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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첫 두 페이지를 읽으며 벌써 캬~! 를 연발한다. 인간 세상의 고달픔을 참 멋들어지고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다.
현암사 소세키 시리즈 시니컬한 잡변이 가득 담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B급다운 영웅담 <도련님>에 이어 세 번째 책 《풀베개》는 이전의 책에 비해 소세키의 예술관이 드러나는 소설이다.
『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살기 힘들게 하는 근심을 없애고, 살기 힘든 세계를 눈앞에 묘사하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또는 음악이고 조각이다.』 라는 문장에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구샤미 선생이 되지도 않는 그림을 그린다고 고뇌하는 장면이 오버랩되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서른 살 화공 '나'는 봄의 산을 어슬렁어슬렁 오르면서 시, 그림의 본질에 관한 생각을 잇는다. 『 우리의 성정을 순간적으로 도야하여 순수한 시경에 들게 하는 것은 자연이다. 』 자연풍경을 보면 좋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왜 좋은지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 막막했는데 소세키의 이 문장을 읽으며 아~!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의리나 인정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비인정(非人情)을 위해 떠난 여행을 하고 있다. 아무런 잡념 없이 초연하게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마음으로 쌍방에서 함부로 인정의 전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비인정 여행을.
속된 정에서 벗어나 어디까지나 화공이 되기 위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그림으로 보며 인기척 없는 한적한 산중에 한 줄기 길을 걸으며 만난 찻집에서 하이쿠도 지어보면서 시도 되고 그림도 되는 경치를 누린다.
외딴 마을의 온천, 봄밤의 꽃 그림자, 달빛 아래 나지막한 노랫소리, 으스스 달밤의 모습... 이런 풍류에 습관적으로 이치를 내세우게 되자 어떻게 하면 시적인 입각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보기도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닥치는 대로 열일곱 자 하이쿠로 정리해 보는 것이다. 붓 가는 대로 써내려간 하이쿠를 다음날 누군가가 비슷하게 따라 덧붙인 장난스러운 사건에 온천장 여자와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 우리 두 사람 사이는, 이 시에 나타난 처지의 일부분이 사실이 되어 어떤 운명의 가는 실로 동여매어 있다. 운명도 실이 이 정도로 가늘면 마음의 부담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단순한 실이 아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무지개의 실, 들판에 길게 뻗쳐있는 안개의 실, 이슬에 반짝이는 거미줄이다. 끊으려고 하면 금방 끊을 수 있으며, 보고 있는 동안에는 굉장히 아름답다. 만약 이 실이 순식간에 두꺼워져 두레박줄처럼 단단해진다면? 그럴 위험은 없다. 나는 화공이다. 저 여자는 보통 여자와 다르다. 』 - p65
『 운명은 돌연 이 두 사람을 한 집에서 만나게 했을 뿐, 그 밖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 - p121
불행에 짓눌리면서도 그 불행을 극복해보려는 얼굴을 가진 여자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나'.
운명의 상대처럼 다가오면서도 그 끈은 아무렇지도 않게 끊어내 버릴 수 있다고 한다. 비인정 여행을 하다 보니 여자를 대하는 부분도 그러하구나.
『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그림이 될까. 아니, 이 마음을 어떤 구체성을 빌려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 - p90
『 아름다운 것을 더욱더 아름답게 하려고 안달할 때, 아름다운 것은 오히려 그 정도가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
- p105
마음이 이끄는 기운에 끌리는 그림을 궁리하면서 생각하는 부분인데 추상적인 정취를 표현하고자 하는 시와 그림의 본질에 관한 고민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이 온천장에 온 뒤로 사실 '나'는 아직 한 장의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좋은 색으로 가득 차 있는 자연을 느끼는 것만으로 풍족하다. 사색만 가득할 뿐이다.
『 연민은 신이 모르는 정이고, 게다가 신에게 가장 가까운 인간의 정이다. 』 - p138
'나'가 말하는 연민은 인간을 떼지 않고 인간 이상의 느낌을 낸다.
온천장 여자의 표정에는 이 연민의 정이 없어서 그림을 그리는데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나'. 하지만 그 여자의 '연민'은 현실로 돌아오는 기차역에서 전쟁터로 떠나는 사촌과 전남편을 보내고서야 묻어나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지막 '연민'을 품은 모습 역시 '나'의 마음의 화면 상태에서 머물지만 실제로 가슴 속에 완성된 그림은 어떤 그림일지 궁금해진다. 비인정인 '나'의 여행의 결말은 결국 인정으로 끝나는 것인가? 통속적인 정이 아니라 미적으로 승화된 정이겠지만. 정, 의, 직 행위로 보이는 천하 공민의 모범이면서 낭만스러운 인정 세계와 그저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며 자연주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인정 세계의 이야기가 결국엔 기차를 빌려 현실 세계의 고통 속에 삶의 목적이 있지 않은가라는 의미로 와 닿는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처럼 거드름 피우는 인간 부류에 대한 경멸이 나타나는 부분, 돈 냄새에 찌든 시정의 속물을 버리고자 하는 마음, 자기 개성의 몰살 등 메이지 유신 이후의 현대 문명의 폐해를 꼬집는 것은 여전하다. 기차역 장면에서는 자유의지로서의 '기차를 탄다'가 아닌 '기차에 실린다'는 표현을 하며 개인이 가져야 할 자유의지를 전쟁이라는 제국주의 장면에 넣어 국가에 개인의 삶과 죽음을 종속시키는 것으로 자기본위에 관한 이야기를 슬며시 집어넣기도 한다.
소세키는 이 소설을 일컬어 하이쿠적 소설이라고 했다. 예술론이 가득 담긴 예술가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소세키의 문학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풀베개》를 꼭 읽어야 하겠다.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무던하게 진행되는 구성이라 소설 같지 않은 소설, 산문을 읽는듯한 느낌이 강한 《풀베개》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사색을 할 때의 묘사다. 눈 앞에 그림으로 그려지듯 세세한 서술은 기품이 있다. 자연을 표현하는 서술은 자극 없는 오묘하고 형용하기 어려운 즐거움을 주면서 봄과 동화된 느낌이다.
고요함을 묘사하는 장면이나 온천물에 몸을 담근 장면, 특히 목욕탕에 들어온 여자의 몸을 묘사하는 부분은 가히 예술적이다. 노골적이지도 않고 속세의 때가 묻지도 않은 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적 묘사에 감탄하게 된다.
곳곳에 여자의 자살을 암시하는 이미지를 교묘히 깔아둬서 읽는 내내 은근 초조하게 만들기도 한다.
소세키의 책을 현재까지 세 권을 읽어왔지만, 소설마다 같은 작가인가 할 정도로 전혀 다른 느낌이 들어 소세키 작가의 나머지 소설은 어떤 문체, 어떤 주제일지 무척 궁금하게 만든다.
소설 풀베개의 배경이 된 구마모토에는 풀베개 마을이 형성되어 소설 속 배경이 잘 복원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