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퇴사한 후, 1달 남짓 바삐 여행을 준비하고 떠났다가 돌아왔다. 그후로는 혼자놀기 한마당이 펼쳐졌다. 후훗. 그래도 심심치 않다. 이번주는 아트씨네마에서 하는 개관 2주년 기념 '씨네필의 향연'을 다니느라 거의 매일 출퇴근이다. 어제는 <태양은 가득히>를, 오늘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보았다. <태양은..>에서 그토록 젊고 새끈한 알랑 드롱을 보고는 내내 흡족해 하였다. 내일은 <셸부르의 우산>을 보러 간다.
영화보러 가는 길에 까페 유리창에 붙어있던 '일본 미술의 두 거장, 히로시게 & 아와즈:우키요에와 일본 현대 디자인전' 포스터를 보았다. 금호갤러리에서 6월까지 하는데 무척 흥미롭겠다. <셸부르의 우산>을 보고나서 채색목판화의 생경한 아름다움을 한껏 들여마시고 와야지.
참, 생각난 김에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고 있는 '80일간의 세계일주, 그리고 서울의 기억' 사진전을 소개해야겠다. 길바닥에 사진판을 가설해 놓고 하는 거라, 입장료는 없다. 내셔날 지오그래피와 매그넘의 사진이 80장 소개되었고, 전시도록은 15,000원이라는 놀랍도록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부록으로, 세종문화회관 건물 외벽에 전시중인 '임인식 전'도 보고 오면 좋겠다. 역시 관람료는 무료. 이 전시는 6월 말까지 계속되며, 그 뒤로는 새로운 주제로 연말까지 사진전이 계속된다. '환경재단'과 서울시가 주최하는 행사이며, Hi-Seoul 페스티발의 일환이다. 9월경에는 제1회 환경영화제가 개최되는데 이때 1994년에 찍은 서울풍경이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고. 또다시 다음 10년 후에 상영할 '서울 풍경' 촬영을 위해서 올해는 시민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도(씨네 21 지난주 호 게재) 참고.
아참, 세종문화회관에서 경복궁으로 올라가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민중의 삶 사진전'을 개최한다. 1950~70년대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 <골목안 풍경> 사진집에서 보았던 것처럼 시간의 켜가 느껴지는 기획이다. 꼭꼭 걸음내보길.
밖으로 나댕기기는 이렇게 대부분이 영화관람이나 전시회 나들이다. 아니면, 교보문고에 책보러 가거나(한참을 앉아 보아도 뭐라고 안 하니까 좋다. 다만, 매장 진열이 책찾기 불편해서... 원! 베스트셀러 아니면 찾기 힘든 구조. 디스플레이가 '잘 나가는 책' 중심이라서 최근 나온 한국 소설을 찾자면 매장 언니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된다. 나처럼 사지는 않고 보기만 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미안한 일인지. 아니 그럴까?) 집에 있으면, 그동안 밀려두었던 책을 보거나(의외로 소설책은 안 읽혀서 인문학 책만 뚫고 있다. 도대체가 이해는 하고 보는 건지, 어쩐건지. 그냥 얼음에 박밀듯이 주구장창 읽는다) favorite Music파일 다운받아 정리하느라 정신없다.
아침시간에는 마치 민박집 주인처럼 지낸다. 음식차리기, 식사후 설거지 하기, 청소기 돌리기, 걸레질하기, 빨래돌리기, 물 끓이기... 이 모든 게 12시 이전에 끝난다. 청소기나 걸레질은 2일에 한번만 하니까 사실 매일 매일은 할 일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가사일을 하다보니 '독립'의 의미가 몸에 붙는 듯하다. 나를 경영하는 것, 구본형은 '자기계발'이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살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항상 똑같은 일, 해도 티 안 나는 일을 하며 '생활'을 익힌다. 이게, 이게 바로 '생활의 리듬'이구나 하면서(굉장히 색다른 경험이다. 왜냐? 몸이 변하는 게 느껴지니까... 고미숙 샘 말씀이 생각나네.)
아, 오전에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걸 빼먹었다. 입사지원서 넣는 일. 하루에 한 곳은 무조건 넣는다. 나를 불러주든 안 불러주든, 부른다고 내가 가든 안 가든 이건 원칙이다. 해야하는 일이니까 한다. 그리고 나서는 룰루랄라 밤 12시까지 논다. 아아.. 이렇게 놀기만 해도 좋은가 때론 가슴이 파르르 떨린다. 이러다 갑자기 큰 병이라도 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랴 상상하다가(왜 아닐까? 목돈도 없고 다니던 직장도 없는데 병나 봐라. 가족들에겐 이 무슨 민폐랴), "유후~ 생명보험!^^"하고 희열에 들떠 외친다. 청승? 그래, 맞다. 그런데 놀다보면 이런 놀이도 있다는 거다.- -;;;
하루해는 일을 해도 놀아도 역시 짧다. 어찌나 눈깜짝할새에 지나가는지 이렇게 원통할 수가 없다. 가치있는 일을 나는 얼마나 하고 있을까? 지금은 잉여인간이 아닐까? 잠자리는 어김없는 반성의 시간이다. 내일은 좀더 가치있는 인간이 되자고, 실업자 얼굴에 먹칠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이럴 때일수록 구본형 말처럼 '자기혁신'을 해야할 텐데... 델몬트 포시즌 광고의 덜 떨어진 김C마냥 혼자놀기에 심취한 나는...제대로 된 인간일까? (아.. 이래서 달밤이 싫다. 달이 뜨면 안 그려고 해도 자꾸 내 존재가 반성된다. 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