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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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후반, 문화대혁명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는 얼핏 설명만 보고는 다소 무거워보였다. 게다가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재교육을 받기 위해 산골 벽지로 떠난 소년이라는 것은 그런 내 걱정에 더 무게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어렵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안고 만난 책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혹, 제목이 마음에 안 들거나 이상스럽게 책에 손이 안가서 미뤄두고 있는 독자라면 주저없이 집어들 것을 권하고 싶었다.

  책의 제목으로만으로 내용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체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책장을 넘기면서도 그 둘의 관계에 대해서보다는 '뤄와 나'라는 똥지게를 메고 산골을 누비는 두 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 삶에서 그들이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영화를 보고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 뿐. 그들은 너무도 피곤하고,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생활 속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중반 이후에 우연히 이웃마을에 재교육을 받으러 온 '안경잡이'에게 문학서들이 있는 것을 알게된 소년들은 안경잡이가 부모의 곁으로 돌아갈 때 몰래 그 서적꾸러미를 훔치게 되고 문학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발자크, 위고, 스탕달, 뒤마, 롤랑, 루소 등의 작가들. 그들은 문학에 빠지게 되고 새로운 삶에 대해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등장하는 바느질 소녀. 그녀와 두 소년의 관계도 시작되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느질 소녀'일지도 모른다. 비록 글이라곤 아버지 밑에서 배운 것이 다였지만 그녀는 발자크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에 대해 눈을 뜬다. 애초에 뤄는 발자크 소설을 통해 그녀를 좀 더 세련되게 만들어보려했던 것이니 그의 그런 의도는 적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 걸" 발자크 때문에 깨닫게 된 그녀는 훌쩍 산골마을을 떠나버린다. 새로운 사회를 향해 당당하게 발길을 내딛은 것. 그녀 스스로 그동안의 갇힌 삶에서 벗어나 하나의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결심을 한 것은 분명 문학이 주는 어떤 힘을 은근히 보여주는 것이리라.

   문화대혁명이라는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발상의 혁명. 그 속에서 살아간 인물들의 어떤 비애(혹은 절망)를 약간 느낄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문학을 통해, 이야기를 통해 삶의 방식을 바꾸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문학의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사회의 관계. 그런 것이야 말로 문학의 근본이고 문학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얇고 무겁지 않은 책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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