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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30  

 

  그렇다면 이슬람은 어떠할까? 브루스 링컨의 <거룩한 테러>에 따르면 이슬람 세계는 현존하는 최고의 ‘종교최대주의 국가’들로 이뤄져 있다. 최근 들어 ‘아랍의 봄’ 분위기 속에서 신정국가의 민주주의 대열 합류가 본격화되고 있으나, 그들이 몰아내고자 하는 것은 ‘독재’일뿐, 그들의 ‘이슬람적 이성’이 아니다. 미국, 프랑스, 영국, NATO 등의 도움을 받았지만 특히 이슬람 국가들의 대부분이 적대시하는 미국은 개입을 꺼려했고, 여전히 반미정서는 강하며, ‘아랍의 봄’을 이끈 사람들은 그들의 힘으로 공화정을 세우고자 한다. 이는 서구의 학자들이 바라는 이슬람의 개방이 아닌, ‘민주주의의 이슬람화’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젱하스는 이슬람의 개방을 논하는 챕터에서 유럽의 다원성과 이슬람의 문화적 유산이 어떻게 서로 조우할 수 있는지 여러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그의 주장은 10년 전에 제기된 것이다. 

  젱하스는 이슬람 속에도 다양한 이념이 있었다며, 근본적으로 이슬람이 다원성을 추구하지 않는 종교로 보는 시선은 잘못된 것이라 진단했다. 시아파, 수니파, 신비주의적 수피교단 등 우리나라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종파가 있으며, 7세기에는 상이한 <코란> 해석이 존재했었다. 이라크는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에서 일어난 비극적 역사의 무대였다. 알다시피 이 국가는 정통파인 수니파를 믿는 대다수의 아랍 국가와는 다르게 분파인 시아파를 지지(국민의 약 80%)하는데, 수니파에서 지도자가 나와 나머지 국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바로 사담 후세인이다. 이로써 시아파를 국교로 하는 이란은 이라크와 사이가 극렬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는 서로 다른 이념적 가치가 빚어낸 참극인데, 견고한 듯 보이는 이슬람이 지닌 최대의 단점이기도 하다. 이 단점은 상이한 교리를 서로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경우에만 극복된다. 

  이슬람의 세속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뤄졌고, 터키의 경우에는 프랑스를 롤모델로 1929년부터 개혁의 박차를 가했다. 종교의 교조주의가 허락지 않는 범위의 세속화가 아랍 세계에 밀려 들어왔고, 지금은 차도르 착용을 놓고 그들 스스로가 상반되는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아이들이 서구의 문화를 접하지 못하도록 여러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런 차단은 미미한 수준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슬람 사람들은 세속화의 직접적인 경험자이다. 중동이 지닌 최고의 자본수단인 석유가 세계 각지로 유통되면서 엄청난 자본이 중동으로 들어갔으며, 자본주의의 주류 국가가 된 그들은 오늘날 수많은 초국가적 기업의 도움으로 놀라울 정도의 ‘유럽화’를 이뤄내고 있다. 이런 상황의 한편에서 더욱 강력해지는 것은 근본주의인데, 이것이 아랍을 둘로 나누고 있다. 이토록 이슬람이 빠르게 서구화될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의 추세로 보자면 매우 놀랍기도 하다. 하지만 이슬람 학자들 중 일부는 그렇게 진단하지 않는다. 바로 <코란> 자체가 항상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서구의 물질화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코란>과 그들의 합리적 정신에 입각해 서구의 합리주의와 민주주의를 그들에게 알맞도록 수용해왔다는 것이다. 

  <코란>의 두 텍스트인 메카본과 메디나본은 서로 특징이 다르다. 메디나본이 더 배타적이다. 이는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이 가능한데, 마호메트의 이동과 관련된 내용은 매우 길기 때문에 언급하진 않으나, 이는 두 텍스트가 현대적 상황에 맞는 새로운 해석으로 재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슬람의 종교법인 샤리아가 현대의 이슬람에게 맞지 않다는 것에 착안한 이슬람의 개방주의자들은 이슬람 내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경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경전 그 자체로써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봤을 때, 천 년은 더 전에 만들어진 텍스트로 지금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주장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종교는 사회의 한 기능만을 맡을 뿐, 종교가 사회를 온전히 규정하진 못한다. 즉, 위에서 말한 ‘종교 최대주의의 국가’들이 주를 이루는 아랍이 ‘종교 최소주의의 국가’들로 이뤄져 있는 서구와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길을 걸어온 서구의 역사에서 이슬람도 배울 점이 있다고 젱하스는 강조한다. 이슬람이 서구를 비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세속화’라는 정신적 독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젱하스는 “갈등을 통해 점점 강하되는 다원성을 위한 적절한 표현방식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진단한다. 결과적으로 근본주의는 이슬람 그들 자신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 챕터에서 젱하스는 불교를 언급한다. 최근 불교 관련 서적들은 베스트셀러의 자리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 법정 스님, 법륜 스님 등 일상의 지혜를 알려주는 책을 쓴 고승들에게 사람들은 열광하며, 특히 최근 법륜 스님의 정치관련 발언은 불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외에도 틱낫한, 달라이 라마, 코이케 류노스케 등 불교적 삶을 일상에서 실천하도록 격려하는 타국의 스님들에게도 많은 관심이 쏠려 있다. 칼 야스퍼스도 불교를 일컬어 “아시아의 온화한 빛”이라고 불렀다. 서양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불교는 거의 혁신적인 대안 종교이다. 그들이 티벳 불교를 바라보는 눈은 순수한 아이와도 같은데, 불교의 무상, 윤회, 극락, 무소유 등 진리에 이르는 정신(이와 관련된 책으로는 임현담氏의 <히말라야 있거나 혹은 없거나>를 추천한다.)들은 유일신이 규정한 세계 속에서 살았던 그들에게 매우 독특하면서도 위안을 주는 개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젱하스는 불교의 곱지 않은 역사를 예로 들며 불교의 특성상 그것이 정치화되는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물론 그의 지적은 옳으나, 세계 주요 종교들의 분쟁사를 통계(나는 이와 관련된 강의에서 실측 자료를 본 적이 있는데)해 보면 불교의 폭력은 힌두교와 함께 가장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젱하스는 불교의 사상을 현대사회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묻는다. 승가(僧家)공동체는 과연 현대사회에 적합한 롤모델이 될 수 있을까? 일단 젱하스는 불교의 사상을 종합해본다. 먼저, 불교는 본래 이곳의 생을 고통 그 자체라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왜 고통스러운가?” 그것을 붓다는 욕망과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즉, 극락(니르바나)으로 가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며, 내가 ‘나’가 아닌 것을 알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불교는 인식의 그물망을 친다.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 (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로는 KBS가 지난 10월 15일부터 방영한 4부작 <다르마>를 추천한다. 제작취지는 대장경 기념이지만 주로 ‘치유’의 관점에서 제작된 만큼 현대인인 우리에게 호소하는 바가 크다.) 순수한 의지가 드리운 신비한 장막을 우리가 거둬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불교적 삶은 가장 이상적인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불교의 한계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순수한 개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불교적 해탈의 교리를 따르게 되면 이러한 사회(현대사회)를 다룰 수가 없다.”는 것이 젱하스의 진단이다. 그리고 한 학자(Sulak Sivaraksa)의 진단도 소개한다. “사회가 훨씬 복잡해지면 윤리적 규범에 대한 그런 단순한 해석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능성을 아주 배제하진 않으며,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젱하스가 지적한 것과 같이 불교는 매우 개방적인 종교이고, 단순하지만 ‘바람직함’을 추구하는 민주적 절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불교와 현대사회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정신적으로 도덕적인 사회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모든 이가 불교적 삶을 따라야 하겠으나, 이러한 정신의 “각성과 해방이 공공 영역의 목표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문제로 거론되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른바 세속화된 ‘사회의 틈’이 불교의 호소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기는 해도 호소력이 그 틈을 충분히 채워주기에는 세계의 규모가 너무 크다. 

  마지막으로 젱하스는 힌두교를 언급하나, 사실 힌두교는 종교라 할 수 없다. ‘힌두교’라는 말 자체가 서양인들이 만든 것이고, “자연 상태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힌두교는 수많은 지역종교와 이념의 종합이고, 여러 경전과 여러 진리의 종합이다. 따라서 이 종교에서는 금욕주의자부터 ‘쾌락’주의자에 이르는 다채로운 종교인들이 있다. <리그베다>에도 이것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진리는 하나이지만 그것을 현자들이 다양하게 이름 붙인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힌두교는 그 어떤 ‘종교’보다도 영적 다원성을 지녀 항상 관대하고, 거의 모든 ‘세계윤리’를 추출해낼 수 있는 진리의 밭이기도 하다. 하지만 힌두교에도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아니, 힌두교를 믿는 곳에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었다. 바로 카스트이다. (이것을 ‘문제’라고 볼 수 있는 시각은 현대문명의 것이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한 번 쯤 학창시절 외워봤을 단어들이다. 카스트는 위에서 아래로의 포용을 포함한 그와 상반되는 계급별 배제의 원리로 이뤄져 있는 인도 특유의 위계질서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 오해를 한다. 힌두교를 믿기 위해서는 카스트에 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사고이다. 힌두교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베다>를 믿는 것, 영혼이 죽지 않음을 믿는 것, 업보를 믿는 것, 해탈의 가능성을 믿는 것 등”을 충족시키면 될 뿐, 굳이 카스트를 옹호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힌두교의 현대적 해석이다. 그러나 인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매우 개방적인 힌두교조차 카스트를 언급할 때에는 상당히 폐쇄적이다. 그리고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인도는 본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를 포함한 지역이었다. 이들의 분할을 막으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간디이다. 인도 내의 이슬람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로, 그리고 불교는 스리랑카로 나뉘었다. 하지만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인도 내의 시크교, 이슬람, 불교, (선교의 목적으로 들어왔던) 그리스도교 등 교조적 집단들이 종교의 독립을 원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는 지역주의를 만들어 서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대량학살의 전염병이 이곳에서도 번지게 했다. 특히 힌두교 근본주의자인 이른바 ‘우월주의자’들은 독립 이후 세속화된 인도 정부를 공격하면서 카스트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데, 그들이 교조적 집단의 독립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를 젱하스는 ‘힌두교의 패러독스’라 부른다. 그리고 이의 해결을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물론 이론적인 제안이다. 

  한 학자(Arvind Sharma)의 제안을 인용한 그는 그것이 현실성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았다. 그 학자의 제안이란 이런 것이다. 힌두교의 윤회 개념은 카스트를 방어한다. 그것을 현대적 삶에 적용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의 삶은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안에 네 개의 카스트가 모두 존재한다.”고 믿으면서 윤회의 개념을 한 사람의 일생으로 축소시킨다. 쉽게 말해 긴 윤회를 우리의 일생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평생 브라만도, 크샤트리아도, 바이샤도, 그리고 수드라도 될 수 있다. 이를 학자는 경전을 읽고, 의식을 치르는 것(브라만),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크샤트리아), 직업을 갖는 것(바이샤), 그리고 서비스를 하는 것(수드라) 등으로 해석했다. 대단히 혁신적인 사상이기는 하나 현실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위에서부터 살펴봤으나, 이슬람과 불교, 그리고 힌두교를 앞에 두고 젱하스가 갖는 기본적인 태도는 일관적이다. 소위 말하는 ‘대세’이다. 아니, ‘현실부합론’이라 해야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가령 이런 대목들이다. “서구의 경험에서 이슬람 사회도 본질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불교 신자들도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틀에서 살고 있다. 여기에서는 시민이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카스트 제도가 없는 힌두교에 대한 이념은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오늘의 현실에 부합하는 것이다.” 즉, 젱하스는 세계의 ‘유럽화’가 어쩔 수 없이 진행된다고 본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것에 반대되는 행위가 바로 근본주의이다. 

  젱하스는 ‘도덕의 황금률’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고, 이것이 정치의 선택을 받아 극단적으로 나뉜다고 했다. “궁지에 몰리는 상황에서 전통주의와 정통파에 의해 규정된 유산과 경전의 ‘텍스트’에 모든 것을 고착시키는 경향이 강화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유사한 상황에 빠진 모든 문화권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이번 챕터에서 여러 종교의 본질적 특성과 현실 상황을 대비해 어떤 방향으로 현대사회와 그들이 조우할 수 있는가를 주목했다면 다음 챕터에서는 그 현실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시선을 소개한다. 바로 ‘문화전쟁’을 바라보는 제 3자, 즉 우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의 시선과 그 전쟁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시선이다. 이로써 우리는 ‘문명 내의 충돌’이라는 테제를 보다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3편으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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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7 



 

 

 

 

 

 

  디터 젱하스의 <문명 내의 충돌>은 지난 계절학기에 들은 종교관련 강의 레포트를 위해 참조했던 것이다. 비록 요한 갈퉁과 강인철 교수의 책을 기반으로 써야 한 레포트였지만 사실 몇 주 간의 심각한 고민에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은 디터였다. 그가 문화에 대해 깊게 알고자 하는 신중한 독자들에게 준 메시지의 중요성은 상당히 크다. 언젠가 제대로 복기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긴 호흡으로 그의 책을 샅샅이 파헤쳐보고자 한다. 몇 편에 걸쳐 긴 글을 쓸 것이다. 

 

*       *       * 



  디터는 문화의 불연속성과 투쟁에 대해 꼼꼼하게 역설하고 있는데, 그와 반대되는 테제는 그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이었다. 새뮤얼의 테제는 문명 간의 갈등이 심각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밝혀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요한 갈퉁 역시 이에 동조하여 비폭력 평화주의를 역설했다. 하지만 같은 평화주의자로써 디터는 문명충돌의 세계적 현상을 다르게 바라본다. 그가 보기에 문화는 명백한 실체가 아니다. 문화는 카테고리로써 규정할 수 없다. 여기서 디터는 한 학자(Dirk Baecker)의 문장을 빌린다. 문화란 “가치를 둘러싸고 벌인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투쟁’이라는 단어에 집중한다면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유독 동양에서는 고전적 성격을 띤 민족국가와 대제국이 자주 출현했으나, 유럽은 그렇지 못했다. 독자적인 자율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세력도 쉽게 유럽을 ‘통째로’ 소유하지 못했던 것인데, 이것이 바로 유럽의 ‘빗나간 권력집중현상’을 수 세기동안 진행시켰다. 이의 중요한 예로써 디터는 영국의 <대헌장(1215년)>의 취지, 즉 ‘통제와 균형’을 상기시킨다. 유럽의 역사는 이후 불연속과 혁신이 주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근대화했을 때, 제국주의가 등장했으며, 그들의 정치적 야욕 앞에 비유럽의 문화가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런 경우 대체로(디터는 분명히 나뉜다고 하진 않았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략적인 분류는 해놓았다.) 비유럽의 문화는 서구화 정책, 폐쇄정책, 둘의 적절한 혼합, 혹은 아주 드물게 대단위의 혁신을 이룩하는데, 이 과정 속에서 전통사회는 유례없는 ‘유동성’ 탓에 혼란기를 겪는다. 이것이 바로 문명 내의 문화충돌이며, 디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이다. 혼란기를 잘 극복하고 서구화를 이룩한 지역은 대체로 동아시아이고, 여전히 극복하지 못해 숱한 내전과 만성적 개발위기를 겪는 지역은 이슬람이다. 하지만 둘의 문화적 결과는 동일하다. 전통문화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문화는 분화된다. 

  분화된 문화가 일률적으로 서구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전통사회의 가치관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즉, 근대화를 통해 개조된 가치관이 해당 문화를 거의 독점하게 되는데, 이는 유럽이나 비유럽이나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유럽은 근대화의 시작과 함께 각종 사회적 병폐들을 떠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권’, ‘민주적’, ‘사회적’, ‘법치(法治)’ 등의 제도적 완충장치가 마련되게 된다. 이는 철학적으로 정당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과정 중 그들의 선택에 의해 확보된 가치관으로써 어떠한 역사적 보편성도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세계가 마치 그리스도교 對 이슬람교로 확연히 구분되는 것처럼 ‘보도’되는 편향적인 현상에 사람들이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서구의 가치관은 비유럽의 전통문화를 파괴시킨다. 다만 유럽이 천천히 계몽된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비유럽에서는 서구화의 압력과 제국주의의 압제, 혹은 스스로의 개혁의지가 빠르게 박차를 가했다는 점에서 유럽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우리나라가 이와 같은 상황의 대표적 국가이다. 서구화가 상당히 진행된 것처럼 보이나, 그 과정이 너무 빨랐고, 정신적 가치들이 전통문화와 거의 강제적으로 충돌하면서도 제대로 흡수되지 않은 채, 혹은 왜곡된 채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각종 사회적 병폐들이 ‘치유’되지 못한 선진국이 된 것이다. (우리는 너무 빨랐기 때문에 디터의 말에 따르면 “그에 대한 방어로서 더욱 강렬하게 기존의 문화, 그리고 일상적 혹은 상상된 전통을 찾게 되는” 현상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진단은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견지하려는 수많은 국내도서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디터는 1장에 들어가기 전, 생소한 용어 하나를 제시한다. “문화 상호 간의 비교를 새로운 과제로 인식한 철학”이라는 뜻의 ‘간문화적 철학(Interkulturelle Philosophie)’이다. 용어는 낯설지 모르나, 개념은 익숙하다. 디터의 글이 완성된 때는 21세기가 아니었다. 당시 우리는 세계화, 지구촌, “세계는 하나”와 같은, 나름 ‘트렌디’한 용어들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까? 지금은 과연 어떠한가? 21세기에 접어들어 이 시대의 철학자들에게는 새삼스러운 과제가 하나 주어졌다. 전례 없었던 세계화를 철학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전통사회를 기반으로 했던 역대 유명 철학자들의 원대한 사고와는 전혀 다른 차원을 요구하는 철학이었다. 

  세계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는 매년 발행되는 각국의 미래보고서를 통해 수 있고, 우리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많이 사회가 ‘개조’되었는지를 진단해볼 수 있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읽을 때에도 느낀 것이지만 라다크 사회의 개조는 우리가 흔히 각 분야라 여기는 ‘사회’와 ‘정치’가 서로 얽히면서 일어난 충돌과 투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결과는 안타까웠으나, 라다크가 예외일수는 없었다. 문화개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 “코카콜라”나 “나이키”, 혹은 “켈빈 클라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라다크의 티벳 불교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이야 서양인들에게 재조명되고 있으나, 소위 ‘문명화’된 사회에서 티벳 불교와 같은 ‘우주중심적’인 전통철학은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전통철학이 유지해오던 사회의 유기적인 모습은 산산조각난다. 라다크 사람들은 갈등이라는 것을 거의 몰랐었다. 하지만 서구화되는 동안 양산된 각종 갈등둘이 그들을 시시각각 괴롭혔고, 결국 그들은 열등감에 빠져 남의 손을 빌리는 처지로 내몰렸다. 

  반면, 서구에서 진행된 이 갈등들, 혼돈과 카오스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 답을 내놓은 지역은 역시 서구였다. 담론, 규율, 기능적 분화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역할 분화, 민주적 참여 요구, 분배의 정의와 공정에 대한 논란, 그리고 이를 모두 합친 바로 ‘정치문화’이다. 디터는 이를 “문명화의 육면체”라 부른다. 그러나 이것들의 실체는 사실 임시이자, 강제였다. 결과는 어떠한가? 분배의 정의와 공정을 위해 부르짖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항상 참패를 맞이해야 했다. 오히려 그것은 갈등을 드러내기만 했다. 어떠한가? 우리가 저지르는 온갖 병폐와 비리가 자연스러운가? 아니면 그것을 방지하고 처벌하는 제도들이 자연스러운가? 디터는 전자라고 답한다. 전자가 선행한다. 즉, 문명화는 전통사회에 대한 투쟁이다. 따라서 ‘문화 본질주의’라는 단어는 성립하지 않는다. 문화에는 본질이 없다. 그것은 DNA도 없고, 상속도 없다. 문화 본질주의는 때론 우생학적 궤변(에드문트 후설)으로 잘못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유럽은 대단히 힘든 역사를 거쳐 만든 가치로써 병폐와 맞서고자 했고, 때론 운이 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성립된 유럽 내의 ‘서구화’는 국제적 표준안이 된 듯 큰 권력을 행사했고, 비유럽이 그 권력 앞에 놓였다. 이는 유럽이 스스로 받았던 힘보다 더 큰 힘이 된다. (유럽이 열광했던 오리엔탈리즘, 시느와즈리, 우키요에, 유교 유입, 러시아 문화 유입, 최근 티벳 불교에의 관심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힘은 다양한 현상을 낳는다. 중국처럼 최근에 들어서도 전통문화를 대체할 서구적 사상들 중 하나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국가가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처럼 비교적 명확하게 서구화된 나라도 있다. 반대로 이를 저지하는 움직임으로 디터는 간디를 예로 든다. 절반만 추구하려는 움직임에서는 다소 민족주의적 경향(독일의 경우)을 발견할 수도 있다. 정신을 그대로 두는 쪽에는 오늘날 상당한 문제가 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있다. 최근 KBS, NHK, CCTV, 대만TV 등을 비롯한 아시아 유수의 방송들이 “아시아적 가치”를 모토로 한 여러 다큐멘터리, 가령 <차마고도>, <누들로드>, <아시안 트리> 등을 기획하는 것도 이런 정신을 대변한다고 하겠다. 앞서 말한 네 번째 경우인 혁신에는 서아프리카의 철학자들이 포함(이들의 사상에 대해서 나는 거의 모른다.)된다고 하나, 이는 대안적 인식론일 뿐 어떠한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혁신이란 대체로 전통사회와 서구화 사이의 문제점을 깨닫고 사회 전체의 질적 변화, 소위 ‘점프’를 요하는 것인데, 한 사회가 전적으로 완전히 개방되리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디터는 위의 과정을 거치는 유럽적 경험들이 반복될 자명한 현상, 즉 세계화는 앞으로 수 십 년은 지속될 것이라 예견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슬람의 ‘봄’을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디터는 이어 중국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에 등장한 대표적인 다섯 가지 사상을 예로 들면서 그곳으로부터 현재의 우리가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필요한 교훈 몇 가지를 끌어낸다. 이 부분은 특별히 정리하지 않아도 중국역사를 잘 알고 있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공자, 맹자, 순자, 한비자, 묵자, 양주, 그리고 도교 등의 사상은 유명하다. 그리고 이들의 사상이 모두 역사적 혼돈기에 사회의 질서를 구비하고자 나타난 것임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디터는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이들이 모두 현대적 사상을 설파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아주 명료하다. 우리는 흔히 공자를 수직사회의 병폐를 야기한 인물로 보나, 실제 공자가 내놓은 패러다임은 “지배자의 정당성 문제를 사회적 복지와 관련”해 생각했다는 점에서 탁월했다. 맹자가 이에 근거해 역성혁명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디터는 도교의 ‘문명저항’적 이미지에 대해 갖는 편견을 반박하며 “공적 질서의 형성을 위한 하나의 기본 입장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법을 모두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패러다임을 설파한 한비자, 자율적 윤리(사랑)에 호소하는 묵자, 자기중심적 삶의 영위를 주장한 양주 역시 현대적 인물들이라 주장한다. 

  이런 사상들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상호보완적 특성을 지닌다.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중국이 현대적 사상을 내놓을 수 있었던 까닭을 디터는 유럽의 근대화와 맞닿아 설명한다. 즉, 유럽의 근대화는 전통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이룩되었는데, 중국의 백가쟁명 역시 그러했다는 것이다. 이를 디터는 “전통을 비판하는 전통”이라 부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늘날의 중국이 그 전통을 다시 한 번 상기하도록 우리가 격려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이는 “중국이 틀리니 미국이 옳다.”고 말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의 견해와는 다르다. 디터는 중국의 과거에서 다양성의 긍정을 보고 고무되었던 것이다. 현 중국정부의 체제와 이를 비교해봤을 때, 분명 디터의 주장은 실효성이 적어 보이기는 하나, 중국의 올바른 근대화를 이끌기 위해서 중국이 반드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중국은 중국 나름의 중앙체제적 발전방법이 있다고 말한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의 옹호에도 일견 타당한 면이 있으나, 그런 개발이 준 폐해는 서양이 지적해온 바대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양의 폐단도 늘 상기되기 때문에 故 김대중氏가 리콴유의 ‘아시아적 가치’에 반대해 서로 다른 가치의 융합인 “지구적 민주주의”를 말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민주주의만이 유일한 결론이라고 봤다.)    

 



- 2편으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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