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 아타루(佐々木 中)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切りとれ、あの祈る手を)』

  : 둘째 밤 독서



2016년 1월 21일




    붉은 단어. 혁명. “붉다.”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크게 변질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멀리서 보니 그렇게 보였다. 그 단어와 함께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운동권 학우들 곁에서 봉기와 투쟁과, 그런 말들로 이뤄진 뜨거운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낀 교수들의 경험담 듣는 걸 좋아했다. 교문이 걸려 있어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거나 교실 창문으로 최루탄이 날아 들어와 신촌 오거리까지 냅다 뛰었다거나, 그런 재밌는 이야기들. 모르니 재밌던 것이다. 메케한 CS탄의 냄새가 갑자기 떠오르기도 했다. 콧물과 눈물도. 그런 무용담은 나른한 봄날의 수업에 없어서는 안 될 쉼터였다. 창가에 지정석 갖는 걸 좋아하던 내게 그런 날들의 봄바람은 잊히지 않는다. 혁명. 그건 아주 먼 것이었다.


    그것이 붉었던 까닭은 유혈과 닿아 있는 역사를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오후 가족과 함께 K사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나폴레옹과 러시아의 대결. 사실적 묘사를 위해 배우들이 열연을 했고 그래픽도 상당했던 프랑스의 수작 다큐멘터리였다. 그걸 보다 말을 던졌다. 얼마나 미칠 수 있으면 참호에서 날아오는 총탄을 맨몸으로 맞을 생각에 뛰어갔을까. 전쟁 없는 시대에 살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평화를 가장한 기만적인 말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사실인 걸, 이런 변명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여기서 불현듯 그 다큐가 생각났던 건 전쟁과 혁명의 유사, 낭자한 피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다. 모든 혁명은, 아니, 조금 양보해서 ‘대체로’ 혁명은 “폭력이고 유혈이며 참극”(73쪽)으로 기억된다. 그런 관점의 역사책은 얼마든지 찾아 읽을 수 있다.


    사사키가 우리를 두고 혁명의 후손이라 일컬은 건 역사적 사실을 소행해서 내린 결론이다. 그럼 물어볼 수 있다. 우리는 전쟁의 후손이다, 우리는 향신료 무역의 후손이다, 등등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주체의 형성에 대한 모든 걸 가져다 붙여놓을 수 있고, 얼마 후 개성이 출현하는 장면까지 목격하리라. 물론 이런 오류를 범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유치함이야말로 본질로 가는 길이라고 믿어본 적이 없던 게 아니라 그냥 해본 질문이었지만, 사사키는 그 모든 걸 뛰어넘고 결론짓는다. 우리는 혁명의 후손이다. 그 무엇보다도. 그렇다. 둘째 밤 독서에서 중요한 단어는 혁명이다.



*   *   *



    역사 이야기가 나온다. 좋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루터를 아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루터 전집을 다 읽어야 그를 이야기해볼 수 있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술회하는, 그럼에도 기꺼이 대혁명을 들여다보는 사사키처럼 나는 겸손한 사람은 못 된다. 루터는 미술사를 공부하는 내게 중요한 이였다. 이쪽에서, 그러니까 미술사 입장에서 보면 그는 하나의 필터다. 그의 개혁은, 대혁명은, 로마 가톨릭을 저 꼭대기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거대한 일을 오로지 문자만으로 격파한 그는 미술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그에게 반격하려는 가톨릭 측의 반종교개혁만 보더라도 그렇다. 미술은 오로지 신에게 봉사해야 된다는 중세적 관념이 르네상스 이후 느닷없이 강화됐다. 아니, “느닷없다.”는 표현은 단락을 무시하는 것도 같다. 그러나 그만큼 급작스러운 일이었다. 르네상스 정신의 일면은 몸을 움찔했고, 대신 기이할 정도의 화려함이 강조됐다. 그래서 바로크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이었다. 여하튼 눈살 찌푸리게 하는 검열의 칼날이 거장들을 법정으로 줄지어 소환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베로네세를 들여다본 적이 있다. <레위의 집에서 열린 축제(Cena a casa di Levi)>라는 대형 유화 때문에 그는 1573년 종교재판에 회부됐고 혼쭐이 났다. 난잡한 군중들의 묘사가 성화를 왜곡한다는 게 공식적인 소환 이유다. “저희 화가들은 시인과 광인들과 같은 파격을 사용합니다.”라고 말했다가 재판 말미에 결국 재판관들 앞에 몸을 숙여 황급히 절을 하며 반항의 뜻이 없음을 드러내야 했다. (여기서 말하는 파격, 즉 license는 예술적 파격이다.)


    이게 바로 루터 반대편에 있던 가톨릭의 모습이었다. 사사키는 르장드르를 빌리더니 이미 사목 권력이 그 운을 다한 당시 모습을 여러 부패와 연관하여 그린다. 다 사실이다. 나는 냉담자라 성당에 나가진 않는다. 하지만 성경을 읽고, 종교 비판 저서들을 탐독하며, 여러 종교의 경전들을 곁에 두고, ‘영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다. 그 사이에서, 아니, 그 차이에서 조화와 궁극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나의 기대는 영성의 추종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런 태도 덕분에 나는 모든 종교의 왜곡에 집중한다.


    보리슬라프 페키치의 『기적의 시대』를 여기서 다시 한 번 언급하게 되는데, 그 책이 내게 그 무엇보다도 충격을 줬던 이유는 어쩌면 그런 일이, 그러니까 예수를 대신해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이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소설에서는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구원 받지 못한 채 타락과 피폐의 구렁텅이를, 히에로니뮈스 보스의 <건초수레 삼단화>에 나오는 것 같은 무지몽매한 수레 위의 중생들로 남아 있을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우리를 위해 죽지 않았다. 이 말을 하는 구 유고의 도발적인 작가가 그 누구보다도 성경을 탐독하고 그 안에서 진리를 찾아내려고 했던 자라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



*   *   *



    귀족의 사교장으로 굴러 떨어진 수도원은 물론이고 면죄부(대사부, 속유장)도 언급된다. 루터가 그리고 나타났다. 단언해두는데 루터는 가톨릭으로부터 이단을 선언 받았을 뿐, 그가 정말 ‘이단(異端)’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나는 조르다노 브루노의 우주관을 얼마든지 변호할 것이다. 기득권 종교는 ‘전통’이라는 기관(器官)에 목을 매고 있었다. 그 전통 속의 신이 반격의 대상이 되며, 그렇게 이단은 정의의 편에 서서 새로운 신을 갈구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단이 된다. 신이 양분되어버린 상황이다. 한쪽의 신과 다른 쪽의 신. 그 같은 이름. 루터는 문제를 제기한다. 우릴 억압하는 전통의 신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다른 신에게로 회귀할 것인가. 그렇다. ‘회귀’라는 표현이 딱 맞다. 그건 성경으로 돌아가는 작업이었으니까. 그래서 루터는 사사키의 말마따나 [읽기-씀]의 철저한 작업을 거쳤다. 자신이 미친 것인지, 세상이 미친 것인지를 묻는 지점에서는 용기도 발휘했고.


    이걸 문자주의라 부르며, 혹은 일부 몰상식한 견해로 ‘복음주의’라고까지 부르며 매도하는 이들이 있을까 모르겠다. 루터가 글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을까? 그래서 그걸 “종교적 언어도 과학적 진술처럼 의미가 분명하고 알기 쉬워야”(카렌 암스트롱,『신을 위한 변론』, 370쪽)한다며 과학을 이기려고 한 전략적 복음주의자들의 어리석음에 닿아놓겠다는 건가? 아니다. 후세의 과오를 그에게 바르진 말자. 루터는 읽고 쓰는 고독한 싸움 끝에 현실의 문제를 타파할 새로운 준거로 성경을 선택한 이다. 농민전쟁의 야기는 비판할 점으로 회자되겠으나, 여기서는 혁명을 본다. 사사키는 분명하게 말한다. “그는 언어의 사람입니다. 그는 읽고 썼습니다.”(사사키의 책, 88쪽) 그리고 보름스 국회에서 교황을, 공의회를 겨냥해 신의 도움을 청한다. 오늘날 신이 갈라져 있다고 말하지 못할 바는 하등 없다. 그러니 그 역사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


    사사키가 루터의 설교 능력(카리스마)과 음악 사랑을 곁가지로 언급한 건 읽고 쓰는 것의 정적인 격렬함 외에 그가 가지고 있던 또 다른 면을, 하지만 결코 떨어뜨려 생각해볼 수 없는 면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리라. 그를 따르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정확히 말하자면 ‘농민’들이. 요한 하위징아가 『중세의 가을(Herfsttij der Middeleeuwen)』에서 묘사한 그 인산인해의 풍경이 16세기라고 해서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글을 모르는 이들은 책을 사서 읽어달라고 했다니. 이런 면도 혁명의 한 축이었다. 하지만 사사키가 내내 집중하는 건 그보다는 [읽고-씀]이다. 그것이 『야전과 영원』에서 뭐라고 언급되었던가. 역사의 도박장에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준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법이 여기서 빠질 수가 없다. “대혁명은 법의 혁명이기도 했습니다.”(98쪽)


    그런데 법은 그 준거를 거듭 소행해서 끝까지 추궁하다보면 난제에 봉착한다. 우리에게 행동의, 더불어 생각의 울타리를 치는 강력한 법은 실은 사례와 근거를 들며 우리를 설득하지만 그 근본의 근거가 없다. 이 근거율과 인과율의 분리는 사사키의 앞선 책에서 독자를 괴롭힌 문제였다. 칸트도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법의 법은 없다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법 해석의 법은 없다고. 누구나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법은 힘이다. 법의 해석이 곧 힘의 존재를 입증한다. 그래서 데리다가 『법의 힘(Force de loi)』에서 칸트를 빌려 “힘이 없이는 법도 없다”(데리다 책, 15쪽)는 말로 그 강제성을 우선 환기시킨 것이다. 그러면 물어볼 수 있다. 루터는 어떻게 법의 변혁을 이뤘는가? 다시 말해 그는 ‘법의 힘’을 어디서 끌어다놓았는가?


    양심. 미묘한 단어다. 양심이라는 건. 사사키는 『야전과 영원』의 미완으로 양심을 논하지 않은 걸 꼽았는데, 혹 그와 관련된 책이 있다면 (물론 번역서가 나와야겠지만) 읽어보고 싶다. 저 단어만큼 복잡한 게 있을까 싶을 정도이니, 루터파 법학의 양심은, 그러니까 재판관에게 “양심대로 판결하라.”고 넘겨버리는 저 개념은 다소 불안해하다. 무너져버릴 것 같다. 그러나 영미법과 일본의 현행법도 양심에 기초한다고 한다. 이걸 알면 법의 딱딱한 이미지가, 그 입자들의 결합이 풀려 흐물흐물해지는 장면이 상상된다. 이 양심을 통해 신의 법이 민중 사이로 들어와 법의 종교화가 달성됐다.



*   *  *



    사사키는 농민전쟁을 돌아가지 못한다. 루터를 추앙할 생각이었다면, 그런 초보적 글을 쓸 생각이었다면 애당초 읽고 쓰는 고독한 작업을 향한 용기와 그 후 이룩된 법의 혁명만 논하면 됐다. 자크 바전의 『새벽에서 황혼까지(From Dawn To Decadence)』에 실린 루터의 인간미와 맹렬한 투사의 이미지를 교차시키며 혁명의 시초이자 영웅으로 짜내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농민전쟁의 폭력은 루터의 해석을 가로막고 있다. 다시 말해 여기서 갈라진다는 뜻이다. 사사키는 어디로 갔을까? 어느 방향으로 이해하려고 했을까?


    이미 일어난 그 폭력이 수많은 희생을 담보로 해야 하는 상황을 연출했지만 실패한 건 아니라고 우선 말한다. 과도한 징세 폐지, 농노제 폐지, 토지 반환 등 농민의 정당성이 권력의 방패를 뚫고 승인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피를 흘리는 게 불가피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의미일까? [읽기-씀]을 이야기하던 그가 그런 결론으로 갈 수 있을까? 가당치 않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루터는 언어의 사람이었다고 했으니, 그 혁명의 모든 과정에서 폭력은 [읽기-씀]의 밑으로 들어간다. 피해를 거듭 상기시키는 와중에도 그는 분명히 견지한다.


    “텍스트는 폭력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111쪽) 그것은 법을 다시 쓰는 것. 도박에서 이기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단, 의구심은 남는다. 확실한 사례들을 통해 고정관념을 쌓아버린 까닭이다. 역사의 도박장에서 목도한 ‘피의 힘의 대결’이, 그것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것이든 후행하는 것이든 더 본질적인 것만 같은 의구심.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 사사키가 ‘혁명의 본질’이라 말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계가 있다. 나에게는. 폭력과 주권 탈취, 그리하여 얻게 되는 자유의 패턴이 우리 사회에서, 내가 일부 교수들에게서 직접 들은 생생한 증언으로 있었다. 그렇게 얻은 자유의 설렘을 뒤로 한 불안함이 만연한 시대에서 나는 태어났고 이렇게 산다. 근원을 따질 때냐고 묻는 이들도 이해되고, 그렇게 겉만 훑다가 텍스트가 아닌 폭력을 지향하는 이들의 초조함도 이해된다.


    다만 나는 조금 멈춰보는 것이다. 그래서 혁명이 멀다고 한 것이고. 사사키가 [읽기-씀]이라고 요약되는, 즉 넓은 ‘문학’으로 요약되는 과정이 그 무엇보다도 본질이라고 말했을 때, 그래서 나는 주춤했다. 이것이? 텍스트를 앞에 둔 공포를 공유하고, 읽고 씀의 어려움을 거의 매일 체감하는 나의 이것이? 혁명이라고? 그러니 나도 덩달아 초조해진다. 시쳇말로 농담해보자면, 겨드랑이에 땀이 찬다. 주먹을 쥐고 뛰어나가려는 이의 격정적인 순간이 이상하리만치 가까이에 있는 듯 상상이 된다.


   그런데 그게 죄란다. 카프카의 말을 빌려, 사사키는 그것이 죄라며 우리의 행동을 잠시 저지한다. 조금 더 들어가 보려는 그가 다음으로 향할 곳을 미리 내다본 건 다행이었을까. 모르겠다. 중세 해석자 혁명으로 갈 참이다. 그건 무엇보다도 [읽기-씀]의 위력을 설명하는 진수. 그렇게 나는 배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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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아타루(佐々木 中)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切りとれ、あの祈る手を)

  : 첫째 밤 독서



2016년 1월 20일



    읽고 쓰는 것을 대문자 [문학]이라 정의한다면, 저 괄호 속에 아주 미미한 수준이나마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내가 주시해야 하는 건 그것과 정반대편일 것이다. 이렇게 타이핑하는 와중에도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머뭇거림, 침묵.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원제 : Die Welt Des Schweigens)』를 읽다가 돌연 침묵을 쓸 수 없는 존재임을 자각해버린 순간이 있었다. 새삼스런 일이었고, 그걸 복기하는 지금도 새삼스레 이런 글을 쓴다. 다시 말해 나는 지금 비애 속에 있다.


    막스 피카르트는 그 까닭을 알려준 이다. “침묵은 인간의 마음속에 비애를 불러일으킨다. 침묵은 인간에게 말에 의한 죄로의 전락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상태를 회상시키기 때문이다.”(위의 책, 51쪽) 결국 이를 부정할 수 없는 존재다, 나는. 그래서 [문학]에 매달리려고 물리적 투쟁을 불사하는 것이리라. 요즘 뒷목이 너무 아프다. 몇 시간을 한꺼번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 고체가 되어버렸던 피가 물렁해지면서 혈관 이곳저곳을 찌르는 것도 같다. 그래도 신음을 동반해야 할 [문학]과의 사투는 피할 수 없다. 조금도 보탬 없이 다시 말해 나는 지금 비애 속에 있다.


    사사키 아타루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원제 : 切りとれ、あの祈る手を)』을 닷새 밤의 기록이라 했으니, 나는 그걸 닷새 동안 읽고 쓰려고 한다. 책 앞에만 서면 항상 긴장하고 약간은 경직된 감도 없지 않은 내가 하나의 운동을 시작할 참이다. 가로지르거나 되읽거나 뛰어넘었다가 그 방해받은 지점을 뒷면에서부터 앞면의 방향으로 격파하거나. 깨부수면서 읽는다는 점에서 나는 백지의 편을 든 반(反)문자주의 운동의 선동가인 셈이다. 선동할 이가 나뿐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그렇지 않은가, 독서는. 그러니 손을 자르라는 이 제목 앞에 서서 내가 파멸의 운동을 향해, 그 형태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만 같아 겁에 질려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사족은 구태여 자리를 빌려 쓰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   *   *




    그러나 사족으로 시작하는 글을 난 참으로 좋아한다. 놀랍게도 타인의 경험은 공유될 수 있다. 완전히 포개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건 사사키의 말마따나 ‘미쳐버리는’ 일이 될 것이고, 나 역시 그런 신화적 일은 보통 도래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우리는 타인과의 공유, 그녀/그의 어깨 위에 손을 걸치는 행위를 통해 하나의 사유 전체상에 접근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발견한다. 사사키는 잡담을 하듯 시작하여 나를 끌어당겼다.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부득이한 고백이라며 쏟아놓은 경험담이 놀랍도록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정보를 차단하는 무모한 일로 그는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반대로 생각해보면 부끄러울 일일 수밖에 없다. 그는 전문가와 지식인을 비판하는데, 그 두 부류 모두에 나는 들어갈 수가 없다. 대신 그런 행세를 하려고 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오늘은 이걸 읽고, 내일은 저걸 보고, 그 다음 날에는 뭘 하고. 이런 계획은 분명 강박적 설계자가 주변 눈치를 보며 빠르게 적고 수정하길 반복한 것이었다. 이 말이 지금 박혀 있다. “이런 환경에서 무엇이 단련되겠습니까?”(21쪽) 아, 단련이었던 것이다! 정보(명령)를 향하는 전문가와 지식인이 부러워 그들처럼 행세하려다 내가 놓쳐버린 것은 다름 아닌 단련이었던 것이다. 군대에서 꼴사나운 상급자의 명령을 듣는 건 그렇게나 싫어했던 수 년 전의 내가 그토록 많은 정보들을 배워오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보가 명령이라는 걸 눈치 채지 못한 꼴이라니! 아니, 변론을 위해 약간의 정확성을 기해보자면 눈치를 챈 적은 있었다. 문제는 그 순간이 별로 대단치 않았다는 것. 난 정보의 부하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불안하고, 잘 모르겠고, 늘 두렵긴 했어도. 그럭저럭 잘 지내오지 않았던가. 라캉을 소환하는 사사키의 말을 이제는 이해한다. 팔루스적 향락. ‘이런, 맙소사.’ 나는 영락없는 페티시즘 환자였다. 사사키는 그런 변태적 기질에서 탈출하려고 몸부림쳤던 자고. 이 팔루스적 사회에서, 그런 까닭에 그는 무시당하는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한때 무엇이었는가? 니체가 말한 ‘철학자’였는가? 아니, 난 그런 어려운 말을 소화하려고 하지는 않겠다. ‘철학’이라는 단어보다는, 그래, ‘잉태’와 ‘임신’과 ‘수태’와 이런 은유적인 말이 오히려 실제적이다. 그러고 보니 사사키가 『야전과 영원(夜戦と永遠)』에서 펼쳐놓은 라캉의 ‘여성의 향락’과 ‘신비주의자’와 그들의 ‘씀’이 바로 내 앞으로 소환된다. 하나의 모습으로, 그러나 여럿이 뒤죽박죽 된 모습으로.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하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나는 사사키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형태가, 공간이, 아니 그보다는 시공이 잠깐이나마 눈에 보였다. 그는 무서운 사람이다. 세계를 다시 낳는다니. 대체 어쩌다 그 지경이 된 것일까?


    “읽었다기보다 읽고 말았습니다.”(35~36쪽) 미에 도달하게 되는 순간을 그는 우연으로 묘사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실재계와의 조우는 그야말로 우연이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외상의 상흔을 남기니까. 어려운 라캉 속에서도 이것만큼은 건져왔다. 내가 장하다. 그러나 그게 어쨌다는 건가? 사사키는 그걸 행하려고 했고, 그 자신이 라캉을 용기 있는 사람으로 일부 칭찬하는 순간 스스로를 칭찬하고 있었음을 지금 나는 알겠으나, 정작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처럼 정보에 관한 걸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그처럼 해본 일이 하나도 없다는 뜻에서, 또 하나의 자책은 불가피하다.


    읽는다는 것이, 혹은 읽게 되어버린 그 상황부터 시작되는 모습이 광기에 가깝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행이도 내게는 그런 책들이 있었다. 읽고 나니 미쳐버릴 것 같아서 잠을 설치고 새벽의 기묘한 도래를 몇 번이고 경험했었다. 매번 느낌이 다르니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을 뿐이다. 예를 굳이 들어볼까. 보리슬라프 페키치의 『기적의 시대(원제 : Vreme čuda)』, 막스 피카르트의 위의 책,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원제 : Le città invisibili)』,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원제 : Siddhartha)』, 이런 것들 뒤에서 나는 늘 읽는 것의 위험을, 독서의 공포를 느꼈다. 두말할 것 없이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섣불리 재독할 정도로 용감하지는 않다.


    나의 비겁함은 당당하다. 원래 그랬던 건 아니고, 겨우 이제 와서야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나A는 나 자신이 비겁하다는 걸 언제나 숨겨야 한다며 남에게 보여줄 글을 쓰고 그렇게 조련된 글을 읽는다. 나B는 그런 나를 질책하며 솔직해지라고 말한다. 이렇게 둘만 살고 있는 나에게, 고립된 섬에게, 사사키가 버지니아 울프를 경유해 『로빈슨 크루소』를 말하며 상기시킨 그 무주공산에, 나는 이 책을 제 3자로 들여놓은 것이다. 그래도 됐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이제 와서 무슨 새삼스레. 여하튼 그러자 이 책이 선언한다. 읽기는 원래 무서운 일이니 겁내는 건 비정상이 아니다. 그러면서 한 문장 더 뻗어나간다. 그러나 그 선언은 이해하면 미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과 기껏 정보로 환원된 걸 읽는 것 사이에서, 즉 도망가기와 명령 수용하기 사이에서 무슨 쓸데없는 고민을 했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물론 나는 유구무언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비겁함을 입간판처럼 가지고 다닐 것인가? 제 3자의 선언에도, 내게는 법과 같은 말로 들린 그 망치 소리의 분절들에도, 그럼에도 나는 저항한다. 프로이트가 그랬던 것처럼, 제임스 조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던 것처럼. [문학]하는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읽고 쓴다. 시도는 간헐적일지 몰라도 범접하고자 하는 마음은 부단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서재에는 책이 한 가득이다. 책 위에 소복이 쌓인 먼지를 보면서 나는 그 먼지를 털어낼 날을 고대한다. 다소 머뭇거리며. 그렇다. 제 3자의 선언은, 이 책의 위안은, 그래서 읽지 말라는 게 아니다. 어떻게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감히 종료를 선언하는 말이라 오독할 수 있는가? 성급한 한 마디. 이 책은 [문학]하라는 말을 담고 있는 또 하나의 [문학]이다.


    대체 [문학]은 뭔가? 읽고 쓰는 모든 것이다. 그 의미가 literary로 좁아지는 일련의 과정을 사사키가 축약해서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단어의 틀을 부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부숴야 할 틀은 [읽음-씀]의 한정된, 아주 단순한 언어지시적 의미일 것이다. 당연한 말이라 내가 부연할 입장은 아니라 생각한다. 쓰는 것이란 세계를 바꾸는 것이라고 누누이 지적하지 않았던가. 긴 책 『야전과 영원』은 에둘러 그 말을 한 책이고, 이 지점에서 보건대 『잘라라, 그 기도하는 손을』은 바로 사사키의 그 체험을 담은 책이리라. 그러면 궁금해진다. 그는 [문학]한 자이며, [문학]을 지향하는 자다. 변혁하는 자이며, ‘변혁된’ 자다. 완성체이니 뭐니 하는 유치한 지적은 삼간다. 이미 하루가 저문 까닭이다.




*   *   *




    사사키는 2010년 6월의 어느 날이 저물어 조용해졌다는데, 지금 여기는 맹추위로 동파 방지와 외출 자제를 권하는 보도가 연이어지는 한복판이다. 오늘은 외출을 안 했다. 착한 주민이고, 하루를 성실한 독자로 살았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읽고 쓰는 것에 대해 비춰볼 일련의 체험들이 적은 것도 아니고, 생각도 해본 바도 있는데. 변혁이라는 것은 내가 접해보지 못한, 현전할 거라 기대하지 않는, 혹은 상상 속의 개념이라 묵살하는 무실체의 대상이었다. 그랬었다. 그런데 그것을 과연 언젠가 ‘존재’라 부를 수 있을까. 마무리하자고 하니 나도 덩달아 접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밑으로 깔린, 얄팍한 지층들보다 더 깊은 지하로 꿈틀대며 들어가는 그 뜨거운 모든 것들에 대하여는, 도무지 생각을 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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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9일




    어제 뉴스에서 일본의 2020 도쿄 올림픽 주최로 전 세계가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한가운데, 일본의 도심에서 강도 높은 반한시위가 벌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우경화는 맹목적 폭력을 가능케 한다. 에릭 호퍼는 『맹신자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의 일에 신경 쓰는 것은 험담하거나 꼬치꼬치 캐묻거나 참견하는 형태로 나타나며, 또한 공동체나 국가, 인종문제에 대한 열띤 관심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기 문제는 회피하면서 이웃의 어깨에 매달리든 목을 조르려고 덤벼들든 하는 것이다.(p.32)" 현 일본 정권과 극우세력이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더 이상 손가락 힘으로는 막을 수 없을 정도의 샴페인 압력처럼 강해지자, 그 손가락을 놓은 대신 어떤 이슈들을 꺼내 국민적 관심의 돌리려고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실패하고 있는지(혹은 이 눈에 보이는 정치적인 한 수가 의외로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지)를 떠올려보면 우리는 에릭 호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70여 년 전, 히틀러도 이런 식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보르헤스의 「독일 진혼곡」은 고통을 참아가며 읽어야만 했다. 이 단편은 나치에 가담한 혐의로 총살형을 선고받은 오토 디트리히 주르 린데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이 왜 나치에 가담하게 되었고, 끔찍한 고문을 저지르는 수용소 부소장이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아이히만처럼 뭐라고 변명하지 않는다. 오토는 그것을 매우 지저분한 행동이라는 생각한다. 오히려 그는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보르헤스가 순차적으로 조직한 오토의 논리는 반박하기가 무척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고 타당하다. 물론 이런 교묘한 논리의 최대 약점은 논리의 여러 면을 이어주는 이음새를 제거해주면 논리 전체가 사상누각처럼 무너진다는 것이며,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 이음새, 즉 오토의 논리가 지닌 결정적인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열쇠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오토가 왜 나치에 가입해 살인마로 변신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해봐야 한다.


    오토의 집안은 대대로 독일(과 프로이센)을 위해 헌신한 군인을 배출했었는데, 가문의 이러한 내력이 오토의 미래를 예견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사유방식이나 그가 중간에 고백한 '비폭력적 성향'으로 미뤄보건대, 오토는 군인보다는 사변가에 훨씬 가깝다. 때문에 그는 군인과는 달리 어떤 형이 선고되는 것에 저항하지 않고, 오직 독자들에게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받고 싶어 한다. 이 점에서 오토는 나치즘마저 뛰어넘어서 나치즘과 여러 민족주의적 광풍을 포괄할 수 있는 거대한 논점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 된다. 따라서 오토는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호소력을 갖는다.


    오토는 브람스와 셰익스피어의 다양한 세계, 그 상상력을 좋아했으며, 사상적으로는 쇼펜하우어에 심취했었다. 문학과 사상의 두 측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감명을 받은 그는 신학의 세계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그러나 그는 20세기 초반 독일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슈펭글러의 역사관에 반해 호전적이고 독일적(kerndeutsch)인 사상에 빠지게 되고, 결국 1929년에 나치당에 입당한다. 물론 그가 초기당원 시절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그에게는 열혈당원이 갖춰야 하는 폭력성이 전무했다. 그러나 오토가 나치당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새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시대 인식이 당시 너무나도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가 모로코로 향하던 독일의 잠수함을 힘을 합해 막아세운 사건 이후 '독일다움'을 내세워 사회가 곧 새로운 영웅의 등장과 함께 부강해질 것이며, 언젠가는 독일인이 런던에 입성하게 될 것이라는 사상에 젖어 있었다. 알다시피 이런 정도의 열기는 어마어마한 크기와 두께의 '정당화'를 만들어낸다. 이런 시대에 오토에게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1939년 4월 1일, 그가 탈시트의 소요 사태 도중 (그것도 하필이면 유태교당 뒷길에서) 총상을 입어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것이다. 그는 전쟁터에 나가는 대신 병원에서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오토는 쇼펜하우어를 도구로 삼았다. 그리스도교를 싫어하고 힌두교와 불교를 좋아한 쇼펜하우어에게서 오토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개별적 목적론'이었다. 모든 것이 인과로 연결되어 있는 동양적 사상은 오토에게 자신의 운명 퍼즐을 구미에 맞게 맞출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총상으로 인해 갖게 된 가공할 만한 복수심을 차마 자신의 신조인 비폭력적 입장으로는 표출할 수 없었기에 논리적으로 그 복수심을 돌려 표현할 수단을 애타게 찾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얼마나 이 목적론을 갈구했는지는 그의 술회에서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불행을 자초했다는 생각만큼 뛰어난 위안은 없다. 이러한 개별적 목적론은 우리에게 신비스러운 질서를 드러내 보이며, 불가사의하게도 우리를 신과 혼동하도록 만들어준다.(p.119)" 서로 닿아 있는 사건의 연속을 사유하면서 오토가 결과적으로 도착할 수밖에 없었던 질문은, 당연히 왜 자신이 총상을 입어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치명적인 논리 실수를 저지른다. 자신은 전쟁터에 나가 죽을 운명이 아니라, 다리를 자르는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살아남아 다른 의미에서 '나치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킨 것이다. 그는 사도 바오로의 삶이 단순한 순교자의 삶보다 훨씬 값지며 어렵다고, 라스콜리니코프의 삶이 나폴레옹의 삶보다 역시 훨씬 값지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가 한 수용소의 부소장이 된 건 다리에 총상을 입은 지 2년 즈음 되던 1941년 겨울의 일이었다.


    이 무렵 그에게 있어 나치의 의미는 매우 확고했다. 오토는 "나치즘은 본질적으로 타락한 옛사람에게 새옷을 입히기 위해 그의 옷을 벗기는 도덕적 행위(p.120)"라고 말했다. 이런 행위는 전쟁터에서 행해지기 마련이다. 이어 부소장이 된 오토는 수용소와 전쟁터의 차이를 '자비심'이라 말한다. 아마 여기서 말하는 '자비'라는 것은 사람을 죽이지 않고 계속 살려두는 (물론 언젠가는 유대인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비극의 방식처럼 죽음에 이르도록 하겠지만) 행위를 의미하는 듯하다. 오토가 경멸하는 것이 바로 이 자비심이다. 그는 짜라투스트라가 초월자가 허락한 자비심마저 거절했다는 신화적 사실을 언급하면서 (마치 자신을 초월자에 비유하는 것 같은데) 자신이 자비심을 베풀기 일보 직전까지, 즉 실수하기 직전까지 갔었던 사례 하나를 마치 보고서를 낭독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다시 말해, '다비드 예루살렘'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자신이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한 증언이다. 50대의 다비드는 가난한 문인으로 수용소에 이전될 때까지 숱한 박해를 받아왔다.


    그는 오토가 매우 신경 쓴 수인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오토는 다비드가 당시 휘트먼에 비견되는 문인이었으나 휘트먼의 우주적 특성과 다비드의 개별에 집중하는 문학적 특성을 구별할 줄도 알았고, 심지어는 오토의 시를 외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오토가 다비드를 죽인 방식은 독특하다. 대형 수용소에서는 주로 가스실을 이용했지만 오토는 다비드를 미쳐서 죽게 만들었다. 그는 사람이 한 가지만을 계속 생각하면 미친다는 원리를 처벌에 적용해서 다비드를 1942년 말 거의 미치도록 만들었고, 다비드는 다음 해 3월 1일에 죽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우리는 제각각 광인의 죽음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다.) 오토는 자신이 다비드에게 그토록 잔인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비드가 자신의 "영혼이 저주하는 한 지점의 상징(p.122~123)"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영혼이란 자비심이고, 다비드는 그가 거의 자비심을 베풀 뻔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처럼 논리적으로 철저했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위안적이었기 때문에) 오토는 독일의 패망에 앞서 슬픔보다는 행복을 느끼는 기형적인 나치당원이 되었다. 그가 느낀 행복은 "신비롭고 거의 공포스럽기조차 한(p.124)행복으로, 오토는 그 행복의 이유를 찾기 위해 세 가지의 결론을 언급하고 이들 모두가 정답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첫째는 자신이 벌의 대가를 받았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 둘째는 지쳤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여기서 그가 지쳤다고 표현한 것으로 미뤄봐도 그가 오토에게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그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뇌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치밀한 잔인성이 발휘된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는 모든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만 비난하는 것은 우주를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의 것은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 모두는 정답이 아니었고, 오토가 발견한 최종적인 답안은 놀랍게도 'A vs B'라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세계관에서 비롯됐다. 그는 이를 '아리스토텔레스 vs 플라톤'의 대결, 그리고 '히틀러 vs 유대주의의 병'으로, 거의 상징적으로 표현했는데 이 발상에 이르면 호전적이고 독일적이었던 그의 초기 세계관이 얼마나 맹목적으로 변질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는 특별히 나치즘만을 상징하지 않기 때문에 독일이 패망하더라도 '폭력'이라는 것이 남았으므로 그리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나치즘이 "유태주의에 폭력과 칼의 신앙을 가르쳐주었(p.125)"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폭력의 지배 뿐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비굴한 기독교적인 소심함이 아닌 폭력이 지배하기만 하는 것 아닌가.(p.126)"


    여기서 우리는 오토의 치명적인 논리 약점, 그가 '폭력'에 주안을 두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오토의 맹신을 제거하더라도 논리와 논리를 통해 이동해서 잔인한 살인마의 길을 걷게 된 그의 과정은 (이런 표현을 용서한다면) 우아할 정도로 정교하다. 이 논리의 연속에는 분명 어떤 매력이 존재한다. 정신에 심미적 요소가 결합하면서 오토는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거울을 바라보며 한 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는 나치의 (힘겨운) 삶을 살다 죽는 것을 자신의 운명적 사슬이라고, 고집스럽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 사슬을 엮어 간 오토의 방식은 (우리가 겪어보지도 않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나치즘에 대한 분노에 잠시 제동을 건다. 우리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우리에게는 역사의 실수를 되풀이하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의 얼굴이 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거의 모두가 알고 있다. 뜨겁고 아름다우며 심지어는 유전적으로도 친숙할 수 있는 그 그릇된 길로 우리가 걷지 말아야 하는 것은 비극의 반복을 용납하지 말아야 하는 우리의 당위이다. 나는 오토의 사상을 이해해야만 「독일 진혼곡」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단편을 여러 차례 고통스럽게 읽었고, 결국 그의 논리가 갖는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만 다른 이들이 그 매력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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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2015-02-24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단편을 읽은 후에 굉장한 혼란이 왔어요. 보르헤스가 자신이 써온 수많은 글에 반복해서 담아온 이야기들을 왜 나치즘과 이렇게 교묘히 연결시켜 얼핏 당위성을 부여한 것처럼 보이게 했는지 충격적이었고 그의 의도가 무엇일까 계속해서 생각해보게 하더군요. 나치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끝난 이 시점에서도 그가 창조한 한 나치당원의 말에 홀리는 것을 보면 결국은 아직 나치즘은 끝나지 않았으며 언제든지 다른 형태로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됐달까요...황병하씨 번역이 다소 터프한 면이 있어서 반복해서 읽어도 와닿지 않는 문장들이 꽤 있었는데 이해에 도움이 됐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_^

부물 2016-10-23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의 독일 진혼곡에 대한 명쾌한 해설에 감사합니다. 특히 `이런 교묘한 논리의 최대 약점은 논리의 여러 면을 이어주는 이음새를 제거해주면 논리 전체가 사상누각처럼 무너진다는 것이며,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 이음새, 즉 오토의 논리가 지닌 결정적인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열쇠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오토가 왜 나치에 가입해 살인마로 변신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해봐야 한다.`는 지점에서 베르나르 키리니의 기름바다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인공의 알레고리가 풀리는 열쇠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숙제하면서 이 단락장으로 부터 도움을 받게 되어 감사한 마음을 남깁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2013년 9월 8일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영웅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이야 천하를 호령하는 무력과 용기의 소유자, 예컨대 중국의 관우나 고대 그리스의 페르세우스 같은 용사들이 필요치 않지만 (그러나 격투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용사들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전체의 노력이 아닌 비범한 한 사람의 노력으로 사회의 병폐가 말끔히 해소되길 바라기도 한다. 물론 안타깝게도, 옛날보다 훨씬 복잡해진 사회를 깔끔하게 정리해줄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뿐더러,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정확히 어떤 '대의' 같은 걸 쉽게 바라지도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 편하면 그것이 곧 대의인 것이다. 그리고 우릴 편하게 해주는 것은 영웅이라기보다는 돈과 제도인 경우가 허다하다.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고전의 영웅들을 읽으며 스스로의 막연한 희망을 어루만져 주는 까닭.


    그러나 영웅의 모험담이 거짓이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노스 2세와 파시파에, 다이달로스와 파시파에, 미노타우로스와 테세우스,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그리고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크레타 미궁의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신화에서 매우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이다. 전말은 이렇다.


    미노스 2세가 왕위쟁탈전 중에 포세이돈에게 자신의 신성한 징표를 내어달라고 빌었더니 바다에서 흰 황소 한 마리가 나왔다. 원래 고대 그리스신화의 신은 뭘 주면 자신도 뭘 받아야 했다. 그런데 미노스 2세는 그 황소를 포세이돈에게 되돌려주지 않고 엉뚱한 동물을 바쳤다가 기이한 변고를 당했다. 『세계의 모든 신화』의 저자 케네스 데이비스의 표현처럼 이후의 이야기는 좀 변태적이다. 미노스 2세의 왕비인 파시파에가 그 황소와 사랑에 빠진 것. 그러나 황소와 직접 관계를 맺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했는데, 바로 이때 거만하면서도 솜씨 좋은 장인인 다이달로스가 등장해 그녀에게 암소 모양의 기구를 만들어줬다. 파시파에는 마치 트로이의 목마 속에 탄 용사처럼 황소에게 다가가 임신을 하는데 성공, 결국 우리에게 반인반우의 괴물로 유명한 미노타우로스를 낳는다. (그러나 신화의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그 모습이 파시파에의 남편 미노스 2세와 비슷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노스 2세는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두고자 했고, 여기서 또 한 번 다이달로스가 등장한다. 이번에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왔다. 둘은 미궁을 만든다. 여기에 갇혀 있는 미노타우로스에게 아테네 사람들은 일곱 명의 남자와 일곱 명의 여자를 제물로 바쳐야 했다. 미노스 왕의 아들을 죽인 응징의 대가였다. 이때 출동한 영웅이 테세우스이다. 그와 사랑에 빠진 여인이 아리아드네. 그리고 아리아드네에게 실타래의 묘수를 알려준 이는 다름 아닌 다이달로스. 이야기는 이렇게 꼬여버린다. 테세우스가 들어가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였다. 그러나 그는 아테네 항구에 도착하기 전에 흰 깃발을 보여 자신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알려줘야 하는 걸 깜빡한 채, 검은 깃발을 그대로 달고 있었고 그걸 본 왕은 아들이 죽은 줄 알고 바다에 투신했다. 미노스 2세는 다이달로스가 아리아드네를 도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게 한 장본인임을 알아차리고는 이카로스와 함께 미궁에 가둔다. 둘은 새의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엮어 날개를 만든다.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이 흥미로운 신화의 정점에 선 인물은 아무래도 테세우스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아테네의 민주주의 시조로 흔히 상징되는 테세우스가 어떻게 왕이 되었고,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 중 한 단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이 이야기의 정점에 미노타우로스를 세웠다. 그리고 미노타우로스의 입을 빌려 테세우스의 영웅담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거짓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보르헤스의 단편 「아스테리온의 집」이 위력을 갖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지금까지 (나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매력을 줬던) 「엠마 순스」를 비롯한 보르헤스의 여러 단편들을 읽어 왔지만 그 중 몇 편의 실망스러운 단편을 제외하고서라도 「아스테리온의 집」은 단연 최고의 단편 중 하나였다. 발상의 전환도 독특했지만 내가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이 소설의 특징은 아스테리온, 즉 미노타우로스가 말해주는 영웅담의 이면, 다른 시점의 힘이었다. ('Asterion'은 원래 크레타의 왕을 일컫는다. 하지만 현대의 그리스신화 연구에 결정적인 공헌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헝가리의 카로이 케레니(Károly Kerény)는 'Asterion'이 미노타우로스를 일컫기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워낙 짧은 뿐더러 별 내용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보르헤스는 미노타우로스의 독백과도 같은 서술을 치밀하게 옮기는데 굉장한 노력을 쏟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미노타우로스가 반박하는 사실들은 「아스테리온의 집」이 순수한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우리가 신화의 사실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가 반박하는 첫 번째 사실은 자신의 성격에 대한 것이다. 보통 '미노타우로스'하면 아무래도 머리가 황소이기 때문에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우둔할 것으로 상상하기 쉽지만 소설 속의 미노타우로스는 자신이 "오만하고, 혹은 자폐적이고, 혹은 실성했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반박은 상당한 충격을 준다. 그는 미궁에만 있지 않고 어느 날 오후 거리에 나갔다가 돌아오기도 했는데, 돌아온 이유는 "손바닥처럼 편편한 천민들의 얼굴들이 내게 가했던 공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괴물이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꼈다는 식의 술회에서는 편견이 불러 일으키는 엄청난 무게의 고독이 느껴지는데, 그 깊이나 중량을 우리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괴물이?"라는 오해 섞인 충격을 느끼게 된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약간의 연민도 느끼게 될 것이다. 세 번째 반박은 신화의 사실에 대한 것으로 미노타우로스의 어머니는 여왕(파시파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노타우로스는 어떻게 태어나게 된 것일까? 이 질문은 보르헤스가 답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미노타우로스'라는 존재의 의미는 신화적 의미에서 한참 벗어날 수가 있다. 네 번째 반박은 다소 재밌기까지 한데, 제물이 되기 위해 신전을 찾은 일곱 남자와 일곱 여자들을 잡아 먹거나 죽인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들이 알아서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픽픽 쓰러졌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들이 누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라고도 했다. 마지막 반박은 테세우스 본인의 입으로 서술된다. 성공적인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믿을 수가 있겠어, 아리아드네? 미노타우로스는 전혀 자신을 방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


    미노타우로스는 영웅이 최종적으로 격파해야 할 '대적 상대'에서 평범한 존재로 강등되었다. 이로써 그에게서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은 확인되지 않은 대상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광기로 승화시킨 무지몽매한 무리로 전락했으며, 테세우스의 영웅담은 결과를 빼놓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됐다. 그렇다면 미노타우로스는 괴물이 아닌 어떤 존재였을까? 그는 그의 설명대로 '유일무이'한 존재였기 때문에 어떤 소통도 필요가 없었고, "철학자들처럼 나는 글이라는 장치를 통해 전달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유일무이함은 고독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왜 미노타우로스가 저녁 무렵 거리에 나왔을까? 왜 그는 글을 배우지 않은 것을 가끔 후회할까? 왜 그에게는 밤과 낮이 지나치게 길게 느껴지는 것일까? 혼자, 즉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소일거리를 '발달'시켰다. 그러나 독자들은 미노타우로스가 자신의 소일거리를 설명하는 여러 줄을 읽으며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대부분이 육체적인 놀이이다. 그것은 아마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소일거리이므로. 하지만 그가 또 한 명의 미노타우로스를 상상해서 그에게 자신의 미궁을 소개해주는 대목은 그가 분명 누군가와의 관계를 몹시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실 암시가 아니라, 대놓고 드러낸다고 거칠게 표현해도 무방하리라. 그가 얼마나 갇혀 있는 존재인지는 14를 '무한'이라고 이해한다는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곱 남자와 일곱 여자는 그에게 '모든 수'가 되었다. 그것은 돌고 도는 숫자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드디어 구원의 빛이 찾아온 것 같았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 들어선 한 '제물'이 그를 보자마자 픽 쓰러지는 순간 미노타우로스를 구원할 누군가가 올 것이라는 예언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미노타우로스에게 그렇게 들린 '예언'일 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 예언은 어떤 영웅이 와서 그를 끝장낼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노타우로스는 일생일대 최대의 실수이자 마지막 실수, 그리고 마지막 바람을 하게 됐다. '구원자를 반갑게 맞이하자.' 그렇게 해서 그는 테세우스를 보고 희망을 가졌고, 테세우스의 일격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영웅담에서 희생된 괴물 중 하나로 기록되게 되었다. 테세우스를 맞이하기 전에 미노타우로스는 이렇게 자문했다. "그는 황소일까, 아니면 인간일까? 혹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황소일까? 아니면 나처럼 황소의 얼굴을 가진 인간일까?" 미궁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었던 괴물의 무기력한 죽음을 그리며 보르헤스가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말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씁쓸함의 정체, 「엠마 순스」에서보다도 더 강력하게 느껴진 쓴맛의 정체는 쉽게 알아낼 수가 없었다. 미노타우로스가 또 다른 미노타우로스를 상상하며 대화를 나누다가 껄껄 웃어보이는 장면과 그의 웃음소리를, 나는 머릿속에서 도무지 지울 수가 없다.


    내 마음 속의 무언가가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고, 내가 그를 죽이러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라면, 그리고 이미 「아스테리온의 집」을 읽은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괴물을 죽일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공포에 대한 무지한 광기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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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6일





    아버지의 부고 편지를 받았을 때, '엠마 순스'라는 여공이 처음 느낀 감정은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어버리는 죄책감, 비현실감, 한기, 두려움"이었다. 엠마의 아버지는 자살을 했다. 엠마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보르헤스의 「엠마 순스(Emma Zunz,)」는 이 대목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지금부터 엠마가 할 모든 일은 진즉에 과거에서부터 싹트고 있었다.


    엠마의 감정은 한 곳으로 일순간 정렬되었다. 바닥에 떨어뜨린 편지를 다시 들었을 때,  엠마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보르헤스는 "어렴풋이나마" 지각했다고 했지만, 우리가 보통 무엇을 하려고 마음을 먹은 그 첫 순간의 어렴풋함은 행동의 원동력이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 원동력 위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엠마는 아마 이 순간 거의 즉각적으로 자신의 복수를 확정했을 수도 있다.


    밤의 어둠 속에서 엠마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흐느꼈다. 슬픔은 복수의 동력이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이 대목을 너무나도 짧게 처리했다. 왜냐하면 복수의 동력이 된 슬픔보다는 복수의 이유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만약 독자들에게 슬픔만을 부각시켰다면 엠마의 복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엠마에게는 떠올려야 하는 기억이 있었다. 처음에는 좋았던 추억을 기억하려고 애썼지만 이윽고 나쁜 기억들만 떠올랐다. 아마 당시 아르헨티나 내의 유대인 사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고려해본다고 하면, 엠마에게는 좋았던 추억이 별로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아버지는 공금횡령의 죄를 뒤집어쓴 것이고, 도둑은 로웬탈이다."


    엠마는 이 비밀을 마치 부적처럼 지니고 있었다. 생각건대, 엠마가 이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면서 느꼈던, 보르헤스가 "용트림을 하며 솟구쳐 오르는 힘의 분출"이라고 한 마음 속의 동력은 아마 언젠가 복수를 하겠다는 잠정적인 계획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혹은 타인이 모르는 정의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엠마의 훗날 계획을 보면 둘은 별 차이가 없다.


    엠마는 밤을 새서 계획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일상생활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이 모습은 보르헤스가 굉장히 무뚝뚝하게 '나열'했기 때문에 시리게 다가온다.) 공장에 가서 일하고, 저녁 6시에는 엘사와 함께 운동을 하러 가고, 친구들과 함께 일요일 오후에 영화를 보자는 계획도 했다. 심지어는 언제나처럼 폭력에 반대한다는 생각을 상기한다. 당시 엠마가 다니던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도모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파업을 하면 분명 노사 간에 마찰이 있을 것이고, 과격한 사람들이 분노하여 싸움을 벌일 것이다. 엠마는 평소에 "싸우면 안 된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는데, 이미 복수의 계획을 짜놓은 그 날에도 자신과는 별로 상관없을 파업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보다도 엠마에게 파업은 "싸우면 안 된다."는 신념을 한 번 상기시키고 말 현상이 아니라, 실은 자신의 복수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한 좋은 도구로 이용된다. 사장 로웬탈에게 파업에 대한 비밀스러운 소문을 알려주겠다며 낚시바늘을 던져놓고, 그가 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1월 16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아무 일이 없었다. 그나마 특별한 일이라 할 수 있는 건, 증거인멸이었다. 엠마는 한 영화배우의 초상화 밑에 숨겨놨던 편지를 찢어버렸다. 이제 아무도 그녀의 복수동기를 알지 못한다. 그러면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이다. 그녀의 살인을 복수가 아닌 정당방위로 교묘하게 꾸미는 것이다. 그런 일이라면 쉽다. 엠마는 애당초 남성을 "정신병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들"로 여기고 있었다. (실제 사회상에 비춰본다면 여공 엠마가 여러 차례 남자들에게 몸을 팔았을 가능성, 그로 인해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만 남아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잠시 멈춰서 독자들에게 문장 하나를 던진다. "그 날 밤에 일어났던 일들을 현실과 결부시켜 보는 것은 힘들 뿐더러, 아마 부당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부당한 일. 왜 부당한 일이라 표현될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안고 가야 하는 질문은 이후 엠마가, 약간 삐그덕거리긴 했지만 복수를 실행에 옮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던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엠마는 그 날 오후 항구에 나가서 스웨덴에서 온 노르드스트하르난 호의 선원 중 한 명에게 몸을 팔았다. 이 일은 갑작스럽게 등장한다. 이런 일이 실제로 비일비재했다고 하더라도 왜 엠마는 몸을 팔러 갔던 것일까? 남성을 혐오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옛 시절에 대한 나쁜 추억이 갑자기 어떤 감흥을 일으킨 것이었을까? 마음 속에서 다시 그 일을 반복하면서 기분 나쁜 쾌감, 그 이중적이면서 상반된 느낌이 동시에 존재하는 감정을 느끼려고 했던 것일까? 보르헤스는 이 일이 "시간의 밖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엠마는 무언가를 상기시키려고 자신의 몸을 팔아 상대방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보르헤스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 역시 그 무언가는 '아버지'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에서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발견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었다. 이 대목 때문이다. "그녀는 이 남자가 자신에게 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일을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그녀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에서 어머니의 흔적은 이게 전부다.) 그렇게 몸을 팔며 "육체의 비애, 그리고 혐오감"이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려는 자신의 공포를 압도했을 때, 마침내 엠마는 옷을 입고 결전의 장소로 간다.


    로웬탈은 가난한 나라에 도입된 자본주의가 낳는 전형적인 구두쇠이다. 동시에 신을 쫓는 사람이다. 우린 그가 어떤 모습일지 거의 짐작을 할 수 있고, 그 짐작은 대부분 맞을 것이다. 그런 그를 죽이려고 엠마가 등장했을 때, 로웬탈은 큰 실수를 했다. 그는 엠마의 실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엠마가 마음 속에 무엇을 품고 왔는지, 무엇을 계획했기에 밤새 잠을 안 잘 정도였는지 알 수 없었다. 로웬탈에게 엠마는 밀고자, 평범한 여공, 자신이 부리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건 엠마에게 큰 이점이었다. 그러나 엠마는 엄청난 문제에 봉착하고 만다.


    원래 엠마의 계획은 정의의 사도가 되어 로웬탈에게 시원스러운 '선고'를 내려주고 방아쇠를 한 번만 당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엠마가 지금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건 공포가 아니라 혐오였다. 아마 몸을 팔지 않고 바로 로웬탈에게 가서 총을 겨누고 있었다면 그녀의 계획대로 실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엠마는 보르헤스의 말마따나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보다는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분노에 대한 형벌을 내리고 싶은 충동"에 단단히 달라붙어 떨어질 수가 없었다. 사소한 치욕들이 태산을 이뤄 엠마를 가공할 만한 무게로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엠마는 조금 다급하게 로웬탈에게 공포에 떠는 밀고자 흉내를 냈다. 로웬탈은 물 좀 갖다주겠다면서 (물론 이건 엠마의 부탁이었다.) 부엌으로 갔고, 그 시간은 엠마에게 로웬탈의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엠마는 두 방을 쐈다. 그러자 로웬탈은 정의의 사도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정의의 사도는 고발문을 외기 시작했지만 외는 도중에 로웬탈이 피를 다 토해서 죽었다. 다 꼬여버린 것이다. 엠마는 마지막으로 이 복수를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수화기를 들고는 로웬탈이 자신을 겁탈하기에 총으로 쏴서 죽였다고 말했다.


    엠마는 어떻게 됐을까? 알 수 없다. 아마 여공의 일은 더 이상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다른 일을 찾았을 수도 있고, 이 가능성이 훨씬 높은데 형무소 신세를 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보르헤스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엠마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 그러나 엠마의 어조, 수치감, 증오, 분노는 진실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엠마를 두 가지 시선으로 각기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그녀가 사람을 죽였다는 시선이다. 다른 하나는 그녀가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시선이다. 물론 나는 여기서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도덕론 입장의 논쟁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보르헤스도 그 논쟁은 원치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엠마가 실행에 옮긴 미완성의 복수이다. 우리는 다시 보르헤스의 교묘한 미로 속으로 들어간다. 「아벤하깐 엘 보하리, 자신의 미로에서 죽다」의 소재처럼 눈에 보이는 그런 미로가 아니라, 복수의 미로로 들어간다. 나는 일단 복수의 미로로 들어간 엠마가 자신의 계획대로 실행에 옮긴다는 자신감(공포와 수치심으로 더럽게 뒤범벅된 괴물이다.)을 갖고 있다가 점점 그걸 잃더니 복수의 미로 끝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벽을 허무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게 두 발의 총성이다.


    우리는 복수극을 보면 통괘함을 느낀다. 대개 복수하는 사람은 정의의 편에 서 있고, 죽는 사람은 악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엠마 순스」는 엄밀히 말하자면 정통 복수극은 아니다. 엠마는 정의의 편에 서는데 실패했다. 그것도 보는 이의 가슴이 아플 정도로, 아주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렇다면 로웬탈은 악덕한 사람인가? 맞다. 그러나 로웬탈이 죽어가면서 내뱉은 욕설이 엠마의 고발문 낭독보다 훨씬 강렬했다. 마지막 순간에 이긴 건 로웬탈일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독자들은 엠마에게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할지 갈필을 잡을 수가 없다. 불쌍하긴 한데 일단 복수를 하긴 한 것 같고, 복수를 한 것 같긴 한데 영 시원치가 않다. 우리가 빠진 보르헤스의 미로가 바로 이것이다. 우린 한동안 그 안에서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알아두면 좋은 것들


①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했다. "'엠마 순스'라는 이름은 내가 의도적으로 고른 유대인 이름이다.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왠지 이상하다고 받아들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런 일들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겠어.' 내가 순스의 이름을 '로페즈'라고 했었다면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Woscoboinik, 106)"


② '보르헤스'하면 단어에 상징을 넣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학자들은 Zunz라는 이름을 두고 여러 해석을 내놓았다. Zunz는 준회문이다. 영어로는 quasipalindrome이라 하는데, 단어를 머리부터 읽어도, 꼬리부터 읽어도 발음이 똑같은 걸 '회문(palindrome)'이라고 하니 '준(quasi-)회문'은 앞뒤로 읽어도 서로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일컫는다는 걸 알 수 있다. Zunz는 앞뒤로 'z'가 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un-'이 남는데, 스페인어로 '1(one)'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이를 본질, 혹은 세상의 모든 것과 무(無)를 상징한다고 본다.


③ 순스가 항구에서 몸을 판 건 당시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별로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유대인은 최하층에 속했고, 유대인 소녀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에 나가서 스스로 몸을 팔아 돈을 벌곤 했다.


④ 학자들은 엠마 순스가 두 개의 사회체계에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남성 사장이 여성/남성 노동자를 착취하는(exploit) 경제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남성이 여성을 착취하는 성 체계이다. 둘 모두를 한꺼번에 거부하는 모습이 이 소설에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엠마는 복수를 하러 가기 전에 항구에 들러 한 남자에게 몸을 판다. 모든 일이 끝나자 남자는 테이블 위에 돈을 놓고 갔는데, 엠마는 자신이 완벽한 복수를 계획하기 위해 편지를 찢어버린 것처럼 그 돈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러나 엠마는 곧 후회를 했다. 아마 당시 아르헨티나 내의 유대사회, 혹은 원래부터 정통 유대사회에서는 빵과 돈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던 것 같다.)


⑤ '다피아(Dapía)'라는 학자는 엠마 순스를 해석하려는 여러 시도들에 독자들이 짓눌릴 것을 염려했는지,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이것이 혹시 도움이 될지 몰라 간추려본다. '언어 미신'이라는 것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프리츠 마우트너(Fritz Mauthner)가 만든 용어이기 때문에 독일어로는 'Wortaberglaube'라고 한다. 프리츠는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우리가 너무 단어 자체에 집착한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이렇다. 산업화 이전의 사람들은 외부 세계에 대한 질문을 단어로 던졌다. 가령 "what does this earthquake mean, or this deformed child, or this comet? ('지진'이란 무슨 뜻일까? '기형아'란 무슨 뜻일까? '혜성'이란 무슨 뜻일까?)"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서 '영혼'이나 '물질'과 같은 단어에 매달리기 시작하면서 '믿음에 대한 정신박약(mental weakness of believing)'이 생겼다. 단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실제 대상이 있을 거라고 믿게 된다는 뜻이다. 다피아는 이를 「엠마 순스」 읽기에 끌어와서 여러 해석을 거부하고 엠마의 행동과 생각 자체를 보자고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엠마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언어, 다른 이들이 던지는 질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가 떠맡는 능동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것이 '복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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