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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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의 자살 시도끝에 39살의 생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수 있다. 일본에서 자살은 죽음의 미학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다자이 오사무뿐 아니라 < 설국 > 의 가와바타 야쓰나리의 자살은 일본사회에 자신의 생을 스스로 완결지은 성숙된 인격의 자주적 모습으로 비춰졌다고 한다. 늘 죽어있어야 무도를 완성할수 있다는 일본의 무사도와 맥락을 같이하는 일본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듯 하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인 주인공 요조는 어려서부터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두렵고 타인과의 관계에 공포를 느껴 스스로를 자신안에 숨기며 거짓된 익살로 살아간다. 어느날 자신의 익살이 꾸며진 것임이 들통났을때 그는 더욱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며 익살의 강도를 더해간다. 성인이 되어서도 철저한 자기부정의 삶을 살아가며 처절한 분노앞에서도 분노할줄 모르고 생의 난관앞에 자살이라는 도피처만을 생각한다. 그가 결정적으로 자기파괴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순수와 신뢰의 모습만으로 남아있길 바라던 요시코가 능욕을 당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나서부터이다. " 무구한 신뢰감은 죄의 원천인가요?" 를 되뇌이며 술과 약에 빠져들어 결국 생의 전환점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 무구한 신뢰감은 죄의 원천인가요?"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집약한 한 구절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표현하고자 한 주인공 요조가 과연 무구한 신뢰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지에 의문이 든다. 자신의 생의 빛으로 여긴 요시코가 능욕당하는 모습을 보며 공포에 떨고 술과 약에 찌들어 고통의 무게를 고스란히 요시코에게 떠넘긴 그에게 어떠한 자격도 없다. 차라리 칼을 빼어들고 능욕한 자에게로 달려갔다면 오히려 그의 고뇌를 이해해줄수도 있을것이다. 차라리 요시코가 그렇게 절규했다면 이해할 것이다. 그가 단 한번이라도 꿈이라던지 희망이라는 것에 매달려 보았는가. 없다. 그에게서 느낀 것은 연민이 아니라 분노이다. 어쩌면 그의 모습에 녹아있는 치졸하고 비겁한 우리의 모습이 언뜻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순진, 무구, 신뢰. 요조가 그토록 처절하게 부르짖었던 이상이다. 그러나 단 한번도 꿈의 끝자락을 잡아보려고 하지 않는 이에게 그런 이상은 허무할수 밖에 없다. 요조, 나에게 그는 비겁하고 옹졸한 사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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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2004-11-15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들이 자살했다는 이유만으로 열광했던 20대가 생각납니다. 지금, 다시 읽으라하면 역시 님처럼 신랄할까요.

잉크냄새 2004-11-16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고보니 거꾸로 제가 20대에 이 책을 읽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파란여우 2004-11-16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료하면서도 관점을 잘 잡으신 리뷰입니다. 어떻게 하면 님처럼 명징하게 쓸 수 있을까요?

잉크냄새 2004-11-1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처럼 리뷰를 잘쓰시는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전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icaru 2005-06-12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잘 읽고 갑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