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극장은 카스트 제도를 닮아 있었다. 극장 자체가 따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극장 좌석이 앞좌석부터 브론즈,실버,골드,플래티넘으로 등급이 나뉘어 있었다. 마치 카스트 제도를 극장 좌석에 넣어버린 모양새였다. 등급은 좌석 위치뿐 아니라 의도하지 않게 옷차림 등 신분을 짐작할 수 있는 외부적인 요인으로도 구분되어졌다. 브론즈에는 길거리에서 주로 만나는 릭샤꾼이나 뱃구레를 거침없이 드러낸 여인들의 싸구려 사리처럼 지저분하고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들이고 실버, 골드로 올라갈수록 눈부신 사리의 장식처럼 옷차림도 세련되고 화려해졌다. 인원수는 브론즈가 압도적이었고 극장 전체의 분위기도 브론즈 인원들이 이끌었다. 당시 본 영화는 인도 액션 영화 <가지니>였는데 나쁜 놈을 응징하는 권선징악의 장면이나 주인공이 악인에게 얻어터지는 장면에서는 극장 안을 가득 메우는 감탄사와 푸념이 터져 나왔다. 인도 발리우드 마샬랴 영화 특유의 뜬금없는 중간 댄스 장면에서는 흥에 겨운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덩실덩실 몸을 흔들며 동참하기도 했다. 왁자지껄한 브론즈에 비해 실버와 골드는 왕족이 위엄을 갖추듯 무표정에 무반응으로 조용히 관람했고 플래티넘은 브라만의 신비주의를 품은 듯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난 신분에 걸맞지 않게 왕족의 좌석에 앉아 천민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상영 시간이 세 시간이 넘었는데 중간중간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대니 체감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왁자지껄한 모양새가 시체말로 교양 없는 폼이기도 하고 요즘의 극장 관람 문화와는 동떨어져 있으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언저리에 소환되는 장면이다. 문명은 이런 본능을 억제하고 포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은 아닐런지. 영화의 성격에 맞게 놀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액션은 액션답게, 멜로는 멜로답게,코미디는 코미디답게. 유안진은 그의 수필집 <지란지교를 꿈꾸며>에서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 군밤을 깔 때는 아이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말자고 했다. 가끔 영화는 인도인처럼 신명나게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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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6-07-09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인도 가신 건가요?

잉크냄새 2026-07-09 21:25   좋아요 1 | URL
오래전에 다녀온 인도 여행을 지금에야 하나씩 정리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언젠가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수이 2026-07-09 21:28   좋아요 1 | URL
저는 예순 전에 가는 게 로망인데 언제쯤 이룰 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이미 다녀오셨다고 하니까 부럽습니다. 다음 인도여행기 기다리고 있을게요. :)

잉크냄새 2026-07-10 20:45   좋아요 1 | URL
저도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여행기라기에는 뭔가 부족하지만 가뭄에 콩 나듯이 올리고 있으니 가끔이라도 재밌게 봐주세요. ㅎㅎ

nama 2026-07-11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이살메르인지 조드푸르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 연회장 같은 화려한 극장에서 세 시간짜리 영화를 보면서 세상을 다 가진듯한 뿌듯함을 느꼈었지요. 잠시 인도인이 된 듯한 기분에 빠져들기도 하고요. 인도를 얘기하면서 영화가 빠지면 서운하지요.

잉크냄새 2026-07-10 20:47   좋아요 0 | URL
자이살메르에는 큰 극장이 없었던 기억으로 보아 조드푸르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인도 영화는 마샬라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뭔가 이것 저것이 부자연스럽게 섞여 알듯 말듯한 향기를 풍기는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ㅎㅎ

nama 2026-07-10 21:41   좋아요 1 | URL
앗, 자이푸르의 라즈 만디르 극장이었어요. 이십여 년 전에 갔었지요. 인도는 일곱 번이나 다녀왔는데도 지명이 오락가락 하네요. 자이살메르는 가보지도 않았는데 마치 가본 것처럼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고요.

잉크냄새 2026-07-12 09:52   좋아요 0 | URL
와우, 난이도 최상을 자랑하는 인도를 일곱번이나 다녀오시다니... 세상 그 어떤 여행도 두렵지 않으실 것 같아요. 전 한번 더 다녀오고자 항상 생각중입니다.

2026-07-09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7-10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26-07-09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도 여행도 갔다오셨다니 넘 부럽습니다^^

잉크냄새 2026-07-10 20:50   좋아요 0 | URL
한참 세월 지난 여행기입니다. ㅎㅎ 언젠가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지요.

감은빛 2026-07-10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정말 좋아했던 영화가 [가지니]예요. 아마 대여섯번 이상 봤을 거예요. 이 영화를 인도 극장에서 보셨다니! 정말 부럽네요.

잉크냄새 2026-07-10 20:52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예전 감은빛님 인도 영화 소개한 페이퍼에서 <가지니>에 대하여 언급하신 기억이 나네요. <가지니>는 인도에서도 상당한 흥행을 했다고 하더군요. 피터지게 두드려 패다 같이 노래하고 춤추는 마샬라 영화의 세계로 빠져봐야 알 수 있는 매력이 있죠. ㅎㅎ
 
체공녀 연대기 1931~2011
남화숙 지음, 남관숙 옮김 / 후마니타스 / 202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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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Woman in the sky)강주룡의 을밀대 농성(1931)과 김진숙의 고공 크레인 농성(2011)까지 1세기에 걸친 여성 노동자의 투쟁 연대기.거대 이데올로기,국가 공권력과 자본의 폭력,성차별과 위압적 위계 질서 속에서 연대하고 투쟁하며 하늘까지 오른 여성 노동자의 투쟁 역사를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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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꿈속인 듯 했다. 주말 아침 분명히 늦은 시간인 듯 한데 주위를 감싸는 공기가 뭔가 달랐다. 이 시간이면 반대편 은행 건물의 유리창에서 반사된 빛이 침대 위까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올 시간이었다. 오늘은 짜증나는 눈부심 대신 온통 은은한 파스텔톤의 노란 기운이 꿈결처럼 침대 위로 흐르고 있었다. 커튼을 걷으니 창밖은 물감을 푼 듯 온통 노란색 천지였다. 건너편 은행 건물들은 다 사라지고 도로도 가로수도 사라졌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노란색 기운만이 따스하고도 적막했다. 다른 차원의 다른 행성에 홀로 남겨진 지구인이 된 듯 했다. 그 적막함을 깨기 싫어 커피 한 잔을 들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눈이 익숙해질 즈음 창 바로 앞 가로수들의 윤곽이 살짝 드러났다. 새들이 날아간 자리는 날개짓의 여운이 비행의 흔적을 남기며 서서히 지워져 갔다. 차들은 무대 위 등장 인물들의 퇴장처럼 대낮부터 헤드라이트의 잔상을 남기며 사라져갔다. 의자를 끌어당기며 온 종일 창문 앞에 앉아 노란 무대의 공연을 지켜보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어둠이 그 자리를 대신 했다. 그건 중국 한 복판에서 만난 황사였다.


<AI로 그려보았다. 사람 빼고 비슷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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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덩이가 넓은 나라를 여행하는 하나의 묘미는 야간 버스에 구겨져 밤을 보내는 일이다. 땅이 넓다 보니 야간 버스가 나라 구석구석 거미줄처럼 잘 배치되어 있고 여행자 입장에서도 시간 절약, 숙박비 절약에 이국의 밤을 오롯이 느낄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 할 수 있다. 특히 튀르키예의 야간 버스는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독특한 점이 있었는데 바로 남자 차장이 고급 레스토랑의 지배인처럼 격식있는 옷차림으로 밤새 시중을 든다는 점이다. 졸다 깨어나면 밤새 지켜보고 있다 달려왔는지 바로 눈앞에서 멋드러진 콧수염 아래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다소 과장된 큰 미소를 지으며 쟁반에 담긴 과자류와 달짝지근한 홍차를 권한다. 홍차를 다 마시면 손을 펼치게 하고 손바닥에 레몬수를 분무기로 가볍게 뿌려준다. 손을 비비고 얼굴을 문지르며 잠결에 맡던 레몬향은 얼마나 상큼하던지. 잠의 요정이 아직 떠나지 못한 자리에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레몬향은 시간이 지나도 코끝에 떠오를 만큼 인상적이었다.


<갈라타 타위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시내>


이스탄불에서 샤프란볼루로 가는 버스는 늦은 밤에 출발하는 야간 버스였다. 저녁을 먹고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일찍 불 끄고 잠 든 도심과 달리 웅성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버스 뒷편의 넓은 공간은 듬성듬성 놓인 드럼통에서 붉은 불꽃이 넘실거렸다. 그 주위로 웃통을 벗은 청년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노래를 부르거나 허리를 들썩이며 위아래로 파도타기 하며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목마를 탄 몇몇 청년들은 국기를 흔들며 분위기가 애국가인 듯한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있었다. 흡사 소요 사태가 발생한 듯 싶어 몸을 구부리고 잽싸게 차에 올라타 커튼 사이로 몰래 훔쳐보았다. 어리둥절한 소란은 버스 차장이 출발 시간을 알리며 독촉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청년들이 하나 둘 버스로 다가올 때가 되어서야 다소 떨어져 지켜보던 히잡을 둘러 쓴 중년의 여성들이 버스 주위로 서둘러 모여들었다. 청년들과 가볍게 포옹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한참을 바라보며 아쉬움에 손을 놓지 못했다. 버스가 시동을 걸고 움직이자 그녀들은 다시 창 주위로 몰려와 창문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이며 차창 속 청년들을 다시 애타게 바라봤다. 아, 저 눈빛, 낯설지 않다 싶었다. 어머니의 눈빛, 자식을 군대로 떠나 보내던 그 눈빛을 이 곳 타국에서 다시 마주치다니. 참 환송회 한 번 거창하다 싶던 마음이 그 마주침에는 다소 울컥하였다. 울음을 삼키는 여인들의 눈물은 버스가 떠나고 나서야 터질 듯 했다.


<블루 모스크>


입영 전야를 거창하게 보낸 청년들을 태운 버스가 멈춰 선 것은 이스탄불을 막 벗어난 어느 벌판이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바라보니 십여 명의 청년들이 낮은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뭔가 싶어 그들을 따라 오르니 중간 즈음에 일렬횡대로 도열하여 노상방뇨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무심결에 그들 옆에 일렬횡대로 줄을 맞춰 노상방뇨를 하였다. 바지춤을 올리다 왠지 묘한 느낌에 옆을 보니 일렬횡대를 삐죽이 빠져 나온 머리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꺼림칙한 마음에 얼른 언덕을 내려오니 몇몇 청년이 따라와 어깨를 잡았다. 돌아보니 울그락불그락한 얼굴이 다소 흥분한 듯 했다. 튀르키예어로 침 튀기며 거친 말을 내뱉었다. 다소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서 있으니 영어가 유창한 청년이 중간에 끼어들어 통역을 해주었다. 말인 즉 "왜 남의 나라에서 노상방뇨를 하느냐"는 항변이었다. 말만 놓고 보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지만 상황을 놓고 보면 나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니들 따라 한건데...." 라는 논리정연한 반론에도 몇몇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는 군입대를 앞두고 고향 앞으로 쏴!를 한거라고..." 음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의식이었던 모양이다. 신성한 의례에, 신성한 땅에 오줌을 갈겼으니 화가 날만 하겠다 싶었다. 미안함을 표시했지만 그래도  "니들 따라 한건데...."라는 막강한 논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입대를 앞둔 스트레스에 묘한 애국심이 들러붙은 상황이 민족주의에 불을 지핀 모양이었다. 


묘하게 이어지던 대치 상황은 나의 어설픈 외침으로 마무리 되었다. "I was a soldier, too(나도 한때 군인이었다 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여행 당시 나의 영어 수준이 딱 이만큼이다)" 뭔가 어색한 영어로 군인이라는 동질감에 호소하고자 특히 "too"에 침 튀기며 방점을 찍었다. 다소 당황한 그들을 뒤로 하고 냉큼 버스에 오르니 통역이 다시 통역해주는 듯 했다. 겉옷을 뒤집어쓰고 잠든 척 하고 있으니 soldier 어쩌구 하는 말이 잠시 들리더니 잠잠해졌다. 예비역을 바라보는 훈련병의 입장이랄까. 새벽 한기만큼 낯선 군대라는 두려움을 경험한 이에 대한 경외일까. 역시 입장의 동질감은 어떤 분쟁도 막을 내리게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한때 군인이었던 여행자와 막 군인이 될 청년들을 태운 버스는 다시 밤을 달려 여명이 밝을 때쯤 목적지인 샤프란볼루에 도착했다. 나 혼자 내리는 걸 보니 저들의 목적지는 아직 더 새벽을 달려야 하는 모양이었다. 버스를 내리며 곤히 잠든 그들의 영혼에 무훈을 빌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뺑이 까라~~~.' 한때 군인이었던 여행자가 투르크 전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이었으리라


<아야소피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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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6-06-25 0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혼자하는 여행의 로망이 팍팍 느껴집니다.ㅎㅎ 버스나 기차로 하는 여행은 비행기여행과는 또다른 맛이 있죠.ㅎ

잉크냄새 2026-06-25 20:32   좋아요 1 | URL
네, 아무래도 혼자하는 여행이 자유롭기도 하지만 돌발성 이벤트가 자주 발생합니다. 여행이 우연과 의외성에 의미가 있다면 여행의 참맛은 혼자 맞이하는 일들과의 조우가 아닐까 합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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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고난과 동족 상잔의 비극을 통과한 노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한 소녀의 성장과 좌절 그리고 작가 의식의 성장을 볼 수 있다. 빨갱이로 몰려 겪은 벌레의 시간과 1.4후퇴때 홀로 남겨진 허무의 시간 속에서 세상을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쓰리라 다짐하는 소녀의 독백이 처연하고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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