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앞의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철조망은 지금껏 해체되지 않고 있다. 어린 시절의 철조망은 그저 장난의 대상이었다. 무장공비를 식별하기 위해 가래로 긁어놓은 모래밭에 몰래 발자국을 찍고 도망가는 대담함과 철조망 사이에 끼워진 흰 돌을 빼내는 용기는 일종의 유희였던것 같다. 철조망을 통해 바라보이는 바다가 답답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던것 같다. 반공 교육에 투철했던 시절 철조망 너머의 세상은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슬슬 불어닥친 남북 화해 분위기로 철조망은 서서히 해체되어가고 있었다. 관광지구를 필두로 인위적인 해체가 일어나고 있었고 고향앞의 철조망은 세월앞에 녹슬어가고 있었다. 여기 저기 힘없이 무너져내린 철조망은 그 시절의 나에게 일종의 안도감을 주곤 했다. 소통과 단절의 의미를 대변하는듯 했다. 삭은 철조망을 발로 뭉개며 들어간 바다는 왠지모를 자유로움마저 던져주었다. 녹슬어가던 철조망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95년도의 옥계 무장공비 침투사건이었다. 반짝반짝 그 서늘함을 한없이 풍기는 날선 철조망이 다시금 세워졌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지금껏 쉬이 녹슬지 않고 있다.
회사주변으로 철조망이 쳐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로 공단 각 출입문마다 검은 양복의 보디가드들이 매서운 눈을 뜨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서있더니 급기야 이전 철조망보다 배나 높은 철조망이 둘러쳐지기 시작했다. 넝쿨마냥 감아돌린 철조망 안에서 기업가의 양심과 사명을 헌신짝처럼 벗어던진 어느 사장은 그들의 생존권에 조금의 관심도 없을 것이고 그 안으로 출퇴근하는 우리들은 외면과 무관심으로 스스로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있는것 같다. 출퇴근시마다 서슬퍼런 철조망에 가슴이 씁쓸해지곤 한다. 고향앞의 철조망은 10년이 넘도록 녹슬지 않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통을 가로막는 듯한 이 철조망도 그리 수명이 오래갈것인지 안쓰러운 뿐이다.

보란듯이 이렇게 넘어주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