 간다. 마지막 입맞춤을 하러.



*   *   *



    아름다움을 향한 기이한 사랑. 집착이다. 꽃을 꺾듯이, 아름다운 것을 제 것으로 하지 못할 바에야 제 손으로 꺾어 죽이는 무서운 사랑이다. 유다는 애당초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다른 제자들처럼 회의와 번뇌를 오고 가는 존경 따윈 없었다. 그래서 저 단편적인 사랑이 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리슬라프의 유다가 성서와 예언에만 매달린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기어이 자신을 삼위일체의 한편에 끼어 넣는 지경에 이르는 반면, 다자이의 유다는 오로지 사랑이다. 삶의 중심에 예수를, 그 아름다움을 세워두고 속으로 혼자 찌르고 베는 칼날 같은 사랑이다. 예수가 그걸 눈치 챘을까? 그랬다면 언제? 발을 닦였을 때? 아니, 그걸 모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닌가? 반대로 그걸 유다만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제 사랑에 눈이 가려진 채, 모든 걸 자신의 식으로 해석하고 내뱉는 괴상한 고집이 독백의 주를 이루고 있으니까.


    다자이는 유다의 뒤늦은 자기소개 이후를 그리지 않는다. 게쎄마니로 가는 길에는 또 얼마나 떠들어댔을까. 군병들 중 하나가 유다의 방종을 두고 “자네, 입 좀 다물지. 지저귀는 새소리가 시끄럽다고 떠들더니, 자네가 딱 그 꼴이다.”라고 말했으리라. 그렇게 도착한 예언의 순간에 유다는 마지막 입맞춤을 하고,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보리슬라프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다자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유다의 이야기를 할 뿐. 이후 어떻게 되었겠는가, 유다는. 30냥을 바닥에 내팽개치면서 뒤늦은 후회를 했겠지. 오직 사랑할 뿐인 예수가 죽었으니, 이제 그에게는 무엇이 남았겠는가. 유다는 자살한다. 악마에 씌운 것도 아니고, 보리슬라프의 이야기 속에서처럼 제자들의 손에 이끌려 힌놈에서 자살로 위장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것도 아니다. 그 스스로가 충분히, 집착의 선로에서 저 아찔한 높이의 절벽 아래로 빠르게 사라져갔으리라 추측해보는 건 무리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독백, 주절거림은 기이하리만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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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아타루(佐々木 中)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切りとれ、あの祈る手を)』

  : 다섯째 밤 독서




2016년 1월 24일




    지난 글에 한 분이 덧달아준 의견이 있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멸망을 지향하는 집단 무의식이 유전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나는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래서 매트 리들리의 『게놈(Genome)』을 다시 읽어봤다. 종말론을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고 보면, 그건 아마 문화적 유전과 진화상의 유전이 교묘하게 겹쳐진 채로 정말 유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추정일 뿐이다. 하지만 본능은 학습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 종말을 언급하는 종교, 아니면 위기마다 불거지는 종말 같은 건, 르장드르의 말을 빌리자면 하나의 ‘의례’로 조용히 스며들어 우리의 안에 굳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걸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나쁜 형태이겠지만.


    조금만 더 말해보자면 이건 병리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믿음은 의외로 가장 먼저 죽는다. 병에 걸리기 전에 “나는 살 수 없어.”라고 믿어버리면 면역이 떨어진다. 믿음은 하나의 화학 성분과도 같다. 물론 그걸 뛰어넘는 것이 믿음이기도 하다. 고차원적인 말 같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치병(治病)의 기적을 행한 뒤 자신 앞에 서 있는 이에게 예수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그러니 종말론에 기대는 사람은, 그 날이 언제 올지 자신도 모른다고 한 예수에게서 얼마나 많이 벗어난 불신론자란 말인가.


    또한 종말론은 모든 것의 귀결이자 공평해지는 순간을 바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 세상의 모든 새로운 것의 다양한 모습과 차이를 없애버린다. 독일의 마르틴 우르반은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 할까?(원제 : Warum der Mensch glaubt.)』에서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를 빌려 “사람들은 단 한 번도 거짓과 기만을 알아차리지 못해”(마르틴의 책, 330쪽)라고 했다. 왜 그런 것일까? 사사키는 분명하게 답한다. 그것이 넷째 밤의 결론이기도 했다. 정보와 폭력의 바다에 우리는 오랫동안 빠져있었던 것이다. 다 끝날 거라는 믿음 역시 넓디넓은 바다였다.



*   *   *



    그래서 조소로 시작한 모양이다. 5세기 게르만 민족의 이동에서 ‘메뚜기형’ 인간에 이르는 수십 장의 내용은, 사사키가 광대의 가면을 쓰고 관객들을 조롱하는 한 편의 연극을 상상케 만든다. 유독 숫자가 많이 나온다. 지금껏 우리의 입에 회자되며 수많은 예술에게 동기를 부여해주는, 심지어는 유명한 사업가들조차도 그걸 읽고 영감을 받곤 한다며 선전하는 고대 그리스 문학은 단 0.1%만 남아 있는 상태다. 그것이 이슬람으로 이어지고, 르네상스가 발아한 뒤 근대 유럽으로, 그리고 현대의 초석이 된다. 남아 있는 글의 위력이 이러하니, 사사키는 이어 문맹 이야기를 한다. 재일한국인 할머니에 대한 리포트로 시작하여 우리 독자들에게는 남달리 들릴 수도 있겠다.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전혀 자명한 것이 아닙니다.”(사사키의 책, 262쪽) 이걸 상기시키려고 긴 역사를 돌아본다. 에두르진 않는다. 거칠게 짚어가면서 프랑스혁명의 사례로 독서와 혁명의 연관성을 언급하고, 문학의 황금시대인 19세기의 심각한 문맹률로 여정이 이어진다. 사사키는 묻는다. 그런데도 디킨스, 스탕달, 보들레르, 도스토옙스키, 고골리, 푸시킨, 톨스토이, 투르게네프가 나왔다면, 저 대가들은 살짝 돈 것이 아닌가? 세속권력은 군자가 되려 하지 않는다. 그 누가 공자의 시대처럼 읽으려고 하고, 고대 그리스에서처럼 학문으로 소양을 쌓으려고 할까? 학문은 그들에게 적이다. 게다가 글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런데도 쓰는가? 이유가 무엇인가?


    위대한 그들은, 나는 그런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문학이 사는 것이 곧 인류가 사는 것이라는, 읽고 쓰는 것의 사명을 믿은 것이다. 말 그대로 그냥 쓰는 수밖에 없었다. 사사키는 이런 정신과 지금의 ‘문학 종말론’을 나란히 놓는다. 비난하지 않아도 독자가 알아서 혀를 차겠지만 구태여 조롱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90% 이상의 ‘쓰는 이’가 나가떨어질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하기야 나도 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교수가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문학이 일본에 1~20년 뒤쳐져 있고 노벨문학상은 소원하다는 말을 해 내게 적나라한 충격을 안겨줬던 문학 교수였다. 지난 우리 문학의 반세기 역사에서 기억될 이는 정지용 밖에 없다. 자네들은 앞으로 반세기를 더 살며 또 한 명의 작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기억하건대 그는 단 한 번도 문학의 절멸이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질의 문제를 언급했어도.


    이걸 나는 인문학에도 대어본다. 그것이 죽었다는 이 시대의 선언을 믿지 않는다. 대학이 취업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했다고? 전락(轉落)이라고는 이해해도, 전락(全落)이라고는 이해하지 말아달라고 거듭 말하고 싶다. 근본과 더 큰 것을 고민하는 학우들은 많다. 취업을 생각하고 있어도 더 진지한 고찰을 하는 이들은 많다. 대학이 그러한 환경에서 멀어진다고 해도 우리는 그 과정을 거칠 것이다. 어설플 뿐이다. 겨우 대학생인데. 주입식 교육을 받고도 대학의 너른 공간에 들어가 자신을 알고 겸손해지고 깨치는 이들은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인문학적 정신과 그 사명이 죽는다고?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안 팔려서 죽는 게 아니라? 문제를 바로 보자. 책은 너무 많이 팔린다. (주로 스페인과 견주며 지적하는) 독서율의 문제가 아니다. 사사키가 견준 시대와 비교해보자. 파는 것에만 현혹된 일부 비양심적인 저자나 학자나, 그런 걸 조종하는 이익의 항간에 간판처럼 내걸리는 게 저 종말론과 뭐가 다른가. 안 팔린다고 말하라. 죽었다고 하지 말고. 가증스러운 표현이다. 전혀 죽지 않았다. 위대한 정신은 반드시 남는다. 심지어 할리우드 맛이 가득한 영화 <투모로우>에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한 도서관 사서는 인류가 멸망해도 가져가야 한다는 책으로 니체를 꼽는다. 남자 주인공이 그를 두고 니체의 병증을 지적하는 대목은 웃기기까지 하다. 나치 이후에도 우리는 정신이 살아남은 걸 봤다. 무려 ‘나치’ 이후에도.


    사사키의 말을 빌린다. 나머지 부분은 거의 농담 수준이다. “문학, 이것은 은총입니다. 기적입니다. 흔해빠진, 몇 번이고 반복되어온, 그러나 한없는 쇠퇴를 빠져나온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꽃, 빛나는 섬광, 한순간의 기적인 것입니다.”(282쪽)



*   *   *



    숫자의 장난이 지겨웠는지 블랑쇼를 불러온다. 그와의 조우가 다시 밀려온다. 『야전과 영원』에서 라캉의 지독한 답답함을 환기시킬 첫 번째 타자로 창문을 열어준 그다. “나는 죽을 능력을 갖고 있는가?”(사사키 씀, 안천 옮김, 『야전과 영원』, 229쪽)라고 질문한 블랑쇼는 죽음이야말로 끝까지 마무리할 수 없는, 미완료인 것이라 단언한다. 죽기는 하지만 죽지는 못하는 이상하리만치 말이 되는 역설이 종말은 없다는 선언으로 이어진다. 사사키는 일본에서 부정신학으로 절하되는 그를 변호하며 블랑쇼의 선언을 격렬하다고, 또한 근사하다고까지 표현한다.


    통계의 장난이 다시 이어진다. 400만 년이 다시 펼쳐진다. 사사키의 장난대로 379만 년을 양보해도 1만 년이 남는다. 장구하다. 그러니 우리는 의미를 잃는다. 그 장구함 앞에서. 나도 그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의미 잃음]이라고 대문자로 쓸 수 있다면, 그건 나의 문학적 영감과 자주 닿는다. 나약함을 굳이 숨기고 싶진 않다. 솔직함이 답이니까. 나는 목성 보는 걸 좋아한다. 새벽녘 방 안에 불을 끄고 책상 앞에 앉으면 창밖으로 보인다. 두 세 시간 정도 볼 수 있다. 화성이 같이 보이던 때는 한참 지났지만, 그래도 나는 저것과의 거리를 생각한다. 양보해서 1억 정도로 봐도, 1억이면 무한이라 해도 좋다. 1억을 나는 잘 모른다. 아, 나는 무엇인가. 새벽의 독서가 다 뭐냐. 그래도 결국 이렇게 쓰고 있지만. 의미는 수도 없이 회의에 부딪힌다. 신을 믿지 않는 나도 가끔은 구원받고 싶다.


    여기서 소환되는 것이 니체다. 우리는 행해질 뿐이다. 행하는 주체가 아니다. 우리는 일부고, 일부의 의미다. 말을 얻고, 자아내라. 의미를 이뤄라. 미치광이의 명령이 들린다. 밤중에 썼으면 술 냄새 나는 글이라 해도 좋으리라. 하지만, 그렇다. 나는 우주의 일부가 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 의미를 조금은, 조금씩은 알 것도 같다. 나는 우주를 좋아하고 과학책을 즐겨 읽는다. 소위 ‘위키’질과 ‘구글링’은 심심할 때마다 한다. 전투적 과학자들의 비판서도 꾸준히 읽었다. <Edge>의 필진들이 내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못한다. 그들은 말하겠지. 헛소리라고. 실은 사사키보다 더 독한 말을 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나는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인간을 말하고 싶다. 지금은 그런 자리다.



*   *   *



    사사키는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을 받는다. “왜 발표하지 않으면 안 되나요?” 안 그래도 묻고 싶었던 차에 그 스스로가 술회한 것이다. 이건 이런 질문으로 변환 가능하다. “왜 쓰지 않으면 안 되나요?” 다른 예술의 방법도 있다. 왜 조각하지 않으면 안 되나요? 왜 그리지 않으면 안 되나요? 지금은 [문학]을, 그 대문자를 말하고 있으니까. 또한 이 질문에는 씁쓸한 실패의 맛이 한 가득이다. 퇴짜를 맞았다. 베케트도, 비트겐슈타인도, 베버도, 푸코도. 하나같이 출판의 거절을 맛본 이들이다. 사사키도 살짝 털어놓는다. 하지만 답은 곧 나온다. 늘 그랬던 것처럼 단언하며. 중요한 건 과정이라고 한다.


    머리가 나빠 어느 날 밤이었는지는 지금 당장 기억하지 못하지만 앞서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라는 말에 나는 공감했었다. 그리고 이건 읽었으니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로 이어진다. 사사키는 왜 글을 쓰는가? 정보와 스스로 차단된 채 숨어 있던 그가 갑자기 일본 사회로 나왔을 때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답할 수밖에 없었다. 쓸 수밖에 없었다고. 니체, 푸코, 르장드르, 들뢰즈, 라캉을 읽었으니 써야했다고. 벤슬라마를 언급하는 걸 깜빡한 모양인데, 그밖에도 더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돌아보게 된다. 나는 누가 있었기에 이렇게 쓰는가? 얘기를 들어준다면 그냥 털어놓고 싶은 말인데, 나는 비평이라며 이런 공간에 글을 쓰지만, 아마 나는 비평의 기준에 준한 글을 거의 못 쓰는 사람일 것이다. 이걸 누가 비평이라며 읽을까? 비평의 글은 나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 전혀 되지 못한다. 마름질할 생각도 없다. 니체의 말을 다시 불러온다. 나는 일부의 의미일 뿐이다. 나는 그 과정을 찾기 위해 피카르트, 칼비노, 페키치, 헤세 등을 거쳐 온 것 같다. 누군가는 대단히 의외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그에 앞서 톨킨이 있었고 지금도 나는 그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여하튼 늘 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쓴다는 기분이다. 나의 것은 없다. [나의 것]이라는 대문자의 절대적인 명제가 있다면, 그런 태평함을 가지고 있다면 구태여 뭘 쓸 필요도 없지 않은가. 부재를 알고 여러 번 빌려서 쓴다. 내 글은 하나도 없다. 그저 읽고 쓴다.



*    *    *



    니체는 꿰뚫고 있었다. 미래의 문헌학. 이 부분에서 감응한다.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299쪽) 그것은 천사의 소명이다. 무함마드에게 찾아온 지브릴이며, 동굴에서 첫 발을 밖으로 디딘 무함마드다. 3일 째 밤에 만난 이 사도의 극적인 드라마는 여러 번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문맹이라고 호소했던 그를.


    사사키는 묻는다. 아니, 권한다. 남는 쪽에 배팅하지 않겠냐고. 도박이니까. 역사의 도박장이니까. 기억력 나쁜 나조차도 외워버렸다. 『야전과 영원』에서 처음 만난 ‘도박’이라는 단어는 실은 니체의 것이었다. 그리고 니체는 그런 우리에게 주문한다. 웃으며 도박장으로 들어가라고. 희망의 포커페이스란 말인가? 종말을 말하는 세상 앞에서 담담하게 새로운 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라고 주문한다. 읽고 쓰고, 그리고 웃어야 한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모습은 참으로 미치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 책의 역자 송태욱 씨가 말미에 달아놓은 글에 사사키를 ‘외계인’에 비유한 구절이 있어 절로 웃었다. 다시 제목을 본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실 처음에는 손을 잘라도 기도는 남을 텐데, 하며 갸우뚱했었다. 그래서 자꾸만 속으로 ‘두고 보자.’라며 벼르고 있었다. 기대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끝이 났다. 아니, 그런 말을 하면 또 혼나겠지. 하지만 이렇게 쓰고 있으니, 내가 면할 수 있는 활로가 조금은 있으리라. 그런데 말이다, 이 손을 어떻게 자를까. 무섭다. 무서운 책이다. 이게 널리 읽힐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추호가 끝까지 남을 거라 생각한다. 아직은 손이 떨려 가다듬을 수가 없다. 다섯 개의 밤을 모아놓고 글 하나를 더 써야겠다. 일단 다섯 밤은 지나갔다. 손에 쥐고 있던 구슬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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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아타루(佐々木 中)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切りとれ、あの祈る手を)』

  : 넷째 밤 독서




2016년 1월 23일




    여러 남자를 만나 다섯 아이를 난 한 여자가 있었다. 아이들을 모두 출생신고하지 않았던 것 같다. 1987년의 가을. 새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겠다며 집을 나갈 준비를 한 그녀는 당시 14살이던 장남에게 5만 엔을 쥐어주고 홀연 사라졌다. 이후 참극이 벌어졌다. 막내인 아이 E는 장남과 두 친구에게 죽도록 맞아 사망했다. 건물주에게 도움을 받은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14살인 장남(아이 A), 7살 난 아이 B, 그리고 3살 된 넷째 아이 D가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다. 아이 C의 시신도 집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아이 E의 시신은 취조 과정에서 얻은 단서를 바탕으로 한 숲에서 뒤늦게 찾았다. 뉴스가 연이어졌고, 이를 본 아이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 9개월 만이었다.


    1980년대 말에 일본을 광분케 했던 스가모 어린이 방치 사건(巣鴨子供置き去り事件)이다. 2010년에는 오사카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아이 엄마는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복역을 마친 뒤 두 딸의 양육권을 인정받았고, 장남인 아이 A는 보호소에 들어갔다. 이 아이들은 법 밖에 있었다. 출생신고가 없었으니 사회에서는 그들을 뭐라 부를 수도 없었다. A에서 E까지 번호 같은 호칭만 있었다. 우린 법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에게 분노를 금치 않는다. 굳이 땅콩사건을 떠올리며 몸을 떨 필요는 없다. 하지만 법의 밖에 있는 자들은, 그들은 우리가 알 수가 없다. 우린 태어나고 살아가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   *   *



    그렇다. 일본인인 사사키는 이 이야기를 꺼내 태어난 아이에게 법적인 인격을 부여하는 법과 국가의 역할, 그 기능에 대해 역설한다. 물론 시작에서는 앞서 예고했던 것처럼 중세 해석자 혁명, 모든 유럽 혁명의 어머니인 그 혁명을 들여다보지만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재생산, 번식, reproduction을 보증하는 국가의 기능이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보려고 중세 해석자 혁명을 들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 혁명은, 11세기 말 피사에서 발견된 <로마법 대전>의 해석을 필두로 시작된 교회법의 재해석, 집성, 증식 과정은, 그리하여 교회가 성립하고, 모든 근대국가의 원형이 출현하게 된 그 혁명은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의 어느 이야기에 지나는 것이 아니다.


    사실 reproduction의 보증에 대한 국가의 기능을 강하게 역설하는 사사키의 심정을 우리는 헤아려봐야 한다. 간과되기 쉬운 문제니까. 그는 옴진리교 사건의 충격을 공유한 일본 사회의 일원 중 한 명이다. 저 사이비 종파가 어린이들을 어떻게 학대했었는가. 이를 떠올리던 그는 “혁명은 아이의 삶을 ‘수호하는’ 것이어야 합니다.”(202쪽)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어지는 논조는 더 거칠다. 인권강화에 대한 권고를 무시하는 일본 정부를 두고는 “참 대단한 선진국 나오셨네. 그렇죠?”(204쪽)라고 비아냥거린다. UN이 부유하는 단체라고 지적한 르장드르의 『텍스트의 아이들』이 언급된 걸 보니, 반동에 대한 선입견은 일본이나 프랑스나 우리나 매한가지인 듯하다. 읽는 이들을 두려워하는 공포. UN의 실패와 대비되는 것이 바로 국가가 지닌 계보의 원리다. 『야전과 영원』을 읽고 보니, 지금은 그 역할은 국가의 상징으로 떠넘겨지고 나머지 모든 건 매니지먼트가 하고 있는 듯하나.


    교회법이 내규가 아닌 민법과 관련된 것이었다는 말에서 여기로 넘어온 것이다. 그것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를 들여다보면 근대국가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로. 나는 유아세례를 받은 자다. 아마 아주 오래 전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그걸로 족했을 것이다. 공적인 존재로 입증 받는 것 말이다. 지금은 그보다 다소 복잡한 절차를 거치긴 하나, 둘의 기능은 똑같다. 그건 나를 죽이면 살인자가 되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처벌받지 않으려면 전쟁 상황에서 대치하면 된다.



*   *   *



    사사키는 겉으로만 보면 중세 해석자 혁명이라는 걸 무척이나 변호하려고 혈안이 된 사람도 같다. 반복은 그의 특기고, 에두르지 않겠다고 했다가 독자를 더 빙글 돌아가게 하는 건 그의 습관이다. 제 4장에서 저 이야기가 얼마나 자주 언급되는지는 직접 읽어보면 안다. 내용도 딱딱하다. 아니, 문체는 예전과 다르지 않아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방 안에 있는 기분이지만 다루는 게 법이다 보니. 그런데 들어보면 왜 변호하게 되는지 알 것도 같다. 근대의 모든 것이 저 보이지 않는 혁명에서, 지루하고 수수하고, 정말 지난 4일 간 읽은 것 중 (심지어 다른 책을 포함해서도!)가장 재미없는 저 혁명에서 나왔다. 주권도, 세속국가로 이행된 영토주권의 개념도, 관료제도, 의회제도, 실증주의도, 과학도, 법인도, 경제 기반도, 그리고 재판도. 명백히 영국을 겨냥한 것 같은 비난으로 법 내셔널리즘이 포위된다. 사사키는 국가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고유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드러내준다. 모든 건 중세 해석자 혁명에서 나온 것이라며.


    그러나 그것이 유럽 혁명의 어머니라고 해서 중요한 건 아니다. 어차피 그건 지나간 역사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래서 난 뭐의 어머니이니, 뭐의 아버지이니 하는 칭호를 보면 거부감이 든다. 식상한 역사 이야기. 그냥 검색하면 아는 것. 나는 사사키가 그걸 들려주려고 여름의 밤중에 치열한 글을 썼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자꾸 나오기에 살짝 긴장도 됐지만 그래도 믿었다. 3일 밤까지 그가 들려준 공포의 여운이 이 대낮에도 가시지 않는데, 고작 200쪽 정도에 와서 이 노력을, 마주하라는 그의 명령을 끝까지 실천하겠노라 붙잡고 있던 이 노력을 허무하게 지워버릴 순 없었다. 그래서 뒷이야기가 반갑기까지 했다. 정보=폭력에의 반론이.



*   *   *



    중세 해석자 혁명에서 그는 정보기술 혁명을 본다. 그렇다 해서 그게 어떤 첨단의, ‘테크닉’한, 뭐 ‘하이브리드’한 그런 걸 말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아주 느린 갱신. <팔만대장경>판 작업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다. 각고(刻苦)다. 번역하고, 편찬하고, 제본하고, 수정하고, 색인 넣는 기술은 대단한 각고다. 지금이야 누구나 책을 낸다. 쉽게 책 내게 해준다며 돈 받고 가르쳐주는 이들도 있다. 나도 미술책 하나 써볼까 하는 욕심에 신청했다가 이야깃거리를 더 만들어야겠다는 더 큰 욕심이 생겨 보류한 적이 있었다. 검색은 우리 시대의 본능이고.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갖춰져 있지 않았던 12세기에 이뤄진 저 작업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해보는 건, 우리로서는 가당치도 않다. 사사키는 그 위대함을 반복 강조한다. 그러나 그 위대함으로 우리는 뭔가 잃었다.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르장드르가 ‘춤=텍스트’라고 했던, 『야전과 영원』에서 잠깐 스쳐지나갔던 텍스트의 ‘모든 것’이라는 특징은 구름 같은 이야기다. 사고하기, 읽기, 쓰기, 그리고 춤이 어우러진 모습을 상상해볼 수가 없다. 다큐멘터리를 자주 보기에, 그리고 피카소 공부할 때 부득이하게 아프리카 미술을 들여다봐야했기에 아프리카의 춤을 아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 ‘바운스’와 ‘스핀’들이 텍스트라니? 여기서 문학이 [문학]으로 넓어지는 이 책 첫머리가 소환된다. 조금은 이해해보도록 하자. 아니면 르장드르의 저 공식을 암기하자. 위험한데, 어쩔 수 없다. 요컨대 그건 모든 것으로 퍼져나간다. 거의 무한히. [텍스트]. 웃긴 구식이 없지 않은 르장드르의 이 단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믿어보자. “우리의 법은 춤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225쪽) 아직 어렵다.


    하지만 저것만 받아들이려고 하면 생기는 문제일 뿐이다.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사사키는 바로 이어나간다. 중세 해석자 혁명이 저것을, 즉 [텍스트]라는 걸 단절시켰다고. 우리의 시대가 왔다. 효율적 데이터베이스의 시대가. 그걸 지적한 르장드르 본인도 도서관에 틀어박혀 고서들을 연구할 수 있었던 그 시대. [텍스트]는 텍스트에 한정되고, 다양한 모습을 잃어버렸다. 춤이 어떻게 법인가? 법더러 춤을 추라고? 법정에서? 하나의 사건이 결말을 맺고, 그마저도 피해자 가족의 찢어지는 마음을 달래지 못하는, 차갑게 식은 열정의 공간에서? 그럴 수는 없다. 텍스트, 자네는 정보에 국한되어야겠다. 그 옷을 벗어던질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정보는 낙인이다.


    여기서 우린 춤을 잃어버린 것이다. 상실에 대해 더 열거할 수 있다. 흘린 피도. [문학]도. 왜 그런가? 텍스트가 정보를 의미하는 것으로 좁아지면서 우리는 이후 시대에 출현한 국가를, 신체 구속을, 감시를, 폭력을 봤다. 이후의 모든 혁명은, 심지어 루터를 포함해서까지도 폭력과 귀결됐다. 그렇다. 내가 느낀 폭력의 혁명적 근본성은, 쉽게 말해 모든 혁명에는 폭력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이 때문이었다. 다른 것이 아니었다. [텍스트]의 소멸과 그로 인한 상실이 먼 후손인 내게도 어떤 낙인을 찍어버린 것이다.



*   *   *



    그래서? 우린 늘 물어야 한다. 제시하겠다는 책들 앞에서는 엄중해져야 한다. 철저하게 읽고 곱씹어야 한다. 그것이 독자가 지닌 유일한 무기다. 사사키에게 그 칼날을 겨눠본다. 바른 길은 무엇인가? 그는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한다. 정보냐 폭력이냐의 이분법에서, 택일(擇一)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또 물어야 한다. 그런 우리에게 사사키는 다시 한 번 교황을 불러온다. 그 단체를. 교황은 주권의 유래라고 했다. 이 위대한 혁명 이후 교황은 주권=국가로 자리를 물려주게 되고, 여기에 혁명이 초래한 정보와, [텍스트]를 상실해버린 세상의 폭력적 습성이 더해진다. 쉽게 말해 주권=국가, 정보, 그리고 폭력의 삼위일체, 삼각형 구도가 나온다. 유치한 비유이지만 이것이 바로 근대의 버뮤다 지대다. 여기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여기서 빚어진다. 우린 또 묻는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사사키가 답한다. 이건 유럽의 버전일 뿐이다.


    ‘~일 뿐이다.’라는 귀결은 더 큰 것을 겨냥하고 있을수록 충격 역시 커진다. 반동이 된다. 위험한 말이니까. 근대 국가가 한낱 유럽의 버전이었을 뿐이라니.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그건 유럽의 역사니까. 그러나 세속화의 연막작전을 통해 전 세계를 지배하려고 했던 그들의 야욕과 그로 인한 지금 세계를 들여다보면 그 당연한 말은 충격적인 말이 된다. 과학이니 객관이니 보편이니 하는 말과 신앙과 불신의 이분법으로 서양은 지구 전체를 장악하려고 했었다. 그들끼리 나눠갖다보니 불협화음이 생겨 애당초 예견됐던 대재앙이 두 차례의 전쟁으로, 아무 의미 없는 소모전으로, 대참사로 귀결됐다. 세속화는 트릭이다. 결코 종교에서 떠날 수 없다. 지극한 유럽의 버전이다. 정보와 폭력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장치다. 개발된 것이다.


    세속화의 트릭을 논했으니, 이제 신앙의 ‘정체’가 까발려진다. 믿음과 불신의 이분법은 다 무엇인가? ‘믿는다’는 말이 아프리카로 건너갔을 때 “저 백인이 뭔 말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반응을 보인 한 일화를 소개하며 사사키가 비판하는 건 명확하다. 신앙은 없다. 그것도 유럽의 버전일 뿐이다. 그러니 이 세상이 끝났다고 하는 건 다 종말론적이고, 컬트적이며, 심지어 나치적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버리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이걸 그냥 내쳐버리는 게 더 큰 문제다. 두려워 피한다는 뜻이니까.



*   *   *



   이렇게 보면 예술도 마찬가지다. 『야전과 영원』의 벤슬라마가 다시 떠오른다. 살만 루시디 사건. 그렇다. 그건 사건이었다. 예술은 어떠해야 한다는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유럽에서는 답이 금방 떨어졌다. 예술은 정치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 밀란 쿤데라와 움베르토 에코가 대표적인 논객으로 나와 수많은 옹호를 받았다. 예술은 저 먼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벤슬라마는 반대로 말했다. 그건 이슬람의 상황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왜곡하지 말라. 그렇다고 그가 이슬람을, 문학을 탄압하는 정치 집단들을 옹호했을까? 오히려 그 반대다. 억압되는 예술과 그 자유의 문제는 생각보다 첨예하지 않다. 그 현상을 둘러싼 이들의 논조가 워낙 격양되어 있을 뿐, 그 자체는 단순하다. 사사키와 벤슬라마를 읽어보면, 예술은 정치와 뗄 수가 없다. 그걸 [문학]이라 바꿔 불러보자. 혁명하는 것이다. 정치가 두려워하는, 혁명을.


    생각해보니 몇 해 전이었다. 통학하는 지하철에서 가오싱젠의 문학론을 며칠 정도 붙잡고 있었다. 공감할 부분이 많았다. 문학은 정치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가오싱젠은 말하고 있었다. 그가 프랑스로 망명간 작가라는 배경은 고려해보자. 그도 노력한 이고, 탄압을 받았던 이다. 실천하는 이였다. 사실 난 그를 변호해주고 싶다. 그래서 그랬던 거다. 사사키와 벤슬라마를 읽으면 가오싱젠 역시 유럽적 사고에 빠져 있는 한 작가에,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지나지 않는다. 탄압을 피한다는 것의 절박함을 나는 미술사에서도 여럿 봐서 조금은 생각해볼 수 있다. 나치와 스탈린을 피해 달아난 화가들이 어디 한 둘이었는가. 작품 수백 점을 빼앗겨 자살 충동을 느낀 화가, 스위스로 도망간 뒤에는 독일을 향해 쌍욕을 날린 화가. 이렇게 정치가 쇠사슬을 채우려고 할 때마다 예술이 어떻게 반응했는가는 고려해보자. 그들을 매도할 생각은 한 치도 없다. 그러나 나는 사사키가 주장하는 바가 옳다고 생각한다. [문학]에 대한 것이니. 혁명.


    끝나는 일은 없다. 또 반복되는 밤이다. 강조되는 말이다. 종말론을 향한 조소가 신랄하다.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246쪽) 이쯤 되면 별로 심한 비난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느덧 그와 닮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종말론을 향하는 그들의 두려움과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무심한 사람은 못 된다. 때때로 종말을 생각한다. 그보다는 차라리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처럼 세상이, 아니, 우리의 세계가 끝났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달은 지구 공전 궤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더 이상 밀물과 썰물이 없는 날이 언젠가는 온다. 기후는 가혹해지며, 우리가 시와 노래로 사랑했던 모습은 사라질 것이다. 언젠가 한 화학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자연을 시로 노래하죠. 하지만 자연은 애당초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비인격’이라는 말의 무서움은, 아니다, 그걸 표현해보진 않겠다. 쓸모없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종말은 무섭다. 아직 오지 않은 그곳에 기대어 생애의 힘겨움을 토로해보는 것이다. 광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그게 버거운 상대를 앞에 둔 우리의 생리이지 않은가.



*   *   *



    그러나 사사키는 손을 잡아끈다. 행동에 앞선 사고의 무장을 촉구한다. 끝나지 않습니다. 읽고 쓰는 혁명은 끝나지 않습니다. 이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얼마 전부터 살짝 펴보고 있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까닭이다.


    “체르노빌에서는 ‘모든 것 후’의 삶이 더 기억에 남는다. 사람 없는 물건, 사람 없는 풍경……. 목적지 없는 길, 목적지 없는 전선……. 또 생각해보면, 이것은 과거일까? 미래일까? 가끔 내가 미래를 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스베틀라나의 책, 21쪽)


    저 거대한 사건도, 내가 태어난 해에 일어난 저 대참사도 지금은 공포 영화의 소재로 전락했고, 적극적으로 기억해내려는 자는 별로 없다. 그래서 그녀가 노벨문학상은 받은 것이다. 읽고 쓰기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한 그녀가. 그런 그녀는 다른 구절에서 말한다. 체르노빌 이후 변한 게 없다고. 그러니 사사키가 주장하는 미결말의 세계, 제임스 조이스와 사무엘 베케트를 빌려오며 쏟아놓은 이 세계의 비밀을 어떻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은 수많은 슬픔이 들어 있는 저 우크라이나 작가의 책에서 막을 하나 빌려다가 [읽기-씀]의 구슬에 발라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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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01-24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죽는 운명인데, 종말론을 끌여들여 광란으로 치닫는 인간심리는 어찌 헤아려야 할까 싶을 때 있어요.
유전과 관습 속에 전해진 집단 무의식과 사회적 세뇌?
이렇게는/저렇게는 죽기 싫다는 정체성의 발악?
의미를 만들어내고 합리화하는 인간의 몹쓸 습성?
우리가 보고 배운 죽음의 많은 모습들에서 각기 추출해내 살인이든, 자살이든, 희생이든, 죽을 때까지 끌고감이든, 한정된 시간 안에서 그리 사는 군요...

탕기 2016-01-24 14:12   좋아요 0 | URL
저도 동의합니다. 전적으로요. 그래서 연민을 느끼기도 하죠.
제가 그걸 보고 두려움을 갖는 건 이겁니다.
`인류 멸망의 판타지`라는 게 실은 그걸 보고 싶어 하는 이상한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전체주의적 가학`이라고 표현하면 될까요? 매력적인 습성.
agalma님처럼 그런 걸 보면 참 답답해집니다.
 















사사키 아타루(佐々木 中)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切りとれ、あの祈る手を)』

  : 셋째 밤 독서




2016년 1월 22일




    의도적으로 아포리즘을 멀리 하던 내가 얼마 전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원제 : La Pesanteur et la grâce)』을 샀다. 부끄러운 일이다. 아포리즘인 줄 모르고 성급히 산 까닭이다. 지름신을 경계했어야 했다. 제목만 보고 덜컥 사버리는 책들이 간혹 있다. 꽂아뒀다가 ‘중고로 되팔까?’ 생각을 했다. 이 검은 책은 그렇게 며칠을 서재에 있었는데, 어느 날 그걸 집어 읽었다. 무슨 기분 탓에 그랬는지는 모른다. 지금 와서 기억날 리도 없다.


    중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과학 서적을 적잖게 읽었다. 철학자의 중력 이야기? 그래, 여기서 중력은 어떻게 ‘철학적으로 왜곡’되는가, 두고 보자, 하는 치졸한 마음으로 독서가의 가면을 조금만 더 써보기로 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읽었다. 아니,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지나가는 중이니 사사키의 말을 빌리자.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면을 벗어버렸다. 중력 없이 하강하게 하는 힘, 은총, 가장 낮은 곳까지 향한다는 힘. 그 어려운 일에 대한 책이었다. 언젠가 이 책을 감히 다시 써보겠지만, 마음이 떨렸다. 잠언 모음이다. 그래서 여백이 다른 책보단 많다. 쉴 곳이 많다는 뜻이다. 그만큼 멈춰 설 기회가 많고, 속으로 울다 책을 덮게 되는 때도 많다는 것이다. 두 번 읽기를 기다리며 나는 이 책을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옆에 꽂아뒀다.


    오늘 시몬의 책이 갑자기 생각났다. [읽기-씀]은 3일 째 내가 두 손으로 고이 들고 있는 구슬이다. 깨지기 쉬울 것 같아 여기저기서 다른 책을 빌려다 막을 쳐놓는 중이다. 시몬의 책에서 빌린 막은 “읽기. 어느 정도의 주의력이 개입하기는 하지만 읽기는 중력에 따른다. 우리는 중력이 제시하는 의견을 그대로 읽는 것이다 …… 보다 높은 주의력을 기울이면 중력 그 자체를, 그리고 사용 가능한 여러 가지 균형 체계를 읽을 수 있다.”(시몬 베유, 윤진 옮김,『중력과 은총』, 225쪽)라는 구절이다. 그녀에게 최고의 읽기는, 그리고 쓰기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것은 그 과정을 통해 신을 읽어내는 것이다. 책이 사람을 잡아당긴다는 가벼운 통찰 정도의 얘기가 아니다. 아, 뭐라고 표현할까. 안타깝지만 시몬은 그에 대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   *   *



    내가 뭘 놓쳤던 것일까? 나는 그 구절을, 그 구절의 맥락을, 앞뒤를, 수십 장에 걸친 이야기들을 다시 읽어봤다. “지성은 진정한 겸손에 가장 가까이 있다.”(위의 책, 215쪽)는 말일까? 육체와 세계의 관계를 바꾸는 일에 관한 말이었던 걸까? 유대인인 그녀가 말한 인도의 아트만? 더 앞장으로 가서 읽어보니 ‘사랑하기’가 나온다. 아니면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에 대해 이야기였던 걸까? 모르겠다. 실패다. 첫 번째 독서가 철저한 실패로 끝났다.


   나는 읽는 사람이다. 때때로 가증스럽게 보이기는 하나, 그래도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이 굴욕감을. 돌파구가 다른 곳에서 우연히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릴 만큼의 굴욕감. 그리고 오랜 시간 후에 그 굴욕감이 다시 새벽의 강 안개처럼 찾아오면 저 건너편에서 뱃사공이 나를 태우러 노를 저어 온다.


    사사키의 [읽기-씀]에는 부동의 무언가가 있다. 그건 이 책의 독자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가 읽기와 쓰기와 혁명의 역설에 힘을 주는 구절마다 경전이 언급된다는 것. 뱃사공이 내게 경전을 건네줬다. 경전은 하나의 텍스트가 아니다. 그것을 쓴 사람, 읽은 사람 모두를 자신의 품에 품는다. 대충 읽고 그것을 정치 도구로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경멸의 시선을, 그러나 그 안에서 ‘중력’이 된 이들에게는 존경을.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과의 셋째 밤 여정은 그렇게 요약된다.




*   *   *




    읽고 쓰는 자와 사기꾼을 나란히 세워놓고 후자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밤이다. 둘을 열거만 해줘도 독자들이 알아서 비판하겠지만 사사키는 굳이 목소리를 높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글을 통해 독자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좌천되는지는 헤아릴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사키는 안다. 우리보다 더 잘 안다. 옴진리교 사건은 현해탄을 건넌 저 섬나라에서 일어났었으니까. 그게 일본 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는지를, 대학 시절 잠깐 들어본 적이 있어 새삼 떠올려봤다.


    전 날 밤에는 반종교개혁으로 끝냈으니 일단 사사키도 첫 막은 그 무렵으로 끌고 가서 열어주지만 여기서 또 다시 루터를 소환하진 않는다. 루터는 셋째 밤 마지막 즈음에 가서 아주 잠깐 나올 뿐이다. 이 밤은 신비하다. 이 단어를 둘러싼 부정적인 것들을 다 씻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성의 사회다. 신비를 추종하며 사랑하는 우리에게 진짜 그런 일들이 닥치면 과연 그 단어를 좋아할 수 있을까. 섣불리 답할 수 없다. 그래서 신비주의는 어딜 가든 편견을 뛰어넘기 힘들다.


    일본의 사정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서양도 다를 바 없다. 카렌 암스트롱의 『신을 위한 변론』에도 신비주의의 올바른 정의를 위한 저자의 노력이 곳곳에 발라져 있다. 사사키는 신비주의를 ‘구하기’ 위해 엘리엇, 발레리, 릴케, 파운드, 첼란을 빌리며, 라캉을 구해준 극적인 전회 이야기도 잠깐 언급한다. 신비주의자의 대표 사례로는 아빌라의 성녀 테레지아가 실려 있다. 그녀의 소원대로 말라리아에 걸렸다가 요양하던 중 종교적 황홀감을 반복 경험해서 엄격한 수녀원 규칙을 만든, 가톨릭의 상징적인 성녀. 베르니니가 조각한, 그 엑스타시 속의 성녀다. 읽고 씀이 광기와 연결됨이 다시 확인된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함마드가 나온다. 사족인데, 대학에서 잠깐이나마 이슬람을 공부했었다는 사실이 지금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재산이 됐다. 이번 IS 사태 이후 인터넷 공간에 오고 가던 무분별한 비판과 욕설들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나는 구원받았다.” 오늘날 이슬람은 남성적 이미지가 강하다. 비교종교학 교수도 그렇게 표현했다. 젊고 강력하며 전투적인 이슬람. 물론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게 된 경위를 그는 전부 알고 있었고, 나는 그 과정을 배웠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큰 벽이 허물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장자와 더불어 그 수업만은 대학에서 건져온 보석이라 말할 수 있다.


    사사키가 무함마드를 언급하는 순간부터 이슬람을 모르던 독자들은 아마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첫 무슬림의 대부분이 여성이었고, 무함마드 앞에 ‘어머니’라는 호칭이 달려 있으니. 독자의 자질 문제이긴 하나, 나는 제발 이 책을 (이 글도 마찬가지고) 읽는 이들에게 이슬람 혐오증이 없길 바란다. 그리고 사사키는 분명히 밝힌다. 종교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혁명 이야기를 하는 중이라고. 하지만 이건 거짓말이다. 올바른 거짓말이다. 철저히 종교 이야기를 되풀이 하며 그릇된 세태들에 대해서는 일보의 물러섬도 없는 비난을 쏟아낸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혁명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혁명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   *   *



    아팀(고아)이자 문맹이었던 장사치 무함마드가 대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이 갖고 있었다던 ‘책의 어머니’로 향하는 과정. 소격과 조우의 관계에서 한 인간이, 아니, 사도가 읽고 쓰며 혁명하는 과정은 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으리라. “읽은 것은 굽힐 수 없습니다.” (사사키의 책, 151쪽) 동굴에서 얼마나 두들겨 맞았던가. 혹은 목이 졸렸던가. 아내에게 가서 미쳐버리겠다고 고백하면서 그는 아마 울었을지도 모른다. “여보, 하디자, 저자가, 아니, 그러니까 자신을 천사라 주장하는 저 미치광이가 내게 자꾸 읽으라고 협박하는 거요. 문맹이라고, 바보일 뿐이라고 아무리 머리를 조아리며 울부짖어도 목을 조르고 뺨을 때린단 말이오!”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혜로운 하디자는 그런 어린 남편에게 다시 동굴로 가라고 하고, 그 순간 사사키의 말처럼 한 세상이 태어났다. 아, 세상은 정말이지 여자가 빚는다.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라캉이 ‘여성의 향락’을 말한 극적인 구절이, 그 전회가 다시 떠오른다. 남편은 동굴로 가서 『쿠란』이 되었다.


    나도 반론은 할 수 있다. 얼마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도 이슬람은 칼로 세워진 것이다. 전 날 밤에도 그랬다. 선행하는 것이든 후행하는 것이든, 본질은 폭력이 아니겠냐고. 혁명은 집단을 상대하는 일일 수밖에 없고, 집단은 원래 갈라져 있는, 분절되어 있는 것들의 이질적 집합일 수밖에 없다. 그 집단을 가르는 것들은 수도 없이 많은데, 우린 그 중 정치와 사상의 연결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갈라선 채 아직도 아물어지지 않은 상처 주위에 긴 철책을 두른 민족이 아니던가. 그런데 무슨 혁명인가? 솔직히 지금도 그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목까지 나왔다가 들어가니, 움찔거리는 혀가 갈필을 잡지 못한다. 갈증이 난다.


    그래도 사사키는 단언한다. 여기까지 오니 그 단언이 이제는 익숙해진 듯도 싶다. 무엇보다도 선행하는 것은 읽고 쓰는 혁명이라고. 텍스트라고. 폭력은 그 뒤에 있는 것이라고. 단, 프로이트가 제시한 원부 신화는 예외라 하겠다. 원부가 일삼는 폭력에 대항한 아들들이 아비를 죽이고 법과 텍스트를 출현시켰다는 이 기상천외한 판타지는, 즉 지극히 서양적인 생각에서는 법의 기원이 폭력의 폭력적 중단 이후라고 거의 못 박혀 있다. 법의 기원 문제는 빅뱅만큼이나 해명하기 어려운 과제이리라. 누가 알까.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프로이트 원부 신화의 가타부타가 아니다. 판타지를 두고 그걸 논하는 것도 우스운 모습이긴 하다. 사사키는 여기에 무함마드를 대입시킨다. 원부 신화 공식에 무함마드를 넣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즉, 무함마드는 원부가 아니다. 이건 이슬람 형성 과정에 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로, 오늘날의 정치적 무슬림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이 무함마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문맹. 고아. 아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던 남편. 천사에게 뺨 맞고 목 졸린 이. 아들은 둘이 있었지만 일찍 죽고, 딸만 넷이었던 딸 바보 아빠. 무함마드는 딱 그쯤 됐다. 다른 기존 종파들에서 무수한 비난을 받았고, 죽을 뻔 했던 적도 수 차례다. 그런 그가 최후의 사도이자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됐다. 원부라니 가당치도 않다. 그는 그저 읽고 쓰기를 했을 뿐이다. 정신분석이니 민족학이니 오리엔탈리즘이니 하는 것들로는 절대 이해할 수가 없다. 법은 어디서 왔는가? 읽고 쓰는 자에게서 왔다. 지브릴은 무함마드의 목구멍을 찢고 심장을 꺼내 깨끗이 씻은 다음 다시 넣어줬다.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분명하다. 폭력은 선행하지 않는다. 사사키는 이 대목에서 루터를 잠깐 상기시킨다. 농민전쟁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둔 그가 다시 한 번 강조했던 ‘폭력≠텍스트’를.



*   *   *



    그러니 원리주의는 얼마나 나쁜 것인가. 나와 텍스트를 구별하지도 못해 멋대로 읽고 쓰는, 텍스트 앞에서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는 나약한 자들이 펼치는 논리, 그 논리를 따르는 자들의 우스꽝스러운 춤을 보라. IS는 지하드를 말한다. 그러나 그자들이, 정치 앞에서는 눈에서 피를 쏟을 수도 있는 저 파렴치한 자들이 과연 빛나는 책 『쿠란』을 읽기라도 했을까? 이런 식으로 비판하면 피해갈 수 있는 종교는 하나도 없다. 사이비 종교는 물론이고, 제도권 종교도 마찬가지다. 예수는 분명히 말했다. 언제 올지 모르니까 깨어 있어주시오.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리던 자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그저께 집 앞에서 강아지 산책을 시키던 동생이 (강아지 발 닦일 양으로) 받아들고 온 물티슈 봉지 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심판의 날이 ‘곧’ 온다고. 천국의 문 앞에서 무척이나 초조해하는 목사와 신도들이 다니는 교회인 모양이었다.


    종말과 죽음을 팔아서 품을 넓히는 행태들은 무수히 많다. 다시 언급할까? 히에로니뮈스 보스의 <건초수레 삼단화>를? 종말과 죽음, 라캉 식으로 말하자면 만민이 그 앞에서 평등할 수밖에 없다는 ‘절대적 향락’을 상품으로 판다. 무한의 죽음. 아, 그것은 나치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절멸의 국가. 그러니 그들을 ‘절멸의 종교’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는 하등 없다. 끝을 말하는, 시작을 말하는 현대인들은 이에 너무나도 손쉽게 동조하는 것이리라. 비판이 여기까지 나가니 몸을 떨 수밖에. 아감벤을 경멸조에 가깝게 비판(솔직히 비난)하는 구절에서는 이 책을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한 번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은 무서운 책이다. 우선 제목부터가. 손을, 아니, 기도를 자르라니.



*   *   *



    나는 전 날 밤 예상하길 셋째 밤 정도 되면 중세 해석자 혁명이 나오겠거니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무함마드로 이야기가 엇나가면서 다시 모아지는 이 내용들이 슬슬 버거워졌고, “이건 대체 무엇인가!”라는 탄식이 속마음에서 불현듯 튀어나오기에 이르렀다. 『야전과 영원』 이후 늘 불편했던 마음이 어디서도 위안을 받지 못하더니, 이제는 아예 위안 받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는 충고가 제 3자의 선언처럼 판결봉을 휘둘러버린 모습이다. 딱 그렇다.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에서 항적(航跡), wake, track, furrow의 그것을 논하면서 나는 또 한 번 어디론가 끌려간다. ‘끝없음’으로. “그리고 다시 싸우기 시작했어.”라고 말하는 블라디미르와 “그리고 또 새로운 밤이 찾아오지.”라는 포조의 ‘기약 없음’의 세계로. 하나도 결정적이지 않다. 그러니 여기저기 올이 풀려버린다. 기억이 깨지고, 나는 허허벌판에 있다. 큰일이다. 공포를 버티는 일은. 읽고 쓰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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