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체하는데도,

자꾸 허기가 진다.

 

 

의사샘은,

비장과 위가 상했을 때,

오장육부가 상했다고 하는 것인데,

나의 경우는,

위만 상한 것이기에,

체하기는 했으나, 배는 고픈 것이라 하셨다.

 

 

하지만 스무 살부터 쭉- 허기는 내 친구였다.

난 언제나 배가 고팠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하루종일 앉아 있어서인지,

배가 고픈 것보단 더부룩하고 불편한 게 주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책으로도, 영화로도, 여행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허기가 아주 잠시잠깐 채워질 때가 있다.

그것을 연애를 할 때,

그것도 아주아주 초반 1~2주.

그 사람이 주는 사랑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나는 애정에는 아주아주 예민한 사람이라서,

저 사람이 나에게 사랑을 주는지,

미움을 주는지,

귀신같이 알아 맞추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인지, 그 사람이 주는 애정을

나는 곧잘 꿀떡 꿀떡 받아 먹고,

배 두드리며 포만감을 느낀다.

 

 

하지만 모든 건 사라지 게 돼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또다시 허기가 가득차는 건,

애정에 익숙해져서이기도 하겠지만,

결국엔 그 사랑만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만 먹고도 행복한 줄 알았는데,

역시나 인간은 혼자라는 걸,

남의 짐을 대신 줘 주거나,

대신 살아주는 일 따윈,

할 수 없고,

결국 내 짐은 내가 지고 가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만 처음에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그것만 믿고 싶어서,

사랑만 먹고 살 수 있을 것처럼,

눈을 감고 진실을 보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도 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건 중요하다.

자꾸 자꾸 체하고, 자꾸 자꾸 허기가 져도,

자꾸 배가 고프다고 투정을 부릴 사람이,

모두에겐, 필요해.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코코죠 2007-10-03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부터 느꼈던 건데
하트님 글을 읽으면
나는 왜 슬퍼지는 걸까요.

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요?
아무 기교도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써내려 간 글에서
이토록 진한 여운을 남기고
그것으로 인해
읽는 사람마저 잠겨들게 하는 글은
어떻게 쓰는 거예요?

한밤중에도 깨어 있는
나는 몹시 배가 고파요.
사실 항상 나는 허기져 있죠. 가끔 폭식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허기가 채워지진 않았어요.
나는 내가 뚱뚱하고 먹보라서 그런 줄만 알았죠.
그랬었어요. 그런데...

나의 하트님 글 읽고
비밀을 알아버린 기분이에요.
어쩐지 내 꼬륵거리는 위장이
늘상 달콤하고 맛있는 것만 상상하는 뇌가
언제나 배고프고 쓸쓸한
내 자신을 안아주고 싶어져요.




2007-10-04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7-10-0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웰컴투 동막골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죠.
정진영 : 마을 사람들을 다스리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밀이 뭡메까?
노인 : 뭐를 좀 멕여야지.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10-04 12:19   좋아요 0 | URL

그 영화에 그런 명언이 있었단 말입니까!
(잉크냄새 님은 센스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