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하필 인도로 여행을 왔어요? "
어느 정도 안면이 트인 여행자에게 습관적으로 물어보곤 했다. 괜한 질문인가 싶어 다른 나라에서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유독 인도에서는 그들의 여행동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특히 인도의 한국인 배낭 여행자의 80%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은 의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의 답변은 의외로 간결했다. 류시화, 한비야. 그들의 여행기가 인도를 뭔가 성스럽고 신비로운 나라로 마음에 각인시킨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특히 류시화 시인. 사실 저 질문은 타인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인도 여행 내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미로 같은 골목을 거닐다, 바라나시 강가를 거닐다, 문득 마주치는 여행자들을 보면 " 왜 하필 인도로 여행을 왔어요?" 라고 묻고 싶어지곤 했다. 그 질문은 인도를 떠날때까지 계속되었다.
<올드델리 근처에서 마주친 힌두교 결혼식 행렬>
일주일전 발생한 뭄바이 테러 여파와 다음 테러 목표가 델리라는 소문은 여행객의 발길을 꽁꽁 얼어붙혔다. 새벽 3시의 델리 공항, 다음 도착 비행기를 기다려도 배낭여행자는 여전히 나 혼자다. 대합실 출구는 총을 멘 군인과 승객을 잡으려는 오토릭샤꾼들이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다. 수많은 인파와 밤하늘을 찢는 소음은 새벽의 어둠을 무색하게 했다. 새벽에 도착하면 반드시 대합실에서 아침을 맞으라는 여행 지침을 무시하고 탈출을 시도했다. 심호흡을 크게 한후 대합실 창으로 다가선 순간 섬찟 하며 뒤로 물러섰다. 대합실 바깥 창문에서 손가리개를 하고 날 바라보던 무표정한 검은 얼굴과 수십개의 하얀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던 강한 안광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뒤로 돌아 의자에 털썩 앉는 순간 욕이 툭 튀어나왔다. "에이, C8 류시화" <-- 이제야 사과드립니다. 귀가 간지러우셨을텐데.
<칸드니촉 근처 도로 - 모든 소가 호강하는건 아니다 >
델리역은 델리공항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 유명한 오토릭샤꾼들은 여행자 한명을 둘러싸고 서로의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시비비가 붙었고, 초보 여행자임을 한눈에 파악한 사기꾼들은 여행의 정보를 빌미삼아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 대합실은 담요 한장을 깔고 바닥에 누워 잠이 든 수많은 인도인들로 발길을 내딪기가 조심스럽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인도인 특유의 강렬한 눈빛은 그들의 호기심을 적개심으로 오해하기에 충분한 소지가 있다. 서둘러 여행자 거리 빠하르간즈로 갔다. 모로 걸어야할 정도로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한국인 식당 "인도 방랑기"를 찾아 들어갔다. 몇몇 보이는 한국인 여행자 대부분이 귀국을 서두르고 있었다. 역시나 테러의 영향이다. 홀로 떠난 여행이지만 결국 혼자일수밖에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때는 다소 외로워졌다.
<빠하르간즈 한국인 roof top 식당 "인도방랑기" - 사랑, 해야만 한다>
저녁 나절, 벌써부터 그리워지기 시작한 김치찌게에 맥주 한잔을 마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인도는 남미와 더불어 배낭여행자에게 최후의 보루라고 한다. 그런 곳을 무작정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들어왔으니 익숙치 않은 환경에 많이 당혹스러웠다. 노을이 지기 시작한 이국의 하늘 아래 술 한잔이 들어가니 허허 웃음이 나왔다. "왜 하필 인도로 여행을 왔지?" 류시화 시인은 욕을 한바기지 먹었으니 다시 엮을수도 없고 난감했다. 여행의 시작은 믿음이고 의심을 전제로 한 관계는 무의미하다. 그런 면에서 인도의 첫인상은 여행에 대한 배신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모든 관계의 시작은 의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날것이냐 포장되었느냐의 차이일뿐. 이곳 인도에서 모든 관계가 처절하도록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지고 내안의 질서와 혼돈이 원시 수준으로 다 무너질듯 싶었다.
<로터스 템플 앞 - 한류 열풍을 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