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너 수고했다고.

목욕탕 가는 길. 이젠 안 창피해. 하지만 나 그게 슬프기도 해.

수많은 바람이 불어오고가고

수많은 상처들이 왔다가고

시간은 아무런 말없이

지금도 속살같이 가네.

거짓말처럼.

온~~ 만큼을 더 가면,

우~~ 난 거의 예순살.

음, 하지만 난 좋아. (알 것 같아).
난 말해주고 싶어. 나에게                                                                                                                                         다음 달엔 여행가자고."

여름은 냄새로 온다. 쓰레기 악취로 오고, 시어터진 음식냄새로 온다. 어느 해 여름도 그랬었지만, 올해 여름도 그러했다. 이미 온 것들은 냄새로 자취를 남긴다. 그것들은 기억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스물 아홉. 그것이 문득 '무정형'의 시간으로 왔다. 갈 곳도, 정지할 곳도 없는 무한한 공간성으로서, 그리고 무확정의 시간으로서. 그 앞에서 망연자실하기에는 나/는/ 한없이 안타깝고, 아슬아슬하다.

담배 한 모금으로 나를 떠나보기도 하고 '들뢰즈 세미나'로 정신산란하게도 하고, toeic 시험을 준비한다며 한없이 철없고자 한다. 그럴 나이가 아닌데 이제와 방황이 시작된 것이다. 이 페이퍼는 그런 방황의 기록이다.

찬사는 그에 걸맞게, 나를 키워온 것들에 알맞은 오마쥬를.

아픔은 통렬하게, 심하디 심한 촌철살인으로.

그러나 무엇보다 스스로를 해방하는 자유로움으로 노트하길.

이것은 이미지다. 질감을 갖지 않는 '뭉게 구름' 같은 것이다. 그림자처럼 있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29은 바람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산보를 떠난다. 그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라시보 2004-07-0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다님도 저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군요. 하지만 사람에 따라 느낌은 다르겠죠? 그래도 어찌되었건 스물 아홉이라는 공통점에 반가워했었습니다.^^

zooey 2004-07-09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혜씨, 오랜만.
 



'부처님 오신 날'은 절마다 행가 많다. 시어머니가 다니는 '기원정사'에 갔더니, 아나운서 박정수가 사회를 보러 오고, 장사익이 축하공연을 오고,  주지스님이 문주란 노래에 신나라 박수치고 정신없다. 절밥은 점심시간을 넘기기가 무섭게 끝나버려 구경할 수도 없는데, 사람들이 자꾸자꾸 모여들었다. 장사익의 노랫가락에 헛배를 채우고, 아랫 절로 내려왔다.

 

 

절도 교회만큼이나 숫자가 많아서 조계종 산하 절만 인근에 3곳이 있다. 두번째 찾은 곳은 영화사로 이 근방에서는 제법 큰 절. 여기는 노점상까지 마당에 들어와 장사진을 쳤다. 염주, 불경 테이프, 기타 불교용품을 팔고 있는 행자 옆에는 달마도를 그리는 중이 앉았다. 연습이 모자른 듯, 벌써 4장째 그리고 있는데 생김이 서로 다르다. 달마도라고 하니까 그런 줄 알지 그냥 보고는 모르겠다.

주렁주렁 달린 연등 한 켠에서는 연등접수처가 있고, 연꽃을 만드는 보살님들이 있다. 종이컵에 미리 만들어 놓은 연꽃을 한 장 한 장 덧붙여 한 송이 연꽃을 만드는 과정이 더디고 더디다. 길바닥에 앉아서 야채빈대떡을 먹는 사람, 마지막 산채비빔밥을 받아다 이제 막 비벼먹는 사람, 줄까지 섰는데 밥 끊겼다고 떼쓰는 사람, 부처님 오신 날 절간은 완전 시장바닥이다. 하도 정신이 없어 부랴부랴 다시 나왔다.

 


집에 어머님을 모셔다 드리고, 남편이랑 삼청동 나들이를 나갔다. 청와대가 바로 앞인데 늘 어려워서 근처까지만 가고 얼씬도 안 하다가 남편이랑 함께 용기를 내어서 청와대 앞까지 걸어올라가 본다. 차로 통행은 벌써 금지되어서 사람 그림자만 얼씬거릴 뿐, 차소리도 없이 고요하다. 저녁 무렵 산책삼아 나온 동네 사람들이 청와대 앞 가로수 길을 걸어 무궁화 공원에 닿는다.  인적 드문 길을 저것이 청와대, 그 뒤가 북악산, 저것이 연무대 그 뒤가 인왕산... 짚어가며 걸었다.

 

한 경찰관이 청와대 지붕 옆으로 영빈관을 손가락질한다. 혼자 보초 서는 것이 무료해 죽겠는지 묻지 않는데도 이리 저리 손가락을 대가며 건물 이름을 일러준다. 끄덕끄덕 고개질 서너번 하다보니 더 이상 물을 것도 가르쳐 줄 것도 없다. 경찰은 또다시 나홀로 근무를 서고, 우리는 북악 스카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궁화 공원을 한바퀴 돌고 나니, 더 디딜 땅도 없고 차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어 애써 걸어온 길을 되돌아왔다. 북악산을 등지고 늠름하게 서 있는 청와대에 눈길 한번 더 주고, 그동안 괜히 겁먹었다고 남몰래 안심하면서 삼청동 길을 내려왔다.


그리고 삼청동에 온 김에 인근에 있는 절 '칠보사'도 찾았다. 부처님 생일상을 차려놓고 신자와 스님들 간의 노래자랑이 벌어졌다. 희고 큰 케이크가 상마다 돌려졌고, 주지스님의 독촉에도 노래하겠다는 사람이 없자 주지스님이 '사랑가'를  시작했다. 아담한 절 안으로 민요인지, 판소리인지 알지 못할 노래가 흩어진다. 마당 한가운데 탄신 축하 꽃요람이 화사한 모습으로 저녁해를 맞는다. 장사익도 없고, 아나운서 박정수도 없는 조졸한 아기 부처 생일파티. 한자리 끼어 앉아 희고 부드러운 케잌을 한 입 베어물고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사동 옆 골목에 불빛이 휘황하다. 불교 용품점이 즐비한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니, 조계종 종무사무소 안쪽에서 행사가 한창이다. 사람들도 북적북적. 무슨 일일까 궁금해 사람들을 제치고 들어가 봤다. 여기도 부처님 오신날 기념 행사가 진행중인데, 연단 위에 스님 한 분이 사회를 보고 좌중에는 남녀노소 누구랄 것 없이 차분히 앉아 연단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까지 수고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자며 스님이 자원봉사자를 하나하나 호명하니 다들 일어나 박수를 친다. 

동자승들이 연단 가운데로 쪼르르 달려 올라오자 여기저기서 셔터가 터지며 환영한다. 꼬맹이들이 반야심경을 잘 왼다고 한 스님이 칭찬하자 고것들이 쟁쟁거리며 뭔가 외기 시작하는데 언제 끝나지는 대체 어디쯤 외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사회자 스님이 '나무아미 관세음보살'로 대충 마무리 짓자 좌중은 까르르 웃어제낀다. 청년회의 풍물놀이와 함께 폐회. 볶아치는 꽹과리, 북, 장구소리를 뒤로한 채 무리 속을 빠져나왔다.

 

부처님 오신 날. 절마다 다른 풍경이지만, 어디고 연등은 차고 넘쳤다. 그만큼 비는 복도 많겠고, 그만큼 연등값도 꽤 나갔겠지만 아기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마음이 덩그라니 천장에 매달린 것 같아 자꾸만 쳐다봐졌다. 저 연등 수만큼이나 이 행자님들 살면서 축하할 일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라시보 2004-05-2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등이 저렇게나 아름답다는걸 미처 몰랐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반짝이는 전구 만큼이나 예쁘네요.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무교인 저에게도 크리스마스날과 부처님 오신날은 특별한것 같습니다.
 

518 기념행사의 어린이 합창단 공연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생이 지었다는 가사도 좋고,
곡도 아주 좋습니다.
 
8~90년대의 비장함은 없지만, 차분히 24년 전을 생각케하고,
지금을 돌아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80년 광주에 빚을 지고 살고 있습니다.
 
꼭 끝까지 들어 보세요~
 
제목 : 선생님, 광주의 5월을 아세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hoice 2004-05-2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 눈물이 나네요.

조선인 2004-05-2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뜻하지 않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올 일이 생겼다. 집에서 1시간. 왕복 2시간. 그 시간의 길이를 생각하면 현관문을 나서기 싫었지만, 이인성의 '까이유'라도 보고 오자는 마음으로 책 보고 음악도 들으면서 현대미술관을 향해 갔다.

사실. 국립현대미술관에 큰 기대는 않는다.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특히, 어린이 미술관 같은) 그리고 자랑할 만한 한국 미술의 허리가 거기 있다곤 하지만... 너무 넓어서 다리가 아프다. 거기 다녀오려면 여간 피곤하지 않다.

두번째로, 기획전시 - 특별전시 관람료가 턱없이 비싸다. 시립, 사립 미술관도 얼마 하지 않는데 거기는 국립이라면서 기획전시 입장료를 2,000원이나 받다니. 지난 1년에 내가 낸 세금이 얼마나 많은데 그 혜택을 못받는다 생각하면 억울하다.

에이~. 이미 도착하지 않았나. 투덜거려봐야  나아질 것 없다. 1전시실 '미술 밖의 미술', 2전시실 '일상의 연금술', 3,4,5전시실 한국현대미술(구상/비구상/공예), 6전시실 신순남 '잊혀진 질곡의 유민사'전, 이렇게 보면 되겠구나. 대한민국예술전도 열리고 있지만 거기는 포기. 재밌는 곳은 2전시실이요, 인상깊고 아쉬웠던 곳은 5전시실이었다. 총 관람시간은 4시간.

상설 전시는 추상회화가 너무 많아서 잘 찾게 되지 않는다. 추상그림을 보고 있으면 커다란 우물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이상하고 애매해서, 또 멍청해지는 것 같아서 빨리 비켜나고 싶다. 앵포르멜의 영향을 우리 나라가 워낙 세게 맞아서 그렇다는데, 뭐 하여간 그쪽 미술은 잘 모르겠다. 그냥 색감이 예쁘구나. 붓질이 이렇게 억세? 이런 생각을 할 뿐이다. 아니면 저건 부엌에 걸면 좋겠고, 만약 서재가 있으면 이게 좋겠네 같은... 쓸데 없는 생각.

반대로 구상은 끌린다. 추상에 비하면 단순하지만 작가마다의 개성이 느껴져서 좋다. 외고 있는 작품명이나 작가 수는 많지 않지만 다시 와도 또 보겠구나 싶은 그림들. 이인성의 '까이유'를 소장하고 있다고 해서 찾아보았지만 전시작품은 아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꽤 호사스런 이름에 비하면 상설 전시 작품수는 또 적게 느껴지는 이 부조화. 구상 작품을 좀더 실컷 보여줬으면 좋으련만. 애고... 또 푸념이네. 

기획전 '일상의 연금술'은 일상의 사물을 이용한 설치미술이다. 빨대, 도끼, 통조림통, 조립장난감, 껌종이, 스팽글, 면장갑, 식용국수, 연탄, 키보드 키, 플라스틱 우유병... 일회용품부터 먹거리까지 별별 게 다 출동했다. 초등학교 공작시간을 연상시키지만 공작 솜씨는 훨씬 좋고나. 옥수수 통조림통은 내용물을 비우고 미니어처 인형을 넣어두는가 하면, 손수 제작한 인형을 조립하기 전 프라모델 장난감 배열대로 담아내기도 했다. 물건들을 조합하거나 변형하고, 반복하거나 집적한다. 혹은 이미 있는 물건을 모조한다.

본래의 쓰임을 바꾸니 연탄도 작품이 되는 새세상. 예술 작품이 별 건가 싶었다. 발상의 전환. 사물을 보는 눈을 부단히 새롭게 하는 것. 창작은 어려운 건데 이렇게 다 차려놓은 밥상을 보면 쉬워보이기도 하니.... 작가들의 고충은 어련할까. 서울에도 재밌는 기획전이 많으니 굳이 과천까지 올 것까지 없을 것 같은데... 만약  동물원에라도 온다면 '일상의 연금술' 정도는 보고 가면 어떨지. 리플렛 설명이 친절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은 6전시실에 마련된 신순남전. 신순남은 스탈린 통치 시절 연해주에서 우즈벡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이산 예술가다. 아홉살 때 할머니와 함께 강제 이주열차에 올랐는데, 10일동안 먹지도 못하고 환풍도 안되는 화물차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화물차 안에서만 1만명의 동포가 죽었는데, 그 때의 참혹했던 장면은 그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화이트, 레드, 블랙 이 세 가지 색을 주조로 한 그의 그림은 경직되고 어두워 종교적인 긴장감마저 감돈다. 애통해하는 가족의 얼굴.. 비쩍 마른 몸에 눈만 퉁퉁 부었다. 슬픔을 마주할 힘도 없어 눈감은 군상들. 몸은 쓰러질 듯 위태롭다.

이런 한국화가 그림, 처음이다. 강렬한 감정을 최대로 절제하여 담아낸 화폭. 작은 그림도 크게 느껴지는 마음의 진폭. 동굴속처럼 어둡기만한 그림에 한 줄기 빛이 있으니, 유족들 손에 들린 촛불이다. '아직 잊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있습니다' 같은 다짐/기원이 빛난다. 민족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맹세같기도 하고, 죽은 이에 대한 위안 같기도 한, 그 촛불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비장미가 느껴지지만 그래서 희망찬. 역설적인 이 그림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생각한다. 기억만이 죽은 자에 대한 가장 좋은 예우가 아닐까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월 퇴사한 후, 1달 남짓 바삐 여행을 준비하고 떠났다가 돌아왔다. 그후로는 혼자놀기 한마당이 펼쳐졌다. 후훗. 그래도 심심치 않다. 이번주는 아트씨네마에서 하는 개관 2주년 기념 '씨네필의 향연'을 다니느라 거의 매일 출퇴근이다. 어제는 <태양은 가득히>를, 오늘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보았다. <태양은..>에서 그토록 젊고 새끈한 알랑 드롱을 보고는 내내 흡족해 하였다. 내일은 <셸부르의 우산>을 보러 간다.

영화보러 가는 길에 까페 유리창에 붙어있던 '일본 미술의 두 거장, 히로시게 & 아와즈:우키요에와 일본 현대 디자인전' 포스터를 보았다. 금호갤러리에서 6월까지 하는데 무척 흥미롭겠다. <셸부르의 우산>을 보고나서 채색목판화의 생경한 아름다움을 한껏 들여마시고 와야지.

참, 생각난 김에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고 있는 '80일간의 세계일주, 그리고 서울의 기억' 사진전을 소개해야겠다. 길바닥에 사진판을 가설해 놓고 하는 거라, 입장료는 없다. 내셔날 지오그래피와 매그넘의 사진이 80장 소개되었고, 전시도록은 15,000원이라는 놀랍도록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부록으로, 세종문화회관 건물 외벽에 전시중인 '임인식 전'도 보고 오면 좋겠다. 역시 관람료는 무료. 이 전시는 6월 말까지 계속되며, 그 뒤로는 새로운 주제로 연말까지 사진전이 계속된다. '환경재단'과 서울시가 주최하는 행사이며, Hi-Seoul 페스티발의 일환이다. 9월경에는 제1회 환경영화제가 개최되는데 이때 1994년에 찍은 서울풍경이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고. 또다시 다음 10년 후에 상영할 '서울 풍경' 촬영을 위해서 올해는 시민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도(씨네 21 지난주 호 게재) 참고.

아참, 세종문화회관에서 경복궁으로 올라가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민중의 삶 사진전'을 개최한다. 1950~70년대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 <골목안 풍경> 사진집에서 보았던 것처럼 시간의 켜가 느껴지는 기획이다. 꼭꼭 걸음내보길.

밖으로 나댕기기는 이렇게 대부분이 영화관람이나 전시회 나들이다. 아니면, 교보문고에 책보러 가거나(한참을 앉아 보아도 뭐라고 안 하니까 좋다. 다만, 매장 진열이 책찾기 불편해서... 원! 베스트셀러 아니면 찾기 힘든 구조. 디스플레이가 '잘 나가는 책' 중심이라서 최근 나온 한국 소설을 찾자면 매장 언니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된다. 나처럼 사지는 않고 보기만 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미안한 일인지. 아니 그럴까?) 집에 있으면, 그동안 밀려두었던 책을 보거나(의외로 소설책은 안 읽혀서 인문학 책만 뚫고 있다. 도대체가 이해는 하고 보는 건지, 어쩐건지. 그냥 얼음에 박밀듯이 주구장창 읽는다) favorite Music파일 다운받아 정리하느라 정신없다.

아침시간에는 마치 민박집 주인처럼 지낸다. 음식차리기, 식사후 설거지 하기, 청소기 돌리기, 걸레질하기, 빨래돌리기, 물 끓이기... 이 모든 게 12시 이전에 끝난다. 청소기나 걸레질은 2일에 한번만 하니까 사실 매일 매일은 할 일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가사일을 하다보니 '독립'의 의미가 몸에 붙는 듯하다. 나를 경영하는 것, 구본형은 '자기계발'이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살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항상 똑같은 일, 해도 티 안 나는 일을 하며 '생활'을 익힌다. 이게, 이게 바로 '생활의 리듬'이구나 하면서(굉장히 색다른 경험이다. 왜냐? 몸이 변하는 게 느껴지니까... 고미숙 샘 말씀이 생각나네.)

아, 오전에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걸 빼먹었다. 입사지원서 넣는 일. 하루에 한 곳은 무조건 넣는다. 나를 불러주든 안 불러주든, 부른다고 내가 가든 안 가든 이건 원칙이다. 해야하는 일이니까 한다. 그리고 나서는 룰루랄라 밤 12시까지 논다. 아아.. 이렇게 놀기만 해도 좋은가 때론 가슴이 파르르 떨린다. 이러다 갑자기 큰 병이라도 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랴 상상하다가(왜 아닐까? 목돈도 없고 다니던 직장도 없는데 병나 봐라. 가족들에겐 이 무슨 민폐랴), "유후~ 생명보험!^^"하고 희열에 들떠 외친다. 청승? 그래, 맞다. 그런데 놀다보면 이런 놀이도 있다는 거다.- -;;;

하루해는 일을 해도 놀아도 역시 짧다. 어찌나 눈깜짝할새에 지나가는지 이렇게 원통할 수가 없다. 가치있는 일을 나는 얼마나 하고 있을까? 지금은 잉여인간이 아닐까? 잠자리는 어김없는 반성의 시간이다. 내일은 좀더 가치있는 인간이 되자고, 실업자 얼굴에 먹칠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이럴 때일수록 구본형 말처럼 '자기혁신'을 해야할 텐데... 델몬트 포시즌 광고의 덜 떨어진 김C마냥 혼자놀기에 심취한 나는...제대로 된 인간일까? (아.. 이래서 달밤이 싫다. 달이 뜨면 안 그려고 해도 자꾸 내 존재가 반성된다. 윽!)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05-19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록미피 2004-05-19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혜씨는 놀아도 문화적인 향취가 느껴지는구려! 나는 쉴 때 주로 오케이캐쉬백 모으기, 백화점 가서 경품 혹은 공짜 샘플 받아오기 이런 걸 하면서 놀았는데...;;; 보고 싶소 아주 많이! 6월 9일에 서울을 기록하자는 취지에서 '한 도시 이야기9404'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된다고 하는데, 관심있으시면 한 번...나도 참여하고 싶은데 과연 가능하려나 모르겠네.

요다 2004-05-22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저도 오케이캐쉬백 모으기도 하고 그래요. 선영씨, 오늘 집들이에서 뵐 줄 알았는데 더 좋은 데 갔더라구요. 6월에 하영씨와 함께 뵈요. 지금 발랄해 보여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