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 아타루(佐々木 中)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切りとれ、あの祈る手を)』
: 넷째 밤 독서
2016년 1월 23일
여러 남자를 만나 다섯 아이를 난 한 여자가 있었다. 아이들을 모두 출생신고하지 않았던 것 같다. 1987년의 가을. 새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겠다며 집을 나갈 준비를 한 그녀는 당시 14살이던 장남에게 5만 엔을 쥐어주고 홀연 사라졌다. 이후 참극이 벌어졌다. 막내인 아이 E는 장남과 두 친구에게 죽도록 맞아 사망했다. 건물주에게 도움을 받은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14살인 장남(아이 A), 7살 난 아이 B, 그리고 3살 된 넷째 아이 D가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다. 아이 C의 시신도 집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아이 E의 시신은 취조 과정에서 얻은 단서를 바탕으로 한 숲에서 뒤늦게 찾았다. 뉴스가 연이어졌고, 이를 본 아이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 9개월 만이었다.
1980년대 말에 일본을 광분케 했던 스가모 어린이 방치 사건(巣鴨子供置き去り事件)이다. 2010년에는 오사카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아이 엄마는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복역을 마친 뒤 두 딸의 양육권을 인정받았고, 장남인 아이 A는 보호소에 들어갔다. 이 아이들은 법 밖에 있었다. 출생신고가 없었으니 사회에서는 그들을 뭐라 부를 수도 없었다. A에서 E까지 번호 같은 호칭만 있었다. 우린 법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에게 분노를 금치 않는다. 굳이 땅콩사건을 떠올리며 몸을 떨 필요는 없다. 하지만 법의 밖에 있는 자들은, 그들은 우리가 알 수가 없다. 우린 태어나고 살아가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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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일본인인 사사키는 이 이야기를 꺼내 태어난 아이에게 법적인 인격을 부여하는 법과 국가의 역할, 그 기능에 대해 역설한다. 물론 시작에서는 앞서 예고했던 것처럼 중세 해석자 혁명, 모든 유럽 혁명의 어머니인 그 혁명을 들여다보지만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재생산, 번식, reproduction을 보증하는 국가의 기능이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보려고 중세 해석자 혁명을 들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 혁명은, 11세기 말 피사에서 발견된 <로마법 대전>의 해석을 필두로 시작된 교회법의 재해석, 집성, 증식 과정은, 그리하여 교회가 성립하고, 모든 근대국가의 원형이 출현하게 된 그 혁명은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의 어느 이야기에 지나는 것이 아니다.
사실 reproduction의 보증에 대한 국가의 기능을 강하게 역설하는 사사키의 심정을 우리는 헤아려봐야 한다. 간과되기 쉬운 문제니까. 그는 옴진리교 사건의 충격을 공유한 일본 사회의 일원 중 한 명이다. 저 사이비 종파가 어린이들을 어떻게 학대했었는가. 이를 떠올리던 그는 “혁명은 아이의 삶을 ‘수호하는’ 것이어야 합니다.”(202쪽)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어지는 논조는 더 거칠다. 인권강화에 대한 권고를 무시하는 일본 정부를 두고는 “참 대단한 선진국 나오셨네. 그렇죠?”(204쪽)라고 비아냥거린다. UN이 부유하는 단체라고 지적한 르장드르의 『텍스트의 아이들』이 언급된 걸 보니, 반동에 대한 선입견은 일본이나 프랑스나 우리나 매한가지인 듯하다. 읽는 이들을 두려워하는 공포. UN의 실패와 대비되는 것이 바로 국가가 지닌 계보의 원리다. 『야전과 영원』을 읽고 보니, 지금은 그 역할은 국가의 상징으로 떠넘겨지고 나머지 모든 건 매니지먼트가 하고 있는 듯하나.
교회법이 내규가 아닌 민법과 관련된 것이었다는 말에서 여기로 넘어온 것이다. 그것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를 들여다보면 근대국가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로. 나는 유아세례를 받은 자다. 아마 아주 오래 전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그걸로 족했을 것이다. 공적인 존재로 입증 받는 것 말이다. 지금은 그보다 다소 복잡한 절차를 거치긴 하나, 둘의 기능은 똑같다. 그건 나를 죽이면 살인자가 되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처벌받지 않으려면 전쟁 상황에서 대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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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는 겉으로만 보면 중세 해석자 혁명이라는 걸 무척이나 변호하려고 혈안이 된 사람도 같다. 반복은 그의 특기고, 에두르지 않겠다고 했다가 독자를 더 빙글 돌아가게 하는 건 그의 습관이다. 제 4장에서 저 이야기가 얼마나 자주 언급되는지는 직접 읽어보면 안다. 내용도 딱딱하다. 아니, 문체는 예전과 다르지 않아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방 안에 있는 기분이지만 다루는 게 법이다 보니. 그런데 들어보면 왜 변호하게 되는지 알 것도 같다. 근대의 모든 것이 저 보이지 않는 혁명에서, 지루하고 수수하고, 정말 지난 4일 간 읽은 것 중 (심지어 다른 책을 포함해서도!)가장 재미없는 저 혁명에서 나왔다. 주권도, 세속국가로 이행된 영토주권의 개념도, 관료제도, 의회제도, 실증주의도, 과학도, 법인도, 경제 기반도, 그리고 재판도. 명백히 영국을 겨냥한 것 같은 비난으로 법 내셔널리즘이 포위된다. 사사키는 국가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고유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드러내준다. 모든 건 중세 해석자 혁명에서 나온 것이라며.
그러나 그것이 유럽 혁명의 어머니라고 해서 중요한 건 아니다. 어차피 그건 지나간 역사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래서 난 뭐의 어머니이니, 뭐의 아버지이니 하는 칭호를 보면 거부감이 든다. 식상한 역사 이야기. 그냥 검색하면 아는 것. 나는 사사키가 그걸 들려주려고 여름의 밤중에 치열한 글을 썼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자꾸 나오기에 살짝 긴장도 됐지만 그래도 믿었다. 3일 밤까지 그가 들려준 공포의 여운이 이 대낮에도 가시지 않는데, 고작 200쪽 정도에 와서 이 노력을, 마주하라는 그의 명령을 끝까지 실천하겠노라 붙잡고 있던 이 노력을 허무하게 지워버릴 순 없었다. 그래서 뒷이야기가 반갑기까지 했다. 정보=폭력에의 반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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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해석자 혁명에서 그는 정보기술 혁명을 본다. 그렇다 해서 그게 어떤 첨단의, ‘테크닉’한, 뭐 ‘하이브리드’한 그런 걸 말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아주 느린 갱신. <팔만대장경>판 작업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다. 각고(刻苦)다. 번역하고, 편찬하고, 제본하고, 수정하고, 색인 넣는 기술은 대단한 각고다. 지금이야 누구나 책을 낸다. 쉽게 책 내게 해준다며 돈 받고 가르쳐주는 이들도 있다. 나도 미술책 하나 써볼까 하는 욕심에 신청했다가 이야깃거리를 더 만들어야겠다는 더 큰 욕심이 생겨 보류한 적이 있었다. 검색은 우리 시대의 본능이고.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갖춰져 있지 않았던 12세기에 이뤄진 저 작업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해보는 건, 우리로서는 가당치도 않다. 사사키는 그 위대함을 반복 강조한다. 그러나 그 위대함으로 우리는 뭔가 잃었다.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르장드르가 ‘춤=텍스트’라고 했던, 『야전과 영원』에서 잠깐 스쳐지나갔던 텍스트의 ‘모든 것’이라는 특징은 구름 같은 이야기다. 사고하기, 읽기, 쓰기, 그리고 춤이 어우러진 모습을 상상해볼 수가 없다. 다큐멘터리를 자주 보기에, 그리고 피카소 공부할 때 부득이하게 아프리카 미술을 들여다봐야했기에 아프리카의 춤을 아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 ‘바운스’와 ‘스핀’들이 텍스트라니? 여기서 문학이 [문학]으로 넓어지는 이 책 첫머리가 소환된다. 조금은 이해해보도록 하자. 아니면 르장드르의 저 공식을 암기하자. 위험한데, 어쩔 수 없다. 요컨대 그건 모든 것으로 퍼져나간다. 거의 무한히. [텍스트]. 웃긴 구식이 없지 않은 르장드르의 이 단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믿어보자. “우리의 법은 춤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225쪽) 아직 어렵다.
하지만 저것만 받아들이려고 하면 생기는 문제일 뿐이다.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사사키는 바로 이어나간다. 중세 해석자 혁명이 저것을, 즉 [텍스트]라는 걸 단절시켰다고. 우리의 시대가 왔다. 효율적 데이터베이스의 시대가. 그걸 지적한 르장드르 본인도 도서관에 틀어박혀 고서들을 연구할 수 있었던 그 시대. [텍스트]는 텍스트에 한정되고, 다양한 모습을 잃어버렸다. 춤이 어떻게 법인가? 법더러 춤을 추라고? 법정에서? 하나의 사건이 결말을 맺고, 그마저도 피해자 가족의 찢어지는 마음을 달래지 못하는, 차갑게 식은 열정의 공간에서? 그럴 수는 없다. 텍스트, 자네는 정보에 국한되어야겠다. 그 옷을 벗어던질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정보는 낙인이다.
여기서 우린 춤을 잃어버린 것이다. 상실에 대해 더 열거할 수 있다. 흘린 피도. [문학]도. 왜 그런가? 텍스트가 정보를 의미하는 것으로 좁아지면서 우리는 이후 시대에 출현한 국가를, 신체 구속을, 감시를, 폭력을 봤다. 이후의 모든 혁명은, 심지어 루터를 포함해서까지도 폭력과 귀결됐다. 그렇다. 내가 느낀 폭력의 혁명적 근본성은, 쉽게 말해 모든 혁명에는 폭력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이 때문이었다. 다른 것이 아니었다. [텍스트]의 소멸과 그로 인한 상실이 먼 후손인 내게도 어떤 낙인을 찍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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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린 늘 물어야 한다. 제시하겠다는 책들 앞에서는 엄중해져야 한다. 철저하게 읽고 곱씹어야 한다. 그것이 독자가 지닌 유일한 무기다. 사사키에게 그 칼날을 겨눠본다. 바른 길은 무엇인가? 그는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한다. 정보냐 폭력이냐의 이분법에서, 택일(擇一)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또 물어야 한다. 그런 우리에게 사사키는 다시 한 번 교황을 불러온다. 그 단체를. 교황은 주권의 유래라고 했다. 이 위대한 혁명 이후 교황은 주권=국가로 자리를 물려주게 되고, 여기에 혁명이 초래한 정보와, [텍스트]를 상실해버린 세상의 폭력적 습성이 더해진다. 쉽게 말해 주권=국가, 정보, 그리고 폭력의 삼위일체, 삼각형 구도가 나온다. 유치한 비유이지만 이것이 바로 근대의 버뮤다 지대다. 여기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여기서 빚어진다. 우린 또 묻는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사사키가 답한다. 이건 유럽의 버전일 뿐이다.
‘~일 뿐이다.’라는 귀결은 더 큰 것을 겨냥하고 있을수록 충격 역시 커진다. 반동이 된다. 위험한 말이니까. 근대 국가가 한낱 유럽의 버전이었을 뿐이라니.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그건 유럽의 역사니까. 그러나 세속화의 연막작전을 통해 전 세계를 지배하려고 했던 그들의 야욕과 그로 인한 지금 세계를 들여다보면 그 당연한 말은 충격적인 말이 된다. 과학이니 객관이니 보편이니 하는 말과 신앙과 불신의 이분법으로 서양은 지구 전체를 장악하려고 했었다. 그들끼리 나눠갖다보니 불협화음이 생겨 애당초 예견됐던 대재앙이 두 차례의 전쟁으로, 아무 의미 없는 소모전으로, 대참사로 귀결됐다. 세속화는 트릭이다. 결코 종교에서 떠날 수 없다. 지극한 유럽의 버전이다. 정보와 폭력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장치다. 개발된 것이다.
세속화의 트릭을 논했으니, 이제 신앙의 ‘정체’가 까발려진다. 믿음과 불신의 이분법은 다 무엇인가? ‘믿는다’는 말이 아프리카로 건너갔을 때 “저 백인이 뭔 말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반응을 보인 한 일화를 소개하며 사사키가 비판하는 건 명확하다. 신앙은 없다. 그것도 유럽의 버전일 뿐이다. 그러니 이 세상이 끝났다고 하는 건 다 종말론적이고, 컬트적이며, 심지어 나치적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버리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이걸 그냥 내쳐버리는 게 더 큰 문제다. 두려워 피한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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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예술도 마찬가지다. 『야전과 영원』의 벤슬라마가 다시 떠오른다. 살만 루시디 사건. 그렇다. 그건 사건이었다. 예술은 어떠해야 한다는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유럽에서는 답이 금방 떨어졌다. 예술은 정치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 밀란 쿤데라와 움베르토 에코가 대표적인 논객으로 나와 수많은 옹호를 받았다. 예술은 저 먼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벤슬라마는 반대로 말했다. 그건 이슬람의 상황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왜곡하지 말라. 그렇다고 그가 이슬람을, 문학을 탄압하는 정치 집단들을 옹호했을까? 오히려 그 반대다. 억압되는 예술과 그 자유의 문제는 생각보다 첨예하지 않다. 그 현상을 둘러싼 이들의 논조가 워낙 격양되어 있을 뿐, 그 자체는 단순하다. 사사키와 벤슬라마를 읽어보면, 예술은 정치와 뗄 수가 없다. 그걸 [문학]이라 바꿔 불러보자. 혁명하는 것이다. 정치가 두려워하는, 혁명을.
생각해보니 몇 해 전이었다. 통학하는 지하철에서 가오싱젠의 문학론을 며칠 정도 붙잡고 있었다. 공감할 부분이 많았다. 문학은 정치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가오싱젠은 말하고 있었다. 그가 프랑스로 망명간 작가라는 배경은 고려해보자. 그도 노력한 이고, 탄압을 받았던 이다. 실천하는 이였다. 사실 난 그를 변호해주고 싶다. 그래서 그랬던 거다. 사사키와 벤슬라마를 읽으면 가오싱젠 역시 유럽적 사고에 빠져 있는 한 작가에,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지나지 않는다. 탄압을 피한다는 것의 절박함을 나는 미술사에서도 여럿 봐서 조금은 생각해볼 수 있다. 나치와 스탈린을 피해 달아난 화가들이 어디 한 둘이었는가. 작품 수백 점을 빼앗겨 자살 충동을 느낀 화가, 스위스로 도망간 뒤에는 독일을 향해 쌍욕을 날린 화가. 이렇게 정치가 쇠사슬을 채우려고 할 때마다 예술이 어떻게 반응했는가는 고려해보자. 그들을 매도할 생각은 한 치도 없다. 그러나 나는 사사키가 주장하는 바가 옳다고 생각한다. [문학]에 대한 것이니. 혁명.
끝나는 일은 없다. 또 반복되는 밤이다. 강조되는 말이다. 종말론을 향한 조소가 신랄하다.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246쪽) 이쯤 되면 별로 심한 비난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느덧 그와 닮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종말론을 향하는 그들의 두려움과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무심한 사람은 못 된다. 때때로 종말을 생각한다. 그보다는 차라리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처럼 세상이, 아니, 우리의 세계가 끝났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달은 지구 공전 궤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더 이상 밀물과 썰물이 없는 날이 언젠가는 온다. 기후는 가혹해지며, 우리가 시와 노래로 사랑했던 모습은 사라질 것이다. 언젠가 한 화학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자연을 시로 노래하죠. 하지만 자연은 애당초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비인격’이라는 말의 무서움은, 아니다, 그걸 표현해보진 않겠다. 쓸모없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종말은 무섭다. 아직 오지 않은 그곳에 기대어 생애의 힘겨움을 토로해보는 것이다. 광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그게 버거운 상대를 앞에 둔 우리의 생리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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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사키는 손을 잡아끈다. 행동에 앞선 사고의 무장을 촉구한다. 끝나지 않습니다. 읽고 쓰는 혁명은 끝나지 않습니다. 이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얼마 전부터 살짝 펴보고 있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까닭이다.
“체르노빌에서는 ‘모든 것 후’의 삶이 더 기억에 남는다. 사람 없는 물건, 사람 없는 풍경……. 목적지 없는 길, 목적지 없는 전선……. 또 생각해보면, 이것은 과거일까? 미래일까? 가끔 내가 미래를 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스베틀라나의 책, 21쪽)
저 거대한 사건도, 내가 태어난 해에 일어난 저 대참사도 지금은 공포 영화의 소재로 전락했고, 적극적으로 기억해내려는 자는 별로 없다. 그래서 그녀가 노벨문학상은 받은 것이다. 읽고 쓰기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한 그녀가. 그런 그녀는 다른 구절에서 말한다. 체르노빌 이후 변한 게 없다고. 그러니 사사키가 주장하는 미결말의 세계, 제임스 조이스와 사무엘 베케트를 빌려오며 쏟아놓은 이 세계의 비밀을 어떻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은 수많은 슬픔이 들어 있는 저 우크라이나 작가의 책에서 막을 하나 빌려다가 [읽기-씀]의 구슬에 발라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