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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패러다임, 법 - 규칙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로레인 대스턴 지음, 홍성욱.황정하 옮김 / 까치 / 2025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토머스 쿤 이후 과학사학계를 대표하는 과학사학자 로레인 대스턴의 <알고리즘, 패러다임, 법>은 규칙을 중심으로 인류사와 사회를 새롭게 이해하게 해주는 역작입니다.
고대 철학에서 현대 알고리즘에 이르는 광범위한 여정 속에서, 우리가 당연시해온 규칙의 본질을 탐구하고, 규칙이 우리 삶과 세계를 어떻게 지배해왔는지를 밝힙니다.
저자는 규칙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분석합니다. 알고리즘(계산과 측정의 도구), 패러다임(따라야 할 모델), 법(사회 통제의 도구)이 그것입니다.
규칙은 패러다임처럼 모방과 재량을 통해 행동의 모델을 제시하고, 알고리즘처럼 명확하고 기계적인 계산 과정을 통해 예측 가능한 결과를 도출하고, 법처럼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강제력을 가진 통제의 도구로 작용합니다.
유연성과 엄격함, 구체성과 일반성을 넘나들며 인간과 사회를 조직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핵심적인 기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 세 가지 범주를 통해 규칙의 역사적, 철학적, 사회적 측면을 다룹니다.

알고리즘, 패러다임, 법은 규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먼저 알고리즘의 역사적 변천을 추적합니다. 알고리즘은 특정 입력값에 따라 정해진 절차를 통해 예측 가능한 결과를 도출하는 얇은 규칙입니다.
알고리즘은 고대부터 존재했지만, 현대에 들어 그 중요성이 급증했습니다. 고대에는 땅을 나누고 빵을 분배하는 도구였던 알고리즘이, 현대에는 인공지능과 컴퓨터를 통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단순히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였지만, 이제는 알고리즘 제국 시대입니다.
수학 공식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사용하는 알고리즘은 규칙의 모든 단계를 명시적으로 정의하여, 재량권이나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 자동화를 목표로 합니다. 20세기 중반 컴퓨터 혁명을 주도하며 오늘날의 디지털 세계를 가능케 한 핵심 도구입니다.
“알고리즘으로서의 규칙은 재량권의 행사를 금지함으로써 모델로서의 규칙에서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을 연결했던 다리들을 폭파시켰다. (p.38)”는 문장은 알고리즘적 사고가 인간적 판단과 유추의 가능성을 얼마나 단순화했는지 보여줍니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재량권을 배제하면서, 예측 가능한 세계를 구성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불확실성과 모호성을 배제하려는 현대 사회의 집착을 보여줍니다.

반면 패러다임은 알고리즘과는 달리 인간의 판단과 유연성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개별적인 상황에서 재량과 판단이 허용되는 두꺼운 규칙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패러다임은 특정한 상황이나 행동의 기준이 되는 "모델"로서의 규칙을 의미합니다. 완벽하게 동일하게 따를 필요는 없지만, 방향성과 이상을 제시하는 유연한 규칙의 형태입니다.
수도원장의 규율서 『성 베네딕토 규칙서』를 예로 들어, 패러다임이 단순히 따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과 타협하며 이상을 실현하려는 규칙임을 강조합니다.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 행동지침을 제공하는 패러다임. 개인은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할 여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법으로서의 규칙은 가장 세부적인 규정과 가장 일반적인 법 사이의 긴장을 탐구합니다. 법은 사회를 유지하고 질서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범적 규칙입니다. 법은 가장 명확하고 위엄 있는 형태의 규칙으로서, 헌법과 같은 가장 일반적인 법률에서부터 교통법규와 같은 구체적인 규정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포함합니다.
법은 개인의 행동을 통제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보호하며, 이를 어길 경우 제재를 가함으로써 권위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법은 모든 상황을 세부적으로 규율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주관적 해석과 재량적 집행이 발생합니다.
“법치주의라는 문구처럼 법이 규칙의 가장 위엄 있고 고상한 측면을 보여준다면, 규정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현장에서 일을 직접 처리하는 규칙에 가깝다.(p.202)”라고 합니다.

이처럼 규정은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고 보완되며, 규칙의 유연성과 엄격성 간의 균형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발전해 왔습니다. 중세 유럽의 사치 금지법과 오늘날의 맞춤법 개혁은 규칙이 일상에 직접 영향을 미친 사례로 제시됩니다.
저자는 규칙의 역사는 예외와 변용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예외는 단순히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의 존재를 증명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외는 규칙을 시험하고 확인함으로써 규칙의 존재를 증명한다. (p.350)”라는 말처럼 급변하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는 기존의 규칙이 지속적으로 수정되고 새로운 규칙이 등장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유지됩니다.
<알고리즘, 패러다임, 법>은 규칙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성찰합니다. 알고리즘의 부상과 함께, 규칙은 점점 더 엄격하고 예측 가능한 세계를 창조하려 하지만, 동시에 인간적 판단과 유연성이 배제되고 있음을 경고합니다. 규칙은 언제 우리를 보호하고, 언제 우리를 억압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알고리즘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적 판단을 어떻게 대체하고 있는지, 예외와 규칙의 관계는 사회적 공정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패러다임과 알고리즘 중 어느 것이 더 유용한 규칙인지 다양한 생각거리가 풍부한 주제입니다.
규칙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탐구한 필독서 <알고리즘, 패러다임, 법>. 현대 사회의 알고리즘 제국을 낱낱이 해부해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단초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