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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평등 - 부와 권력은 왜 불평등을 허락하는가
토마 피케티.마이클 샌델 지음, 장경덕 옮김 / 와이즈베리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24년 5월 파리경제대학에서 마이클 샌델과 토마 피케티 두 거장이 만났을 때, 그들은 그저 학문적 대화를 나누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깊은 상처인 불평등의 근원을 파헤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려 했습니다.
샌델과 피케티. 이 두 이름은 각각 정치철학과 경제학 분야에서 전 세계적 명성을 얻은 사상가들입니다. 두 석학의 대담만으로도 <기울어진 평등>은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불평등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세 측면으로 나누어 심도 있게 접근합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눈에 보이는 수치로 드러나지만, 정치적 불평등은 부자들이 더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서, 사회적 불평등은 일상의 단절과 편견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세 가지가 서로 얽혀 거대한 불평등의 나선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셈입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이제는 옛말이 된 시대. 우리는 왜 불평등에 주목해야 할까요? 샌델과 피케티는 불평등이 부자와 빈자의 숫자적 차이를 넘어, 사회 구조 전체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주목할 부분은 불평등이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돈의 문제를 넘어 정치적 발언권, 사회적 인정과 존중의 불평등으로 확장되면서 우리 사회는 점점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부자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가난한 이들은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서로 마주칠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돈이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 고찰합니다. 샌델과 피케티는 돈이 덜 중요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합니다.
교육, 의료, 주택, 공공 서비스의 기본적인 삶의 요소들이 지나치게 상품화되면서 빈부 격차는 단순한 소비의 차이를 넘어 삶의 질과 미래 기회의 격차로 확장되었습니다. 대학 교육이 비싸지면서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은 점점 어려워지고, 의료 서비스의 불평등은 수명과 건강의 격차로 이어집니다.
지금처럼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에서는 진정한 평등과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들은 교육과 의료를 포함한 기본재에 보다 포괄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시민이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한 기본 조건을 보장하자는 제안입니다.
자녀의 대학 입학을 위해 거액을 기부하는 부유한 부모들은 표면적으로는 학교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교육 기회의 평등이라는 근본 가치를 훼손하고, 돈으로 특권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문제를 야기합니다.
저자들은 시장의 과도한 확장을 억제하고, 일부 영역에서는 시장 원리가 아닌 사회적 가치와 공정성에 따른 분배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시장 만능주의를 넘어서려는 시도입니다.
세계화가 가져온 양면성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세계화는 전반적인 부의 증가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국내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역설적 현실을 짚어줍니다.
특히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이 포퓰리즘 정치 세력의 지지 기반이 되었다는 분석이 흥미롭습니다. 자유 무역이 일부 산업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이들이 느끼는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소외감이 이민자 배척과 외국인 혐오로 번역되는 과정을 짚어냅니다.
샌델과 피케티는 이 포퓰리즘적 반응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세계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구조적 문제의 결과로 봅니다. 세계화가 일부의 거대한 이익을 위해 다수의 안정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비판합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의 약속은 얼마나 현실적일까요? 샌델과 피케티는 현대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능력주의의 허상을 파헤칩니다.
능력주의는 출신 배경과 관계없이 개인의 노력과 재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좋은 교육, 인맥, 문화적 자본 등 보이지 않는 특권이 성공의 사다리를 기울게 만듭니다.
더 큰 문제는 능력주의가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자기 성공을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만 보게 하고, 실패한 이들에게는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왜곡된 시각을 준다는 데 있습니다.
샌델과 피케티는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들은 노동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학력이나 직업적 성취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기여가 인정받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대학 입학과 의회 구성에 추첨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부분도 놀라웠습니다. 현재의 대학 입시 시스템은 이미 가진 자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경제력과 교육 수준이 자녀의 입시 성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샌델과 피케티는 추첨제라는 파격적 대안을 논의합니다.
물론 현실적인 실행 방안과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깊은 논의가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급진적 실험이 없이는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역설합니다.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핵심 정책으로 누진 세제의 강화를 주장합니다. 단순히 부자들에게서 가난한 이들에게로 돈을 재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연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합니다.
한마디로 공동체의 가치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세금은 단순한 경제적 부담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납부하는 회비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그 외에도 글로벌 남반구와 북반구 간의 불평등 문제, 기후 변화와 이민 문제 등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는 샌델과 피케티입니다. 그들이 그리는 미래는 단순히 부의 재분배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존엄성이 회복되고 다양한 형태의 기여가 인정받는 사회입니다.
평등한 사회 구조를 위한 두 석학의 대담한 시대 제언 <기울어진 평등>. 급진적이면서도 꽤 납득되는 현실적인 방안들을 만나게 됩니다. 경제학이나 정치철학에 대한 전문 지식 없이도 두 석학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는 방식 덕분에 어려운 주제를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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