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에 피씨로 브런치에 썼던 글을 하나 옮기고 저녁에 긴 회의에 참여했다. 밤 늦게 해당 글을 북플에서 확인하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갑자기 다시 로그인을 하라고 나왔다. 로그인을 하고 보니 북플 앱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나중에 계속 쓰다보면 다시 익숙해지겠지만, 지금은 메뉴가 완전히 바뀌어 무척 불편하다. 12시가 지나서 늘 그렇듯 ‘지난 오늘‘ 게시판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메뉴의 포맷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있어서 한참동안 못 찾았다. 나중에서야 결국 찾아냈다. 뭔가 더 좋아졌다는 느낌은 없고, 그냥 불편해졌다는 느낌만 든다.

닥터스

지난 오늘 메뉴에서 과거 오늘 내가 쓴 글들을 가볍게 살펴보다가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와 [닥터스] 를 언급한 부분을 읽었다. 통속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가장 대중적인 소설이자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중 하나일 것이다. 비슷한 이미지의 시드니 셸던이 많은 책을 낸 것에 비하면 이 작가는 딱 저 두 권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80년대 말에 당연히 저 두 권을 읽었었다. [러브 스토리]는 너무 뻔한 이야기라서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닥터스]는 역시 뻔한 이야기였음에도 이상하게 마음에 오랫동안 남았다. 그리고 문득 이 책을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에 이 책을 사서 읽었을까? 모르겠다. 서울로 가져온 책 중에 이 책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내 집 책장에는 없다. 혹시 부산에 이 책이 있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부산에 갈 때마다 책장에 있는 책들을 쓱 훑어보곤 하는데, 이 책은 없었다. 지금 이 책을 다시 구매해야 하나? 하는 마음에 닥터스 라고 검색하니 책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럴리가! 이렇게 유명한 책이, 한때 엄청난 베스트 셀러였던 책이 없다고? 정말 없었다. 다시 에릭 시걸을 검색해보니 [러브 스토리]와 그 후속작인 [올리버 스토리]는 나오는데 [닥터스]는 번역본이 없고 영어 원서만 나왔다.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책이 없으니 괜히 사람이 더 집요해졌다. 알라딘 앱을 열어서 중고책을 검색했다. 책이 나왔다. 당시에 1권, 2권 두 권으로 출간했었나보다. 1권은 중고조차 거의 없었다. 우주점이라 표현되는 전국 알라딘 중고 매장에도 거의 없었고, 판매자 중고로 표현되는 곳에만 물량이 좀 있었다. 2권은 우주점에도 다수 있었고, 판매자 중고에도 제법 많았다. 음, 우주점 중에서 1권과 2권을 모두 가진 매장이 있으면 구매할까 했는데 없었다. 각기 다른 매장에서 각각 따로 구매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쉽지만 구매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 나중에 도서관에서 찾아봐야겠다. 책 구매를 포기하고 나니 문득 그 당시에 라디오에서 자주 들었던 책 광고가 기억났다. [러브 스토리]를 쓴 세계적인 작가 에릭 시걸의 신작 이라고 말하는 여성 성우의 음성이 머리 속에서 재생되었다.

어긋나는 사랑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을 극장에서 봤을 때 서로 어긋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이게 영화에서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앞서 [닥터스]라는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도 그거였다. 서로 어긋나는 인연의 모습이 떠올라서. 언젠가 내가 소설을 쓴다면 안타깝게도 서로 이어지지 않는, 어긋나는 인연을 그려보고 싶었다. 원래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은 비뚤어진 마음을 늘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며칠 전에 한 친구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가 나를 부러워한다는 얘길 했다. ˝형은 결혼도 해봤고 아이들도 있잖아.˝ 좀 충격이었다. 결혼을 해봤지만, 현재는 이혼한 늙은 홀아비일 뿐이고, 아이들이 있지만 아이들은 이제 다 자라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게 뭐가 부럽다는 걸까? 물론 아직 결혼을 해보지 못하고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그 친구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나보다 한참 젊고 아직 얼마든지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나야말로 이젠 늙은이 처지라 더는 연애 경험을 하기 어려운데, 오히려 내가 그를 부러워해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을 쓰자. 내가 지금 현실에서 연애를 할 수 없다면, 내가 만든 세상 안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를 만들며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 골방에 처박혀 소설을 썼던 시절에도 그런 측면이 있었다. 내가 짝사랑했던, 현실에서는 이어지기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며 만든 캐릭터와 나를 투영한 주인공 캐릭터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그리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소설이라도 현실성을 감안해야지. 그래서 좋아하는 감정을 담고, 연애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구상하더라도 무조건 그냥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현실성이 없지 않은가. 시련이 주어지고 서로 어려움을 겪어야 하겠지,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어긋나는 것이 현실적인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젊은 시절에 썼던 단편들과 구상해놓고 써나가다가 결국 완성하지 못했던 장편들에서도 주인공들의 사랑은 대개 이어지지 못했었다.

고민들

누구나 그 시기에 혹은 그 나이대에 걸맞는 고민들이 있다. 이번에 아이들을 만났을 때 각자의 고민들을 들었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작은 아이가 약속 장소에 한참 늦게 왔다. 큰 아이와 나는 배가 고파서 먼저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지난 번처럼 이번에도 작은 아이는 우리가 음식을 다 먹고 나서야 도착하겠지 생각하며 천천히 먹었다. 큰 아이는 음식을 먹으며 재잘재잘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그런 와중에 같이 알바를 하고 있는 동료들의 태도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오래전부터 일을 대하는 내 태도가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이라 그로 인한 문제점들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아이도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이가 동료에게 짜증을 느끼는 부분들이 내가 과거 다른 동료들에게 느꼈던 지점들과 거의 같았다. 이런 성향도 유전일까? 아이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고 아이가 충분히 이야기 했다고 느낄 즈음에 내 과거 이야기를 전해줬다. 세상이 언제나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걸 늘 생각해야 삶이 조금 편해질 수도 있다. 이런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다.

큰 아이가 피곤하다고 집으로 들어가고 작은 아이를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아이가 집까지 걸어가고 싶다고 했다. 버스로 약 30분, 걸어가면 1시간 10분 가량 걸리는 거리였다. 지난 번에도 아이가 걷고 싶다고 해서 같이 걸어갔었다. 그때는 중간에 길을 좀 잘못 들어서 훨씬 더 오래 걸렸었다. 걸어서 아이를 데려다주고 내가 다시 전철을 타러 이동하면 막차 시간이 아슬아슬 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걸음이 빨라졌다. 작은 아이는 걸으며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도 산책하면서 여러 차례 들었던 이야기들이었다. 아이는 친구들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홀로 다른 학교에 진학해서 친구가 없었다. 새학교에서 새 친구를 만들고 싶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알고 있었다. 이번에 같이 약 한 시간을 걸으며 아이는 과거 친했던 친구들 이야기로 시작해서 지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외톨이로 지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친한 척해야 하는 친구 같지 않은 친구들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작은 아이에게도 현실이란 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길 해줬다.

두 녀석이 각자의 고민으로 나름 힘든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의 고민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나이는 이미 지났다. 아이들 스스로 고민들을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며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 나이 대에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고민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고민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지금 아이들에게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기를. 아이들이 힘들때 언제든 아빠 하고 부르면 내가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내 남은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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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8-18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플을 잘 안봐서 몰랐는데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된 모양이네요.

감은빛 2026-08-20 20:53   좋아요 0 | URL
시각적인 면에서는 좀 더 심플해진 측면이 있어요. 좌측에 있던 메뉴가 아예 없어지고, 하단 메뉴가 생겼는데, 그러면서 없어진 메뉴들이 좀 있었고, 어떤 메뉴가 어디로 갔는지 애매한 부분들이 많아서 좀 아쉽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