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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콜럼부스가 우엘바 항구에서 대서양 건너편의 아메리카 대륙을 향하여 바라보던 눈길속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의 멸망은 이미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이 극대화되어 그 탈출구로서 선택된 대륙, 아메리카. 프론티어 정신과 청교도 정신으로 곱게 포장된 서부 개척사, 청바지와 역마차로 대변되는 서부 개척민의 이동. 그들의 탐욕어린 시선속에 인디언의 멸망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인디언 멸망에 관한 기록이다. 그냥 멸망이 아니라 씨를 말리는 잔혹한 멸망이다. 샌드 크리크의 대학살에서 시작하여 운디드니의 대학살로 마무리된 아메리카 대륙의 얼굴 붉은 인디언들의 멸망사이다. 저자 디 브라운이 기술한 내용은 19세기 후반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행된 잔혹한 학살현장의 생생한 기록이다. 인디언 추장들과 그들과의 협상과 전투에 참여한 백인, 인디언의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증인들의 기록이다.
인디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노예해방의 기치아래 남북 전쟁이 벌어지던 시기이다. 또한 만민평등법이 제정된 시기이다. 만민평등법에는 유일하게 인디언만이 배제되어 있다.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1883년 미대법원은 인디언은 태어날때부터 이방인이고 부속물이라고 판결한다. 신대륙 발견이라는 표현에서도 그들의 입장은 드러난다. 아메리카 대륙은 신대륙이 아니다. 엄연히 인디언들이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던 대지였고 백인들은 이주민들이었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인디언 추장들이 협상자리에서 요구한 조건은 차라리 눈물겹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삶, 식량과 주거지역을 찾아 자유로이 돌아다닐 권리, 그것마저 묵살된 것이다. 백인들에게 인디언은 서부개척의 방해자요 문명화되어야하는 미개한 종족으로만 여겨졌다. 기아와 추위에 주거지역을 벗어난 그들은 우리를 벗어난 위험한 야수처럼 사냥되었고, 생을 위한 투쟁은 잔혹한 학살로 이어졌다. 그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행한 말중의 하나가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다" 라는 구절이다. 다분히 역설적이다. 살아있는 모든 인디언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합리화한 표현이다. 백인의 이익과 정책에 부합되지 않는 행위는 곧 그들의 적이요 학살의 대상이었다. 저자는 서부개척 시대를 이 한마디로 규정하고 있다.
인디언들이 자연과 대지를 경외시하고 영혼과 부합되는 삶을 살아가는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각 장마다 인용된 인디언 추장들의 주장은 인디언의 삶과 사상이 백인들과는 완전히 다름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대지는 결코 소유의 대상이 아니었다. 인간이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요 생명인 것이다. 자연과 대지가 인디언에게 경외와 존재의 대상이었다면 백인에게는 금을 품고 있는 엘도라도, 소유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인디언 멸망사는 존재와 소유를 대변하는 문명의 충돌에서 존재라는 하나의 문명이 무참히 짓밟혀 사라진 서글픈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