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훔친 위험한 冊들 - 조선시대 책에 목숨을 건 13가지 이야기
이민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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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조상의 잘못을 후손에게 묻는 독특한 제도가 많았다. 과거 시험을 못 보게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니 어떻게 권신들이 서점 설치를 허가해주겠는가. 또한 서점에 전시될 책들은 시장 논리에 따라 '이념'보다는 '재미'가 앞서게 될 것이었다. 훈신들은 그것이 두려웠다. 연산군 시절 중국에서 건너온 온갖 소설과 패관잡기류가 어두운 곳에 묻혀 있다가 밝은 곳으로 나오게 된다면 도덕이 설 곳을 잃어버리게 될까봐 우려했다.
조선의 관료 세력은 백성들이 책을 다양하게 읽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생활에 필요한 유학서들은 이미 성종 시절 서거정이 "경사자집經史子集이 없는 집이 없다"고 할 만큼 충분히 보급되어 있었다. 구더기가 득시글대는 여름에 구태여 장을 담글 필요가 없었다. -46~7쪽

혁명은 이질적인 것을 참지 못한다. 마치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려는 담금질처럼 인간을 내려친다. 깊은 생각과 복잡한 사변은 이데올로기라는 칼날에는 어울리지 않는 장식이다. 조금이라도 거슬린다면 떼어내면 그만이다. 이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책에도 해당된다. 심오한 사유를 담은 책은 시대를 타고 나면 빛을 본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찢겨지고 불태워진다. -73쪽

예로부터 삼치三痴라 하여, 바보에는 세 유형이 있다는 말이 전해온다. 책을 빌려달라는 사람도 바보지만 빌려주는 사람도 바보요, 빌려보고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라는 의미다. 조선시대 독서가나 장서인들 사이에 떠돌면서 일종의 불문율로 받아들여지고 정착된 단어다.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 아무래도 인간이 영원한 물욕物慾, 그중에서도 책에 대한 집착만큼 고집스럽고 병적인 것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143쪽

상상력의 소산이든 현실의 기록이든 실용 지식을 모은 것이든 간에 모든 책은 사유의 결과물이다. 그 사유의 종류와 빛깔, 농도에 따라서 책은 평가를 받는다. 때론 그 평가가 너무 따갑고 아파서 책은 핏빛으로 물들기도 한다. 그것이 합당한 것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러하다. 하지만 어떤 책에는 사유보다는 운명이 앞서 있는 경우가 있다.-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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