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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의 죽음 ㅣ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1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의 첫 권인 스파르타쿠스를 접하기 전에는 사실 스파르타쿠스에 대해서 잊고 있었다. 이전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얼핏 이름을 들어본 기억은 있었지만 워낙 오래되었던지라. 미리 예습 차원에서 <로마인 이야기 3- 승자의 혼미>를 읽고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을 읽기 시작했다.
스파르타쿠스는 기원전 1세기 경의 트리키아 출신(소설에서는 트리키아의 왕자로 나온다)의 인물로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패해 검투사가 된다. (책 속에서는 로마군에 입단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탈영한 뒤 다시 잡혀 검투사된다고 나온다) 검투사가 된 스파르타쿠스는 검투사 양성소에서 동료들과 탈주를 해 베수비오 화산으로 도망을 쳐 농성을 벌이기 시작한다. 노예제도에 억압되어 있었던 많은 노예들이 이들의 세력에 가세하게 되고, 스파르타쿠스의 세력은 점점 커져간다. 로마를 전복시킨다기보다는 그저 자유민으로서의 삶을 꿈꿨던 스파르타쿠스. 그는 과연 그가 얻고자 한 것을 얻을 수 있었을까?
당시 로마의 노예수는 200만 내지 300만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성인 남자는 90만명, 로마 국가가 된 이탈리아 반도에 사는 60세 이상의 노인과 여자를 포함한 자유민의 수는 600만 내지 700만명으로 추산한다. 이는 속주민과 노예가 많았던 시칠리아 인구는 포함되지 않은 수이다.) 이들 노예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 아니 이 책 속에서도 보여지지만 이들은 '쥐새끼'같은 놈들이고, '짐승'같은 놈들이다. 스파르타쿠스의 아량(?)으로 살아남은 자의 입을 통해서 반란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들은 그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대하기보다는 '미쳐 날뛰는 짐승'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의 오만함. 그리고 자유민의 오만함.
이 책은 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지 않는다. 때로는 이 사람의 입으로, 때로는 저 사람의 입으로. 이렇게 여러 사람의 입으로 '스파르타쿠스'라는 한 인물을 둘러싼 이야기를 진행한다. (정작 스파르타쿠스의 목소리는 찾을 수 없다만)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하는 입장에서는 '이게 대체 누가 하는 얘기인지'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차라리 각 챕터에 '00의 회고'라는 부분을 달아놓았더라면 더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 속에는 매력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왕자에서 검투사로, 그리고 노예들의 왕으로 살아가는 스파르타쿠스는 물론이고, 그의 곁에서 그를 돌보는 유대인 자이르와 디오니소스의 사제인 아폴로니아, 그리스인 포시디오노스 등의 인물들은 제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매력은 이 책 속에서 딱히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핏빛이 난무한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그 핏빛에 묻혀 형상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기억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모토에 따라 스파르타쿠스는 다시 역사에서 걸어나왔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뚜렷함을 남기지 못하고 다시 사라져버린다. 손에 잡힐 것 같은, 마치 내 곁에서 살아 숨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이 아닌, 그저 활자 속에만 머물고 있을 뿐이다. 기껏 좋은 캐릭터를 고르고도 이것을 살리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며 역자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크게 번역에 딴지를 거는 편은 아니지만(나보고 하라고 하면 못하니까) 적어도 번역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간다면, 그 언어는 물론이고 한국어 구사에도 능통해야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사 하나만 바꿔도 더 이해하기 쉬운 문장을 잘못된 어휘를 선택함으로써 더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이 점은 안그래도 밋밋한 캐릭터들때문에 집중하기 힘든 독서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더이상 바닥만 내려다보며 살지 않고 당당하게 앞을 보고 걷고 싶었던 노예들. 하지만 그들은 애초에 진정한 자유를 가져본 기억이 없기 때문에 노략질을 일삼는 반란군에 머물러 버린다. 남의 물건을 강탈하고, 남의 여자를 강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이 책의 띠지에 적혀 있는 것 같은 '정당한 전쟁'의 명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것은 그저 억눌린 사람들의 분노의 폭발일 뿐 자유에 대한 갈망은 스파르타쿠스. 그의 갈망이었을 뿐이었다. 몸은 자유가 되었다 하여도 생각은 이미 노예의 것으로 굳어져버린 사람들.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는 찾아오지 않는다. 내 몸의 자유보다는 정신의 자유. 그것이 더 소중한 것이고, 그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유임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