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 얼마전부터 송혜교가 어린 꼬마 두명이랑 부르는 광고 노래이다. 화면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그들의 앞에는 퇴근후 막 현관문을 여는 약간은 지친 아빠의 모습이 있을것 같다. 두팔 벌려 꼬마들을 안아주는 모습도 있을것이다. 꼬마들이 꽤나 따라할것 같다.
얼마전 회사에서 약간 떨어진 연못에서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실종 8일만이다. 얼마전 페이퍼에 한번 언급한 부도난 회사의 직원이었는데 자살인지 타살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아는 직원이 장례식에 갔다와서 하는 말을 듣고 괜히 한동안 서글픈 생각들이 들었다. 그에게는 아직 철도 들지 않은 두명의 딸이 있다고 한다. 장례식장의 아버지 사진 앞에서 [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 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참느라고 혼났다고 한다. 말로만 들어도 괜히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은 언제부터 생기는 것일까. 5살때, 할머니의 관이 언덕에서 내려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을 덮은 흰천이 바람에 날려 나에게 날아들어 온통 흰세상처럼 먹먹해진 기분이었다. 난 그래서 죽음은 흰색인줄 알았었다. 그러다 죽음이 검정이라는 생각이 든것이 고등학교때 친구의 죽음이었다. 그의 마지막 이름을 부르는 교정을 빠져나오는 버스안에서 난 울다 기절했고 온통 암흑만이 존재했다. 아마 나이를 먹어가면서 죽음에 대한 감정이 서서히 가슴속에 쌓이나보다.
스코트 니어링은 죽음을 수평선에 비유했다. 죽음은 이쪽 세상에서의 마지막이지만 수평선 저쪽 세상에서는 새로운 출발이라고 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모든 유기체가 작별을 고할 시간을 주기 위해 금식을 하고 죽음을 맞았다. 난 남아있는 자의 슬픔을 생각했지만 적어도 니어링 부부에게는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연장이었다. 홀로 남겨진 헬렌의 감정은 무차별한 슬픔은 아니었던것 같다.
언젠가 그 꼬마들도 철이 들고 죽음을 인식하고 아빠의 죽음과 남겨진 엄마의 슬픔을 알아차릴 것이다. 부디 더 이상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홀로 남겨진 엄마에게 [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 를 눈물겹도록 불러줄수 있는 딸들로 자라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