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의 꽃은 흩어져 멸렬하기 위하여 피어나는 꽃이다. 그 꽃들은 죽을 때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바람 속에 흩어진다. 추락하는 꽃들의 내면에는 영광과 치욕을 함께 소리지르는 아우성이 들끓고 있을 테지만, 산화하는 꽃들의 내면에는 생애의 무게가 잘 빻아진 마른 뼈의 가루들로 들어 있을 것 같다.
- 김훈 < 풍경과 상처> p1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