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07

 

 

  내가 너무 곱게 책을 읽어왔나 싶었다. 욕설과 비속어가 전체를 수놓은 소설을 접한 건, 이걸 창피한 편향적 독서이력이라 불러야할지는 모르겠으나, 처음이었다. 나는 김영하가 좋아졌다. 짧은 단편 하나 읽었다고 작가에게 이 정도의 관심을 갖게 된 건, 그것도 역시 처음이었다. 욕설로 썼는데, 군더더기가 없다. 주제는 모르겠는데, 공감이 된다.


  아마 생각건대,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이 소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니미 씨팔이다.”로 끝나는 이 소설에, IMF가 포르노 영화 찍으려고 암스테르담까지 간 제작사의 외화 낭비로 발생했다고 알고 있는 ‘나(김우현)’가 “한 따까리 뛰다가” 걸려 “좆같은 새끼들”에게 쫓기게 되는 이 소설에 말이다.


  심드렁하게 읽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 - 만약 그렇다면 십중팔구 무성의하게 읽은 것일 테고 - 이다. 김영하가 ‘충격요법’의 일환으로 소설적 장치들을 여기저기에 배치한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충격의 정체는 무엇일까? 소설의 내용 자체이다.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다. 사실 ‘우리의 일상’이라는 표현을 선택하는 것에도 나는 조심스러워야만 한다. 뉘앙스가 있으므로. 소설 속 ‘저들의 일상’과 ‘나의 일상’에는 어떤 위계질서가 있는 것처럼 여겨질 법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한 마음으로 나는 “위계질서가 있다.”라고 말하고자 한다. 그들의 삶을 나보다 ‘낮은 수준’의 삶이라 평가하려는 마음도 있다. 만약 이러한 상대적 우월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를 비롯한 일반 독자들은 김영하의 이 단편에게서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어떻게 저렇게 살아?”라고 묻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감정적 질문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류인생에 대한 정서적 혐오감은 실재한다. 그것은 거의 직관적이므로 도덕 감정과는 달리 시정되기도 어렵다.


  이것이 우리, 즉 독자의 한계라면 김영하는 그런 삶을 보여주면서 소설의 경계를 확장시킨다. 우리는 분명 - 소위 ‘1인칭 시점’이라 할 때 - 소설 상의 ‘나’에 대한 동질감을 바탕으로 독서한다. 감정이입이 안 되면 독서가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전통적인 ‘나’라는 화자를 등장시키는 대부분의 소설들은 그 인물의 성격을 상식이나 일반 도덕 따위들로부터 동떨어져 있지 않은, 그리고 살짝 고뇌에 차 있는 정도로 만들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김영하의 이 단편은 반대의 경우이다. 반대 중에서도, 이 인물은 거의 극단의 반대에 서 있다.


  내가 이 소설을 - 정말 - 단 한 번의 정지도 없이 읽어버리고 나서 처음 이면지에 적은 질문은 “왜 공감?”이었다. 왜 공감했냐는 것이다. ‘나’의 의식은 나와는 다르다. 성(性)관념, 양심의 수준, 일상, 언어사용, 학식 등 거의 전 영역에 걸쳐 나는 그보다 ‘정상’에 가깝다. 이렇다면 나는 ‘나’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나는 공감했고, 이 감정의 정체를 복기해보니, 그것은 연민의 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뿐만은 아니다. 희열도 있었다. 내가 사는 일산이 잠깐 등장했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된 것도 사실이었고, 대형마트에서 바나나를 훔쳐 먹고도 “쫄지마.”라는 요즘 청춘의 ‘시대적 구호(?)’에 기대 “게기는” 나와 동거녀의 으름장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편에 서 있었다. 그들의 범행을 목격한 아주머니나 점원의 입장이 되어보려는 생각은, 지금 생각해보니 하지 않았다. 김우현과 종식이 한 남자의 머리를 각목으로 내리찍었을 때에는 통쾌하기도 했다. 멋있기도 했다. 영화 <해바라기>나 <아저씨>에서 주인공이 고난도의 무협액션을 성공시켰을 때 느끼는, 남자가 남자에게 느끼는 일종의 “남자다움”도 있었다.


  또 하나 내가 이 소설에서 주목한 것은 직설적인 화법이었다. 대화든 서술이든 돌려 표현하는 법이 없다. 독서의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생각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 예외는 있었다. 다른 이들의 경우에는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나(우현)’가 동거녀의 음부에 있는 털을 면도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저게 무슨 감정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분명 선정적인 장면인데도 우현의 눈물이 의미하는 바가 희미하게나마 뚜렷해지는 역설적 상황 때문에 전혀 ‘야하지 않은’ 기이한 경험을 한 것이다.


  “왜 그랬는지, 씨팔, 눈물이 났다. 나는 여자애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그 애가 내 쪽을 안 보고 있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무슨 감정이었을까? ‘나’가 모르니, 내가 모르는 건 당연지사고, 김영하는 알았을까? 몰랐으니 썼겠지, 하는 심정으로 추리를 해보건대, 그건 혹시 ‘비상구(exit)’를 바라보고 있는 막연한 현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여자애의 성기를 “비상구”라 부른다.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은데 - 그러나 대관절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 ‘나’와 그녀의 연대감은 생각 외로 견고하다. 적어도 ‘나’가 가진 생각과 생활의 수준에 처했다는 가정 하에 보자면 그녀의 ‘성기’로 읽을 수 있는 현재에의 비상구, 혹은 ‘돌파구’가 그러한 연대감을 만든 절대적 원인일 수도 있겠다.


  그녀가 후줄근하게 맞고 온 탓에 종식과 복수를 감행한 것은 ‘나’의 상식에는 없는 정의감이나 의리 때문이 아니라, 비상구를 지키고 싶은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본능 때문이라는 생각을, 나는 한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감동’이다. 문학이라는 것을 체험하며 대개 바라는 종류의 고귀한 감동이 아니라, - 이렇게 부르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 ‘원초적 감동’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원색의 물감이 치덕치덕 발라져 있는, 울퉁불퉁한 유화 작품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름답다고 하긴 어려우나, 퍽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불리지도 않는.


  “나라면 저러지 않겠다.”라는 식으로 교훈을 추출하려는 시도는 이 소설에 대한 오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라는 사람에게 김영하가 팬을 맡긴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작가가 유독 이상한 - 누군가의 표현대로라면 ‘또라이’인 - 인물을 작중 화자로 등장시키곤 한다는 배경을 놓고 보더라도 우리가 그의 소설을 읽으며 생각할 수 있는 시선의 각도는 비일상적이라고 가정해야 함이 옳을 것이다. 비경계의 체험을 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또한 놀라운 일이고. 내가 ‘나’로부터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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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8 1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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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1 0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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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5 15: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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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5 2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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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5 2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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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6 0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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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9

 

※ 이 글은 김경수 교수님의 '현대소설론' 중 '법과 문학'이라는 테마의 수강을 위해 오늘 읽은 이병주의 작품 <소설·알렉산드리아>에 대한, A4용지 4장 분량 되는 나의 갈무리이다. [한길사]에서 펴낸 3쇄 2010년판을 읽었다. 조촐하지만 이 공간에 옮겨본다.

 

 

 

 

 

  그렇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면 사회의 미덕으로부터 응당한 선처를 바라지도, 법에게 처지를 호소하지도 않는다. 전자의 경우는 이 글에서 차지한다. 열풍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그것에 대한 ‘국내산’ 비판적 텍스트들을 통해 많은 이들이 이 사회의 미덕에 대해 저마다의 정리를 해봤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후자의 경우인 법이 아쉽게도 미덕의 반영에 있어 허점을 보이는 탓이기도 하다. 법이 ‘우리’의 든든한 수호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 하나의 픽션인 법에 대해 분명한 잣대를 손에 쥘 필요가 있다.


  ‘법과 문학’이라는 면에서 내가 본 이병주(李炳注)의 「소설·알렉산드리아」에는 두 개의 법이 지배하는 무대가 등장한다. 하나는 - 나는 여기서 ‘안타깝게도’라는 부사를 써야겠는데 - 서울의 서대문 형무소이고, 다른 하나는 그 유명한 도시 알렉산드리아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 중 저 이집트의 유서 깊은 영광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내가 독서를 하며 한 가지 확신에 가까운 전제를 한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 ‘나’의 입장에 서 있을 것이라는 현실이었다. ‘나’는 누구였나? 관악기에 대해서는 도가 터서 소위 “피리만 불 수 있다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든 별 상관 않는 부류이다. 그런 ‘나’에게,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나’의 형이라는 이의 삶은 도통 이해될 수가 없다. 형의 삶은 시대를 분석하는 한편, 저자세와 소시민적 태도에 부단히 항거하는 사상적 삶이다. 그는 스스로를 ‘황제’라 부른다. 그러나 당당한 황제는 아니다.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았으니, 태양을 향해 오르다 보면 - 이상(李箱)의 「권태」 속 불나방처럼 - 정열이 그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었다. 남은 것은 황제로 지니고 있었던 영광. “궁전에서 나가라고 해도 나는 안 나가고 버틸 작정”이라니, 이거야 말로 대쪽의 정신이 아니던가.


  반면 ‘나’는 사상을 미워한다. 정(正)이냐 불(不)이냐의 판단이란 인간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기에, 보다 솔직한 인간이라면 “내겐 의견이 없다.”고 토로하는 부류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형의 삶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도 갖는다. “세상과 충돌했을 때 상하는 건 세상이 아니고 그 사상을 지닌 사람”이라는 한숨 섞인 고백에서는 형에게 보낸 안타까운 마음이 드러난다.


  죄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형의 죄에 대해 나는 빨리 속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소설의 배경(1965년 발표)을 고려하면 그 죄라는 것이 무엇일지 독자들은 대강 짐작할 것이다. 그 상세한 이유가 드러나 있는데, 한마디로 ‘종북(從北)’의 뉘앙스인 것이었다. ‘나’는 사상에 대해 일종의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형은 분명 잘못했고, 시인만 하면 될 것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반면 형은 그의 죄를 “세상에 나지 않아야 할 사람으로 태어난 죄”라고 이해한다. 그는 여전히 궁전 속에 있다. 나는 ‘나’와 형을 각각 즉자적/대자적 인물로 분석해보려고 했으나 이내 포기했다. ‘나’에게 반성이 없을까.


  줄거리로 돌아가 본다. 프랑스 선원 - 이병주는 프랑스어에 능통했다 - 인 말셀 가브리엘을 만나 ‘프린스 김’이라 불리게 된 ‘나’는 알렉산드리아로 가게 되었다. 그곳은 소위 ‘대사건’이 터지는 곳이다. 무대와 사건을 말하기 전에 잠시 ‘나’의 성향에 대해 조금의 고찰이 필요할 듯하다. 말셀과 나눈 대화가 ‘나’의 사람됨을 또 한 번 드러내기 때문이다. 말셀의 말 중에는 선원생활이 여자와의 관계에 도움을 준다며 ‘생명의 앙양(昻揚 : 정신이나 사기 따위를 드높이고 북돋움)’과 ‘생명의 파멸’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무슨 말일까? (지극히 남성이 중심이 된 저급한 대화이긴 하지만 ‘여자’를 욕망에의 상징으로 놓고 보는 배려가 다소간 요구된다고 하겠다.)


  말셀이 들려준 ‘생명의 앙양’이란 이런 것이다. 그는 여자를 가장 좋아한다. ‘나’가 그럼 선원 일을 하지 말고 여자만 파지 그러냐고 물었다. 그러자 말셀은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여자만 파는 것은 ‘생명의 파멸’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나’를 애송이라고 부른다. 바다에 나가 정기를 받으며 여자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생기가 충족된 몸으로 육지에서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잠시 독서를 멈추고 ‘앙양’을 “원근의 능동적 조절과 그를 기초로 추구”로, ‘파멸’을 “일단의 부단한 일차원적 추구”로 이해하면서 나의 삶에도 명백히 대입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냐며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말 그대로의 육욕이든, 아니면 성공에 대한 욕구이든, 무슨 욕구이든 간에. 얼마간 나는 책을 못 읽었다.


  여하튼 다시 돌아와 내가 본 ‘나’의 성격이란 스스로를 방어하는데 몰두하는 경향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병주가 ‘암묵의 의사’라 표현한 것은 다름 아닌 알렉산드리아의 퇴폐적인 육욕일 것인데, 다양한 형태의 육욕들로부터 번롱당하기 싫어한다는 ‘나’의 고백은 앙양이든 파멸이든 그러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소위 아마추어 수준의 금욕주의를 상상케 하는 것이다. 실제 이병주가 그린 알렉산드리아는 그로테스크한 성(性)의 도시, 관능의 바다 속 그 자체이다. 사상에 대해서도 의견이 없었으니, 욕(慾)에 대해서도 함구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로지 그는 ‘피리’만을 부는 사람이었고, 그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나’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마지막까지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 ‘나’는 카바레 안드로메다의 여왕 사라 엔젤을 만난다. 그녀는 흡사 레비나스가 <시간과 타자>에서 말한 미래로서의 여성성을 연상케 했다. 육욕으로부터 신성에 이르기까지, 동양철학적 표현대로라면 그야말로 ‘지극(至極)’할 수 없는 존재. 그런 그녀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고, ‘나’는 훌륭한 플롯 연주실력 덕분에 그녀와 가까워져 그것을 알게 된다. 사라는 게르니카가 고향이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아는 이라면 그녀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금방 눈치 챌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꿈꾸는 ‘복수’라는 것의 정체도.


  ‘나’는 사라에게 형이 보낸 일곱 통의 편지를 보여준다. 형의 세계관이 농축되어 있는 편지들이라 나는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편지에서는 앞서 말한 이카로스의 날개가 등장한다. 그런데 두 번째 편지로 형은 그래도 황제의 고적한 품위는 지킬 수밖에 없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는 다음 편지에 나온다. “강력한 유혹력 없는 금지란 무의미하다.”라면서 그는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금지규정이 있어 지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요컨대 자유가 우리를 지치게 한다는 논조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대문 형무소에서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랬으면 하는 뉘앙스를 내비치지만 그는 항거정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곳에 나가 짐을 지고 가는 이의 공간적 자유를 누릴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이다.


  다섯 번째 편지에는 “권력은 보잘것없는 책략”이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지배계급의 먹이”라는 표현도 있다. 상부에 대한 경멸적 시선이 확인가능하다. 그러한 상부는 여섯 번째 편지에서 애도한 케네디의 “선명하고 진취성 있는 비전”과 대조된다. 그러다가 ‘나’가 사라에게 읽어준 마지막 편지에서 형의 목소리가 갑자기 수그러든다. ‘나’는 검열을 통과해야 편지가 발송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사라에게 형은 여전히 항거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들려준다. 하지만 형은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 그것은 소설 말미에서 확인된다.


  이제 그가 등장한다. 한스 셀러. 이 독일인의 등장에서부터 소설은 빠르게 진행된다. 그에게도 비밀이 있다. 동생 요한이 유태인 소년을 숨겨줬다는 죄목 때문에 게슈타포 앞잡이인 ‘엔드레드’라는 독일인에게 고문을 당하다가 두개골이 함몰되어 죽은 것이었다. 한스와 요한의 어머니는 한스에게 복수의 유언을 남겼고, 한스는 유럽에서부터 일본 등지를 떠돌면서 엔드레드를 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곧 독자들은 이후의 스토리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병주는 한스와 사라를 이어준다. ‘나’가 그 중재자가 되었고, 그리하여 ‘나’는 한스와 사라가 계획한 대사건의 중심부로 휘말려 들어간다. 그것은 엔드레드를 카바레 안드로메다의 15층 퀸즈룸으로 오게 해서 어떻게든 복수하겠다는 것이었다.


  계획은 성공한다. 그러나 나는 ‘성공’이라 표현하기가 조금 머뭇거려진다. 한스는 총을 꺼내든 엔드레드에게 정당방위를 하고자 테이블을 엎었고, 그 바람에 엔드레드는 뒤로 나자빠졌다. 그 순간 후두부를 땅에 세게 박아 죽었고, 그런 엔드레드의 어깨를 사라의 총에서 발포된 총탄이 뚫고 지나갔다. 한스는 살의를 가졌다고 진술했고, 사라는 한스에게는 살의가 전혀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건 복수였을까? 이건 살인이었을까? 알렉산드리아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이 부분에 이어 이병주는 곧바로 형의 또 다른 편지 한 통을 보여준다. 그것은 13인이 들어가면 12인만 나온다는 문, 즉 사형장으로 통하는 문에 대한 형의 이야기이다. 편지의 내용은 분명하다.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배려’사형제 - 사형수에게 부모가 있다면 사형수는 그 부모가 자연사 한 후에 사형당해야 한다는 것 - 가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면서 사형폐지론의 오래된 역사를 언급하며 근대형법학의 선구자인 체사레 베카리아 - 유럽의 법을 종교로부터 해방시킨 인물 - 의 이름을 적는다. 출옥하면 사형폐지운동을 하겠다는 의사도 분명하게 들어난다.


  그리고 ‘예수’, ‘부활’, ‘마리아’ 등 앞선 편지에서 드러난 생각의 상징이 다음 편지에 이어지며 니체를 등장시킨다. 니체로부터 그는 “항거하라!”라는 이 시대의 발칙한 슬로건을 도출한다. 형의 편지가 알렉산드리아 일심 판결에 앞서 이 소설에 삽입된 것은 이병주의 다분한 의도이기도 하겠거니와 그 의미가 특별하다.


  알렉산드리아의 시민들을 열광케 한 것은 사라와 한스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사라는 자신의 발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행위였으며, 모든 계획은 자신이 세웠고, 한스에게는 살의도, 살인행위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한스는 사라의 총격으로는 엔드레드가 죽지 않았고, 자신에게 살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을 움직였다. ‘이 얼마나 위대한 희생정신이란 말인가!’ 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알렉산드리아 데일리 미러》의 사설과 《알렉산드리아 가제트》의 사설은 각각 의미가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복수는 깨어 있는 의식”이지만 악순환이 우려되니 용납할 수는 없다면서 알렉산드리아 법정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참작될 만한 동기가 있으니 고려하라는 중립적인 어조로 마무리된다. 후자의 사설은 훨씬 급진적이고 열정적이다. 법률이 징치하지 못하는 개인의 원한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 그 글은 테러가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렉산드리아 데일리 미러》에서 ‘딜레마’라 표현한 그것은 테러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검사의 논고, 변호인 A와 변호인 B의 변론이 이어진다. 이들의 논고와 변론은 우리가 예상하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우리는 이미 이병주의 의도 안에 들어와 있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검사는 참작해서 징역 15년을 선고해달라고 요구한다. 시 사직당국이 나치, 게슈타포, 게르니카 등 국제 사건에 관여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것이다. 반면, 변호인 A는 거의 《알렉산드리아 가제트》의 어조로 “불법이지만 정당한 일”의 동기를 고려해야 한다고 변호한다. 변호인 B는 A의 열정적 변호에 이어 구체적 분석을 내놓아 한스의 행위는 정당방위이며 사라는 시체에게 총을 쏜 것이라 둘은 무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언급한다.


  이후 판결은 내려졌다. 한 달 이내로 알렉산드리아에서 퇴거. 그러나 판결문의 마지막 문장은 독자들에게 큰 질문거리를 준다.
  “이 결정은 판결이 아니므로 판결로써 취급하지 않는다.”


  사라와 한스는 뉴질랜드 인근의 섬을 사서 그곳에서 살겠다며 ‘나’와 형을 초대한다. 그러나 형의 편지를 마지막으로 읽어줄 때, 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형은 편지에서 지쳐가고 있었다. 형의 이 인용구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알렉산드리아의 법과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형을 가둔 법’은 얼마나 다른가 말이다.


  “희망은 무한하다. 그러나 나는 글러먹었다.” -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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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0 18: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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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11-02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병주를 읽는 탕기님 멋져요! 국문학도의 국문학 리뷰의 정수 같은데요. 5년 전인가 이병주 전집읽기 시도했었는데 반갑기도 하고.. 물론 다 못읽었고 지금은 읽은 것마저도 기억에 없지만.. 저는 그때 엄청 장편들만 봤는데.. 이 분 소설 보면 자꾸 카잔차키스 생각이 나요. 너무 많고 너무 방대하고 너무 다양해서요.

재밌을 것 같아서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요^^ (근데 담으려는데 책이 없;;)

탕기 2012-11-02 21:12   좋아요 0 | URL
저는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셔서, 이번 방학 때에 조금씩 <관부연락선(1,2권)> 읽어보려구요. 사실 방학 이용해서 카뮈/위화 읽기 하려고 했는데, 교수님 왈 "일단 읽어보세요. 아마 손을 놓치 못할 거에요."라고 하셔서요.^^

나름 방학독서계획 세워놨는데, 벌써 기대되고 설레요.ㅠㅠ
모옌도 한 번 읽어보고 싶고, <호빗> 개봉 겸 톨킨 3부작(반지제왕,호빗,후린의 아이들) 리뷰도 쓰고 싶고, 움베르토 에코 <미의 역사>도 다시 공부해보고 싶고, J.S.밀 <여성의 종속>, 에리히 프롬... 빨리 학기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ㅠ

아이리시스 2012-11-08 20:13   좋아요 0 | URL
탕기님 호빗 예전부터 좋아했잖아요, 그게 기억에 남아있어요. 좋아한 게 아니라 호빗이 종종 등장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기억하나봐요. 빨리 학기가 끝났으면 저도 좋겠습니다.ㅠ

지금 모옌 지르고 있어요!
 

2012.10.07

 

  김경수 교수님의 '현대소설론' 과제로 쓴 독후감을 옮겨놓는다. 본래 각주들이 있었으나 생략한다. 형식이 없는 독후감이라 흐름 없이 자유롭게 썼다. 문단의 문장들 속에 독립적으로 큰 따옴표 처리 되어 있는 표현들은 모두 이상(李箱)의 것이다.

 

 

 


  독서는 분명 자기체험이리라―

 

  나는 제대(除隊)하고 2년간 휴학하여 미술사를 공부하였다. 대학생활의 2년차까지 나에게는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일찍 이곳에 합격하여 주변의 부러움을 샀고, 나는 그 부러움을 자부심으로 삼았으나, 재능을 키워볼 생각보다는 날마다 커져가는 지루함과 불안을 못 견뎌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인데, 나에게도 군대는 각성의 장소였다. 나만이 앓고 있던 고통으로부터 나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을 정도로, 그곳은 잊고 싶을 만큼의 강한 고통들을 나에게 쏟아 부었다. 더 이상 내 안의 고통은 통각을 자극하지 못했다. 지난 날 동안 내가 겪어왔던 고통의 크기가 군대에서는 왜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에 들어서보겠다는 결심으로 나는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고, 그 땅에 난삽하게나마 여러 발자국들을 찍어놓았다. 그 무렵의 경험들은 복학한 뒤 얻게 된 모든 종류의 지식과 이해들을 미술과 연결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렬했고, 하나의 유기체가 되었다.


  부족하게나마 그것을 묘사해보자면, 그건 내게 ‘사유의 전초기지’이다.

 

  이상(李箱)의 「권태」를 읽으며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나는 단어와 문장들의 틈새에서 자주 멈춰 섰다. 수시로 떠오르던 여러 잡된 생각들이 미술을 공부하던 때로 하나 둘 소급된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무엇이 동인일까? 주관적인 고통과 희열들로 도배된 나의 옛 기억으로 이상의 사유가 모아졌다. 데칼코마니처럼. 그렇게 「권태」를 읽고, - 대부분의 시간을 눈살 찌푸린 채로 - 또 고쳐 읽으면서 나는 답을 찾고자 했다. 아니면 새벽의 촉촉한 감수성을 팬으로 삼아 답을 써내려가고자 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며칠이고 나는 텅 빈 이면지 위에 아무 것도 적지 못했다.


  선인(先人)들이 당부하는 것처럼 성급한 사람에게는 답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던가. 추석 내내 나는 「권태」를 생각하고자 했다. 성묘를 할 때, 친척들과 추석씨름장사대회를 볼 때, 작은아버지 댁의 마당에서 잘 익은 포도를 딸 때, ‘쌀나무’를 보여주시겠다는 어르신의 농에 속아 넘어갔다가 그 ‘나무’란 게 다름 아닌 벼라는 것을 알고 사촌동생과 자지러지게 웃었을 때…… 나의 마음이 이렇게 바쁠 때가 아니라면 나는 언제라도 이상을 생각할 마음준비가 되어 있었다. 도로에 체증이라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뻔 했으나, 예외라고 할 만큼 차는 막히지 않았다. 결국 추석의 「권태」는 없었다.


  다른 공부들에 대한 생각과 겹치거나 그것들로부터 밀릴 것을 대비하고자 나는 「권태」 출력물을 책상 위에 꺼내뒀다. 이상의 단편 네 작품을 읽으면서 나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저 태도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여러 충격들에 히스테리적으로 반응하는 저 유약함! 그것은 분명 「권태」를 쓴 이상 본인의 것이었다. 나는 대체 왜 그것이 나에게, 아니 나의 경험에게 들어맞는 것 같은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나의 방에는 여러 새벽 기차들이 보이지 않는 선로를 따라, 들리지도 않을 굉음을 내며 지나갔을 것이다. 도무지 감이 없는 날의 나는 그 육중한 움직임에 무참히 짓밟혔을 것이다. 나는 그 기차들을 매번 놓치다가 문득 바라본 책장에 어떤 역(驛)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진기한 현상을 목도”했다.


  역의 이름은 『뒤러』였다. 두 권의 책이다. 도상해석학자인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끝에 내놓은 역작. 나는 미술사 공부를 할 적에 작품을 세밀하게 뜯어보는 재미에 빠져 파노프스키와 뒤러에게 많은 애정을 줬었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나는 그의 두 작품을 오래토록 들여다본 일이 있다. 하나는 유화(油畵)인데, 《자화상(Selbstporträt)》이라는 제목의, 미술사학자들이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작품이다. 스물아홉의 그가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와 유사하게 그린 유화. 이 자화상은 그의 여러 자화상들 중 단연 압도적인 위용을 갖췄다.

 

 

 

 

 

 


  다른 하나는 이상의 「권태」와 떼어낼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도상해석학의 대표 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멜랑콜리아 Ⅰ(Melencolia I)》이다. 이 작품은 저 자화상을 그린 지 14년 후에 그린 판화이다. 여러 상징적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오래토록 학자들의 상상력을 통해 조명되어 온 작품이다. 세밀한 분석은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이 제목의 뜻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울과 비애. 이 사전적 의미들로 인해 나는 지루한 나날들에 파묻혀, 거울에 갇혔던 나 스스로를 일종의 미이라 보듯 했던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뒤러의 이 작품을 서랍 속에서 꺼내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문자 그대로의 제목을 가진 이상의 「권태」에서도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한 고통이 연상되기 시작했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뒤돌아 생각해본 ‘권태’란 지금은 미약한 메피스토펠레스 따위로 전락했다. 그의 속삭임은 더 이상 나를 도발하지 못한다. 도발된 내가 있었다면 그건 과거의 일이다.


  나는 “하류(下流)로 향하여 가고 있는” 송사리들, 그 군중들의 한 일원이 되어 과거보다는 권태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니 「권태」는 나를 뒤로 밀고 밀어서 나에게 한꺼번에 두 개의 시공간을 체험하게 했다.

 

 

*    *    *

 

 

  이상의 시선은 사위의 단조로운 녹색 벌판으로부터 서서히 그 자신에게로 집약된다. 그리고 “할 일이 없다.”는 그의 시선은 ‘최 서방’을 시작으로 세밀하게 분산되기 시작한다. 이욕(利慾)이 밉다며 최 서방에게서 떠난 이상의 눈길은 개울가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사위를 질리도록 녹색으로 만들어버린 조물주의 몰취미를 한탄하며 앞선 ‘큰 시선’을 저 개울가로 뭉쳐버린다. 권태는 그 뭉쳐진 시선을 터뜨려 “지구의 여백”이라는 장자(莊子)적 스케일로 커진다. 그 여백을 모르니 이상에게 농민은 천치이다.


  나의 우울과 비애를 감히 이상의 「권태」 속 권태에 비견하고자 노력하면서 내가 우선 흥미롭게 여긴 건 그의 시선이었다. 그것은 단 하나의 끊어짐도 없어 흡사 권태의 고저(高低) 없는 라인과 같은 의식이었다.


  돌발적인 사유는 고작 한 번에 그친다. 군중 송사리 떼의 역투. 하지만 그건 ‘소낙비’였다. 그가 느낀 권태로움의 총량은 한 차례의 각성을 무참히 내리누르고도 남을 만큼 무게가 나갔기 때문이다. 전신주가 무슨 소용이겠냐며 농민들의 본능적 삶을 불행하다 평가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닭보다도 못난 벙어리 개들, 관례대로 세수를 마친 이상을 따라하는 ‘원숭이’ 촌동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권태의 망을 통과한다. 애꿎게 가다머(Hans-Georg Gadamer)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의 눈은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니, 이상은 「권태」의 전편을 아우르는 권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송사리 군중의 위대한 탈출은 아주 잠시 나를 설레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상의 ‘실패’로부터 일말의 희망을 건져낼 수 있다면 강태공들은 저 호수에서 ‘반복’이라는 대어를 낚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최 서방에 이어 이상의 시선은 개울가로 갔었다. 그곳에서 그는 ‘초록’을 경멸했다. 그리고 조물주의 몰취미도 경멸했다. 그렇게 이어지던 이상의 의식은 “촌동들을 원숭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선언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던지고, 그를 개울가로 향하게 한다. 그의 진득한 관찰은 A에서 ~A(not A)를 발견하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다.


  미천한 경험이지만 나는 동전의 양면을 강조하는 선인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이 들어갊에 따라 서서히 깨닫고 있다. 30대가 되면 그 깨달음은 더욱 간절해지지 않을까. 만물에는 앞과 뒤가 있다는 어느 교수의 역설을, 나는 이번 학기에 한 철학 과목을 수강하며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찡하게 울리던 코끝을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건 사소한 발견이다. 하지만 생(生)을 감지하는 시세포들의 상처가 많아질수록 나는 사소함의 탈을 쓴 위대한 사물의 형상들을 분명히 알아가는 듯하다. 개울가에 쪼그려 앉은 이상의 모습은 훗날 나에게 또 어떤 깨달음을 줄지, 이 작품은 나에게 사뭇 기대를 선물했다.

 

  사방을 관찰하던 이상의 시선이 순간 대상에게 이입된 때가 이 단편에 한 번 있었다. 그가 어떻게 심리했는지, 자리를 빌려 옮겨본다.


  “이 사람의 얼굴이 왜 이리 창백하냐 아마 병인인가 보다 내 생명에 위해를 가하려는 거나 아닌지 나는 조심해야 되지.”


  《멜랑콜리아 Ⅰ》의 건장한 여인보다 이상은 훨씬 왜소했을 것이다. 유정(裕貞)과 함께 정사(情死)를 논의할 정도였으니 나는 그의 앙상한 체격을 떠올리며 살짝 눈을 찌푸려본다. 소도, 아니 이상도 스스로를 ‘병인(病人)’이라 불렀다. 이상은 소에게 위해를 가할 의식도, 동기도, 도구도, 방법도 없다. 소의 반추와 함께 이상의 권태 역시 이어진다. 그러나 강화되어 오던 권태가 한 차례 꺾이는데, 그건 순전히 소가 큰 만큼 소의 권태도 클 것이라는 불확실한 위안 때문이었다. 관찰과 이입의 경계가 무너졌다.


  흥미로웠다. 우주적 시각으로까지 퍼져나갔던 이상의 권태가 왜 소를 보고 나서 잠시 주춤해진 것일까? 문맥으로만 보더라도 그는 일말의 평온을 느꼈을 것이다. “고독을 겸손”한다는 말은 이전의 태도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나는 까닭을 추정하다가 문득 강원도 횡성에서 보았던 두 마리의 소를 떠올렸다. 지금은 가지 않지만 외조부의 산소가 있는, 어머니에게는 큰집 되는 시골집에 그 소들이 있었다. 외양간의 고약한 냄새를 기억하는 만큼 나는 소들의 순하고 깊은 눈망울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시속(時速)으로는 측정이 될까 궁금해질 정도로 느렸던 그들의 반추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것 때문은 아닐까? 지루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별 이욕도 없고, 흉내도 안 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 이상의 생각대로라면 - 본능도 무의미로 만들어버리는 소의 행동을 목격한 것 때문은 아닐까? 권태 위의 권태를 이상은 목격한 것이리라. 하지만 바깥의 눈으로 보자면 소의 행동은 지극히 평온하다. 권태와 평온의 역설적인 상황은 이상의 눈에도 비춰졌을 것이다. 권태를 애무하는 또 다른 권태.


  이상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움직였을 것이다. 적발동부(赤髮銅斧) 반라군(半裸群)들의 의미 없는 놀이, 정말 재미도 없는 놀이를 보며 그는 눈물을 흘린 것이다. 권태로부터 비집고 나온 연민의 정이 지구 상 태초의 인간처럼 자각을 시작한다. 가난! 그것은 놀이조차 권태롭게 만든다. 이 점에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틀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놀이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놀고 있는데(작용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생활의 즉각적인 필요를 초월하는 것으로서 그 행동 자체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권태」의 이상은 “최후의 창작 유희”에서마저 ‘나오지 않는 대변’ 탓에, 그 지독한 가난 탓에 낙오자가 되어버린 한 실패한 아이를 굽어보다가 조물주에게 기도한다. 기도는 오히려 항변에 가깝다. 풍경과 완구를 달라는 외침에서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구호물자를 기다리는 아프리카 빈민들과 “Give me chocolate!”을 외쳤다던 전후(戰後) 우리나라의 촌동들을 연상하며 가슴이 적적해짐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겪지 못한 가난이었다. 겪지 못한 것들을 대하는 죄송스러움도 겹쳐 나는 어떤 교시(敎示)의 회초리를 맞은 듯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아파트에는 ‘가난’이라는 글귀가 전혀 새겨져 있지 않다.

 

 

*    *    *

 

 

  하루가 저문다. 이 글을 주로 새벽에 읽었기에 해저(海底)와 같은 밤이 쏟아진 이 단편의 마지막 언저리에서 나는 더욱 심취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새벽은 배고픔의 고비를 만끽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때가 아닌가. 이상은 “관성의 법칙처럼 놓여 있”는 반찬으로 저녁을 마쳤으나, 나는 주로 굶은 채로 그의 생각을 읽었다.


  쏟아지는 별이 있다기에 80년은 더 지났을 이 세상의 별은 그 때와 같을까 하는 생각으로 창문을 열어 보기도 했으나, 15도 안팎으로 뚝 떨어진 새벽의 찬 공기 위로 하늘은 조금 깎인 보름달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인공위성 몇 개가 금성인 양 위선적으로 반짝일 뿐이었다.


  갑작스레 방충망으로 큰 나방 한 마리가 달려들다 몇 번 몸을 부대끼더니 힘겹게 착지하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권태로부터 탈출하였다가 다시 「권태」속으로 들어갔다. 나방은 내가 얼마 전에 테이프로 막아놓은 방충망 구멍 근처를 살금살금 기어 나의 얼굴 부근까지 왔다.


  저 어두운 아파트 공원보다야 새벽을 밝히고 있는 나의 방이 훨씬 빛났으니, 나방의 정열은 초조히 이리로 날아오도록 그의 본능을 부추겼을 것이다. 내가 이 방충망 구멍의 테이프를 살짝 들어낸다면 운 좋게도 방 안에 들어와 저 강한 스탠드 불빛이나 형광등에 수 차례 뛰어들었다가 책상 위나 전등 받침대 어디서든 죽은 채 발견되리라. 이상은 그 무모한 정열이라도 탐하였다. 권태가 암흑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열은 내일을 죽게 하고, 권태는 내일을 살게 한다. 혹시 이런 의미는 아닐까. 죽도록 살아보자는 이 시대의 ‘EPIGRAM’이 청춘의 귀감으로 널리 설파된 때이기에 나는 저 역설을 수첩이든 스마트폰의 바탕화면이든, 어디든 적어놓고 수시로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생명을 보존해준다던 저 권태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우리는 죽음을 꿈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권태는 욕망하는 이 시대의 삶보다 뒤쳐진 병증인 양 취급된다.


  호주의 신화학자 피터 투이(Peter Toohey)는 권태의 의미를 격상시키기 위해 그것을 예술적 창조와 연결시켰으나, 나는 많은 이들이 권태보다는 열정을 선택하리라고 짐작한다. 그것이 차라리 쉽다. 이 시대의 사고도 이상의 표현처럼 “내일 그것이 또 창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인 날들을 그리도 두려워하지 않던가.

 

  권태 앞에 성숙한 인간은 없다.


  프레스코(Fresco)화는 우선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그 위에 안료로 그리는 오래된 회화(繪畵)기법이다. 우리의 삶도 ‘권태’라는 회반죽 위에 그 모습을 가리기 위해 그려진 그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가 들어 말라비틀어진 작품들 사이로 그 반죽 본연의 추한 자태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쩍쩍 갈라진 《최후의 만찬(Ultima Cena)》에 남은 것은 생동하는 색으로부터 멀어진, 보이지 않는 아우라 밖에 없다. 나는 그 색을 ‘만성적 권태’라는 친숙하지 않은 전문용어로 불러본다.


  성숙하다는 자부심도 권태를 마주하는 순간 사라질 것이다. 그리하여 이상의 비관은 솔직하다. 그 솔직함이 ‘권태’라는 문자, 《멜랑콜리아 Ⅰ》이라는 작품 사이를 후비고 들어와 나의 고통을 게워 “그 시금털털한 반소화물의 미각을 역설적으로 향락”하게 했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많은 체험들이 있었으나, 살아남은 것은 권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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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샘 2013-04-1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정말 잘쓰시네요..와..부럽습니다
 

2012.01.06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서양이 ‘아시아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는 언론보도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부심을 드높였던 때가 기억난다. 그 때 나는 세상 돌아가는 바를 거의 몰랐기 때문에 대학입학 수시1차 선발에 논술문제로 나오지 않을까 싶어 한 번 들여다보는 정도에 그쳤지만 돌이켜보건대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서는 지금도 잘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진중권, 박노자, 강준만 등의 글을 읽고, 더불어 홍세화의 ‘서구 對 우리나라’의 비교를 읽으면 그 가치의 테두리가 얼핏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책을 덮고 나면 그 모든 가치들을 역사의 유전으로 물려받은 내가 객관적인 입장에 서기란 참으로 어렵다.


  서양미술을 공부할 때에는 서구의 사고 발전과정에 주목하면서 특히 모더니즘의 파격이 현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예상한 적도 있다. 바깥 것을 보다보면 늘 나의 것이 모자라 보이는 법이리라. 그런데 또 다른 면에서는 아시아적 가치를 추종하곤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다큐멘터리인 <차마고도>는 KBS의 ‘인사이트 아시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인데, 이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때마침 서양이 동양을 주목하는 추세에 맞물려) 아시아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취지를 갖고 있다. 유교와 불교는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발원한 국수의 문화, 잃어버린 옛 가치들과 대안적 의미들을 발견하고자 했던 차마고도의 험준한 세계 등을 비춰준 적이 있고, 유독 관심을 많이 받았던 <차마고도>는 작년 12월에 영등위로부터 다큐멘터리 부문 “좋은 영상물”상을 받기도 했다.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면, ‘인사이트 아시아’ 프로젝트는 <차마고도> 외에도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제작해서 큰 인기를 누렸지만 그 이후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웹사이트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아시안 트리(가족 관계)’, ‘아시안 비트(장단)’, 불교(같은 주제로는 작년 말에 팔만대장경과 대안적 불교 관련 다큐멘터리인 <다르마>가 있었는데, 이는 인사이트 아시아 프로젝트가 아니다.)와 같은 아시아적 중심 주제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루 빨리 계획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결국 나는 ‘아시아적 가치’ 속에서 서양을 바라보고 이따금 제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연어와 같은 존재인 셈이었다. 우리는, 특히 우리와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발전에 있어 민주주의가 반드시 서양의 노선을 밟을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곤 했고, 그 중심에는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가 있었다. 이에 민주주의를 앞세워야 한다고 반박한 故김대중氏의 주장이 우리나라와 싱가포르 사이의 사상적 차이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일부 병폐로 기억되고 있는 가치를 애써 지키려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 가치는 경제발전을 가져왔고, ‘아버지’상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대중들에게 심어놨으며, 무엇보다도 옛것을 생각했을 때 연장자들이 느끼는 ‘따뜻함’의 촉각적 가치들로 비약되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대중에게 있어 소중한 가치라는 오랜 생각에 수긍한다면 우리는 소위 ‘박통’시대로 대변되는 낮은 수준의 인권에 강한 부정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다. 다행이도 우리나라는 젱하스가 말한 단계를 잘 수행하고 있는 듯하다. 반(反)식민지주의의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를 요구한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같다. 그 과정에서 지도자들은 국가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무시할 수밖에 없는데, 이 시기의 이데올로기는 상흔으로 남지만 겉으로 보기에 국가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다. 그 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대중들에게는 ‘평등’, ‘민주’라는 가치들이 주목받는다. 평등과 민주의 형태는 서양이 백년은 훨씬 더 걸린 오랜 시간동안 고통과 갈등을 통해 도출해낸 것으로,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 막 경제발전을 이룩한 신흥 근대화 국가에게도 요구된다. 우리나라로 이를테면 7~80년대이다. 그 이전의 항쟁도 세계사적으로 보자면 매우 고무적인 사건이다. 알다시피 서양과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은 매우 다르다. 문민정부, 참여정부 이후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상당부분 진행되었는데, 아직 상흔을 자랑스럽게 기억하는 이들, 가진 것으로 내리 누르려는 이들, 본래 민주화는 갈등의 연속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전체주의적 성향을 내비치는 상황이라 누구나 만족할 만한 수준의 상태에는 이르지 못했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의 소통부재도 큰 문제 중 하나이다. (마침 소통과 관련해서 좋은 다큐멘터리가 KBS 일요스페셜로 방영 중에 있다. SBS에서도 저번 주에 차두리氏와 북한 정대세氏가 함께 출연한 소통 관련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바 있다.)

 

 

 

 

 

중국의 한 미팅 TV 프로그램

 

 

  젱하스에 따르면 아시아적 가치는 이런 것들과 유사하다. 아나톨리적 가치, 슈바벤적 가치, 롬바르디아적 가치(슈바벤과 롬바르디아는 지명으로 전자는 독일이고, 후자는 이탈리아이다. 그런데 아나톨리는 무엇인지 찾아내지 못했다. 생각해보건대 이들은 개인보다는 전체를 강조하는 우리의 가치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일 것이다.), 이슬람적 가치, 실존사회주의적 가치, 신권주의적 가치, 사회주의-조합주의적 가치 등과 말이다. 몇 년 간 미술사를 공부했기에 이 독일 석학의 비유에 내가 아는 것 하나를 덧붙여보자면, 반(反)종교개혁적 가치도 어울릴 것이다. 이런 가치들은 서구적 민주주의와는 흔히 상반되는 것이라 불리지만 지역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양상들은 모두 다르다. 다만 수구적 성향이라는 것에서는 모두 동일하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가치들에 대해 저항하는 가치들이다. 그러나 아시아적 가치는 탁월한 경제발전의 덕을 봤다는 점에 있어서 상기 가치들과는 달리 성공 사례 중 하나로 서양의 관심을 받은 것이다. 이슬람과 실존사회주의, 신권주의는 큰 실패를 맛봤고, 경제발전의 단기적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에는 온갖 부정과 비리들이 드러나게 마련이며, 그리하여 그들이 겪은 병폐는 오히려 그들의 가치를 더욱 철저하게 지키고자 하는 보수적 성향을 키우게 된다. 이들은 사상과 종교로써 세속과 저항하려고도 한다.


  이런 저항적 사상과 관련해 나는 최근 중국을 주목했는데, 학자가 아니라 체계적인 분석은 하지 못했지만 최근 중국의 태도는 과거와는 다르다. 작년 말일에 에드워드 웡(Edward Wong)이 뉴욕타임스紙에 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기사는 매우 흥미로웠다. 웡이 주목한 것은 중국의 각 방송국들이 ‘변화하는 중국’, ‘소통하는 중국’을 모토로 해서 얼마간 소위 ‘된장남’과 ‘된장녀’를 연상케 하는 젊은 남녀들의 미팅 프로그램을 방송한 것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케이블 TV에서도 이런 것들을 많이 해주니, 새삼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 프로그램들은 중국 CCTV의 저녁 뉴스가 기록하는 높은 시청률을 조금씩 나눠갈 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프로그램을 대충 살펴보면 ‘막장’에 가깝다. 어떤 여자는 “나와 손잡고 싶으면 거액을 줘야 할 거에요.”라고 콧대를 세운다. 사회자가 왜 그러냐고 묻자, 그녀는 “나의 남자친구가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한다. 남자도 막장이긴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중국 젊은이들의 ‘아시아적 가치’를 희석시켰고, 급기야 정부가 나서 그 프로그램들을 폐지하거나, 혹은 벌금을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나 역시 채널을 돌리다보면 일부 케이블방송 프로그램들이 대중의 다양성, 정신적 가치, 혹은 한국적인 것들을 강하게 부정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가치가 위협받으면 자연스럽게 그 프로그램에 대한 반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즉물적 가치들의 선정성과 공격성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는 우리 역시 겪어봐서 다 알고 있다. 중국 방송계가 처한 상황은 지금의 우리와 진배없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가치의 두둔과 강조를 넘어선 ‘제한’이 중국인들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뉴스와 신문에서는 중국의 신흥 갑부들이 중국정부의 강력한 경제압박을 피해 이민을 선택한다는 보도를 한 적이 있다. 이 현상은 중국에게 큰 골칫거리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을 압박하며 소위 ‘차이메리카’의 시대를 열기 위해 국제 석유시장을 요모조모 공략하고 있고, 항공모함을 건조하여 미국의 태평양 라인을 경계해 베트남, 필리핀 등과의 남중국해 권력 다툼에서 우위를 보이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정작 안방이 문제인 셈이다. 돈을 가진 이들이 나가버리면 이미 흉흉해진 내부 경제가 얼어붙거나 흔들리게 될 것이 뻔한데, 막상 중국정부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고, 그들의 출혈만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재작년으로 기억한다. 중국정부가 대대적인 공자(孔子) 알리기에 나섰을 때였을 것이다. 그 무렵 우리는 유교적 가치에 대해 재고하고자 했고, 인문학계에서도 열렬한 반응을 했었다. 작년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관중과 공자>였으니 사상적 조류는 지속된다고 하겠다. 하지만 정작 중국정부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자율적 시장의 동향이 아시아적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주는데, 다만 중국의 아시아적 가치는 우리나라나 싱가포르와는 달리 실존사회주의적 가치의 맥락에서 진행되는 것이므로 앞으로 그들이 시장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될지를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서구에서는 중국의 문이 열리는 것을 두려워하겠지만.


  젱하스가 결국 ‘아시아적 가치’를 논하는 짧은 장에서 하고자 했던 말은 그것을 맥락 없이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나는 이 경고가 섬뜩하게 들린다. 까닭은 이렇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아시아적 가치’라는 말은 별로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다양한 소통 매체를 활용할 수 있고, 이미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사상의 이동과 변화가 이전 세대보다는 더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물론 모두 그렇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나, 유연성이 더 강화된 세대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본다. 그런 세대들이 점차 사회를 주도하는 시대에 접어들어 세계경제의 급랭이 큰 문제로 떠올랐고, 지난 가치들을 전복시키려는 사상적 움직임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시 말해, 병폐의 타파를 위해서라면 이 유연한 세대들은 어떤 것이든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면 예전의, 폐단이라 불린 가치들이 어떤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것을 사회가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독일의 젊은이들 중에서 히틀러를 추종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젊은 극우세력의 등장은 우리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의 극우세력이 커지고 있는 상태에서 압박을 받는 것은 우리와 중국이다.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감은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가 헛것을 쫓았다는 것이다. 이 갈등 상황을 중재해 줄 수 있는 소통이 부재하게 된다면, 물론 그것은 사회적 역량에 따라 달라지므로 나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수준에 많은 기대를 걸게 되는데, 우리는 옛 유물들을 끄집어내 왕을 세우고 독재자를 세우는 일도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독재자가 무너지는 곳도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가 그러한데,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일련 사건들이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긍정적 미래를 예단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러고 보니, 그 꽃은 피를 자양분으로 발화하는 것이라 우리의 것과 매우 닮았는데, 상황은 결코 닮은 것이 아니다. 그들의 경제적 수준은 자국의 기대치를 만족시켜줄 만큼 준수하지 못하다. 그곳의 독재자들과 박정희의 차이도 그렇다. (이것이 소위 ‘박통주의자’들이 그의 동상 앞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이유이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등의 이권 문제도 놓여 있기 때문에 석유를 놓고 벌어지는 살벌한 싸움 속에서 민주화 과정이 더욱 진행되어야 한다. 결국 그곳 사람들은 리더의 자격을 꼼꼼하게 따질 것이고, 부족국가가 대부분인 북아프리카에서는 빈번한 유혈사태가 불가피할 것이다. 젱하스도 동아시아의 민주화 과정은 ‘아시아적 가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다고 긍정했지만 이슬람 사회에 대해서는 긍정하지 않았다.


  마지막 결론의 장에 앞서 젱하스가 ‘아시아적 가치’를 논하는 이유는 소위 ‘대항 프로젝트’의 세계적 사례들 중 거의 유일하게 민주화 과정으로 이어진 것이 바로 우리나라와 싱가포르의 그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와 반대되는 사례들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에 있고, 일부 이슬람과 북한이 서로 사상과 형태는 다르나 대항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중국은 대단히 애매한 태도를 지니고 있어 ‘중국적 가치’라 따로 불러야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이런 과정들이 부단히 진행되는 중에 발생하는 각종 갈등들은 헌팅턴의 표현처럼 ‘문화 충돌’이라 부를 수만은 없는 일이다. 각 사례들을 젱하스가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라, 독자들이 그들 나름의 사례찾기를 해야 하는 장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남은 이야기는 하나, 바로 중재이다. 과연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젱하스는 어떤 고견을 내놓을 수 있을까?

 

 

 

 

- <문명 내의 충돌> 총 리뷰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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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0

 

 

 

 

 

 

 

   젱하스는 헌팅턴의 실책을 두 가지로 나눠본다. 거시적 차원의 실책은 우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유교 문화의 축을 중국과 북한으로 보고, 이슬람 문화의 축을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알제리 등으로 보는 그의 시선은 두 문화를 굳이 대비하려는 서구적 편견에서 비롯된, 보편화의 오류를 범한 통찰이다. 보편화의 오류는 우리에게는 일상과도 같다. 일부 여성들의 사치를 보도한 인터넷의 선정적인 기사들도 이와 다르지 않은 논리를 갖고 있다. 보수적 남성들은 이런 기사들을 접한 뒤 “모든 여성들이 그럴 것이다.”라고 거의 결론짓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어떤 정보를 흡수할 때, 우리는 의외로 편견과 착각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이는 저명한 학계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다. 특히 문화 간 비교를 필요로 하는 학문인 경우에 그러하다. 종교도 대표적인 예이다. 문명을 논하는 젱하스가 이 책의 대부분을 종교에 대한 면밀한 분석으로 채운 것도 사실 그 때문이다. 보편화의 오류는 대부분 상대방에 대해 거의 모를 때가 일어난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일부만 보고 그것을 전체인 듯 여기는 것이다. 새삼스러운 말일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해 거듭 언급하진 않겠다.


  ‘문명의 충돌’을 테제로 놓고 봤을 때, 헌팅턴이 위와 같은 오류를 범한 까닭은, 젱하스가 지적한 것처럼 정치적인 현상 때문이다. 경제적 이해관계도 이에 포함된다 하겠다. 저들이 서구와 충돌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때론 문화를 무시한 경향을 목격하곤 한다. 문화적 가치가 시대에 따라 잘못 발현(여기서 “잘못”이란 후대의 평가이다.)되는 까닭의 대부분은 정치와 경제 때문임을 우리가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다. 헌팅턴처럼 북한을 유교문화의 대표적인 축으로 본다면 북한과 중국 사이의 문화 차이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별 어려움 없이 “체제의 차이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체제는 깊이 내재되어 있는 문화정신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하게 하는 일종의 감시망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문화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시각이, 흔히 당연하다 여겨왔던 그 시각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심받게 된다. 이에 젱하스가 말한다. “모든 방면에서 문화주의적 논지를 가져오는 첩경”은 다름 아닌 문화 분석의 부족이라고 말이다.


  두 번째 오류는 미시적 차원에서 일어났는데, 여기서 ‘미시(微示)’란 큰 문화가 작은 지역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 차원의 오류는 위의 것만큼이나 자명하다. 젱하스는 소수민족의 문제를 예로 든다. 소수민족은 거대한 중앙정치집단으로 구성된 세력들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났기에 그런 명칭으로 불린다. 그런데 전 세계가 근대화의 조류에 휩쓸리고, 그 흐름을 소수민족들 역시 경험하다보니 그들의 요구수준이 높아졌다. 이윽고 독립의 문제가 온갖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외교적 문제와 부딪히며 전 세계에 보도될 정도의 핫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헌팅턴은 이 과정 내에 문화적 요인들이 있음을 지적했고, 젱하스도 그것은 옳다고 본다. 하지만 젱하스는 헌팅턴과는 달리 문화는 거의 하는 일이 없다고 주장한다. 문제가 부각되고 진행되는, 이른바 ‘갈등의 단계’에서 문화는 종속적 위치에 머문다. 후대가 평가하기를, 다만 이 모든 것이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문화가 제 몫을 했노라고 술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문화를 유기체로 보는 시각에 머문다고 하더라도 문화가 갈등보다 덜 역동적이라는 것은 자명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갈등이란, 젱하스는 ‘단절선’이라 말하는데, 그에 따르면 “구조적으로 형성된 체계적 차별과 특권의 형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문제”이다. 문화가 정치적 슬로건으로 변질된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이해는 헌팅턴의 것보다 더 세련되게 다가온다.


  헌팅턴도 <문명의 충돌>에서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의 분석보다는 결론 부분의 주장이 사람들에게 훨씬 많이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 <문명의 충돌>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정도의 좋은 책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문명의 갈등과 충돌을 분석하는 대목에서 결론을 뒷받침할만한 긍정적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풀어 말해보면 이렇다.


  헌팅턴은 젱하스가 상기 언급한 두 가지 문제, 즉 거시와 미시의 문제를 거론하고서도 결론에 이르러서는 “비간섭과 방관의 원칙”, 그리고 “공동 중재의 원칙”을 제시했다. 이는 쉽게 말해 서구적 가치를 비서구에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재는 있어야 하기에 서구적 가치보다 더 도덕적일 수 있는 도덕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얇은 도덕’이다. 이는 ‘긴밀한 도덕’의 반대개념이다. ‘긴밀한 도덕’은, 가령 국가 간의 1:1 갈등 상황(혹은 다자간도 괜찮다.)에서 서로의 도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오히려 도덕 사이에서 갈등만 야기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 사이의 도덕이 상황마다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그 규모가 커지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얇은 도덕’이다. 이해하기 쉽게 풀자면 “뜬구름 같은 도덕”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런 도덕에 기초하여, 스위스의 가톨릭 신학자인 한스 큉의 ‘세계윤리’와 같은 것이 정립될 수도 있다. ‘얇은 도덕’은 야만적인 것들을 교정할 수 있는 문명적인 것이다. 이 문명은 오랜 역사의 고통을 대가로 치러 ‘얇은 도덕’을 만들어냈기에 그것이 반드시 서구적이라는 편견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론의 주장은 헌팅턴의 책에서 독자들이 반드시 체득해야 하는 정보였으나, 헌팅턴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의 논의를 하기보다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문화적 비교만을 펼쳤고, 젱하스는 그것을 “옳은 결론을 이끌어낸 잘못된 분석”이라는 식으로 비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젱하스는 과연 어떤 ‘방법’을 우리에게 내놓을 수 있을까? 다음 장에서 그는 <문명의 충돌>에 대한 대안적 시각을 내놓겠다고 선언한다.

 

 

 

 

 

 

 

 

 

 

  8장의 시작은 놀랍기만 하다. 나는 잠시 독서하기를 멈추고, “이런 말은 수전 손택 정도 되는 사람이나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허공에 질문을 했는데, 흔히 종교 간 차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냉철한 판단으로 무장한 학자들처럼 젱하스 역시 깊은 혜안을 갖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는 미국이 유럽적 가치로부터 독립하려고 했던 오래 전의 ‘연방 정신’을 인용문으로 언급하며 그 ‘미국’을 ‘이슬람’으로 바꿔 표현해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패러디도 이와 동일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데, 사실 이는 문화 갈등과 종교 갈등 사이의 무의미한 구분을 꼬집는 젱하스의 비판인 것이었다.


  유럽이 구세계가 되고, 막 신세계로 떠오른 미국은 그들의 가치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했었다. 나는 미술을 공부했으므로 그것을 예로 들어보건대, 20세기 초반에 들어 뉴욕이 세계미술시장의 중심이 된 것도, 잭슨 폴록이 미국 최초의 “월드 아티스트”가 된 것도 다 이와 같은 노력 때문이었고, 그 부단함은 이따금 파격을 만나며 21세기를 대비한 새로운 정신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워홀, 로스코, 라우셴버그 등의 스타급 작가들뿐만 아니라, 마크 트웨인, 마이클 잭슨, 할리우드, 오프라 윈프리, <아메리칸 아이돌>, 디즈니, 픽사,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스티브 잡스 등이 바로 20세기를 선도한 문화코드임은 우리가 직접 체험해서 잘 알고 있다.


  항간의 말마따나 20세기는 진정한 미국의 시대였다. 그들이 보잘 것 없는 나라 중 하나로 취급되었을 때, 그들의 “방어 자세, 반헤게모니적 정신, 혹은 저항적 태도” 등은 매우 포괄적으로 일어난 하나의 현상이었다. 이것은 정치적이다. 따라서 젱하스는 단호하게 말했을 때, “문화는 곧 정치적 문화이다.”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런데 그 아메리카가 언제부터인가 별로 행복하지 않은 신세계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정점에 올랐을 때, 그들은 오히려 저항 받는 이들이 되었다. 오늘날 그들을 비난하는, 괄시하는, 혹은 (실제로 일상에서 그럴 수는 없겠지만) 거의 무시하려는 경향이 주류인 까닭이다. 요컨대 우리는 대부분 반(反)미국적 가치로부터 대안을 찾으려는 중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미국은 굉장히 성공한 경우이다. 역사상 그들의 독립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성공적이었다.


  아프리카는 어떨까? 혹은 남미와 아시아도 좋은 예이다. 최근 읽기 시작한 엘리자 그리즈월드의 <위도 10도>라든지, 개인적으로 가장 몰입해서 읽은 소설인 나이폴의 <미겔 스트리트>를 보면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의 원인은 비정상적인 독립이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함께 사실상 아프리카 권력의 대부분을 지닌 나라이다. 인구도 많고, 유전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외부의 세력이 개입하여 갈등을 조장하거나 중재함으로써 그들의 이득을 취하기 안성맞춤인 나라이다. 남부의 기독교와 북부의 이슬람교의 싸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구글이나 위키피디아에서 그들의 싸움을 검색해본다면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다. 그들의 불완전한 민주주의(1999년 군사독재 이후 설립된 민주주의 정부는 거의 과거 바이마르 공화국의 유아적 수준과 비견된다 하겠다.)는 그 어떤 종교적 중재도 해내지 못했고, 더 나아가 자생 경제발전의 계획도 수립하지 못했다. 개인의 정체성이 종교로써 성립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문제는 집단에 있다. 집단의 정체성이 과자 부스러기처럼 흩어졌을 때, 정부는 통제력을 거의 잃는다. 반면, 미국은 경제발전과 종교중재를 훌륭하게 해내면서 현대판 제국의 힘을 얻었다.


  이번에는 동구이다. 그들은 서구와는 달랐고, 아프리카와도 물론 달랐다. 아프리카가 어느 정도 서구식 개발을 모토로 삼았다가 처절한 실패를 맛봐오는 중인 것과는 다르게 동구는 사회주의적 집단주의를 통해 갈등을 애당초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오로지 그것을 억압으로써 막아보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북한도 한창 그런 중이다. 문제는 실존사회주의가 완벽한 실패로 돌아갔을 때부터 일어났는데, 그들이 택한 노선은 자연스럽게 반제국주의적인 저항정신이었다. 명목상 그들의 적(敵)은 미국이다. 그러나 미국은 “무장한 서구”의 대변인에 지나지 않았다. 단, 미국이 그들의 대변인이 아닌 ‘최강자’임을 자처했기에 동구의 국가들은 한사코 그들의 간섭을 용납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실존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자명하다. 문화가 복합적으로 양성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나마 막아보려고 한 것이다. 갈등 없는 사회.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만은 사실 그보다는 지금 우리의 사회, 즉 근대화의 추진력이 만들어놓은 결과물이 “괴기스럽지만 자연스러운” 것이다. 누군가는 구조적으로 종속되고, 다른 누군가는 지배한다. 종속과 지배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전쟁으로 번진다.


  이런 세계의 조류에 대응하기 위한 일차적인 움직임은 아무래도 민족주의이다. 최근 들어 광신적 근본주의가 극우주의와 함께 날카로운 칼날을 세우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고, 히틀러의 주장과 일부 종교의 선민사상이 대단히 매력적인 시대 이데올로기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가볍게 듣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 지금 독일 사람들은 극우파가 정당을 서서히 장악해가는 과정을 목도하고 있고, 일본은 군비 경쟁에 다시 뛰어들기 위해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게는 무기를 수출하지 않았던 과거의 법을 유연하게 만들고 있으며, 대부분의 종교전쟁이 일어나는 ‘위도 10도’에서는 여전히 테러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김정일 위원장 사망 시 위로를 하려는 일부 사람들과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건을 기억하자는 격렬한 반북주의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터넷 총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국력이 이상한 방향으로 낭비된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룩하면서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의 살아 있는 전설로 회자되는 동방사룡(東方四龍) 중 하나인 우리나라는 그나마 극단적 사건을 몸소 체험하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이를 다행이라 여기는 것은 매우 안이한 태도이다.


  상기 언급한 위의 모든 문제들을 ‘문화’라는 차원에서 취급한다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어떤 해결책도 마련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갈등을 문화를 중심으로 읽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젱하스의 구절을 하나 인용하는 것이 빠른 이해를 도울 수 있을듯하다.
  “문화 갈등은 또한 동원될 수 있는 권력의 원천이 빈곤한 상태에서 언어, 종교, 그리고 역사가 억지로 동원되고 도구화되어서 생기는 것이다. 이런 경우, 문화를 원천으로 내세우는 것은 문화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권력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그 문화적 원천을 해석하는 것은 문구 해석에 충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욕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구의 문화가 ‘우리’에게 유입되어 온갖 문제를 야기했다고 보는 시각에는 일견 부당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젱하스의 서구문화 두둔이 아니다. (이 책은 도저히 그렇게 읽히지도 않는다!) 탈식민지 역사를 겪은 거의 모든 나라들의 역사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서구가 근대화를 겪은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순전히 서구를 “도구”로써 사용했을 뿐이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서구식’으로 변해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서구에서는 위계질서에 따른 서열의 병폐가 드물다. 우리나라에서는 ‘윗사람’이라고 하면 ‘아랫사람’의 생사를 결정할 만큼의 권력이 주어진 의미의 언어로 용인된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온갖 정치적 비리들이 서구에서 온 것일까? 호남과 영남의 지역주의도? 박노자, 진중권, 강준만, 유시민 등이 우리나라를 뒤집는 발언으로 끄집어낸 병폐들이 모두 서구에서 온 것일까? “그렇다.”며 자랑스럽게 자위(自慰)할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더 넓게 봤을 때, 서구와 이슬람 사이의 갈등에도 해당된다. 우리가 부정적으로 회자하곤 하는 “이슬람”이라는 것은 사실 없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정치적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 중 일부 근본주의자들이 테러와 학살, 착취 등으로 문제를 만들 뿐이지,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꾸란>에 적혀 있는 문구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크게 확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발언을 하는 이들을 골라 편집해 보도하는 대다수의 방송사들은 그들의 서구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방영을 한 것일 뿐이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이슬람은 문제될 때만 언급된다. 그들이 메카에서 위대한 종교행사를 연다거나, 자선축구경기를 열어도 보도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슬람 내부에도 수많은 종파들이 존재한다. 터키에서는 수피 교도들이 신비한 춤을 추지만 이라크에서는 우리가 잊을 수 없는 ‘후세인’이라는 이름이 교파를 이유로 엄청난 학살을 벌여 결국 미국으로부터 ‘축출’당했다. 이슬람 국가들의 민주화 바람 때문에 세계의 봄이 찾아왔다고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표현은 결코 어울리지 않았음을 우리는 회상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경제적 기반, 제도적 장치 없이, 아마 그들이 만들려고는 할 것이지만 결코 달성하기 힘들 그런 것들의 도움 없이 탈식민주의의 노선을 밟았던 상기 아프리카, 아시아, 혹은 동구의 퇴보한 민주주의를 경험할 것이라는 예측은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젱하스의 구절들을 읽으며 우리가 직접 들어왔던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확장 해석할 수 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는 꾸준히, 그가 서문에서부터 주장했던 것처럼 헌팅턴의 테제를 반박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서구를 문화 투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오늘날 전 세계적인 세태 역시 ‘서구’라는 문화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무지로부터 출발한, 창피한 역사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견지이다. 여기에는 큰 지혜가 존재한다. 문화를 가장한 권력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정치화된 문화 갈등’의 원인을 지목다면 우리는 무지몽매한 간에 타인을 보편화시켜 쓸데없는 싸움을 일으키려고 않을 것이다. 현실은 권력이 움직인다.

 

  ‘문화’란 없다. 오로지 충돌을 조장하는 권력만이 있을 뿐이다. 이 낯선 시각에 익숙해져야 우리는 비로소 전 세계의 문제를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장에서 젱하스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할 어떤 가치에 대해서 말한다.

 

 

 

 

- 4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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