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에 대한 강박증이 있다.

그래서 나는 새해의 계획을 주로 11월에 세운다.

뭐, 거의 계획 없이 살았지만 이번엔 꼭 하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 북 배우기. 내가 사랑하는 악기는 타악기이다. 어떤 악기를 좋아하는지조차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 내 귀에 쏙쏙 들어오는 소리는 타악기가 내는 소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원시 부족의 의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들을 엑스터시 상태에 빠뜨려 영적인 세계로 인도해준다는 북. 나는 아마 그 세계가 가고 싶어서 이렇게 기웃거리는 중인 듯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북을 가르쳐준다는 곳이 없어서 내내 그것이 배우고 싶다는 얘기만 하고 다녔는데. 이제 겨우 가르쳐줄 수 있는 곳을 찾은 듯하다. 잘 못할지도 모른단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서 자꾸자꾸 미루다가 늦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년엔 꼭 시작해서 그것을 함으로써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 리듬과 흥겨움이 나를 더 즐겁게 해주리라 믿어의심치 않으니까.

둘. 커피 배우기. 뭐 바리스타가 되겠다는 거창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일하면서 배우는 것이 가장 좋으나 나이 많은 사람(?)은 써주지도 않고, 전문적인 교육기관은 어마어마한 수강료를 매긴다. 그런데 회사 근처의 한 카페에서 커피교실을 연다는 이야기가 있다. 수업료는 차값 정도면 충분하다고. 기회가 왔다.

셋. 요가. 난 얼치기 요가를 해왔다. 아주 단순한 몇 가지 동작을, 생각날 때마다 가끔씩. 하지만 이제 제대로 배우고 싶다. 내 한 몸이 이 지구를 올바르게 지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온몸의 기운들이 모두 제자리로 가서 하나의 균형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문제는 여러가지를 하고 싶은 열망은 가득하나,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못하는 나이기에. 무엇을 우선순위로 둘 것이냐이다. 하지만 세 가지 중 하나라도 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은 더 좋아질 거다. 무엇을 할줄 알게 된다는 것, 그것은 기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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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죠 2007-11-15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가 몸을 움직이는 일들이네요. 몸을 많이 움직이면 마음은 흔들림 없이 굳건해질 것만 같아요. 꼬-옥! 제게 북을 치면서 요가 자세로 커피를 내려주세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11-15 09:41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제가 만약 그렇게 할 수 있게 된다면
오즈마 님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커피값을 내셔야 될 거예요!
 

 

얼마전, 친구가 애를 낳았다. 산후조리원에는 2주간 있을 건데, 170만원이라 했다. 이정도면 싼 거고 보통이 2주에 200이라 했던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대체 애를 낳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 거야?

사람들이 애를 낳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마음 한구석으로 비웃곤 했었다.

-아니, 애한테 좋은 것만 해 줄려고 하니까 그렇지. 그냥 낳아서 적당히 키우면 될걸. 나는 사교육도 많이 안 시키고 이것저것 강요 안 할 거야. 그러니까 돈 많이 필요 없어.

하지만 그때서야 왜 요즘 세상에서는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데 돈이 드는 건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옛날엔 애 낳고 조리원에서 조리 안 해도 다들 잘 살았는데...... 집에서 애를 낳는 사람도 많았으니 그들에겐 미역국 값이나 조금 들었을 터이다. 그래, 요즘엔 핵가족 시대니까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돌봐 줄 수 없다고 치자. 산모의 건강을 생각해서 조리원이 필요하다 치자. 그런데 저 170만원이란 돈은 도대체 어떻게 산정이 된 거지?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하루에 12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 들어간다. 하루 세 끼에 난방 좀 해주고 방 좀 빌려주는 게 12만원?(뭐, 다른 서비스도 있겠지만 그것까진 잘 모르고) 그들이 얼마나 관리를 잘해주는진 모르겠지만, 내겐 턱없이 비싸 보인다.

내가 듣기론 산후조리원이란 게 생긴 게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고, 처음엔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다 한다. 점점 소비를 부추기는 세상이라지만 어느 순간 당연하지도 않은데, 당연히 지불해야 되는 비용이 점점 불어난다. 기술이 발달하고 좋은 것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다들 더,더,더 열심히 돈을 벌고, 더더욱 열심히 축이 난다. 아, 인간의 삶이 이리도 불쌍할 수가.

나는, 남들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가는 건 잘 못하는 인간이라서. 참 고민스럽다. 이 이상하고 험난한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내 의지대로 살아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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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11-14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모르지만, 대충 짐작해보면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상술이라 생각되네요. 아이를 갓 순산한 부모의 심리를 간파한거겠죠.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11-14 10:07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데 어느순간 모든 것이,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아서. 나중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 의심 없이 그것을 하게 된다는 것이. 저는 조금 무서워요. >.<
 

 

*

이맘때부터 겨울 동안이, 내가 인도를 가장 많이 떠올리는 때이다. 이상도 하지, 나는 분명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속이 비칠 듯 엷은 바지를 입고 인도를 돌아다녔는데.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유독 그곳에서의 일들이 떠오른다. 그러면 나는 알게 된다. 아, 벌써 겨울이구나. 하고.

10월 25일쯤이 내가 인도로 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갔던 날이다. 무지 더운 인도는 시월에 내가 발을 디뎠을 때도 한여름과 같았다. 두 달이던 여행이 세 달로 늘어나며 아침저녁으로 잠깐씩 추운 인도의 겨울과, 추운 지방에서 얇은 옷밖에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일들도 경험했지만, 내 기억 속의 인도는 언제나 더운 나라다.

분명, 몸의 기억이란 게 있다. 유독, 날이 쌀쌀해지는 즈음이 되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한국의 겨울과 인도에서의 겨울이 묘하게 겹쳐진다. 밍기적밍기적 따듯한 이불 속의 기운과 더러운 베드 위에 침낭을 깔고 누웠던 침낭의 그 매끄러운 감촉이. 커피빈에서 진한 드립커피를 마실 때 입안에 퍼지는 그 쓰고 고소한 맛과 달디달았던 캘커타의 짜이 맛이. 멋진 코트를 사기 위해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발걸음과 좀더 예쁜 펀자비를 사기 위해 델리를 쏘다니던 기억이.

그렇게 겹쳐진다.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있으면서도.

**

오늘 와타나베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인도 공항에서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같이 타고, 태국 공항에서 친구가 되어 사흘 동안만 같이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행 중 만난 외국친구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그리고 내가 마음으로부터 존경하는 나의 친구.

하지만 내가 인도를 생각하며 떠올리는 건, 히로다.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문 덕에 바라나시에 친해진 히로와 나는 다음 여행 경로가 같았다. 카주라호에서 전에 만났던 젊은 아저씨 두 명과 동갑내기 남자아이 '김군'을 만난 덕에 나는 일행을 넷이나 두게 되었다. 다섯이서 다음 여행지 '오르차'로 갔다. 오르차는 워낙 작은 마을이라 숙소를 구하기 힘들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어찌어찌 한 게스트 하우스에 더블룸 두 개가 남아 있었다. 가격도 적당했고. 자, 그런데 남자 넷에 여자 하나다.

아저씨 둘은 원래 일행이었으니 같은 방을 쓰고, 김군과 나와 히로는 더블룸에 사이드 베드 하나를 놓고 자기로 했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이니 크게 걱정될 일은 없을 테고.

하지만 김군은 다음 날 떠났고, 나는 히로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사이드 베드가 치워진 방에는 큰 더블 베드가 하나 놓여 있었다.

나는 중요한 걸 하나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아닌 '사람의 존재' 자체가 주는 안도감이 있음을. 히로와 방을 같이 쓴 이틀 동안, 나는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어 자고 또 자고 또 잤다. 그때까지 6,7시면 눈을 떴는데 10시, 11시가 되도록 나는 졸려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옆에서 들리는 쌔근쌔근 잠자는 소리, 혼자서 온전히 나를 지키지 않아도 옆에서 누가 나를 지켜줄 거라는 안도감. 뒤돌아 생각해보면, 나는 그동안 무장돼 있던 나를, 그제사 해방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푹 잤다고 생각했던 그동안의 잠들은, 사실상 나를 지키기 위해 반쯤 깨어 있었던 것이다.

히로가 상하이에 가기 위해 델리로 떠나던 날(그는 여자친구와 상하이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우리는 잔시로 갔다. 히로는 거기서 버스를 타야했고 나는 다시 오르차로 갔다가 다음 날 나와서 기차를 타야 했다.

버스 타는 걸 보고 가겠다 했더니 내가 릭샤(태국의 뚝뚝이 같은 이동수단) 타는 걸 보고 가겠다 한다. 하는 수 없이 릭샤에 올라탔는데 히로가 편지를 내밀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면서.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마음만 먹으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데. 하지만 '여행 중에 만났던 히로'는 더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면 일상의 그로 돌아갈 것임을, 나중에 다시 만난다 해도 내가 기억하는 그 히로는 아니라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히로가 수만 가지 자신의 모습 중에서 좀 더 열린 모습을 내게 보여준 것이라는 것도, 그것이 여행 중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엉엉 울었다. 그리고 나는 또 혼자가 되어야 했다.

눈물의 작별 후, 봉투를 열었더니 낙엽 하나와 두 장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히로는 부다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나무 아래서 나뭇잎 세 장을 주었는데, 하나는 여자친구에게, 하나는 자신에게, 하나는 나에게 주는 것이라 했다. 히로의 편지는 아리송했다.

너를 만나서 정말 좋았어. 너의 미소 때문에 난 행복할 수 있었어. 아마 널 만난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랬을 거야. ......... 그녀의 웃음과 너의 웃음은 꽤 다른 의미인 것 같아. 이건 내게 미스터리야.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너와 얘기할 기회가 생겨서 좋았어....................난 정말 많이 생각했어. '내가 한국어를 할 수 있다면, 너와 더 많이 더 많이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하고.......................블라블라. 끝.

재작년에 일본에 가서 히로를 만났다. 역시나 그는 일상에서 최선을 다하는, 착실한 일본 남자로 돌아가 있었다. 예상했으나 나는 조금 슬퍼졌다. 왜 인간은 저렇게 적응력이 빠른 걸까, 하고. 여행 때처럼 좀더 방황하고, 좀더 활기차고, 좀더 즐거우면 안 되는 거야?

***

히로와 나눴던 수많은 대화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Indian river & Korean river]에 관한 것이다.

히로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도의 강과, 한국의 강이었다고 했다.

흐르는 강물에서 손바닥으로 물을 퍼낸다고
그 물이 곧 강은 아닌 것처럼
인도에서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지만,
그게 곧 한국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퍼낸 물에서
강을 '느.낄.수.있.듯'
인도에서 만난 한국인들을 통해
한국을 느낄 수 있었다.고.
 

나는 히로가 내 긴 여행 중에 들어와 좋은 기억을 남겨준 것에 감사한다. 달콤한 잠과 즐거운 대화, 보리수 나뭇잎과 크리스마스 선물 편지, 즐거운 웃음. 그 순간이 좋았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 아리가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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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 인 중국 2007-11-03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햐, 멋진 경험이었네요. 사람의 존재 자체가 가져다주는 안도감,,,여행이 아니면 느낄수 있을까요. 전 중국인데, 여행이 아니라 출장중이죠. 이상하게도 여기서는 로그인이 되지 않아 이렇게 유령으로 남겨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11-03 21:21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하-
유령의 모습과 '잉크 인 중국'이란 아이디가 너무 잘 어울려요.
이 유령 은근 귀엽네요.
잉크님 안보이신다 했는데
(역시 제 글에 답글 달아 주는 건 잉크님뿐이라는^^)
출장가셨구나.

출장임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경험 많이 하고 오세요.
갔다와서
재밌는 얘기도 해주시고요-

:)
 

 

 

#1

일요일 점심,

엄마는 빌라 모임에 가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밥상에는 큰오빠와 나, 둘이 앉았다.

여느 때처럼 TV에 눈을 고정시키고,

묵묵히 밥을 먹는다, 우리 남매는.

밥상에는 추석 때 제사를 지낸

전과 조기 한 마리가 있었다.

오빠는 비린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당연히, 조기는 오빠의 차지.

전을 조금씩 뜯어 먹다가,

조기도 한 젓가락 맛보았다.


어느덧 오빠는 밥을 다 먹고 일어섰다.

그런데 조기는,

살이 다 발라져 있었다.

 

내가 조기 먹는 걸 본 오빠가,

살을 다 발라놓고 일어선 것이다.

 

나는 조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발라진 조기를 다 먹었다.

오빠는 항상 이런 식이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는데,

알고 보면 마음이 따끈하다.


한참 빌라 계단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거릴 때,
오빠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먹을 것 있냐고 물었다.
고양이가 배가 고파 보인다 했다.
그러곤 우유를 들고 나갔다가 들어오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빠가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은,
잘 관찰해야 알 수 있다.
오빠는, 말로 표현하지 않으니까.
늘 마음에서만 넘치고,
가끔 미약한 행동으로만 보여주니까.

그래서 오빠는 불리하다.

사람들은, 나 역시도,

표현해주길 원하고 뭔가 따뜻한 걸 꺼내서 보여주길 바라니까.

 

#2

오빠는 등산을 좋아한다.

오빠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산에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암벽등반을 해서 올라가야 하는,

말 그대로 전문가 코스의 봉우리를 무모하게 올랐던 것이다.

아무 장비도 없이.

올라갈 땐 몰랐는데,

올라가보니 말 디딜 틈 하나 없는

낭떠러지와 같았다 한다.
말 그대로 90도 각도의 절벽을 맨손으로 올라간 것이다.

오빠는 말을 잘못 디뎌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180도로 누워 자란 소나무가 오빠를 잡았다.
아니, 오빠가 그 나무에 걸렸다.

 

 

나무를 잡고 두 시간을 매달려 있는 동안,
오빠는 무섭다거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못 했다고 한다.
철없는 소년에겐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 감각이
제로였던 거다.
한참 맥가이버가 유행하던 시절,
오빠는 배낭 속에 있는 카세트테이프를 풀어서
끈으로 이어붙일까 어쩔까,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때는 5월, 발아래 펼쳐진 푸른 나무숲이,
왠지 손을 놓으면 푹신하게 자기를 받쳐줄 것 같았다고 했다.

어이없는 오빠 같으니라구!

 

오빠는 살 운명이었다.
저쪽 봉우리의 정상에 선 사람이 오빠를 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오빠는,

“살려 달라.”는 말 대신

“여기, 밧줄 좀 던져주세요.”라고 했다 한다.
밧줄을 던질 거리도 아니었고,

던진다 해도 혼자 내려올 만한 처지가 아니었는데도!
그분이 기가 막힌 오빠의 멘트를 무시하고,
119에 연락을 한 덕에,
오빠는 구조를 받았다.

오빠도 소년이었던 때가 있던 거다.
손을 놓으면 저 푸른 나무들이 자신을
푹신한 양탄자처럼 받아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할 줄 알던,

어리고 귀여운 소년.

 

#3
큰오빠는 우리 집의 가장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빠가 나보다 다섯 살이 많으니

그때 오빠는 중학생이었던 거다.


예전에 엄마는 식당을 했다.

내가 대학교 2,3학 년 때까지.

그때 술에 취한 손님들과 오빠가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다.

그때 오빠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돈이 있었으면, 너 내가 가만히 안 뒀어!”

 

오빠는 성공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인터넷 초창기에 사업을 시작해서

꽤 잘 되었다.
그래서 작고 값싸지만, 우리는 집도 생겼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지어온 가장의 무게가

때로는 오빠의 목을 조르는 것 같다.

가끔 휴일에 집에 있다 보면,

오빠 방에서 “아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악몽이다.

가끔 오빠는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을 꾼다.

 

다시 시작한 사업은, 요즘 들어 매우 힘들어진 것 같다.

오빠는 작년에 나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막내 동생에게 돈을 빌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지는 생각도 못한 나는,

오빠에게 짜증을 부렸었다.

철없는 동생이다, 나는.


나는 오빠 덕에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오빠가 사들인 헌책들 덕에,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내 유년은,

책 속에서 펼쳐진 세계들 덕에

심심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그때, 독서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오빠는,

사업과 관련된 책만 읽는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언젠가는 오빠가 필요에 의한 책 읽기가 아닌,

즐거운 책 읽기로 돌아올 것이라고.

그리고 한 번 성공한 경험이 있으니까,

다시 성공할 날이 올 거라고.

 

지금은 힘들어서,

워낙 좋아하는 술을 많이 마신다.

걱정스럽지만 나는 술을 사다준다.

친구도 많지 않은 오빠가,

술이나마 친구로 삼을 수 있었던 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남자들의 스트레스나,

알코올 중독 등등 심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살짝 걱정스럽지만.


오빠는 우리 집의 가장, 이라는 자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알 수 있다.
우리는 서로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한 적 없으나,

가슴으로부터 넘치는 애정을 갖고 있으니.

오빠는 그것을 포기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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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10-08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글이네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10-09 09:27   좋아요 0 | URL

다행이네요:)
날도 추운데 글까지 싸나우면 대략 난감이지요.

비로그인 2007-10-08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오빠가 없어서 늘 손위 오빠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살거든요.
이렇게 살갑게 챙겨주는 오누이란 정말 복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남동생한테라도 잘해야 할텐데 남동생은 뭐든 어려보여서... ㅜㅜ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10-09 09:28   좋아요 0 | URL

오빠들 있어서 좋겠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어려서는 늘 대답이,
"많이 맞고 살았어."였답니다.

커서는 말은 안해도,
의지가 되는 것 같아요.

다락방 2007-10-2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선살을 발라주는 오빠라니.
저도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군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10-28 22:20   좋아요 0 | URL

아이쿠,
이거 오즈마님을 너무 사랑하시는 다락방님 아니세요?
오즈마님에 대한 님의 진한 애정표현은,
볼 때마다 흐믓한 거 있죠.
애정을 표현한다는 건,
아주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니까요.
머시써요~:)
 

 

자꾸 체하는데도,

자꾸 허기가 진다.

 

 

의사샘은,

비장과 위가 상했을 때,

오장육부가 상했다고 하는 것인데,

나의 경우는,

위만 상한 것이기에,

체하기는 했으나, 배는 고픈 것이라 하셨다.

 

 

하지만 스무 살부터 쭉- 허기는 내 친구였다.

난 언제나 배가 고팠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하루종일 앉아 있어서인지,

배가 고픈 것보단 더부룩하고 불편한 게 주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책으로도, 영화로도, 여행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허기가 아주 잠시잠깐 채워질 때가 있다.

그것을 연애를 할 때,

그것도 아주아주 초반 1~2주.

그 사람이 주는 사랑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나는 애정에는 아주아주 예민한 사람이라서,

저 사람이 나에게 사랑을 주는지,

미움을 주는지,

귀신같이 알아 맞추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인지, 그 사람이 주는 애정을

나는 곧잘 꿀떡 꿀떡 받아 먹고,

배 두드리며 포만감을 느낀다.

 

 

하지만 모든 건 사라지 게 돼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또다시 허기가 가득차는 건,

애정에 익숙해져서이기도 하겠지만,

결국엔 그 사랑만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만 먹고도 행복한 줄 알았는데,

역시나 인간은 혼자라는 걸,

남의 짐을 대신 줘 주거나,

대신 살아주는 일 따윈,

할 수 없고,

결국 내 짐은 내가 지고 가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만 처음에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그것만 믿고 싶어서,

사랑만 먹고 살 수 있을 것처럼,

눈을 감고 진실을 보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도 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건 중요하다.

자꾸 자꾸 체하고, 자꾸 자꾸 허기가 져도,

자꾸 배가 고프다고 투정을 부릴 사람이,

모두에겐,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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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죠 2007-10-03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부터 느꼈던 건데
하트님 글을 읽으면
나는 왜 슬퍼지는 걸까요.

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요?
아무 기교도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써내려 간 글에서
이토록 진한 여운을 남기고
그것으로 인해
읽는 사람마저 잠겨들게 하는 글은
어떻게 쓰는 거예요?

한밤중에도 깨어 있는
나는 몹시 배가 고파요.
사실 항상 나는 허기져 있죠. 가끔 폭식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허기가 채워지진 않았어요.
나는 내가 뚱뚱하고 먹보라서 그런 줄만 알았죠.
그랬었어요. 그런데...

나의 하트님 글 읽고
비밀을 알아버린 기분이에요.
어쩐지 내 꼬륵거리는 위장이
늘상 달콤하고 맛있는 것만 상상하는 뇌가
언제나 배고프고 쓸쓸한
내 자신을 안아주고 싶어져요.




2007-10-04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7-10-0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웰컴투 동막골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죠.
정진영 : 마을 사람들을 다스리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밀이 뭡메까?
노인 : 뭐를 좀 멕여야지.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10-04 12:19   좋아요 0 | URL

그 영화에 그런 명언이 있었단 말입니까!
(잉크냄새 님은 센스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