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올 일이 생겼다. 집에서 1시간. 왕복 2시간. 그 시간의 길이를 생각하면 현관문을 나서기 싫었지만, 이인성의 '까이유'라도 보고 오자는 마음으로 책 보고 음악도 들으면서 현대미술관을 향해 갔다.
사실. 국립현대미술관에 큰 기대는 않는다.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특히, 어린이 미술관 같은) 그리고 자랑할 만한 한국 미술의 허리가 거기 있다곤 하지만... 너무 넓어서 다리가 아프다. 거기 다녀오려면 여간 피곤하지 않다.
두번째로, 기획전시 - 특별전시 관람료가 턱없이 비싸다. 시립, 사립 미술관도 얼마 하지 않는데 거기는 국립이라면서 기획전시 입장료를 2,000원이나 받다니. 지난 1년에 내가 낸 세금이 얼마나 많은데 그 혜택을 못받는다 생각하면 억울하다.
에이~. 이미 도착하지 않았나. 투덜거려봐야 나아질 것 없다. 1전시실 '미술 밖의 미술', 2전시실 '일상의 연금술', 3,4,5전시실 한국현대미술(구상/비구상/공예), 6전시실 신순남 '잊혀진 질곡의 유민사'전, 이렇게 보면 되겠구나. 대한민국예술전도 열리고 있지만 거기는 포기. 재밌는 곳은 2전시실이요, 인상깊고 아쉬웠던 곳은 5전시실이었다. 총 관람시간은 4시간.
상설 전시는 추상회화가 너무 많아서 잘 찾게 되지 않는다. 추상그림을 보고 있으면 커다란 우물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이상하고 애매해서, 또 멍청해지는 것 같아서 빨리 비켜나고 싶다. 앵포르멜의 영향을 우리 나라가 워낙 세게 맞아서 그렇다는데, 뭐 하여간 그쪽 미술은 잘 모르겠다. 그냥 색감이 예쁘구나. 붓질이 이렇게 억세? 이런 생각을 할 뿐이다. 아니면 저건 부엌에 걸면 좋겠고, 만약 서재가 있으면 이게 좋겠네 같은... 쓸데 없는 생각.
반대로 구상은 끌린다. 추상에 비하면 단순하지만 작가마다의 개성이 느껴져서 좋다. 외고 있는 작품명이나 작가 수는 많지 않지만 다시 와도 또 보겠구나 싶은 그림들. 이인성의 '까이유'를 소장하고 있다고 해서 찾아보았지만 전시작품은 아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꽤 호사스런 이름에 비하면 상설 전시 작품수는 또 적게 느껴지는 이 부조화. 구상 작품을 좀더 실컷 보여줬으면 좋으련만. 애고... 또 푸념이네.
기획전 '일상의 연금술'은 일상의 사물을 이용한 설치미술이다. 빨대, 도끼, 통조림통, 조립장난감, 껌종이, 스팽글, 면장갑, 식용국수, 연탄, 키보드 키, 플라스틱 우유병... 일회용품부터 먹거리까지 별별 게 다 출동했다. 초등학교 공작시간을 연상시키지만 공작 솜씨는 훨씬 좋고나. 옥수수 통조림통은 내용물을 비우고 미니어처 인형을 넣어두는가 하면, 손수 제작한 인형을 조립하기 전 프라모델 장난감 배열대로 담아내기도 했다. 물건들을 조합하거나 변형하고, 반복하거나 집적한다. 혹은 이미 있는 물건을 모조한다.
본래의 쓰임을 바꾸니 연탄도 작품이 되는 새세상. 예술 작품이 별 건가 싶었다. 발상의 전환. 사물을 보는 눈을 부단히 새롭게 하는 것. 창작은 어려운 건데 이렇게 다 차려놓은 밥상을 보면 쉬워보이기도 하니.... 작가들의 고충은 어련할까. 서울에도 재밌는 기획전이 많으니 굳이 과천까지 올 것까지 없을 것 같은데... 만약 동물원에라도 온다면 '일상의 연금술' 정도는 보고 가면 어떨지. 리플렛 설명이 친절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은 6전시실에 마련된 신순남전. 신순남은 스탈린 통치 시절 연해주에서 우즈벡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이산 예술가다. 아홉살 때 할머니와 함께 강제 이주열차에 올랐는데, 10일동안 먹지도 못하고 환풍도 안되는 화물차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화물차 안에서만 1만명의 동포가 죽었는데, 그 때의 참혹했던 장면은 그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화이트, 레드, 블랙 이 세 가지 색을 주조로 한 그의 그림은 경직되고 어두워 종교적인 긴장감마저 감돈다. 애통해하는 가족의 얼굴.. 비쩍 마른 몸에 눈만 퉁퉁 부었다. 슬픔을 마주할 힘도 없어 눈감은 군상들. 몸은 쓰러질 듯 위태롭다.
이런 한국화가 그림, 처음이다. 강렬한 감정을 최대로 절제하여 담아낸 화폭. 작은 그림도 크게 느껴지는 마음의 진폭. 동굴속처럼 어둡기만한 그림에 한 줄기 빛이 있으니, 유족들 손에 들린 촛불이다. '아직 잊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있습니다' 같은 다짐/기원이 빛난다. 민족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맹세같기도 하고, 죽은 이에 대한 위안 같기도 한, 그 촛불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비장미가 느껴지지만 그래서 희망찬. 역설적인 이 그림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생각한다. 기억만이 죽은 자에 대한 가장 좋은 예우가 아닐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