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도 너무 길다 - 하이쿠 시 모음집
류시화 옮겨엮음 / 이레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종 위에 졸고 있는 나비, 허수아비 뱃속에서 울고 있는 귀뚜라미, 바위 뚫어져라 울어제끼는 매미, 잉어 머리에 내리는 여름비. 이 책에 소개된 하이쿠의 소재이다. 하이쿠 시인들은 스스로 선택한 고독한 삶을 살았고 끝없이 방랑한 방랑자요, 나그네요, 구도자이다. 그들은 자신이 방랑하던 삶속에서 바라본 풍경과 하찮은 미물의 존재속에 감추어진 삶의 본질인 유한함과 허무와 숙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모습을 먼저 보이고 마음을 뒤로 감추라] 이싸, 부손과 함께 3대 하이쿠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바쇼는 말한다. 사물을 설명하지 말고 묘사하라. 그들이 사물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귀기울이는 모습만으로 나머지 삶의 여백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고 있다. 삶의 문제에 있어서는 가끔은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작은 여백이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한줄도 너무 긴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의 첫 매미 울음, / 인생은 /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 ] - 이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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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7-23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직접 읽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하이쿠를 본 적이 있어요. 그 글의 출처도 이 책이었던 것 같은데 짧은 글 속에 인생이 담겨 있는 듯해서 좋아요. 글은 짧지만 길게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글들이 마음에 남더라고요. 어딘가에 적어 둔 하이쿠 중에 이런 게 있어요.
<내 앞에 있는 사람들 / 저마다 저만 안 죽는다는 / 얼굴들일세 (바쇼)>
<인간이 있는 곳 어디에나 / 파리가 있고 / 부처가 있다 (이싸)>
이 책에 있는 듯하기도 한데 가끔 생각나는 글이에요.
한 줄이 너무 길다는 생각, 한 줄 속에 인생을 거뜬히 살아갈 지혜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미네르바 2004-07-2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줄도 너무 길다... 인생을 한 줄 속에 너끈히 담을 지혜의 글은 어떤 글인가요?
이 책 속에 있나 봐요.
<[올해의 첫 매미 울음, / 인생은 /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 ] - 이싸 ->
전 어제 융건릉에서 친구와 매미 소리를 들으며 참 행복해 했는데...^^



잉크냄새 2004-07-25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밀밭님이 기억하시는 하이쿠도 이 책에 있는것 같아요. 한줄로 인생을 담을 지혜의 글은 우리 삶의 흔적이 아닐까 합니다.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내 삶의 흔적들...
사물의 본질은 사물 자체가 아닌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이니 사물은 대하는 이에 따라 비치는 모습이 다를 겁니다. 그런데 유독 매미만큼은 하이쿠에서 서글프게 다루어지고 있네요.
<가을에 우는 매미 / 그 목소리에 / 죽기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 - 소세키-
<너무 울어 / 텅 비어 버렸는가, / 이 매미 허물은 > - 바쇼-
<여름 매미 / 나무를 꼭 껴안으며 / 마지막 울음을 운다 > - 이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