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요일 점심,

엄마는 빌라 모임에 가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밥상에는 큰오빠와 나, 둘이 앉았다.

여느 때처럼 TV에 눈을 고정시키고,

묵묵히 밥을 먹는다, 우리 남매는.

밥상에는 추석 때 제사를 지낸

전과 조기 한 마리가 있었다.

오빠는 비린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당연히, 조기는 오빠의 차지.

전을 조금씩 뜯어 먹다가,

조기도 한 젓가락 맛보았다.


어느덧 오빠는 밥을 다 먹고 일어섰다.

그런데 조기는,

살이 다 발라져 있었다.

 

내가 조기 먹는 걸 본 오빠가,

살을 다 발라놓고 일어선 것이다.

 

나는 조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발라진 조기를 다 먹었다.

오빠는 항상 이런 식이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는데,

알고 보면 마음이 따끈하다.


한참 빌라 계단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거릴 때,
오빠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먹을 것 있냐고 물었다.
고양이가 배가 고파 보인다 했다.
그러곤 우유를 들고 나갔다가 들어오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빠가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은,
잘 관찰해야 알 수 있다.
오빠는, 말로 표현하지 않으니까.
늘 마음에서만 넘치고,
가끔 미약한 행동으로만 보여주니까.

그래서 오빠는 불리하다.

사람들은, 나 역시도,

표현해주길 원하고 뭔가 따뜻한 걸 꺼내서 보여주길 바라니까.

 

#2

오빠는 등산을 좋아한다.

오빠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산에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암벽등반을 해서 올라가야 하는,

말 그대로 전문가 코스의 봉우리를 무모하게 올랐던 것이다.

아무 장비도 없이.

올라갈 땐 몰랐는데,

올라가보니 말 디딜 틈 하나 없는

낭떠러지와 같았다 한다.
말 그대로 90도 각도의 절벽을 맨손으로 올라간 것이다.

오빠는 말을 잘못 디뎌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180도로 누워 자란 소나무가 오빠를 잡았다.
아니, 오빠가 그 나무에 걸렸다.

 

 

나무를 잡고 두 시간을 매달려 있는 동안,
오빠는 무섭다거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못 했다고 한다.
철없는 소년에겐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 감각이
제로였던 거다.
한참 맥가이버가 유행하던 시절,
오빠는 배낭 속에 있는 카세트테이프를 풀어서
끈으로 이어붙일까 어쩔까,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때는 5월, 발아래 펼쳐진 푸른 나무숲이,
왠지 손을 놓으면 푹신하게 자기를 받쳐줄 것 같았다고 했다.

어이없는 오빠 같으니라구!

 

오빠는 살 운명이었다.
저쪽 봉우리의 정상에 선 사람이 오빠를 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오빠는,

“살려 달라.”는 말 대신

“여기, 밧줄 좀 던져주세요.”라고 했다 한다.
밧줄을 던질 거리도 아니었고,

던진다 해도 혼자 내려올 만한 처지가 아니었는데도!
그분이 기가 막힌 오빠의 멘트를 무시하고,
119에 연락을 한 덕에,
오빠는 구조를 받았다.

오빠도 소년이었던 때가 있던 거다.
손을 놓으면 저 푸른 나무들이 자신을
푹신한 양탄자처럼 받아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할 줄 알던,

어리고 귀여운 소년.

 

#3
큰오빠는 우리 집의 가장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빠가 나보다 다섯 살이 많으니

그때 오빠는 중학생이었던 거다.


예전에 엄마는 식당을 했다.

내가 대학교 2,3학 년 때까지.

그때 술에 취한 손님들과 오빠가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다.

그때 오빠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돈이 있었으면, 너 내가 가만히 안 뒀어!”

 

오빠는 성공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인터넷 초창기에 사업을 시작해서

꽤 잘 되었다.
그래서 작고 값싸지만, 우리는 집도 생겼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지어온 가장의 무게가

때로는 오빠의 목을 조르는 것 같다.

가끔 휴일에 집에 있다 보면,

오빠 방에서 “아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악몽이다.

가끔 오빠는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을 꾼다.

 

다시 시작한 사업은, 요즘 들어 매우 힘들어진 것 같다.

오빠는 작년에 나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막내 동생에게 돈을 빌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지는 생각도 못한 나는,

오빠에게 짜증을 부렸었다.

철없는 동생이다, 나는.


나는 오빠 덕에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오빠가 사들인 헌책들 덕에,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내 유년은,

책 속에서 펼쳐진 세계들 덕에

심심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그때, 독서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오빠는,

사업과 관련된 책만 읽는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언젠가는 오빠가 필요에 의한 책 읽기가 아닌,

즐거운 책 읽기로 돌아올 것이라고.

그리고 한 번 성공한 경험이 있으니까,

다시 성공할 날이 올 거라고.

 

지금은 힘들어서,

워낙 좋아하는 술을 많이 마신다.

걱정스럽지만 나는 술을 사다준다.

친구도 많지 않은 오빠가,

술이나마 친구로 삼을 수 있었던 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남자들의 스트레스나,

알코올 중독 등등 심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살짝 걱정스럽지만.


오빠는 우리 집의 가장, 이라는 자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알 수 있다.
우리는 서로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한 적 없으나,

가슴으로부터 넘치는 애정을 갖고 있으니.

오빠는 그것을 포기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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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10-08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글이네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10-09 09:27   좋아요 0 | URL

다행이네요:)
날도 추운데 글까지 싸나우면 대략 난감이지요.

비로그인 2007-10-08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오빠가 없어서 늘 손위 오빠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살거든요.
이렇게 살갑게 챙겨주는 오누이란 정말 복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남동생한테라도 잘해야 할텐데 남동생은 뭐든 어려보여서... ㅜㅜ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10-09 09:28   좋아요 0 | URL

오빠들 있어서 좋겠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어려서는 늘 대답이,
"많이 맞고 살았어."였답니다.

커서는 말은 안해도,
의지가 되는 것 같아요.

다락방 2007-10-2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선살을 발라주는 오빠라니.
저도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군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10-28 22:20   좋아요 0 | URL

아이쿠,
이거 오즈마님을 너무 사랑하시는 다락방님 아니세요?
오즈마님에 대한 님의 진한 애정표현은,
볼 때마다 흐믓한 거 있죠.
애정을 표현한다는 건,
아주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니까요.
머시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