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기
로버트 카파 지음, 우태정 옮김 / 필맥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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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콘탁스 카메라를 꺼내들고 그 비행기가 착륙하여 정지할 때까지의 모습을 한 통의 필름에 꽉 채워 담았다. 그러고는 기체 앞으로 달려가 두 번째 콘탁스 카메라의 초점을 맞췄다. 승강구가 열리고, 부상당한 승무원이 대기 중인 의료진에게 인도됐다. 그는 아직도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뒤이어 두 사람이 더 실려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조종사가 내려왔다. 이마에 베인 상처자국을 제외하면 그는 무사한 것 같았다. 나는 클로즈업 사진을 찍기 위해 그에게로 다가갔다. 비행기에서 내리던 그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 사진사! 이게 당신이 기다리던 장면들인가?"
나는 카메라를 닫고는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런던으로 돌아와 버렸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필름들로 가득 채운 가방을 들고 런던행 기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나 자신과 사진기자라는 내 직업에 회의가 들었다. 장의사나 해야 할 일을 내가 한 것 같아 역겨운 생각마저 들었다. 만약 장례에 관계된 것이라면, 이제부터 나는 장의사가 아니라 문상객 쪽에 서리라고 굳게 다짐했다. -46~7쪽

나는 운전병과 함께 다시 길을 떠났다. 이 전쟁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종군기자의 삶이란 별로 낭만적인 게 못 됐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황량한 사막을 가로질러 몇 시간을 달렸지만, 아군이든 적군이든 간에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독일군이 버려두고 간 쓸모없는 장비들만 눈에 띌 뿐이었다. -61~2쪽

공격이 개시된 순간부터 점령 때까지의 전 과정을 지켜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 전투에서 나는 썩 괜찮은 사진도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단순한 사진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전투란 것이 얼마나 볼썽사납고 비참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진이었다. 특종은 운도 운이지만 얼마나 신속하게 전송하느냐에 좌우되는 것이다. 또 대부분은 게재된 다음날이면 더이상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났을 즈음 병사들이 오하이오 주의 자기 집에서 이때의 트로이나 사진을 보게 된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그때는 그랬었지."-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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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2-05-2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목을 참 잘 지은 거 같아요.

이매지 2012-05-30 09:13   좋아요 0 | URL
내용과도, 표지와도 잘 어울리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