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골목 세 번째 집

- 권현형-

문밖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환청에 시달리던 시절이 혹 있으신가

십이월에도  자취 집 앞마당에서
시린 발을 닦아야하는
청춘의 윗목 같은 시절

전봇대 주소라도 찾아가는지
먹먹한 얼굴로 그가 찾아왔다

두 사람 앉으면 무릎 맞닿는 골방에서
뜨거운 찻물이 목젓을 지나 겨울밤
얼어붙은 쇠관으로 흘러가는 소리
다만 듣고 있었다

야윈 이마로 방바닥만 쪼아대다
겨울의 긴 골목 끝으로 날아가는
크낙새의 목덜미를 바라보았을 뿐인데
바람이 문짝만 흔들어도 누군가
문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세 번째 골목 세 번째 집에서
겨우내 혼자 귀를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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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을 휘몰아 떠나가는 소리,

시래기단이 바람에 몸살을 앓는 소리가

누군가 문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던 시절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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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6-10-24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이름을 불러줄 누군가가 있다면 겨우내 혼자 귀를 앓아도 좋을거 같아요.
잘 계시죠? ㅎㅎ

파란여우 2006-10-24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 집은 동네 끄트머리에 있어요. 파란 지붕에 연두색 대문^^
그러니까 잉크님을 한 번 불러주면 나온다 뭐 이런 야근가요?
그럼 실컷 불러야지.
잉크야! 노올자.... 노올자! 아니 이게 아닌데. 횽아, 봉달 횽아! 봉달 횽!^^

가시장미 2006-10-26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이나 먹자, 꽃아 라는 같은 시인의 시가 문득 떠올라. 인터넷으로 찾았드래요. ^-^
피곤하고 눈은 감기는데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입니다. 으흣

icaru 2006-10-3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고3때 지독한 환청에 시달렸었더랬어요....
잘려고 불끄고 누우면 울엄니가 **아! **아! 하고 제 이름을 부르는데... 그 시각 분명 울엄니는 안방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중이랍지요~
써놓고 보니.. 이거 영 남의 허벅다리 긁는 딴소리 같네요... 풋

잉크냄새 2006-11-03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 겨우내 혼자 귀를 앓던 경험, 이제는 그런 경험도 그리워지는 시절이랍니다.
여우님 / 봉달 횽! 이라 부르던 복돌님이 문득 생각나네요.
장미님 / 음, 저도 그 시를 한번 찾아보아야겠어요. 아, 그리고 이 분이 제 고향분이서더군요.
이카루님/ 오랫만이네요. 그건 환청이 아니라 무언가 공명하는 소리가 아닐까 싶군요. ㅎㅎ

가시장미 2006-11-0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렸어요. :) 그냥, 아침부터 잉크냄새가 나서요.. 으흐흐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잉크냄새 2006-11-07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미님 / 하하, 아침부터 글을 쓰셨나보네요. 상상력이 빈곤하니 글을 끄적일 꺼리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