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묘한 달이다. 잊혀질듯 남아있던 선생님에 대한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니 말이다. 그래도 흐뭇하고 아름다운 기억들이라 즐겁다.

중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된 학교 화단 공사는 거의 대부분이 학생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체육시간이 있는 날은 삽이나 대야를 들고 등교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화단이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정경을 선사하곤 했다. 교실에서 운동장까지 만들어진 화단이 길이가 100미터가 훨씬 넘고 너비가 200미터를 넘을 정도였고 온통 잔디밭에 계절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하곤 했다. 운동장 또한 축구장 두개의 넓이인지라 아마 전국에서 규모가 5위라는 소문이 있었던것 같다. 그 공사의 중심에 새마을 교사로 임명된 알겠나 선생님(도덕 선생님)이 계셨고 2년의 공사끝에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로 선정되는 기쁨도 맛보았다. 

알겠나 선생님이 별명을 얻게 된것은 독특한 말버릇이다. 그 당시 거의 정년에 가까웠던 분인데 도덕책의 한구절을 읽을때마다 우리를 보시면서 "알겠나?" 라고 되묻곤 하셨는데 약간의 바람이 들어서 그 발음이나 표정이 지금 생각하면 측은하지만 그때의  우리들에게는 꽤나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짜장면이다. 어느날 도덕 시간에 한 학생이 떠들다 걸렸고 선생님 특유의 왼쪽 얼굴 잡아댕기고 오른손으로 볼을 비빈후 뺨때리기 타법으로 한대 때렸다. 돌아 들어오는 녀석의 코에서 코피가 났고 "와~ 피다"라는 우리들의 외침에 선생님은 녀석을 얼른 교실밖으로 데리고 나갔다가 거의 수업이 끝날 무렵 들어왔다. 코피 닦고 분명 삽질시킬것이라는 우리들의 기대와는 달리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는 녀석의 입가에 묻은 짜장면의 흔적...아~ 그날 이후로 우리 교실에는 코피=짜장면이라는 새로운 도덕공식이 자리잡았다. 그 이후 도덕 시간에 새로운 풍속도 하나가 자리잡았으니, 일부러 떠들다 불러나가 한대 맞은후 자리에 돌아와 싸인펜으로 리얼하게 코피를 그렸다. "와~ 피다"라는 우리들의 외침에 알겠나 선생님은  짜장면을 사주셨다. 우리들은 그렇게 돌아가며 짜장면을 먹은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체육 시간에 삽질이나 해대는 우리들이 측은해 그렇게 짜장면을 사주신 모양이다. 지금도 고향에 내려가 가끔 들리는 중학교의 정원은 너무 아름답다. 문득 어느 한구석에서 알겠나 선생님이 잡초를 뽑으시고 계신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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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5-2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중학교 때 정치 경제 선생님이었나? "뮙니까?"를 입에 달고 사신 선생님이 계셨죠.^^

호밀밭 2004-05-2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장면 사주시는 선생님, 멋지네요. 그러고 보면 선생님들한테 뭐 사 달라고 많이 졸랐던 것 같은데 같이 마주 앉아서 먹은 기억은 안 나네요.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당장 학교를 떠날 것 같은 학교와 어울리지 않던 선생님이셨는데 지금도 학교에 계시다고 들었어요. 세월이 변한만큼 그 선생님도 변하셨겠죠.

미네르바 2004-05-20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피 난다고 짜장면 사 주시는 선생님, 나이가 드셨다고 하시지만 참 운치 있고, 멋진 선생님이셨네요. 저의 중학교 3학년 때 도덕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편씩 꼭 시를 외우게 하셨지요. 그 시를 못 외우면 선생님 실내화로 뺨을 때렸는데~~~^^ 도저히 실내화로 뺨때리는 선생님과 시하고는 안 어울리 것 같았는데... 그 선생님 왈, "너희들 나중에 기억나는 것은 시와 나밖에 없을 걸?" 사실 그래요. 그 선생님은 이름까지 또렷이 기억나고, 그 때 외웠던 시들은 지금까지 줄줄 외니까요. 아마 그 때부터 시를 좋아한 것이 아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