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에 피씨로 브런치에 썼던 글을 하나 옮기고 저녁에 긴 회의에 참여했다. 밤 늦게 해당 글을 북플에서 확인하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갑자기 다시 로그인을 하라고 나왔다. 로그인을 하고 보니 북플 앱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나중에 계속 쓰다보면 다시 익숙해지겠지만, 지금은 메뉴가 완전히 바뀌어 무척 불편하다. 12시가 지나서 늘 그렇듯 ‘지난 오늘‘ 게시판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메뉴의 포맷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있어서 한참동안 못 찾았다. 나중에서야 결국 찾아냈다. 뭔가 더 좋아졌다는 느낌은 없고, 그냥 불편해졌다는 느낌만 든다.

닥터스

지난 오늘 메뉴에서 과거 오늘 내가 쓴 글들을 가볍게 살펴보다가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와 [닥터스] 를 언급한 부분을 읽었다. 통속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가장 대중적인 소설이자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중 하나일 것이다. 비슷한 이미지의 시드니 셸던이 많은 책을 낸 것에 비하면 이 작가는 딱 저 두 권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80년대 말에 당연히 저 두 권을 읽었었다. [러브 스토리]는 너무 뻔한 이야기라서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닥터스]는 역시 뻔한 이야기였음에도 이상하게 마음에 오랫동안 남았다. 그리고 문득 이 책을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에 이 책을 사서 읽었을까? 모르겠다. 서울로 가져온 책 중에 이 책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내 집 책장에는 없다. 혹시 부산에 이 책이 있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부산에 갈 때마다 책장에 있는 책들을 쓱 훑어보곤 하는데, 이 책은 없었다. 지금 이 책을 다시 구매해야 하나? 하는 마음에 닥터스 라고 검색하니 책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럴리가! 이렇게 유명한 책이, 한때 엄청난 베스트 셀러였던 책이 없다고? 정말 없었다. 다시 에릭 시걸을 검색해보니 [러브 스토리]와 그 후속작인 [올리버 스토리]는 나오는데 [닥터스]는 번역본이 없고 영어 원서만 나왔다.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책이 없으니 괜히 사람이 더 집요해졌다. 알라딘 앱을 열어서 중고책을 검색했다. 책이 나왔다. 당시에 1권, 2권 두 권으로 출간했었나보다. 1권은 중고조차 거의 없었다. 우주점이라 표현되는 전국 알라딘 중고 매장에도 거의 없었고, 판매자 중고로 표현되는 곳에만 물량이 좀 있었다. 2권은 우주점에도 다수 있었고, 판매자 중고에도 제법 많았다. 음, 우주점 중에서 1권과 2권을 모두 가진 매장이 있으면 구매할까 했는데 없었다. 각기 다른 매장에서 각각 따로 구매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쉽지만 구매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 나중에 도서관에서 찾아봐야겠다. 책 구매를 포기하고 나니 문득 그 당시에 라디오에서 자주 들었던 책 광고가 기억났다. [러브 스토리]를 쓴 세계적인 작가 에릭 시걸의 신작 이라고 말하는 여성 성우의 음성이 머리 속에서 재생되었다.

어긋나는 사랑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을 극장에서 봤을 때 서로 어긋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이게 영화에서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앞서 [닥터스]라는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도 그거였다. 서로 어긋나는 인연의 모습이 떠올라서. 언젠가 내가 소설을 쓴다면 안타깝게도 서로 이어지지 않는, 어긋나는 인연을 그려보고 싶었다. 원래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은 비뚤어진 마음을 늘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며칠 전에 한 친구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가 나를 부러워한다는 얘길 했다. ˝형은 결혼도 해봤고 아이들도 있잖아.˝ 좀 충격이었다. 결혼을 해봤지만, 현재는 이혼한 늙은 홀아비일 뿐이고, 아이들이 있지만 아이들은 이제 다 자라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게 뭐가 부럽다는 걸까? 물론 아직 결혼을 해보지 못하고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그 친구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나보다 한참 젊고 아직 얼마든지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나야말로 이젠 늙은이 처지라 더는 연애 경험을 하기 어려운데, 오히려 내가 그를 부러워해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을 쓰자. 내가 지금 현실에서 연애를 할 수 없다면, 내가 만든 세상 안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를 만들며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 골방에 처박혀 소설을 썼던 시절에도 그런 측면이 있었다. 내가 짝사랑했던, 현실에서는 이어지기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며 만든 캐릭터와 나를 투영한 주인공 캐릭터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그리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소설이라도 현실성을 감안해야지. 그래서 좋아하는 감정을 담고, 연애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구상하더라도 무조건 그냥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현실성이 없지 않은가. 시련이 주어지고 서로 어려움을 겪어야 하겠지,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어긋나는 것이 현실적인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젊은 시절에 썼던 단편들과 구상해놓고 써나가다가 결국 완성하지 못했던 장편들에서도 주인공들의 사랑은 대개 이어지지 못했었다.

고민들

누구나 그 시기에 혹은 그 나이대에 걸맞는 고민들이 있다. 이번에 아이들을 만났을 때 각자의 고민들을 들었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작은 아이가 약속 장소에 한참 늦게 왔다. 큰 아이와 나는 배가 고파서 먼저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지난 번처럼 이번에도 작은 아이는 우리가 음식을 다 먹고 나서야 도착하겠지 생각하며 천천히 먹었다. 큰 아이는 음식을 먹으며 재잘재잘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그런 와중에 같이 알바를 하고 있는 동료들의 태도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오래전부터 일을 대하는 내 태도가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이라 그로 인한 문제점들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아이도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이가 동료에게 짜증을 느끼는 부분들이 내가 과거 다른 동료들에게 느꼈던 지점들과 거의 같았다. 이런 성향도 유전일까? 아이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고 아이가 충분히 이야기 했다고 느낄 즈음에 내 과거 이야기를 전해줬다. 세상이 언제나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걸 늘 생각해야 삶이 조금 편해질 수도 있다. 이런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다.

큰 아이가 피곤하다고 집으로 들어가고 작은 아이를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아이가 집까지 걸어가고 싶다고 했다. 버스로 약 30분, 걸어가면 1시간 10분 가량 걸리는 거리였다. 지난 번에도 아이가 걷고 싶다고 해서 같이 걸어갔었다. 그때는 중간에 길을 좀 잘못 들어서 훨씬 더 오래 걸렸었다. 걸어서 아이를 데려다주고 내가 다시 전철을 타러 이동하면 막차 시간이 아슬아슬 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걸음이 빨라졌다. 작은 아이는 걸으며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도 산책하면서 여러 차례 들었던 이야기들이었다. 아이는 친구들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홀로 다른 학교에 진학해서 친구가 없었다. 새학교에서 새 친구를 만들고 싶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알고 있었다. 이번에 같이 약 한 시간을 걸으며 아이는 과거 친했던 친구들 이야기로 시작해서 지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외톨이로 지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친한 척해야 하는 친구 같지 않은 친구들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작은 아이에게도 현실이란 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길 해줬다.

두 녀석이 각자의 고민으로 나름 힘든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의 고민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나이는 이미 지났다. 아이들 스스로 고민들을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며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 나이 대에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고민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고민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지금 아이들에게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기를. 아이들이 힘들때 언제든 아빠 하고 부르면 내가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내 남은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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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8-18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플을 잘 안봐서 몰랐는데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된 모양이네요.

감은빛 2026-08-20 20:53   좋아요 0 | URL
시각적인 면에서는 좀 더 심플해진 측면이 있어요. 좌측에 있던 메뉴가 아예 없어지고, 하단 메뉴가 생겼는데, 그러면서 없어진 메뉴들이 좀 있었고, 어떤 메뉴가 어디로 갔는지 애매한 부분들이 많아서 좀 아쉽더라구요.

페크pek0501 2026-08-30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의 성장 시절에 또는 젊은 시절에 나의 고민에 대해서 또는 나의 진로에 대해서 상의할 상대가 없었다는 게 나쁜 일이었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영화 속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좋은 책 몇 권을 추천해 주는 장면을 볼 때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그땐 그저 내 나이 또래들과 놀기 바빴죠.^^

감은빛 2026-08-31 18:02   좋아요 0 | URL
젊은 시절에는 또래들과 노는 것도 중요한 일이죠. ^^
시기에 맞는 일을 잘 하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올해 3월 25일 브런치에 썼던 글이다. 작년부터 브런치 라는 곳에 글을 연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계정을 만들어 두었었다. 하지만 늘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못했고, 일단 어떻게든 시작은 해보자는 생각에 올해 2월에 여기 알라딘 서재에 썼던 글들을 거기다 옮기며 브런치에 첫 글을 올렸다. 처음 생각은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매체에 대한 이야기를 브런치에 연재처럼 쓰려고 했다. 연재라는 제약을 두면 나도 조금 더 열심히 글을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영상매체들의 유사성이나 대조되는 측면들을 비교하는 글과 원작이 있다면 원작과 비교하는 글을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늘 현실은 생각하는대로 되지 않는다. 브런치에 연재하고 싶다는 욕심과 달리 바빠서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고, 가끔 올린 글들은 모두 알라딘에 과거 썼던 글들을 가져간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2월부터 3월까지 몇 개 올리지 않은 글들 중에 브런치에만 쓴 글은 아래 글이 유일하다. 그리고 나는 약 5개월 동안 브런치를 잊고 살았다. 역시 익숙한 알라딘 서재가 제일 마음이 편했다. 브런치를 아예 포기하는 마음으로 아래 글을 알라딘으로 가져온다. 영상 매체들을 비교하는 글과 영상 매체와 원작을 비교하는 글은 시간이 날 때마다 여기 알라딘에 계속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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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도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열차를 떠올릴 수 있다. 007을 비롯한 무슨 첩보 액션 영화 같은 곳에서 아주 빠른 고속열차 안과 그 위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들을 보여줬던 것이 생각난다. 우연히 폭탄이 설치된 고속철도를 다룬 영화 두 편을 비슷한 시기에 보았다. 일본영화 [신칸센 대폭파]와 대만영화 [96분]이다. 두 영화 모두 설치된 폭탄이 열차의 속도와 연동되어 일정 속도 이하로 달리면 터진다는 설정이었다. 이 설정은 곧바로 영화 [스피드]를 떠올리게 한다.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의 이 영화는 1994년 개봉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려야 터지지 않는 폭탄이 설치된 설정의 고속철도 영화가 저 [스피드] 보다 더 재미있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고속철도는 철도 위를 달리는 열차이다. 그것도 고속으로. 이미 고속으로 달릴 길이 보장된 고속철도에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려야 한다는 제약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다. 반면, 영화 [스피드]에서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려야 터지지 않는 폭탄이 설치되었던 건 버스였다. 버스는 도로를 달리고, 도로는 다른 차량으로 막혀 속도라 떨어질 확률이 높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 면에서 이 두 영화는 일단 기본 설정에서부터 30년 전 영화보다 더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물론 열차는 정차역을 만나면 멈춰야 한다. 다만, 고속철도는 애초에 일반 철도보다 정차역의 수가 적다. 그리고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비상 상황이라면 정차해야 할 역을 지나치는 것이 물리적인 어려움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고속철도인 KTX 이야기를 아주 조금만 하고 본론인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자. 우리나라 고속철도 사업을 처음 입안한 것은 학살자인 전두환의 친구이자 그 다음 대통령인 노태우 시절이었다. 처음 계획은 경부선 철도 옆으로 나란히 고속철의 선로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구 경북 출신이었던 전두환과 노태우 세력은 대구에서 경주를 거쳐 부산으로 가기를 원해서 경주역을 집어넣었고, 덕분에 경부선 선로와 다른 노선으로 설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경주에서 부산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천성산과 금정산을 지날 수밖에 없는데, 이 큰 두 산을 관통하는 아주 긴 터널을 뚫어야 하기 때문에 경부선 옆으로 나란히 달리는 노선과 달리 많은 자본과 시간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양산을 대표하는 천성산과 부산을 대표하는 금정산은 그 자체로 큰 환경적, 생태적 가치를 가진 명산이기 때문에 두 명산을 뚫어 고속철도를 건설한다는 발상 자체가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노태우 시절에 이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제 본격적으로 공사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기였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노무현은 공약으로 고속철도 사업 백지화를 공언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된 후에는 공사가 계속되는 상황을 방치했고, 결국 천성산의 내원사와 금정산의 범어사를 중심으로 한 불교계에서 대대적인 반대 운동에 나섰고, 크고 작은 환경단체들이 힘을 모아 고속철도 사업 강행으로 인한 환경파괴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 정치적인 맥락으로 억지로 끼워 넣었던 경주를 제외했다면 답은 간단했을 것이다. 기존 경부선 옆으로 고속철도를 설치했다면 시간도 사회적인 자본도 모두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다 보았듯이 공사를 강행하여 개통했다. 그러면 고속철도 설치로 인해 우리 국민들은 더 편해졌는가?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나? 글쎄, 잘 모르겠다. 일단 철도공사는 KTX 개통 후에 기존 경부선의 열차들을 대폭 줄이고, KTX 만 대량 편성했다. 사실 선로 자체가 분리되어 있는데, 왜 고속철도를 개통했다고 해서 기존 일반 열차들의 편성량을 줄이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런 짓을 강행했다. 그리고 개통 초기 KTX 선로는 본인들이 자랑삼아 말하는 300 kmh로 달릴 수 있는 선로만 깔렸던 것이 아니었다. 고속열차가 300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구간은 일부 구간뿐이었고, 특히 대구 이후 부산까지는 경전선 선로를 깔아 뒀기 때문에 설계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나중에 한참 후에야 모든 구간을 300kmh 가 가능하도록 개선했지만, 이때는 여기저기 더 많이 생긴 정차역들이 문제였다. 실제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예매해 보면 철도공사의 말대로 2시간 40분에 부산에 도착하는 열차 외에 다른 정차역들 때문에 3시간 이상 걸리는 열차들도 많다. 25년 9월 철도경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실제 KTX의 평균 속도는 시속 300km가 아니라 시속 165km라고 한다. 고속철도를 어렵게 만들어 놓고도 고속으로 운행을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잠시 우리나라 고속철도 설치 과정의 문제와 운행의 문제를 아주 간단하게만 살펴봤는데, 이제 본론인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우선 [신칸센 대폭파]는 같은 제목의 과거 영화를 리메이크 한 영화이자, 그 후속작의 성격도 겸한 영화라고 한다. 작중에서 주요 인물이 과거 영화 시점과 관련한 사람으로 나온다. 1975년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과거 작품과 이번 작품의 연결고리를 느낄 수 있겠지만, 일본인이 아닌 해외에서 저 옛날 영화를 본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과거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이 영화를 보는 것에 지장은 없었다. 그냥 특정 인물이 과거 사건에서부터 시작된 어떤 특정한 상황 때문에 문제가 되어, 이번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흐름만 이해하면 상관없는 설정이다. 다만 일본 내에서 과거 영화를 보았던 장년층들은 이 영화를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겠지.


영화의 첫 장면은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탐방온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인공인 타카이치 카즈야가 차장으로서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이 배역을 맡은 배우는 쿠사나기 츠요시 라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초난강으로 불리는 인기 있는 가수라고 나온다. 나는 이 사람이 국내에서 활동하던 당시에는 티비를 안 보고 살아서 이런 사람이 활동했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 배우를 오랜만에 보아서 반갑다는 평들도 제법 많더라. 암튼 학생들에게 설명을 마친 후에 질문을 받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물었다. "왜 차장이 되셨나요? 보통은 기관사를 꿈꾸지 않나요?" 라고. 음, 제법 날카로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으로서 고속철도 승무원을 꿈꾸는 거라면 대개 기관사를 꿈꾸겠지. 하지만 현실에서는 차장을 비롯해 열차 내에서 승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챙기는 승무원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기관사를 꿈꾼다고 누구나 기관사가 될 수는 없는 법이겠지. 하지만 이 질문에 쿠사나기 차장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답을 한다. "서로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같은 방향으로 갔다가 도착하면 흩어지는 뒷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나?" 차장이 된 이유를 물었기에 답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현실에서 과연 이런 답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다음 장면에서 젊은 차장이 다가와 학생들 상대하시느라 수고하셨다고 하면서 다음에는 본인이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맡겠다고 말했는데, 여기에 아주 정색을 하면서 대하는 모습도 좀 이상했다. 초반에 이 등장인물이 원칙주의에 따라 철저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일 것 같은데, 그냥 썩 좋지 않은 상관이자 선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이 두 차장이 경례를 하는 장면도 이상했다. 군인도 아닌 철도 승무원들이 경례를 하나? 일본은 그런가? 우리나라도 설마? 아니 장난처럼 경례를 하고 그를 받아줄 수는 있겠지만, 해당 장면은 장난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마치 군인인 것처럼 아주 진지하게 경례를 하고 받아주는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아오모리 역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열차에 타서 자리를 잡는 모습들이 차례로 나온다. 이 영화처럼 등장인물이 많은 영화라면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짧은 등장 장면에서 해당 인물의 주요한 특징들을 보여줘야 하니까.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역시 여성 정치인이었다. 아마도 중의원인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성 보좌관과 함께 열차에 탔다. 그런데 그의 앞자리에서 뒤돌아 이 의원을 유심히 보던 아이가 갑자기 "마마카츠" 라는 단어를 말했다. 어! 최근에 본 일본 영화와 드라마에서 "파파카츠" 라는 단어를 계속 들었었다. 그리고 2월 중순에 알라딘 서재에 쓴 [내 몸을 빌려드릴까요] 의 서평에서도 파파카츠를 비롯해 렌탈 여친, 소프랜드, 딜리버리 헬스 등 불법과 합법을 교묘히 오가는 일본의 성매매 문화에 대해 언급했었다. 파파카츠 라는 단어는 일본 학생들의 방과 후 활동을 말하는 부카츠 라는 단어에 중년 남성을 뜻하는 파파를 붙여 만든 것으로, 젊은 여성이 나이 많은 중년 남성들에게 성적 만족감을 주고 경제적 혜택을 얻는 것을 말한다. 그게 미성년자라면 원조교제인 것이다. 여기서 파파를 마마로 바꿨으니, 이 여성 정치인은 젊은 남성과의 성추문에 휩싸여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이 정치인이 이후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빌런 혹은 민폐 캐릭터가 될 것인가? 상식적으로 행동하여 이미지 쇄신을 꾀할 것인가? 나는 후자에 걸고 영화를 계속 봤다. 이따가 배역에 대해서 따로 다루기는 하겠지만, 카가미 유코 라는 중의원을 맡은 배우는 오노 마치코 배우였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이기도 하고 아는 얼굴이라 일단 반가웠다.


열차가 출발하는 장면에서는 각 역할을 맡은 직원들이 모두 손가락으로 확인 작업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관제실의 관제사도 화면을 보며 주로 쓰는 손(아마도 오른손) 검지를 오른쪽 관자놀이에 갖다 대었다가 해당 공정의 특정 부위에 손가락을 움직여 지칭하는 작업을 하고, 이후 역무원이 승강장에서 같은 동작을 취한다. 다음으로 주인공인 다카이치 차장이 여러 차례 이 동작을 취한다. 이어서 기관사가 이 동작들을 취하며 열차를 출발시킨다. 마츠모토 치카 기관사는 아마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다. 여기서 젊은 여성 기관사와 중년의 남성 차장을 배치한 의도가 읽힌다. 맨 처음 언급한 [스피드]의 산드라 블록이 떠오리기도 하고. 자, 드디어 열차가 출발했다. 그리고 감독은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는다. 열차 출발 직후 범인은 관제실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폭탄을 설치했다고 알린다. 그리고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폭탄을 다른 열차에 설치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제한 속도 이야기를 하는데, 다음 장면에서 그 다른 열차가 제한 속도(아주 낮은 속도)를 넘기자 폭발이 일어난다.


다음은 일본의 관료주의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관제실에 고속철도 회사(JR 동일본) 간부, 관할 경찰, 정부 관계자와 총리실 보좌관 등이 모인다. 이런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 중에 최고는 아마 안노 히데아키의 [신 고질라]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 이야기로 빠질 여유는 없으니 일단 넘어가자. 암튼 이후로 관제실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아주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정말 거의 마지막까지 한 차의 오차도 없이 예상했던 그대로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총리실 보좌관은 딱 생긴 대로 무례하게 굴며, 책상머리 공무원의 한계를 보여주다가 나중에 각성하여 진정성을 보이고, 형사들도 이런 영화 특유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담당 관제사와 관제소 책임자(찾아보니 종합지령소 총괄 지령장이라고 나온다.) 역시 딱 필요한 만큼의 역할을 하고 적당한 재미와 적당한 감동을 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상했던 틀대로 흘러가는 것은 열차 안에서의 장면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며 폭탄 설치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처음 등장했던 승객들이 딱 외모와 성격에 걸맞은 행태를 보인다. 민폐 캐릭터가 나타나고, 이를 말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차장이 나타나 수습을 하고 기관사는 위기를 겪고 등등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대부분 인지도도 있고 연기력도 괜찮은 배우들이고 그에 걸맞은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1975년 개봉작과는 달리 이번에는 JR 동일본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 현실적이고 실감 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특히 하이라이트라고 부를 수 있는 선로를 갈아타면서 열차가 스치는 장면은 아주 멋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인 특유의 직업윤리를 보여주는 장면들, 위기 상황에서 기관사, 차장 등 승무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런 장면들 때문에 JR 동일본이 적극적으로 협조를 한 것이겠지. 아, 그리고 승객 구출용 열차를 출동시켜 구출 작전을 펼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모두 구출하지 못하고 일부가 남을 수밖에 없도록 설정하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기는 했다.


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은 역시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부분이다. 일단 범인의 정체가 너무 어이없다. 여고생이라니! 수학여행 일정 중 하나로 견학을 온 여고생이 언제 어떻게 이 열차에 여러 개의 폭탄을 설치할 수 있을까? 속도 감지 장치는 어떻게 설치했을까? 이 열차뿐 아니라 초반에 아주 느린 속도에서 터진 화물열차에는 또 언제 폭탄을 설치했을까? 영화 중반에 폭탄을 제조한 기술자는 등장하지만, 폭탄을 실제로 설치한 다른 공범의 존재는 나오지 않는데, 이 고등학생이 혼자 이걸 다 했다고? 아니, 여성이 문제가 아니라 고등학생이 혼자 했다는 설정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1975년 개봉작을 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이 후속작은 열차 승객들의 모습에서 현재의 사회를 잘 보여줬다고 본다. SNS 스타와 이슈만 쫓아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유튜버 등이 등장하고, 실시간으로 빠르게 정보가 유통되는 모습들을 잘 담았다. 너무 전형적인 모습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나중에 한 50년 후에 또 후속작이 나온다면, 그때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찾아보며 저 시대 사람들은 저렇게 살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될 수 있으리라.


자, 이제 배우들을 알아보자. 아, 먼저 감독부터. 히구치 신지 감독은 유명한 애니메이션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신 고질라] 영화에도 안노 히데아키와 함께 참여했는데, 이 영화를 안노 작품이 아니라 히구치 신지 작품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이 감독 영화 중에는 저 [신 고질라]와 [일본 침몰] 이렇게 둘을 봤었다. 앞서 말한 주연 배우인 쿠사나기 츠요시는 아이돌 출신이라고 한다. 드라마와 영화도 많이 찍었던데, 내가 본 것은 [일본 침몰] 밖에 없었다. 이번에 맡은 차장 역할은 전형적인 일본 직업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연기는 아주 좋았다. 예전에 [일본 침몰]을 대충 봤었는데,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츠모토 치카 기관사는 논이라는 배우가 맡았다. 이 영화에서 열차 내 상황은 대체로 객실에서 벌어지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어서 기관사의 출연 분량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속도가 떨어지면 폭탄이 터진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속도를 조절하는 장면 등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열차가 출발하는 장면과 폭탄이 설치된 후에 자동운행장치를 해제하는 장면 등에서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붙였다가 앞으로 내뻗는 동작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배우도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던데, 내가 본 것은 드라마 [미스킹] 밖에 없었다. 일본식 장기인 쇼기(将棋)를 다룬 드라마로 이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고, 돌풍을 일으키는 장기 기사로 꽤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다. 위에서도 언급한 카가미 유코는 오노 마치코 배우가 연기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안정된 연기를 보여줬다. 그리고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드리마 [아수라처럼] 에서도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4자매 모두 좋은 배우들이 맡아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오노 마치코가 맡은 둘째였다. 앞으로도 믿고 볼 수 있는 좋은 배우라 생각한다. 토도로키 미츠루 라는 기업인이자 유명 베스트셀러의 저자이자 인플루언서로 나오는 배역은 카나메 준 배우가 맡았다. 이 배우도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한 유명 배우라고 한다. 영화 [킹덤] 시리즈에 계속 나왔다고 되어 있는데, 솔직히 워낙 분장이 심한 영화라 누구인지 기억할 수가 없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도 출연했다는 정보가 있는데, 주요 인물이 아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일본 영화 시리즈와 한국 영화를 엮어서 글을 써볼 생각도 있는데, 나중에 다시 볼 때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관제실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는 총괄 지령장 카사기 유이치는 사이토 타쿠미 배우가 맡았다. 역시나 유명한 배우로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나왔던데, 내가 기억하는 모습은 [실: 인연의 시작] 하나밖에 없었다. 폭탄을 설치한 범인인 고등학생 오노데라 유즈키는 토요시마 하나가 연기했다. 아역 배우로 시작한 이 배우도 많은 작품에 출연했더라. 내가 기억하는 건 [치히로 상] 나오는 여고생의 모습이었다.



이제 대만 영화 [96분]을 살펴보자. 제목인 96분은 타이베이에서 가오슝까지 실제 고속열차 운행 시간을 말한다고 한다. 대만에 대해 별로 관심 없이 살아서 지리를 전혀 몰랐었는데, 최근 대만 드라마와 영화들을 보면서 조금씩 지리 감각이 생기고 있다. 타이베이는 대만 북쪽의 제일 큰 도시이자 수도이고, 가오슝은 남쪽에서 큰 도시인 것 같다. 대만 지도를 보면 서쪽 해안 쪽만 개발이 된 것으로 보이고, 섬의 동쪽에서는 큰 도시가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아마 지형의 영향 탓이겠지. 암튼 우리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고속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로 일종의 '부산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과거의 폭탄 테러 사건에서 폭탄을 직접 해체하는 폭탄처리반 특수 요원인 주인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아, 아니, 그 전에 터널에서 어떤 사고가 난 현장에서 당시 현장에 투입된 인력이 한계가 있으므로 우선 터널 밖의 생존자 먼저 구한다는 입장을 발표하는 방송 장면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한참 전에 이 두 영화를 봤었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두 영화를 다시 봤었지만, 그 후로 또 갑자기 바빠져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시 영화를 보고 글을 쓸 수는 없어서 일단 쓰고는 있는데, 디테일이 기억이 안 난다. 암튼 이 장면이 나중에 범인의 범행 동기가 되는데, 영화를 두 번이나 보고도 이해가 안 가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데, 얼마나 크든 규모에 상관없이 사고가 나면 수습하기 위해 공권력이 투입이 되어야 하고, 그들은 적절한 전략을 세워 최대한 안전하게 최대한 많은 생존자를 구출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전략을 너무 경솔하게 언론에서 떠드는 모습은 너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과연 대만에서 그럴까? 아니라고 본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사건은 세 개다. 맨 처음 등장하는 터널 사고, 두 번째는 극장과 백화점에 동시에 폭탄이 설치되어 극장은 무사히 해체했지만, 백화점이 터져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 그리고 현재 벌어지는 고속열차에 폭탄이 설치된 사건. 이 영화의 구조는 단순하다. 과거의 사건에서 중요한 사람을 잃었던 범인이 경찰의 무능과 비밀을 파헤치고 국민들에게 드러내기 위해 폭탄을 설치하는 함정을 판 것이다. 그 첫 시도가 극장과 백화점 동시 폭탄 설치 건이었는데, 경찰은 하나만 막고 다른 하나는 막지 못해(영화 후반에 밝혀지지만 못 막은 것이 아니라, 막을 수도 있었지만 폭발이 일어나는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음) 엄청난 인명 피해가 벌어졌다. 당시 경찰은 사건을 조작하여 폭파범이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발표했지만, 진범이 아니었다. 진범은 다시 함정을 판 것이었다. 여기서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인명이 희생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맨 처음 터널 사고에서도 터널 안에 갇힌 생존자들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입장과 현실적으로 거기까지는 무리라 우선 터널 밖의 생존자들부터 구하겠다는 입장. 그리고 두 번째 사건에서 이미 시민들은 대부분 대피하고 소수의 경찰들이 남아 있던 극장과 아주 많은 시민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던 백화점. 둘 중 하나가 무조건 희생되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두 개의 고속열차에 설치된 폭탄. 하나는 대다수의 승객이 내렸지만, 주인공인 폭탄해체 전문가가 타고 있고, 다른 하나는 주인공의 가족을 포함해 아주 많은 승객들이 타고 있는 상황. 이번에도 둘 중 하나는 무조건 터진다고 하면, 어느 열차를 포기하고 어느 열차를 살릴 것인가?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과연 옳은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하고 운전자가 없이 무인으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 질문이 자주 보인다. 만약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갈림길을 만나 무조건 둘 중 하나로 핸들을 꺾어야 한다면 인공지능은 어떤 선택을 하도록 설정해야 하는가? 직접 설정하지 않는다면 과연 인공지능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람이라면? 당신이라면? 차를 바로 멈출 수는 없고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면 두 명이 죽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열 명이 죽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조건 다수를 살려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소수는 그냥 죽어도 되는가?


이 영화의 핵심은 이런 내용일 텐데 사실 썩 그렇게 흥미롭게 풀어내지는 못했다고 본다. 일단 앞서도 터널사고 당시 방송 장면을 말하면서 언급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실에서 벌어질만한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하다못해 작중의 어떤 세계관에서라도 있을만한 일이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서 몰입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열심히 노력했다. 그냥 오락 영화로는 썩 나쁘지는 않다.


대형 참사가 벌어진 후 추모제를 여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 무안 공항 참사도 잊지 말아야지. 추모제 참가자들이 큰 노란 리본을 매고 있어서 특히 세월호 참사 생각이 많이 났다. 작중 7살 어린이가 희생됐기 때문에 범죄자의 편에 동조하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 사연을 보면서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가만 보면 신파적 요소들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은 무조건 관객을 울리기 위해 만든 것이고.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폭탄이 터지는 조건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스피드]와 앞서 살펴본 [신칸센 대폭파]는 단순했다. 특정한 속도 이하로 떨어지면 터지는 것이었다. [신칸센 대폭파]에서는 시속 100킬로미터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폭파한다는 상황이었기에 시속 300을 달릴 수 있는 열차를 120 정도에 맞춰 달리도록 만들어 시간을 벌면서 어떻게든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100 이하는 폭발하기에 정류장에 설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속도가  줄어들면 터지기는 하는데, 그 속도가 딱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영화를 두 번이나 봤는데도 정확하게 그 조건이 뭔지 알 수 없다. 대신 영화에서는 유명하고 유능하다는 물리학 강사를 등장시켜서 그가 그 속도를 계산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폭탄이 설치된 두 열차 중 하나의 속력을 가능한 한 줄여서 약 시속 30킬로미터로 달리면서 승객들이 열차에서 뛰어내리라고 안내한다. 그 와중에 잘 뛰어내려서 별로 다치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떨어지면서 다치고, 심지어 사람들이 미는 와중에 밟히는 사람들도 생긴다. 속도를 줄이는 와중에 사람들은 앞다퉈 출구 쪽으로 나가려고 밀고 난리가 나고, 사람들이 넘어져 밟히고 깔리는 장면은 이태원 참사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영화를 멈춰야 했다.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하려면 특정한 사건이 벌어지는 핵심 원인은 단순해야 한다.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야 그만큼 더 집중할 수 있다. 관객들이 모두 물리학자가 아닌데, 물리학자를 등장시켜서 폭탄이 폭발할 속도를 계산한다고? 어느 누가 그런 장면을 보고 몰입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물리학 강사는 폭탄을 설치한 범인도 아닌데, 어떻게 그 원리를 그렇게 잘 아는지, 그렇게 자신있게 장담할 수 있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설명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두 열차를 나란히  달리게 만들어서 주인공이 다른 열차로 건너가는 장면도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서는 정말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쯤되면 물리 법칙 따위 다 무시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시속 30으로 달리며 많은 승객들이 내린 이 열차에는 이젠 미처 뛰어내리지 못한, 뛰어내릴 수 없는 노약자들만 남아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지루해지기 시작하는데, 영화에서는 이걸 액션 장면을 커버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액션도 그닥 볼만하다고 볼 수 없다.


이쯤에서 이 두 영화를 비교하며 작품 속 설득력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이 두 영화 모두 두 개의 열차가 나란히 같은 속도로 달리며 무언가를 건네는 장면이 나온다. [신칸센 대폭파]에서는 승객을 구출하기 위한 기자재들을 담은 짐을 옮기는 것으로 나온다. 시속 100 이하로 줄일 수 없기 때문에 속도감과 함께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잘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렇게 두 열차가 같은 속도로 나란히 달리게 하기 위해 관제소에서 관제사가 집중해서 명령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반면 [96분]에서는 주인공인 사람이 나란히 달리는 열차 사이를 뛰어서 건너간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관제소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관제사의 지시도 없이 두 열차가 같은 속도로 나란히 달릴 수 있나? 불가능하다고 본다. 설득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아, 앞서 이 영화는 선택의 문제를 강요한다고 했었다. 마지막 장면으로 가면 각각 폭탄이 설치된 두 열차에 두 쌍의 부부가 각각 나눠타고 있다. 자, 선택해. 누구를 죽일거야? 라고 묻는 느낌이다. 맨처음 주인공 부부(신혼여행 이야기는 나오는데, 결혼식 얘기는 없는 걸 보면 사실혼 관계일지도)가 탔던 열차에는 주인공의 아내가  있고, 물리학 강사가 있다. 주인공이 건너간 열차에는 주인공과 물리학 강사의 아내가 있다. 이렇게 일부러 설정해 놓고 하나가 터지면 하나가 산다는 설정은 참 잔인하다. 이 영화를 두 번째 볼 때에는 참 할 말이 많았는데, 막상 시간이 좀 지나서 글을 쓰려고 보니 더 디테일을 따지고 드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어쨌거나 각본가와 감독은 주인공이 죽어서 속죄하는 그림을 원했다고 본다. 결국 영웅의 희생으로 나머지 사람들이 살아남는 모습으로 끝난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동안 좀 묘한 장면이 작은 화면에 펼쳐진다. 터널에서 무용수 아내를 잃은 진범의 존재 외에 공범이 있는 것처럼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이건 뭘까? 후속작을 예고하는 걸까? 해석해보려고 두어 번을 돌려봐도 알 수 없었다.


감독은 홍쯔쉬안이라고 한다. IMDB를 보면 5편의 영화와 1편의 드라마를 연출한 것으로 나온다. 각본을 맡은 것은 3편이었다. 이 영화 외에 본 것은 없었다. 주인공인 송캉런(宋康任 / 작중에서 아런 阿任 으로 불림)은 린바이홍(林柏宏 / 우리말로는 임백굉)이 연기했다. 이 배우가 그 배우였는지 전혀 몰랐는데, 찾아보니 인상적으로 보았던 영화 [괴짜들의 로맨스]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저번에 글을 썼던 영화 [숨통을 조이는 사랑]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와! 확실히 연기는 잘하는 배우였구나. 영화가 별로여서 그렇지 배우들은 열심히 연기를 한 것이 확실히 맞다고 느낀다. 주인공의 연인이었다가 아내가 된 황신(黃欣)은 송윤화(宋芸樺) 배우가 맡았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 라는 영화가 유명하다고 하고, 그 외에도 여러 영화와 드라마를 찍었더라. 류카이 라는 물리학 학원 강사는 왕보제(王柏傑)가 연기했다. 이 배우는 저번에 소개한 영화 [백만 팔로워는 추리중] 이란 영화에도 나왔었다. 그때도 썼지만, 드라마 [화등초상]에서 보았었다. 또 최근에 본 영화 [역병]에도 출연했더라. 신기하게 내가 최근에 본 세 개의 영화에 출연했다. 주인공 아런의 상관으로 주인공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었던 사람이자, 폭발사건을 조작해 마치 범인이 현장에서 폭발에 휩쓸려 죽은 것처럼 조작한 경찰 그리고 막판에 그 모든 책임을 지는 것처럼 비참하게 죽는 리제 역은 리리런 배우가 맡았다. 이 사람도 왕보제 배우와 함께 [백만 팔로워는 추리중]에 나왔었다.


단순히 오락 영화로만 접근한다면 이 두 영화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폭탄이 설치된 고속 열차 이야기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이야기일테니까. 다만 사건을 다루는 디테일과 등장인물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활용하는 측면에서는 일본 영화 [신칸센 대폭파]가 훨씬 낫다고 본다. 그리고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명확하고 단순한 구조라서 훨씬 더 몰입할 수 있다고 본다. [96분]은 감정적으로 사람을 많이 뒤흔드는 영화였다. 만약 오락 영화도 즐기며 적절한 감동과 눈물을 원한다면 이 영화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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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8-17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천성산 도룡뇽에게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가냘프나 눈빛이 형형하던 지율 스님도 떠오르네요.

감은빛 2026-08-20 20:55   좋아요 0 | URL
지율스님께서 단식하시던 그 시절에 저도 그 현장에 있었어요.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투쟁이었습니다.
 


시간에 쫓기는 꿈


뭔가 마감일이 되면 시간에 쫓기는 꿈을 종종 꾼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한참 전에 기고문 하나를 요청 받았었다. 마감일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휙 지나서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목요일 밤에 글을 쓰고 금요일에 한번 더 살펴보고 수정한 후에 보내야지 생각했었다. 목요일 저녁에 일을 마치고 글을 쓰려고 사무실에 갈 생각이었는데, 그날 회의가 하나 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무실에 가면 무조건 회의에 참여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 회의는 내가 꼭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고, 회의에 참여하느라 글을 못 쓰면 이래저래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피로가 확 몰려왔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 씻고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새벽에 깨서 사무실에 갈까 더 잘까 하는 고민을 한참 했는데, 결국 잠을 선택하고 말았다. 최근에 일이 좀 힘들었고, 계속 잠이 모자라서 많이 피곤했다는 생각을 하며 잠을 선택한 나 자신을 변호했다. 


금요일 밤에 무조건 글을 써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금요일 저녁 회의가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 집중해야 할 회의였고, 머리를 많이 써야 할 회의라서 좀 힘들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너무 배가 고팠고, 피로감이 컸다. 회의 중간에 한 친구 연락이 왔었다. 회의 중이라는 정해진 문장을 문자로 보냈는데, 나중에 답이 왔다. 추어탕 먹으러 가자고 할 생각이었다고. 회의가 너무 늦게 끝나서 추어탕을 먹으러 갈 상황은 안 되겠지만, 일단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약 그 친구가 전화를 받으면 그 친구 집으로 가서 놀고, 만약 전화를 안 받으면 사무실에서 글을 써야지 생각했다. 첫번째 전화는 받지 않았다. 그래 글을 써야 해. 그런데 너무 배가 고팠다. 편의점에 가서 김밥이라도 사올까 싶었다. 편의점으로 걸어가면서 두번째 전화를 걸었다. 이 친구가 전화를 받으면 친구 집에서 맛있는 걸 먹고, 안 받으면 그냥 김밥을 먹으며 글을 써야지 생각했다.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편의점에 거의 다 와서 잠시 고민했다. 마감일은 토요일이다. 토요일 낮에 한 세시간 정도 집중해서 글을 쓰면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긴 회의도 했고, 너무 힘든 하루였으니 그냥 맛있는 것 먹고 놀자. 이런 날 편의점 김밥이라니.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 번 더 전화를 걸었는데, 이번에는 받았다. 본인 집으로 오라고 뭔가 만들어 놓겠다고 했다. 얼른 짐을 챙겼다.


아침 나절에 잠을 깼다가 너무 피곤해서 다시 잠이 들었다. 그때 몇 개의 꿈을 꾸었는데, 그 중 두어 개가 마감에 쫓기는 꿈이었다. 마감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나는 빈 문서 창을 두고 단 한 줄도 못 쓰고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몰라도 글을 쓸 수 없었다. 결국 기고문을 청탁했던 분에게서 왜 아직 글을 안 보내느냐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괴로워하다가 잠에서 깼다. 꿈에서 깨고 나서 생각이 들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일인가? 원고료 언급이 없었으므로 아마 원고료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에 보내는 기고문이라 잘 써야 한다. 그냥 대충 쓸 수는 없었다. 대략 이런 흐름으로 써야지 하는 얼개는 잡아 놓았었다. 그런데 폰으로 미리 조금 써보려고 하니 미리 구상했던 아이디어가 생각보다 별로라고 여겨졌다. 아마 여기에서부터 스트레스가 시작된 것 같다. 


암튼 점심 무렵에 사무실에 나왔고, 두어시간 동안 여러 자료들을 뒤지며 다시 글을 어떻게 구성할 지 고민했다.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뚝딱 해줄건데 뭐 그리 힘들게 하냐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지만, 내 자존심은 인공지능에게 글을 맡기는 걸 허락할 수 없었다. 맨 처음 구상했던 아이디어로 글을 한 번 써봤는데, 역시나 뭔가 잘 들어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대로 쭉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다. 거의 쉬지 않고 두드려서 분량을 채웠는데, 다시 읽어보니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 글을 그대로 두고 다시 맨 처음 구상했던 글을 열었다. 이건 이거대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감 시간은 점점 다가왔고, 다른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결국 완성한 글을 보내기로 했다. 


외국인이 되는 꿈


며칠 전 꿈에서 나는 일본인이었다. 게다가 젊은 사람이었다. 꿈에서 거울을 보았는데, 젊고 잘생긴 남성의 얼굴이 보였다. 꿈에서 깨면서 그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꿈 속의 친구들이 나를 일본인 이름으로 불렀다. 느낌으로는 흔한 일본인 이름 같았다. 그 거울을 보는 장면에서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꿈 속의 나는 친구들과 어딘가로 여행을 떠났었다.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기념하는 여행 같았다. 아마도 졸업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여행지에서 혼자 산책을 나갔다가 낯선 여성과 마주쳤고, 친구들을 버려두고 그 여성과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었을 때 내가 일본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적은 많았지만, 외국인이 되었던 기억은 없는 것 같았다. 확실하지 않았지만 명확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그래서 또 생각해봤다. 젊어지거나 어려진 꿈은 많았다. 이건 기억나는 것만 해도 수십번이었다. 그럼 혹시 성별이 바뀌어 여성이 되는 꿈을 꾼 적은 없었나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것도 없는 것 같았다. 역시 명확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외국어를 듣고 말한 기억은 제법 있었다. 영어가 제일 많았고, 일본어와 중국어도 있었다. 인도네시아어로 대화를 나눴던 꿈도 기억났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인이 되었던 꿈에서는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 같았다. 예전에 외국어를 사용했던 꿈에서는 우리말을 쓰다가 특정한 시점에서만 외국어를 사용했고, 그게 외국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했었다. 이번에 일본인이 된 꿈에서는 나 자신이 일본인이라서 굳이 일본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걸까? 내가 그러니까 일본인인 내가 알아듣고 말할 수 있으니 한국인인 내 기준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여기서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우에노 주리 등장 장면이 생각난다. 주인공 우진은 자고 일어나면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인종, 성별, 연령 모두 변한다. 할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어린아이가 되기도 하고, 여성이 되기도 하며, 외국인이 되기도 한다. 어느날 일본인 여성이 된 우진을 여주인공 이수가 찾아오는데, 이때의 우진을 맡은 배우가 우에노 주리였다. 상대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안 이수는 일본어로 묻는데, 오히려 우진은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또 말은 일본어로 했다. 말할 때는 일본어로 하고, 들을 때에는 한국어로 들어야 한다. 이 설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우진은 한국인이고 일본어를 공부한 적이 없어서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우진이 일본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한국어로 말하지 못화고 일본어로 말한다. 이게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초능력자가 되는 꿈


이건 몇 달 전에 꾸었던 꿈인데, 당시에 글을 써야지 생각했었지만, 잊고 안 썼던 것 같다. 꿈 속의 나는 아주 짧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었다. 강풀 작가의 타이밍이란 만화에서 강민혁 이라는 인물이 10초 전으로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나오는데 아마 그 인물에서 영향을 받아서 꿈 속의 능력이 나온 것 같다. 정확히 10초라는 느낌은 아니었고, 그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호감이 있는 어느 여성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뭔가 말이 계속 꼬이고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말실수를 할 때마다 계속 시간을 되돌려서 벌써 수십번을 말을 걸고 있는 중이었다. 단순히 내 말실수 뿐 아니라 말을 하는 중에 이 여성이 거절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그냥 확 시간을 돌려버렸다. 그래서 같은 장면에서 수십번째 반복 중이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어떻게 말을 해도 이 여성은 계속 거절할 거라는 것을 깨닫고 시간을 되돌리길 포기했다. 예상대로 여성은 거절했고 나는 깨끗이 승복했다. 이 장면은 아마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과거 어느 특정한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시간의 제한이 없고 횟수의 제한도 없다. 이 주인공이 잠깐 짝사랑 했던 먼 친척(?)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거절당하자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신청하는 장면이 나왔었다. 


특정한 시점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다는 능력은 비디오 테이프나 카세트 테이프를 뒤로 감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 이렇게 쓰면 비디오 테이프와 카세트 테이프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 느낌을 알 수 없겠구나. 영화 [테넷]의 인버전과는 약간 비슷한 느낌일 수 있지만 개념 자체가 다르기는 하다. 


이 능력은 방금 저지른 결정적인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그게 실수라는 것을 깨닫는 시점이 중요할 것이다. 너무 늦게 깨달으면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지나버릴테니. 그리고 실수를 바로 잡으려 되돌렸음에도 다른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꿈 속 데이트 신청 장면처럼 계속 돌리고 또 돌려도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거겠지. 생각보다 썩 좋은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런 능력이 있다면 써먹을 일이 많을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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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8-16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의식에 각인되어 있던 기억은 몇 십 년이 지나도 꿈을 통해 가끔 찾아오나 봅니다. 사회 초년생때 긴장하고 진행한 프로젝트라든지, 연애할 때 고백한 기억이라든지, 돌이키고 싶은 실수의 순간이라든지...가끔 꿈에서 그 아쉬웠던 순간이 우리가 바라던 모습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아마도 그때 우리는 자면서도 빙그레 웃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 기억의 수정이 또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지도 모르겠군요.

감은빛 2026-08-20 20:56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잉크냄새님. 오래된 기억들은 시간이 많이 지나도 계속 꿈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조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나는 어려서부터 글을 쓰고 싶어 했을까? 무슨 근거로? 무슨 자신감으로? 뭐가 그리 잘나서? 이상하게 어려서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그보다 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어렸을 때 꿈은 책방 사장이었다. 지금은 안다. 책방 사장은 결코 마음대로 책을 읽고 사는 직업이 아닌 것을. 오히려 책방 경영과 생계 문제 라는 이중고에 부딪혀 훨씬 더 책을 읽기 어려운 직종의 사람이라는 것을.


암튼 어렸을 때 내 꿈은 서점 사장이었다. 어느 작은 시골 동네의 조그마한 책방 사장. 얼마나 낭만적인가 라는 생각을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했었다. 바보였지. 현실을 보지 못하는 멍청한 인간이었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이던 당시까지는 도서 대여점이라는 가게들도 동네마다 두세개씩 있었다. 가끔은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과 도서 대여점을 같이 하는 가게들도 있었다. 그 당시에 조금 고민을 했었다. 도서 대여점 사장을 할 것인가? 비디오 테이프랑 도서를 같이 빌려주는 대여점 사장을 할 것인가? 그 고민의 뒷 배경에는 그 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난립했던 만화방과 무협 소설 및 무협 만화 양산소 시스템이 있다. 내가 한창 현실 감각 없이 대여점에 대한 고민을 했을 했을 무렵에는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왔던 판타지 소설(글로는 소설이라고 쓰지만 읽을 때는 쓰레기 라고 읽어야 한다.)들이 있었다. 암튼 그 90년대 초중반 무렵에 나는 현실 감각과 무관하게 내가 어느 조그만 시골 동네의 서점 주인 혹은 도서 대여점 주인이 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


이것도 조금 웃긴 이야기인 것 같다. 동네에서 나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 나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그냥 감은빛 이라는 덧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어느 정도 쓴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깔려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그건 그 이야기를 전달한 화자의 착각일 뿐일 것이고, 대중적으로 나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인간이다. 아주 가끔 강의 요청이 들어오는 정도. 암튼 최근에 의외의 인물들에게 글을 엄청 잘 쓰신다면서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40년 가까이 글을 썼고, 20년 이상 남의 글을 고쳤던 입장이라 글을 못 쓰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글을 잘 쓰는 것과는 1대 1로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서 절대 긍정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그리고 최근의 나는 아주 긴 시간의 훈련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 글을 못 쓰는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특정한 주제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하고 꼭 필요한 일인지는 내가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주제로 아주 참신한,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이 없다. 몇몇 주제에서는 그렇다. 다른 주제에서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태도가 부담스럽다. 뭔가 내가 글을 쓰면 다를 거라는 그런 기대가 느껴져서 부담스럽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나라고 특별히 어떤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돈으로 타락한 천박한 사회에서는 돈이 있으면 특별한 방법이 생기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대한민국 전체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도 거의 손에 꼽힐만큼 가난한 사람이라 아무런 방법이 없다. 사실 그런 것은 알고 있다. 유명한 어떤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준비를 안 하고 특정한 분야에 지식을 전달하지 않아도 엄청나게 많은, 정말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돈을 받는 다고 했다. 그래서 잠깐 동안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나는 강사료가 거의 없어도 강의를 거절하지 않고 다 한다. 단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내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빈 말이라도 거의 무조건 다시 다른 강의를 청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건 내가 기후위기, 환경, 에너지, 자원순환 분야 다양한 이야기 꺼리로 강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 30퍼센트 정도 약속을 지킨다는 느낌이다. 나는 거의 매번 내 강의에 만족한다. 물론 매번 조금씩 아쉬운 부분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는 그리 크게 변하는 요소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은 중요하다. 나는 어느 특정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 특화된 어떤 중요한 위치를 가진 강사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사람이겠지.


아. 글도 말도 다 쉽지 않다. 나는 글을 잘 쓴다는 칭찬도 제법 많이 받았지만, 말을 참 잘 한다는 칭찬 혹은 비아냥을 많이 들었다. 나는 확신했다. 상대적으로 순간 기억력이 좋아서 남들의 말들을 잘 요약하고 전달할 수 있으며, 여러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상대적으로 잘 기억해서 틀리지 않게 요약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그런데 그 능력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지금의 나는 그 정도의 능력이 없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기억력이 좋아서 특정한 이슈를 만들어 낼 수 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최근에도 들었다. 글을 잘 쓰는 양반이 현실은 왜 그렇게 사냐고? 글을 잘 쓰지도 못하고 현실도 그리 잘 살지 못하는 늙은이를 너무 괴롭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더니, 약간 화를 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멀어졌다. 나는 이미 늙었다. 그냥 좀 내버려 둬라. 글을 쓰고 싶기는 하지만 그리고 언젠가는 쓸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지만, 내 나이가 점점 늘어날 수록 그 가능성은 점점 낮아질 수 밖에. 그냥 냅둬라.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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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8-11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이라는 아이디처럼 글에도 삶에도 감은빛님만의 색깔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감은빛 2026-08-15 19:59   좋아요 0 | URL
늘 멋진 말씀을 남겨주시는 잉크냄새님. 정말 고맙습니다!

카스피 2026-08-12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글 잘쓰시는 분들 보면 넘 부럽더라구요^^

감은빛 2026-08-15 20:00   좋아요 0 | URL
저도요. 부럽습니다!!

페크pek0501 2026-08-13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기 글에 만족하는 이가 드물고, 많은 이들이 지금보다 더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을 거라고 봐요. 무엇을 좋아해서 계속하는 사람은 이미 그쪽으로 재능이 있는 거라는 걸 어디서 읽은 듯합니다. 글을 쓸수록 더 어려워지는 건 참 이상한 일이죠.^^

감은빛 2026-08-15 20:01   좋아요 0 | URL
페크님. 정말 그래요. 예전에 한때 제가 글을 좀 쓴다고 착각했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은 참 글 쓰는 것이 어렵구나 하고 매번 느낍니다.
 
테세우스의 배 ㅣ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9
이경희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 표지가 독특해서 일단 꺼내 펼쳐봤다. 그리고 제목도. 아테네 인들이 긴 시간동안 테세우스의 배를 보존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목재가 낡고 썩어서 새로운 목재로 교체하곤 했다는 이야기.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 테세우스의 배는 처음 보존을 시작했던 때의 목재가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새로운 목재로 교체했는데, 그렇다면 그 배는 과연 테세우스의 배가 맞는 것일까? 만약 교체되었던 낡고 썩은 목재들을 모두 모아 다시 배를 만든다면 어느 쪽이 진짜 테세우스의 배일까? 당신은 어느 쪽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것인가? 라는 철학적 명제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소설은 그 질문들에서 출발한다. 존재와 정체성 그리고 의식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하도록 만든다.


한국어 제목은 [테세우스의 배] 이지만, 책 표지에 적힌 영어는 Theseus's paradox 이다. 외국에서는 이 표현이 정식 명칙인 것 같고, 우리는 여기서 역설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인 배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 뒷표지에는 Cyberpunk is now 라는 문장이 크게 쓰여있다. 이 책의 장르가 사이버펑크임을 명시한 것이다. 사실 사이버펑크 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하는데, 그냥 머리속으로는 신체 개조에 대한 이미지가 떠올랐고, 괴상하게 생긴 기계 신체가 덕지덕지 달린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책을 읽어보니 역시나 기계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리고 온 몸이 기계로 대체된 사람이 기계가 되기 전의 그 사람과 동일인임을 증명해야 하는 제도도 등장한다. 그걸 증명하지 못하면 기계가 되기 전에 가졌던 재산과 가족관계 등을 모두 인정받지 못한다고 한다.


주제와 접근방식은 정말 좋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좀 아쉽다. 이 책에 대한 다른 100자 평들과 글들을 훑어보니 '클리셰 덩어리'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좀 과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정도로 이야기가 너무 뻔하기는 했다. 한 편으로 조금 더 정교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과 다른 한 편으로 너무 손쉬운 소재만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도 결말이 궁금해서 책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결말은 조금 허무하기는 했지만, 다른 가능성들을 상상해보니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아니 가장 무난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로 끝나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묘사도 조금은 아쉽다. 특히 이 소설이 사이버펑크라고 크게 써놓았는데, 미래의 공간 배경에 대한 묘사와 기계로 신체를 대체한 여러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적어서 아쉬웠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머리 속으로 어떤 이미지를 상상해보려고 하는데, 구체적인 묘사가 적어서 막연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특히 아쉬웠던 것은 다양한 교통수단들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하는 부분이 적었던 점이다. 마천루라는 초고층 건물들 안에서만 생활하고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미래 생활을 말하면서 건물 안에서는 주로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수직, 수평 이동을 한다고 했고, 건물 밖으로 나올 일이 생기면 건물 간에 연결된 튜브카를 탄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게 어떤 것인지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외에도 다른 교통수단들도 등장했는데, 역시나 묘사가 별로 없었다.


등장인물들을 살펴보자. 우선 너무 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인 주인공을 보자. 주인공 석진환은 거대 재벌 그룹의 회장이다. 상식적인 범위를 아득히 뛰어넘을만한 부를 가진 것으로 나온다. 정략 결혼을 통해 딸을 낳아서, 아내와 딸이 있는데, 사고로 모두 죽었다. 그리고 본인은 그 사고로 크게 다쳐서 신체 대부분을 아니 전부를 기계로 대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옛날 영화의 주인공인 로보캅은 뇌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기계인데, 진환은 뇌 마저도 기계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노 머시기를 통해서 뇌세포를 1대1로 기계로 바꿨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의 신쳬가 계속 바뀌는데, 맨 처음 신체는 군용 스펙으로 키가 2미터가 넘고, 두꺼운 철판이나 콘크리트도 때려부술 정도의 팔다리를 가진 것으로 나온다. 이야기의 중간쯤에는 일반 사람 체격이지만, 총알을 튕겨내는 몸체를 가진 신체로 바뀌고, 맨 마지막에는 실리콘인가 뭔가 사람처럼 부드러운 살결 같은 외관의 신체로 바꾼 것으로 나온다. 아마 필요에 따라 여러 신체를 바꿔 끼운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갈아탄다고 표현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었다.


이 이야기의 악역은 석진환의 배다른 여동생 석미진이다. 온갖 불법적인 짓들을 통해 거대 재벌 그룹을 일으킨 진환의 아버지가 러시아계 여성을 통해 얻은 딸이며, 금발에 파란 눈이다. 이야기의 공간이 한국이다 보니 평소에 금발을 갈색으로 염색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남성인 진환보다 체격이 더 크고 힘도 좋은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안하무인에 아무것도 거리낌 없이 막나가는 인간이다. 사람 죽이는 것을 벌레 죽이는 것 정도로도 여기지 않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이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한 사람을 죽였다가 살렸다가 또 죽이기를 수십번 반복하는 것으로도 나온다. 아, 이 소설에서는 마침애 인류가 죽음을 극복했다며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기술이 나온다. 이 재벌그룹 안에서 진환이 주도하는 인공장기와 인공신체 사업을 주도하는 기업과 미진이 주도하는 손상 신체를 되살리는 기업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이 두 사람 갈등의 시초다.


이 두 남매 외에 가장 비중이 높은 등장인물은 여울이라는 사람이다. 진환이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를 살려보려고 전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의료, 생명과학 분야 기술들을 섭렵하고, 그중 가장 뛰어난 연구소나 기업을 사들이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때 만난 사람이다. 그때는 아직 미혼이었던 진환이 여울에게 빠져들어 둘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들이 과거 시점으로 나온다. 그리고 현재 어떤 무리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쫓기며 갈 곳이 없었던 진환이 의지해서 찾아가는 사람이다. 여러모로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지하세계에 어지간한 대기업 연구소보다 훨씬 더 기술력이 뛰어난 인물들과 설비가 있고, 진환을 그들에게 연결해서 새로운 신체를 구매하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 여울이라는 인물 역시 신체 대부분을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원격 조정하는 자신의 대체 신체를 사용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서는 이 이야기 전체의 최종 승자로 나온다. 다 좋은데, 조금 더 정보를 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아마 작가가 마지막 반전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덜 주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독자 입장에서는 감정 이입을 할 기회가 적은 인물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 다음으로 비중있는 인물은 현석이다. 석진환 회장의 심복으로 등장한다. 배다른 동생이 장악해버린 회사에서 단 한 명 믿을 수 있는 인물이자, 개인적인 일들까지 모두 처리해주는 가장 의지할 만한 인물이기도 하다. 초반에는 이 인물이 조금 더 많은 비중을 가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울이 등장한 이후로는 비중이 확 줄어버렸다. 그러다 되살아난 진환 때문에 다시 조금 비중이 늘어날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비중이 더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 마지막 모습은 너무 뻔한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족회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아버지의 동생들, 즉 삼촌들은 세트로 등장한다. 이 거대 재벌 기업에서 지분으로 따지면, 진환, 미진과 거의 대등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너무 손쉽게 제압당해버리면서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다만, 그들이 갖고 있었던 차명 지분이 이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그룹 내 권력 다툼 결말을 결정지을 핵심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이 부분도 이 이야기가 너무 뻔한 이야기로 느껴지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나머지 인물들은 거의 비중이 없는데, 꼭 소개하고 넘어가야 할 사람이 있다. 다섯명이던가 여섯명이던가 다수가 다수의 몸을 함께 사용한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이름이 아니라 그냥 '교수'라고 불린다고 한다. 처음 여울이 진환에게 소개할 때는 아직 어린 여성의 신체를 가진 사람인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중에 다른 인격들이 자꾸 튀어나와 여러 차례 말하는 주체가 달라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인물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어쩌다 여러 인격 혹은 여러 존재가 되어버린 진환이 결국에는 이 인물처럼 함께 공존하는 결말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단서를 제공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인물은 신체도 여럿이고 그 신체들을 공유하는 인격도 여러 명인데, 어째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비슷한 개념이 떠올랐다. 하나의 몸에 여러 영을 받아들여 함께 살아가는 '군령자' 라는 존재인데,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에 등장했다. 이 군령자는 죽음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으로 나온다. 군령자의 몸에 흡수되거나 자의로 합류하면 계속 몸을 옮겨 다니며 계속 살아가는 개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역사 속 위인으로 분류될만한 여러 인물들이 의외로 군령자의 영들 중 하나로 나오는 부분에서 의외라는 반응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를 들면 아주 용맹한 장군이 죽음을 앞두고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가자." 라는 유혹에 빠져 군령자의 몸에 합류를 한다던가, 어떤 훌륭한 성취를 이룬 과학자나 예술가가 평생의 업적을 이루기 직전에 죽음을 앞둔 상황이라면 영이 되어서라도 그걸 이루고 싶어서 군령자에 합류한다던가 이런 개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긴 시간을 살아온 군령자는 그만큼 수많은 영을 거느리고 있기에 어떤 영들은 그 하나의 몸에서 거의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교수라는 인물은 각자의 장점이 필요한 순간 서로 몸을 옮겨 다니며 활약할 기회가 충분하리라. 아, 지금 막 생각났는데, 워쇼스키 자매가 오래 전에 제작했던 드라마 시리즈 [센스8]도 8명의 주인공이 짧은 시간 동안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몸을 공유하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나온다. 이들은 처음에 서로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서로 몸이 바뀌기도 하는데, 나중에는 이런 능력을 활용해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자신들과 적대하는 세력에 맞서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배우 배두나는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 무술인으로 등장하는데, 무기를 든 다수의 적들을 상대할 때면 어김없이 배두나가 등장해 적들을 쓰러뜨린다. 또 남미쪽 인물 중 카 레이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적들에게 쫓기는 상황이면 반드시 이 인물이 등장하여 경이적인 실력으로 자동차 추격전을 펼친다. 주인공 일행이 8명이나 되다보니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고, 이 8명이 서로 몸을 바꿔가며 위기를 극복해간다는 설정이 신선해서 즐겨 봤었는데, 세번째 시즌까지 찍은 후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막대한 제작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도시는 평택인데, 이 미래 시대의 평택은 평택혁신도시라고 불리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있지만, 우리나라의 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공간 같은 느낌이다. 책 속 설명에 의하면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서 미군 기지가 축소되고, 그 자리에 한미연합군사연구소가 들어서고, 이 연구소를 중심으로 첨단 기술들을 연구하고 그 성과를 시험하는 공간으로 신기슐에 대한 모든 규제를 면제하는 특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설정이 좀 과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 총격전이 벌어지는데, 경찰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중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잔인한 살인극들이 등장하는데, 공권력의 개입은 아예 없다. 마지막에 검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국가 권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구나 싶기는 한데, 여러모로 우리나라가 배경인데, 이렇게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지고, 이렇게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 어색하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우리나라 모습이 아니라 첨단 기술에 대한 대부분의 규제가 사라진 좁은 영역, 특구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라는 단서를 잊지 말아야 조금 억지로라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특구 안에서 온갖 더러운 방법으로 악착같이 돈을 끌어모았다는 진환과 미진의 아버지 덕분에 그들이 비정상적인 재력과 권력을 손에 쥐었다는 부분도 전제조건으로 달아놓아야 한다. 그러니까 이런 설정들이 너무 손쉬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 이야기가 뻔한 이야기라고 느끼게 되는 부분인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진환의 존재는 두 번 더 등장한다. 즉 막판에 진환은 세 명이 된다. 이 세명 중 누가 진짜 진환인가? 우리는 과연 누구를 진짜 진환이라고 인정할 것인가? 여기에서 이 소설의 제목이 등장한다. 의식이 계속 이어져 온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계 몸을 가진 진환이 진짜 진환인가? 소설에서는 이 인물에게 컨티넘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리고 사고를 당한 시점의 진환의 의식을 백업해 놓은, 그러나 신체는 없이 메모리 칩으로만 존재하는 의식(몸이 없으니 인물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어색한 느낌)이 진짜 진환일까? 이 녀석의 장점은 가장 완벽한 기억을 갖고 있다는 부분이며, 그래서 메모리로 불린다. 그리고 기계로 완전히 대체해버런 진환이 가졌던 원래 신체 부위들을 모두 가져다가 다시 소생시킨 진환이 존재한다. 이 진환은 그러나 기억이 아예 없다. 마치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겉 모습으로는 이 인물이 가장 완벽한 진환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차명 지분이 담긴 태블릿을 열기 위해서는 신체 인증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미 기계 몸으로 바뀐 진환은 이 신체 인증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암튼 이 진환은 보디라고 불린다.


일단 의식을 백업 받아놓은 메모리는 제쳐두고, 원래의 의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기계 몸의 진환이 진짜 진환일까, 아니면 기억은 없지만 원래 신체를 그대로 갖고 있는 진환이 진짜 진환일까? 처음에는 너무 당연히 컨티넘으로 불리는 의식이 이어진 진환이 너무 당연히 진짜라고 생각했지만, 막판에는 정말 그게 너무 당연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이 지점에서 이 이야기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싶다. 그리고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이 책을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소설 초반에도 언급되는 내용인데, 실제로 인류가 노화라는 현상의 원인으로 밝힌 유전자 텔로미어를 유지하거나 복구하는 기술들이 개발 중이라고 들었다. 언젠가는 인류가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는 시기가 올지도 모르겠다. 또는 이 소설에 나온 것처럼 점점 기계로 신체를 대체하는 미래가 올 수도 있겠지. 그런 미래가 되면 이 소설은 일종의 예언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현재의 과학기술들도 아주 오래 전에 SF 소설에 나온 개념들을 살린 것들이 여럿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갖고 SF를 읽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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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6-08-13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류가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는 때가 오면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저는 죽어야 할 나이에 이르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지금 백살까지 사는 것도 긴 인생인데 그보다 더 길어진다면 사는 게 고역일 듯합니다.

감은빛 2026-08-15 20:02   좋아요 0 | URL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페크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일부는 신체를 바꿔서 엄청 긴 수명을 살아가는 것처럼 나와요. 구체적인 나이가 나오지는 않지만,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인물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