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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 - 우주 불평등 시대를 항해하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긴박한 질문들
최은정 지음 / 갈매나무 / 2025년 1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년 넘게 인공위성·우주쓰레기·궤도 충돌 위험을 예측, 분석해온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장 최은정 저자의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 현장 경험을 토대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우주 불평등의 민낯을 해부하는 책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우주 관광, 화성 이주, 우주 인터넷 같은 미래 서사가 화려하지만, 실제 우주 공간은 선점·독점·군사화·기술 종속이라는 오래된 권력 구조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 틈 사이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우주는 왜 또 다른 식민지 경쟁의 무대로 변했는가? 우주 개발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고민하지 않으면 어떤 미래가 오는가? 후발국인 한국은 어떤 전략과 감각을 갖고 움직여야 하는가?
우주개발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경쟁은 치열합니다. 저자는 우리는 이제 바다가 아니라 우주로 향하는 대항해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말로 서문을 열며, 그 배의 선두에 서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 묻습니다.
현재 궤도에서 활동하는 2만2천 개 이상의 위성 중 90%가 미국·러시아·유럽·중국이 운영하는 위성입니다. 우주 불평등의 시작이 이미 오래전에 접수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먼저 차지한 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는 것. 후발국의 진입을 극도로 어렵게 만드는 국제 질서의 핵심입니다.
우주를 선점한 국가들은 1980~1990년대부터 위성 슬롯을 선제적으로 등록해왔습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운영하는 주파수·궤도 등록 체계는 선착순 구조를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이 구조가 공정한 규칙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선진국 중심적인 겁니다. 궤도와 주파수는 자연 자원과 같고, 이미 대부분 자리가 선점된 상황에서 후발국은 들어갈 자리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우주라는 공간이 지구보다 더 공정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깨뜨립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최초로 전면적으로 드러난 우주전의 양상이 놀랍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때 사용한 방식은 위성 통신망 해킹이었습니다. 국가 기반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우주의 새로운 전쟁 방식입니다.
우주 전쟁은 총성이 아닌 경보음으로 시작한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보이지 않는 경보음의 파장은 지구 곳곳의 교통·금융·전력망까지 이어집니다.
미국이 2019년 우주군을 창설하고, 2023년 발표한 <우주영역인식 교리>에서 외기권을 명확히 전장 영역으로 명시한 것 역시 같은 흐름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골든돔 우주 무기 배치 체계는 우주 군비 경쟁의 본격적인 시동을 알렸습니다. 중국 또한 중국판 골든돔을 진행 중이라고 밝히며 경쟁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이 모든 유례없는 경쟁과 군비 강화 속에서 우리는 우주를 공존의 기반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군사 패권의 무대로 만들 것인가를 질문하게 됩니다.
우주 불평등이 기술력의 차이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로 확장된다는 점을 짚어줍니다. 우주발사체를 독자적으로 보유한 나라는 극히 일부입니다. 대부분의 국가는 타국의 발사 서비스에 의존합니다. 한 나라가 자국의 기상 관측, 군사 정보, 재난 대응, 금융·전력망 운영까지 해외 위성 정보에 의존한다는 것은 사실상 국가 주권을 외주화했다는 뜻입니다.
GPS는 전 세계 항공·해운·통신·금융 인프라를 좌우하고, 미국은 GPS의 군사적 기능을 조절할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신호 조정이 전 세계의 경제·군사·생활 기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우주 인터넷 경쟁은 지구의 정보 인프라를 새롭게 구획합니다. 스타링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인 영향력은 이미 국가를 넘어선 기업의 안보력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국제 우주조약은 우주를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 선언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권고 수준이라 구속력이 거의 없습니다. 책임 소재가 모호하고, 무엇보다 우주기술 대부분이 민군 겸용이기 때문에 국가는 언제든 평화적 목적을 이유로 군사적 조치를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우주조약의 허점은 이미 많은 국가에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전 지구적 위험으로 돌아옵니다. 우주 쓰레기 증가, 우주 교통관리 부재, 전파 간섭, 궤도 충돌 등은 결국 공유된 위험이기 때문입니다.
누리호 3차 발사 당시 국제우주정거장에 보급품을 전달하는 소유즈 우주선과의 충돌 위험을 분석한 과학자가 바로 최은정 저자입니다.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에서는 누리호 3차 발사, 북한의 만리경 발사, 국내 우주위험감시센터의 관측 체계(OWL-Net), 유엔 외기권위 참가 경험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우주개발 현실을 생생하게 알려줍니다.
한국은 추격자이지만, 추격자의 눈에는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주 발사 능력의 제한, 국제 협력의 필요, 감시 인프라의 부족, 우주 경제의 격차, 기술 종속의 위험 등 저자는 한국이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 현실적 조언을 전합니다.
우주 개발이 거대한 비전으로만 다가왔었다면 이 책을 읽고 나니 일상의 생존과도 연결된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주 정의란 이상주의적 슬로건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전력망·통신망·경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반입니다.
흥미진진한 우주 서바이벌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는 우주는 모두에게 열릴 수 있는가 아니면 소수의 손에 집중된, 또 다른 제국의 무대가 될 것인가에 대한 심층 리포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