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편집자가 말하는 편집자 부키 전문직 리포트 13
정은숙 외 22인 지음 / 부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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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을 '스스로' 알아보기 위해서 "출판편집자가 편집하는 대상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쉽게 나올 수 있는 답은 '언어' 또는 '글'이 될 듯싶다. 지금까지 내가 들은 말 중에는 "편집자는 '지식'을 가공하고 편집한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물론 더 좋게 들리는 말이 없는 건 아니다. "편집자는 세상을 편집한다."는 말까지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의 의미까지는 알지 못한다.)
"지식을 편집한다." 간명하게 와 닿는 말이다. 여기서 '지식'은 인포메이션(information)이나 놀리지(knowledge)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편집 대상으로서의 지식은 저자의 독자가 교섭할 수 있는 '텍스트(text)'라고 이해한다. 그것은 언어 기호를 지칭하는 좁은 의미의 텍스트가 아니라 의미의 생산과 수용 과정을 뜻하는 넓은 의미의 텍스트이다. 편집자가 다루는 것은 교정되어야 하는 단어를 비롯한 언어라는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소통을 갈망하는 언어 기호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의미'로서의 텍스트다. -32쪽

편집자가 자주 "남이 정성껏 쓴 글에 빨간 줄을 죽죽 긋고", 때때로 "문장 전체의 주술 관계를 주물러대거나 아예 한 문단을 통째로 날리는"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편집자가 가학적 쾌감을 맛본다는 건 오해다. 오히려 편집자는 토씨 하나 바꿀 때조차 저자와 독자가 저마다 채찍을 들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피학적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역학 관계로 보자면 저자(또는 역자), 독자, 편집자 가운데 최종 권력을 쥔 사람은 독자다. 그런데 책이 나오기 전에 독자는 존재하지 않고, 책이 나오고 나서도 모든 독자의 의견을 모을 수는 없다. 저자도 편집자도 보이지 않는 독자의 생각과 마음을 상상하면서 작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저자의 글을 고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주인인 독자의 눈높이와 의중을 미리 헤아려 모시는 의미가 크다. 실체도 모를 독자의 시선에 맞추느라 저자와 때로는 마음까지 다쳐 가며 의견을 조율하는 일이 고단하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빛내는 데 저자와 편집자는 목적을 같이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소통해 가며 독자가 만족할 만한 책을 만들어야 한다. -45~6쪽

책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읽는다. 그러므로 사람과 분리할 수 없다. 사람이란 하나하나의 개별적 존재일 수도 있지만, 세상 그 자체를 표현하는 무한한 덩어리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 되었건 출판기획자는 사람을 읽고 사람과 이야기하고 사람을 그리는 최전선에 있다. 최전선에서 사람을 만나 부대껴야 하는 경우라면 당연히 그들에 대한 면밀한 해석이 필요할 것이다. 시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게 바로 그것이다. 너무 어려운가?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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