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외국어랑 놀기

뉴스에서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라고 하더니 어제랑 오늘 정말 춥다. 오늘은 진짜 하루종일 이불 안에서 나오지 않고 지냈는데, 그럼에도 춥다. 이 낡은 집은 단열 효과가 거의 없어서 집안에 있어도 밖이랑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추워도 너무 추워서 이불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하루종일 있었다. 중간에 계속 고민을 하긴 했다. 운동을 하러 나가볼까? 달리기를 좀 해볼까? 그러다가도 그냥 화장실만 다녀와도 너무 추워서 다시 이불 안에 쏙 들어가서 꼼짝도 못하고 말았다. 책을 좀 읽으려고 펼쳤는데, 이불 속에는 좀처럼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이불 밖으로 손이 나오면 손이 시렵고 이마가 나오면 이마가 시렵다. 온 몸이 모두 이불 속에 들어가 있어야 그나마 견딜수 있다. 결국 책은 포기. 태블릿으로 영화를 보는 것도 포기.

어제 밤에 일찍 잠들어서 그랬는지 새벽에 깼다. 얼굴 통증이 좀 있어서 일찍 깼는지도 모르겠다. 악몽 비슷한 꿈을 꾸기도 했다.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통증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진통제를 먹고 싶지 않아서 그냥 눈을 감고 누워있었는데, 가만히 있으니 통증이 더 강하게 느껴져서 폰을 가져다 언어 익힘 앱을 열었다.

무슨 일이든 매일 똑같이 열심히 하기는 어렵다. 내가 아무리 외국어랑 노는 것을 좋아해도 매일은 쉽지 않다. 사실 꽤 오랫동안 좀 건성으로 임했다. 그동안 소홀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 최근 며칠간은 다시 제대로 해봤더니 새삼스레 재미를 느꼈다. 최근에 새로 깔아본 여러 개의 앱들 중 무료로도 적당히 쓸 수 있는 앱들을 골라내느라 이것저것 시도를 좀 해봤던 것이 다시금 언어 익힘의 재미에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새벽부터 유료 결제를 안 하면 사용하기 어려운 앱들을 골라 지우는 것으로 시작해 여러 앱들을 이용해 외국어랑 놀기 시작했다. 새로 설치한 앱들 외에 오랫동안 써왔던 앱들, 그러나 하루라도 안 들어오면 난리치는 듀오링고 외에 꽤 오랫동안 접속도 하지 않았던 앱들을 모두 한번씩 열어보기 시작했다.

어떤 앱에서는 영어로, 또 다른 앱에서는 일본어로, 또 다른 앱에서는 중국어로 놀다보니 거의 하루가 다 갔다. 중간에 배를 채우기도 했고 아주 잠깐 졸다가 깨기도 했지만, 나머지 시간은 모두 외국어랑 놀았다. 도중에 인도네시아어와 독일어를 손을 대보고 싶어서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한동안은 이 세 언어에 좀 집중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처럼 여유로운 날이 아니면 하루에 세 개 언어를 들여다보기 쉽지 않다. 그러면 또 한동안 잊어버릴테고, 한참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잘 동하지 않는다. 일단은 이 세 언어를 좀 더 잘 할 때까지 다른 언어들은 좀 참아보자.

일본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익히려는 건 한자 때문이다. 어차피 일본어를 공부하려면 한자를 알아야하는데, 한자를 따로 공부하면서 다시 중국어에 손대는 건 내겐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영어는 꽤 오랫동안 손 놓고 있었는데, 최근에 영어를 너무 안 써서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자 익힘 앱까지 11개의 앱으로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외국어랑 놀았다.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맞추는 것도 있고, 일반적인 강의를 듣는 것도 있다. 네이티브 어린이 기준의 아주 쉽고 짧은 글을 반복해서 듣는 것도 있고, 단어나 표현을 암기하기 위해 반복하는 것도 있다. 대체로는 문제를 푸는 것이 많다. 며칠 전에 쓴 글에 인공지능을 유행처럼 많이 사용하는 현실에 대한 내용을 적었었는데, 나도 한 이삼일 정도 인공지능과의 외국어 대화를 즐겼다. 최근에 설치한 앱 중 두 개가 무료 버전에서도 일정한 분량의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제공하고 있다. 유료 결제를 해야만 대화 기능을 제공하거나, 처음 한동안만 제공하고 나중에는 결제를 꼭 해야하는 앱들은 모두 삭제했다.

한 이삼일 인공지능과 외국어 대화를 해보며 느낀 것은 인공지능들이 아첨을 잘 한다는 것이다. 아마 칭찬을 계속해줘야 이 앱을 지속적으로 더 많이 이용할테니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겠지. 그걸 잘 알면서도 인공지능이 내 외국어 실력을 칭찬하면 순간순간 우쭐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수 없다. 한 일본어 익힘앱의 인공지능은 지속적으로 내 발음을 칭찬했다. 사실 일본어는 상대적으로 발음이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 발음이 막 그렇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이렇게 계속 칭찬을 하다니. 참. 또다른 앱에서는 영어로만 대화를 했는데, 이 인공지능은 내가 설명을 잘 하는 편이라고 계속 칭찬했다. 이 둘 말고 지워버린 다른 앱들도 비슷했다. 이렇게 계속 칭찬을 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 인공지능의 대화 방식이구나 싶었다.

한편으로 실제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추운 날 이불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나에게 누군가 대화 상대가 되어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 대화라는 것이 너무 뻔하고, 별로 의미도 영양가도 없는 것이긴 하지만. 직접 그 나라로 가서 네이티브와 대화할 기회를 만들수 없는 사람들에겐 이것이 그나마 괜찮은 대안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 여러 업체에서 이렇게 앱들을 만들어 유료 결제를 유도하는 거겠지.

한동안은 외국어랑 노는 재미에 좀 더 빠져 지내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놀면서 새로운 단어와 표현도 익힐수 있으니, 알고 있는 단어와 표현들을 사용해볼 수 있으니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마지막으로 놀았던 앱에서 인공지능이랑 영어로 대화하면서 내가 오늘 하루종일 세 개의 외국어를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내 상황에서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비교해가며 어떤 상황인지 대화를 나눴다. 영어는 가장 오랜 시간 공부했고, 한때는 원어민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지만, 그후로 긴 시간 다 잊어버려 이젠 다시 어려운 언어가 되어버렸다. 일본어는 가장 늦게 시작한 언어이지만, 오래전부터 보고 들어온 경험이 있어서 가장 빠르게 익히고 있는 언어다. 가끔은 영어보다 더 쉽게 원하는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중국어는 가장 익히기 어려운 언어. 배운지 오래되었지만, 아주 가끔 중간에 생각날 때 짧은 시간 다시 들여다보다가 다시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는 언어. 이 인공지능이랑 영어로 이런 대화를 나누며 새삼 내가 지금 이 정도의 단계에 머물러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 아이에게 한국, 중국, 일본이 모두 한자를 사용하며, 같은 한자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던 내용을 덧붙여본다. 이 글을 쓸때 언젠가 다락방님 서재에서 우유를 여러 외국어로 쓴 댓글들이 있었던 기억이 나서 예시를 우유로 먼저 들었다.

Milk is 우유(牛乳) in Korean. In Japanese, ぎゅうにゅう(牛乳) is milk. It‘s the same character, but the pronunciation is different. In Chinese, milk is Niúnǎi(牛奶). It‘s also the same character, but Chinese people changed it to be simpler. The pronunciation is also different. It‘s so interesting that these three nations use the same character, but the pronunciation is so different.

There are so many words like this. For example, ˝exercise˝ is 운동(運動) in Korean. It‘s うんど(運動) in Japanese. It‘s Yùndòng(运动) in Chinese, and it‘s the same character in Korean and Japa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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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12-28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인공지능한테 칭찬을 받으시다니... 그러다가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닌지요...ㅋㅋ

잉크냄새 2025-12-28 11:28   좋아요 2 | URL
오호! 인공지능이 칭찬한다는 건 왠지 가스라이팅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군요. ㅎㅎ

감은빛 2025-12-30 11:49   좋아요 1 | URL
페크님, 인공지능한테 받는 칭찬은 좀 묘하더라구요. 설마 사랑에 빠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실재하는 인간은 아니니까요.

감은빛 2025-12-30 11:50   좋아요 1 | URL
잉크냄새님, 가스라이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어쨌거나 자신의 앱을 더 많이 자주 쓰라고 하는 것일테니까요.

cyrus 2025-12-29 0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독서 모임에 가면 AI 사용을 긍정적으로 보는 분들을 만나게 돼요. 철학을 독학하는 지인은 독서 모임 자료를 만들 때 철학 개념을 간결하게 정리한 AI를 많이 참고했답니다. AI가 내용을 정리하는 속도가 빠르고, 답변도 잘 해주니 조만간 종이책을 안 읽고도 독서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나올 거예요. ^^;;

감은빛 2025-12-30 11:51   좋아요 1 | URL
시루스님, 그렇더라구요. 어디를 가나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다는 걸 느낍니다.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그 사람의 자유이지만, 그 결과물을 맹신하거나,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이 서재에도 야구와 관련한 많은 글을 썼었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대화를 통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야구는 경기 진행방법과 세부 룰을 자세하게 잘 알아야 즐길수 있다. 그리고 그 용어와 룰이 생각보다 어렵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하고 보아왔던 나는 야구 용어들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작년에 아이들을 야구장을 데려가기 위해 그 사전 지식으로 야구 보는 방법을 알려주다가 깨달았다. 야구 경기를 제대로 보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고 어렵구나. 그래도 큰 아이는 쉽게 잘 따라오고 금방 이해했다. 예전에 [스토브 리그] 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어서 좀 더 수월하게 받아들였으리라 본다.

요즘 [야구여왕]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어서 찾아보고 있다. 과거 각기 다른 종목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국가대표이거나 스타 선수들을 데려와 여자 야구팀을 만들어 경기를 치뤄가며 더 좋은 기량을 쌓아가고 승리를 만들어가는 내용이다. 거기 참여한 여러 선수들 중에 이미 야구를 좋아하고 제법 잘 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야구 실력, 그러니까 공을 받고 던지고 타격하는 실력은 탁월한데 야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선수도 있었다. 야구는 몇 명이 하는 스포츠인지 아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엉뚱한 숫자로 답할 정도로 상식적인 수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를 비난할 의도로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야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잘 말해주는 장면이라 적어놓는 것이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로야구가 인기 있는 스포츠이지만, 세계적으로 야구라는 종목을 즐기는 나라는 많지 않다. 특히 유럽과 아프리카 쪽의 많은 국가에서는 야구가 어떤 종목인지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축구가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대중적인 운동 종목이라면, 야구는 비교도 안되는 비인기 종목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에서 야구의 인기는 정말 대단하다. 수치로 보면 축구는 야구에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인기가 없다. 우리나라 축구는 국가대표 경기 정도 되어야 그나마 관심을 끌 수 있을뿐, 프로축구 경기는 소수의 팬들만 즐기는 수준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

나는 야구, 농구, 배구 등의 프로 스포츠 경기를 가끔씩 찾아보는데, 축구 경기는 거의 보지 않는다. 내 기준에서 별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축구팬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새벽잠을 포기하고 프리미어리그 경기 생중계를 보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앞서 말한 것은 각 프로 팀의 경기장을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는 관중이 적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에 반해 작년부터 시작한 야구장 열풍은 대단했다. 작년에 최초로 천만 관중을 돌파했고, 매번 각 구장의 예매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예매가 시작되는 시각에 정확히 접속을 해도 잠시 렉에 걸렸다가 대기번호가 수천번대에서 시작한다. 이건 거의 대부분의 구장이 마찬가지다. 내가 직접 고척, 잠실, 문학, 사직 야구장에서 표를 예매해보려고 엄청나게 노력해봐서 알게 된 것이다.

요즘 AI를 활용한 어학 앱들이 많다. 이것저것 깔아서 해보고 있다. 대체로 유료 결제를 해야 기본 기능들을 이용할 수 있는 앱들이 많은데, 이런 앱들은 며칠 써보고 지워버린다. 몇몇 앱들은 그래도 기본은 무료로 쓸수 있게 해주는데, 그중 두세개 앱을 써보고 있다. 오늘은 에이아이(영타로 바꾸기 귀찮은데, 이렇게 한글로 쓰니까 느낌이 너무 안 사네)와 대화하다가 winding down 이란 표현을 쓰는 것을 들었다. 몰랐던 표현이라서 따로 메모를 해두고 번역기도 돌려보고, 사전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구글 재미나이에게 이 표현의 뜻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얼마전에 한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는데, 특정한 단어들을 빠르게 떠올릴 수 없어서 사전과 번역기를 활용했는데 내가 원하는 만큼 표현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하는 생각에 재미나이에게 물어보았는데 의외로 굉장히 많은 예시와 다양한 상황을 포함한 답을 알려주어서 유용하게 썼던 것이 기억났던 것이다. 재미나이는 재미있게도 한국어로 질문하면 한국어로 답하고, 영어로 질문하면 영어로 답하더라. 그게 재미있어서 일본어로 질문했더니 일본어로 답했다. 딱 여기까지가 한계라 더 다른 언어를 시도해보지 못해 아쉽다.

암튼 이 wind down 이란 표현을 재미나이에게 물어보고 그가(인공지능을 인격 대명사 ‘그‘ 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지만, 일단은 이렇게 부르자.) 영어로 알려주는 표현들을 여러번 반복해서 듣고 따라 읽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와인드 업 이란 표현이 떠올랐다. 야구에서 투수가 투구를 하기 위한 준비동작으로 발을 들어올려 힘을 모으는 자세를 말한다. 저 wind down 과 wind up 은 연결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그리고 다시 재미나이의 답변을 살펴보니 긴 답변의 끝부분에 이 wind down 이란 표현이 시계 태엽의 스프링이 감기고 풀리는 것에서 나왔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재미나이에게 질문했다.

˝So both expression of wind down and wind up are related from clockwork spring?˝

어, 근데 이번에는 영어로 질문했는데, 재미나이가 우리말로 답했다.

˝네, 정확한 통찰입니다! Wind up과 wind down은 모두 태엽(clockwork spring)을 감고 풀리는 원리에서 그 의미가 파생되었습니다.˝ 이러고 추가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순간적으로 떠오른 내 예상이 맞은 것은 기분이 좋았지만, 통찰이란 표현까지 등장하며 인공지능에게 칭찬을 받는 것은 썩 기분좋은 상황은 아니다.

재미나이는 아주 친절하게 와인드 업 동작의 운동 역학적인 원리도 설명했고, 효과적으로 와인드 업 동작을 하기 위한 팁이 담긴 유튜브 영상도 알려줬다. 나도 한때 투수를 해본 적이 있고, 당연히 투구 연습도 해봤으니 와인드 업 자세는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야구 경기를 실제로 할 일도 없으니 이런 영상까지 볼 필요는 없는데, 나는 단지 이 표현의 유래와 쓰임이 궁금한 것인데, AI는 쓸데없이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그리고 이건 절대 공짜가 아니다. 내 간단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 멀리 어딘가의 데이터 센터에서는 무지막지하게 많은 양의 전기를 쓰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에너지와 기후위기 등 강의를 할 때마다 챗지피티 등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하는 행위가 엄청나게 많은 전기를 쓰는 것이라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무턱대고 많은 질문을 하기 보다는 잘 생각해보고 적절히 활용하면 좋겠다는 뜻으로 당부한 말씀이었다. 그런데 이젠 이런 말씀도 강의에서 드리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저 지브리 풍 프로필 사진이 유행했던 시기부터 점점 더 많은 인공지능들이 앞다투어 쏟아지는 시기에 이런 이야기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결국 나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어학 앱을 쓰고, 자주는 아니고 아주 가끔이지만 구글 재미나이를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친하지는 않지만 지인 중에 인공지능 전문가가 있다. 그는 정말 다양하고 많은 인공지능들을 사용한다. 그 활용 수준이 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더라. 그는 하루에도 수백건씩 쏟아져 나오는 인공지능 관련 기사들과 영상들을 인공지능에게 집어넣고 요약해달라고 하고, 그 결과만 본다고 했다. 이제 자신은 시간이 없어서 원본을 일일이 직접 볼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수많은 영상들의 요약본들을 다시 인공지능에게 맡겨 더 정밀한 작업들을 한다고도 말했다.

나는 무엇을 보더라도 비판적 시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고, 어떤 사회적 현상들에 본능적으로 반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인공지능을 과도하게 활용하는 현재의 세상이 내 눈에는 좀 웃긴 코메디 프로그램의 장면처럼 보인다. 얼마 전에는 대학에서 활용하는 인공지능,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의 인공지능 표절 비율을 측정하는 인공지능이 가진 한계를 비판하는 칼럼을 읽었다. 너도 나도 모두 챗지피티를 비롯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시대에 대학생들이 리포트를 쓰면서 인공지능에게 맡기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행왜에 대한 스스로의 어떤 반발이나 반성도 없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이 그렇다고 요즘 세태를 표현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 인공지능을 전혀 참고하지 않고 직접 본인이 쓴 과제물을 앞서 언급한 그 인공지능, 대학에서 인공지능을 배껴 쓴 과제물을 가려내기 위해 활용하는 바로 그 인공지능에 넣고 돌려보니 오히려 표절률이 너무 높게 나왔다고 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분명 내가 직접 스스로 아무런 인공지능도 참고하지 않고 쓴 글인데 표절이라고? 그래서 저 칼럼을 쓴 저자는 본인 글을 인공지능이 쓴 것 같지 않은 말투와 내용으로 바꾸는데에 원래 과제를 쓴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고 적었다. 이것이야 말로 주객전도이자, 배 보다 배꼽이 더 커진 상황이다.

저 위에 언급한 인공지능 전문가 지인의 경우로 돌아가보자.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중 가장 먼저 들었던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인공지능을 그 정도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유료 결제를 해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내가 직접 시험해 본 무료 버전의 여러 인공지능들은 모두 그 한계가 명확했다. 전문적인 내용의 질문에 거의 대다수가 엉뚱한 답을 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내용들이나, 웹 상에 정보가 많은 내용들은 그래도 정확도가 떨어지지 않겠지만, 인공지능이 검토해서 찾아볼 수 있는 원 소스가 별로 없는 정보에는 인공지능으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짧은 시간안에 많은 정보들을 검색해서 그 중에 적절한 정보들을 제공하는데, 그 안에 꼭 정확하게 옳은 혹은 내가 원하는 답에 잘 맞는 그런 정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인공지능이 참조하는 원소스가 잘못되었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에 속은 셈이 된다.

그리고 수많은 기사나 영상을 집어넣고 요약하는 일도 나로서는 그 결과를 믿기 어렵다. 요약도 관점과 기준이 명확해야 할 수 있다. 요약을 잘 하려면 그 분야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걸 인공지능한테 맡긴다고? 그 요약본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여기 서재에 글로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몇 달전부터 각 기업에 상담전화를 걸거나 받으면 인공지능으로 연결되고 있는데, 이 멍청한 인공지능들이 아주 간단한 상담을 제대로 하지 못해 엄청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 있다. 이건 내가 겪은 것만 해도 몇 건이 되는데, 정말 어이없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인공지능 상담사가 답할 수 없는 상담인데, 먼저 인공지능에게 상담하지 않으면 인간 상담사에게 연결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시스템 때문에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몇 번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끊었다가 다시 통화하고 별의 별 방법을 다 써봐도 해결되지 않았다. 인공지능은 내가 해결하기를 원하는 내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엉뚱한 이야기만 반복했다. 나는 그날 안에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1시간이 넘게 이 바보같은 짓을 반복했다. 결국 반복되는 문제를 드디어 인공지능도 인지한 것인지 몰라도 인간 상담사를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인간 상담사는 내 문제를 2분도 안 되어 해결해주었다. 나는 이미 1시간 넘은 시간을 인공지능 상담사에게 허비해 버렸는데, 내 아까운 시간과 노력은 누가 보상해주나?

내가 아무리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지금 그리고 앞으로 인류가 훨씬 더 많고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할 것은 명백하다. 이건 절대 되돌리거나 막을 수 없는 흐름일 것이다. 휴대폰이 이미 존재하는 시대에 태어나 자란 사람은 집에 전화기도 잘 없던 시절을 상상하기 어렵다. 스마트폰이 일상적으로 누구나 사용하는 시대에 태어나 자란 사람은 컴퓨터란 것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주판으로 복잡한 계산을 하던 시절을 알 수 없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많아지고 더 많은 분야에서 사용하는 시대가 곧 온다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더는 인공지능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을 잊을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분명 아니지만, 지금 여기에서, 그러니까 인류가 인공지능에게 더 많이 의존하기 전에 다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적절하게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는 제도와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무턱대고 겪어가면서 시행착오를 거치기에는 이 상황이 너무 거대하고, 이 문제가 너무 심각하고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쓰다보니 영어 표현 하나에서 출발해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까지 넘나들며 좀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역시 즉흥적으로 쓰는 글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최근에 읽은 책들과 영화 이야기도 쓰려고 남겨둔 메모들이 있는데, 과연 언제 또 자판을 두드릴 것인가? 올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어느 종교에서 신의 아들로 여기는 어떤 이의 생일이라는 날이 다가온다. 사람들이 왜 그날을 기념일로 여기며 즐기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뭐 상관없다. 이것도 그냥 받아들여야 할 사회현상일테니.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조기교육을 시켰다.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는 날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이 아니며, 산타는 존재하지 않으며, 빨간 색 로고를 가진 아주 유명한 음료수 회사가 만들어 낸 이미지를 전 세계 사람들이 그냥 따르고 있는 거라고. 겨울에 교회마다 화려하게 불을 밝혀놓는 저 조명에 엄청나게 많은 전기를 쓰고 있고, 그 전기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내뿜은 온실가스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인류는 멸종할 거라고. 우리 아이들은 산타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아주 편안하게 받아들였고, 겨울에 길가다 마주치는 교회의 화려한 조명 장식을 보면 왜 저런 짓을 하냐고 저건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라고 화를 냈다. 가끔 미디어에서 보면, 어린이들에게 산타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지켜주는 것을 인류애 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써가며, 어른들이 꼭 배려해줘야 하는 덕목처럼 포장하던데, 너무 웃기고 멍청한 짓이다. 왜 우리가 거대 기업이 만들어 낸 그 이미지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아니 백번 양보해서 산타 클로스 라는 실재했던 성인의 이야기를 잘 전파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시각적으로 만들어진 그 산타 말고 정말로 고증이 잘 된 현실적인 산타 이야기라면 그것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이 믿고 있는 그 산타는 아니다. 크리스마스의 산타 클로스 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과 그 이야기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다는 망상에 빠진 상황을 지켜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걸 착각하는 것이 인류애라면 나는 인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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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2-24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구글에서 기사가 나왔는데 이제는 실시간으로 제미나이가 통역을 해준다고 하네요.이제는 힘들여서 영어공부를 할 필요가 없을 듯 싶습니다.실시간 통역이라니 과거 어학 공부하기 싫어하더 학생들이 꿈꿨던 것들인데 이제는 정말 현실에서 가능하게 되었네요,

감은빛 2025-12-24 19:43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이야기는 들었어요.
저는 인공지능을 통한 실시간 통역이 가능한 세상이 되어도
어학공부 혹은 외국어 익히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인공지능이 엉뚱하게 옮겨도 알 수 없을테니까요.

게다가 저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저 여러 외국어를
조금씩 익혀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배우는 것이라서 더 상관이 없을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25-12-24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오래전에는 야구를 좋아했는데 어느 시점을 계기로 안 보게 되었네요. 삼성 팬이었다가 김재박의 유니콘스로 넘어가고 그 팀이 해체되면서 접은 것 같네요.

챗지피티 초기에는 시대에 뒤떨어지기라도 한 듯 이것 저것 물어보고 공부도 하고 했는데 요즘 느끼는 것은 엄청난 전기를 써 가며 물어볼 만큼 궁금한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감은빛 2025-12-30 11:55   좋아요 0 | URL
그 시절 현대 유니콘스는 엄청난 명문이자 강팀이었죠. 저는 한창 바쁘게 정신없이 살았던 20년 가까이 야구를 거의 보지 못하고 그냥 간간히 소식만 접하고 살았었는데, 작년부터 다시 야구를 보기 시작했어요. 한번 야구 팬은 아무리 멀어져 있어도 언제나 야구 팬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잉크냄새님처럼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정말 별것도 아닌 것들, 특히 인공지능이 검색으로 알아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닌 질문들도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아이들에게 보낸 과거 쓴 글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13년 전에 썼던 눈오는 날에 대한 글. 다시 보니 제목을 [빙판길]이라 적었더라. 그 [빙판길] 글을 아이들과 셋이 대화하는 방에 보내봤다. 아빠가 눈을 보고 글을 하나 쓰다가 아주 옛날에 그러니까 13년 전에, 썼던 글을 보게 되었는데, 너희들 어릴때 이런 날이 있었다고 시간 나면 한번 읽어보라는 투로 툭 던지듯 보냈다.


다음날 작은 아이가 먼저 반응했다. 그 글 말미에 작은 아이를 한 팔에 안고, 다른 한 손으로 큰 아이 손을 잡고 빙판길을 걸으며, 작은 아이가 그새 많이 자라서 무거워졌다는 표현이 적혀 있었다. 녀석은 그 표현이 마음에 걸렸던 것인지, 자기가 겨우 2살에 무거웠다는 걸 가장 먼저 적었다. 만으로 2살이고, 우리 나이로 3살이었다. 그냥 무겁다고 쓴 것이 아니라, 빙판길에서 양손을 모두 아이들을 붙들고 가며 아마 나도 모르게 힘이 딸렸던 느낌이 들었을 것이고, 그걸 아기가 그새 더 자라서 무거워졌네 하는 방식으로 썼던 것인데, 아이에겐 그런 맥락이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저렇게 아기였을 때에도 많이 먹어서 무거웠구나. 하는 그런 생각만 들었겠지. 이걸 대화방에 글로 남기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나중에 만나면 설명해 줄 예정이다. 큰 아이는 그 글 마지막 즈음에 아침 등교길 교문 근처에서 결국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졌고 울었다는 내용에 가장 먼저 반응했다. 자신이 아침부터 교문 앞에서 엉엉 울었었구나 하고 생각했겠지. 확실히 누구나 자신에 관한 내용이 가장 눈에 잘 띄고, 거기에 더 잘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한참 후에 큰 아이는 자신과 비교하며 아빠가 나보다 에세이 스타일의 글을 훨씬 더 잘 쓴다며 놀라워했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었을 때, 예고 문창과를 가고 싶다고 해서 애들 엄마가 글쓰기 과외를 시킨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한두번 뭘 어떻게 배우냐고 묻고, 아이의 대답을 듣고, 아빠가 볼 때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피드백을 줬던 적이 있었다. 글 선생을 못 믿어서 참견을 했다기 보다는 글이란 것 자체가 무조건 잘 쓰는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당장은 시간에 쫓겨 예고 입시를 준비해야 하니 선생에게 급하게 배우는 것이지만, 앞으로 긴 시간 글을 쓰며 살아갈 인생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였다. 암튼 그 후로 아이는 예고에 다니는 동안 종종 나와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아이가 자신이 쓴 시를 내게 보여주지 않고, 학교에서 실습으로 쓴 산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게 되었다. 아마 아이가 이런저런 백일장에서 상을 타오기 시작하며 그랬던 것 같다. 지금 대학교 문창과에 다니면서는 아마 아예 아빠와 그런 대화를 나눴던 일들을 기억 못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사실 에세이와 같은 글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잘 쓰고 못 쓰는 걸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그냥 누구나 자신의 진솔한 삶 이야기를 적으면 되는 일이니. 아이와 비교해 내가 더 잘쓴다는 표현은 그래서 맞지 않다. 그저 내가 아이보다는 이런 글을 훨씬 더 많이 썼기 때문에 좀 더 자연스럽게 쓸 수 있을 뿐. 아이는 아마 문창과에 다니는 나보다 우리 아빠가 더 글을 잘 쓰네. 하고 생각한 것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요 건도 대화방에 글을 남기기보다는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예전에 블로그에 이런저런 잡다한 삶의 흔적들을 두드려 놓은 것도, 지금 이렇게 이 알라딘 서재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주저리 주저리 두드려 놓는 것도 모두 글 쓰는 일 그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가 일부러 시키지 않아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오래 전부터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블로그에 남겼던 많은 글들은 블로그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모두 사라졌다. 아마 서비스 종료 전에 언제까지 내용을 옮기라는 안내가 있었을텐데, 그때 바빠서 모르고 지나쳤고, 그 많은 내용들을 하나도 저장해두지 못하고 날렸다. 그 후로 가끔 이 알라딘 서재에 일상의 이야기들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끔 드는 생각은 언젠가 아이들이 이 서재에 대해 알게 된다면 과연 아빠의 잡다한 글들을 읽어볼까? 하는 궁금증이다. 큰 아이는 아마도 나처럼 평생 글을 쓰며 살 것 같으니까 읽을 것 같다. 작은 아이는 어떨까? 궁금해서 읽어보긴 하겠지만, 양이 워낙 많을테니(알라딘에 자주 들어오지도 않고 아주 가끔씩만 써도 이렇게 많기는 하구나.) 다 읽지는 못하겠지. 하긴 그렇게 보면 큰 아이도 본인 일상이 있을 테니 짧은 시간에 다 읽지는 못 하겠구나.


어쩌면 나이가 더 들어 내가 아이들에게 이 서재의 존재에 대해 말해줄 날이 올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죽고 나서 우연히 이 서재를 발견할 수도 있고, 어쩌면 영영 아이들이 이 서재를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주 가끔 아이들 어렸을 때 내가 썼던 글들, 그 중에서 좀 재미있을만한, 추억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골라 아이들에게 툭 던져주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한두번 그렇게 보내보면 아이들이 아빠는 이걸 어디서 찾아서 주는 거예요? 하고 궁금해 할 수도 았고, 아닐 수도 있겠지.




몇 해 전이었던가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에 대해 동네 언니들이 쓴 책이 나왔을 때, 그 출판기념회 이야기를 이 서재에 썼었다. 그 책의 리뷰는 아니었고, 그냥 표지만 집어넣었었는데, 그 책의 정보 페이지에서 내 글을 찾아 읽은 동네 언니들이 생겼었다. 감은빛 이란 덧이름은 동네에서도 쓰는 거라 당연히 나라는 걸 알았을 그 언니들이 내 서재에서 딱 그 글만 읽지는 않았고, 그 글 전후로 내가 쓴 글들도 읽었을 것이다. 어떤 분들은 더 많이 과거까지 거슬러 가며 읽었을 것이고. 그래서 한동안 내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많이 오르내렸다고 들었다.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자주 쓰지는 않았지만, 내가 쓴 서평이나 글 덕분에 신간 홍보가 된다고 선배 영업자들이 신간이 나오면 나에게 책을 쥐어주며 간단히 소개 좀 해달라고 부탁했던 적도 있었다. 어떤 경우엔 반대로 내가 먼저 책을 사서 읽고 쓴 글을 나중에 그 출판사 영업자가 알게 되어 고맙다고 전했던 적도 있었다. 어느 경우던 내가 출판사나 사람을 보고 일부러 어떤 특정한 책을 소개한 적은 없었다. 무조건 내가 마음이 동하는 책이어야만 소개했었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나는 알라딘에서 큰 영향력이 없는 그저 일개 독자일 뿐이라 내 소개가 어떤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그닥 없다. 


이렇게 현실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이 이 서재를 방문했다가 내 존재를 알아보고 나중에 이야기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어떤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경우도 있었고, 특정한 주제로 검색하다가 들어왔다는 경우들도 있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책으로 걸리는 경우들이 사실 가장 흔한 경우였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책 이야기 외에 내 일상 이야기도 읽었고, 그에 대한 느낌이나 상황 등에 대해 내게 물어보거나 조언을 하기도 했었다. 


내가 이렇게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두드리는 일이 어떤 식으로 현실에서 영향을 주는 지를 생각하면 재미있기도 하다. 내가 비록 혼자 단행본을 내지 못해(공저자로 참여한 책이 두 권 있기는 하지만) 작가라고 부르기는 민망하지만, 작가로서 독자를 상정하고 쓴 글이 아니라 그저 글을 쓰고 싶어 이렇게 두드리는 것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그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글도 언젠가 누군가 나를 아는 사람이 읽게 되겠지. 그럼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날이 춥다. 겨울이라 추운 것이 당연하지만, 그뿐 아니라 지금 나를 둘러싼 여러 복잡한 상황들이 나를 더울 춥게 만든다. 계절의 겨울 말고 나를 둘러싼 상황으로서의 겨울은 언제 끝나려나? 얼른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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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10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쓴 제 글을 아직 들킨 적이 없어서...저를 아는 누군가가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ㅎㅎ

감은빛 2025-12-24 19:38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그게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르겠지만, 제 경우에는 썩 그리 좋지는 않더라구요. ㅎㅎㅎㅎ

희선 2025-12-12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거나 글을 보여주는 거 괜찮을 것 같네요 자신은 잊어버린 일이기도 할 테니... 같은 시간을 보내고 다르게 기억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누군가 감은빛 님 글을 찾기도 했다니, 그런 일도 있군요 우연이라 해도 그렇게 찾았을 때 반가울 것 같기도 해요 감은빛 님 글을 찾은 사람이...

감은빛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감은빛 2025-12-24 19:40   좋아요 0 | URL
이 글에 썼던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과거 글을 보여준 첫번째였어요.
그날 이후로 가끔 글을 보내고 있어요.
알라딘에 제가 글을 쓴 것이 워낙 띄엄띄엄이라,
북플 과거 오늘 코너에 제 글이 없는 날이 더 많고,
간혹 있어도 아이들과 공유할만한 내용이 아닌 경우도 있어서요.

희선님, 늘 고맙습니다!
 

어제 사무실에서 몇가지 일을 처리하다가 잠시 짬이 나서 여기 서재에 글을 조금 쓰고 있었다. 전날 내린 눈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린 시절 부산에서 눈을 거의 구경도 못 해보고 자란 것부터 군대에서 평생 본 눈보다 훨씬 더 많은 눈을 단 몇 시간만에 본 내용을 먼저 쓰기 시작했다.

군대 이야기를 짧게 쓰고 보니 그 옛날 혹한기 훈련에서 새벽에 자고 있던 A형 천막들이 거의 대부분 폭설에 주저앉아 급하게 철거하고 폭설에 고립되기 전에 산에서 내려가 부대로 복귀행군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 추웠고, 눈이 너무 많이 내렸고, 너무 힘들었다. 그때 나는 기관총 사수였고, 기관총은 소총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기관총은 공용화기라서 행군시에 사수가 혼자 들지 않고 분대원들이 릴레이로 이어들게 되어 있다. 분대원들은 개인화기인 소총 외에도 또 예비총열과 탄통 등을 나눠들어야 한다. 나는 그날 너무 힘들었지만, 다른 분대원들(부사수, 탄약수 등)도 마찬가지로 힘들기에 그냥 혼자 기관총을 계속 메고 걸었었다. 그날의 기억들이 떠오르자 그것도 쓰고 싶었다. 그러다가 언제적 군대 얘기를 쓸데없이 쓰나 하는 생각에 그만두고 쓰던 걸 모두 지웠다.

그때쯤 지인이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해서 노트북을 덮었다. 결국 쓰려던 글은 쓰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북플에 접속해보니 과거 오늘 쓴 글에서 2012년에 쓴 글을 발견했다. 놀라웠다. 13년 전에 쓴 글도 눈에 대한 글이었고, 그 앞부분은 어제 내가 짧게 쓰다가 지운 내용과 완전히 똑같았다. 어린 시절 부산에서 자라서 거의 눈을 보지 못했던 것, 군대에서 정말 지겹도록 눈을 치웠던 것. 내용만 같을 뿐 아니라 문체와 분위기도 거의 같았다. 13년의 시간을 두고 쓴 글임에도 같은 사람이 본인의 경험을 쓴 것이니 내용도 글을 쓰는 방식도 같을 수 밖에 없구나. 그런데 아니 그래도 무려 13년이란 시간이 지나 그냥 떠오르는대로 쓴 글이 어떻게 거의 똑같을 수가 있을까.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그만큼 나는 발전이 없었다는 뜻일수도 있겠고, 늘 그렇게 변함없이 살았다는 뜻일수도 있겠다.

아, 게다가 짧게 군대에서 눈 치운 이야기를 쓴 후에 2010년 첫 출근날(아마도 1월 4일)에 내렸던 기록적인 폭설 이야기를 쓰려고 머리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2012년에 내가 쓴 글이 딱 그랬다. 그 내용이 다음에 나오더라. 이거 내가 과거에 쓴 글과 거의 완전히 같은 글을 13년의 시간차를 두고 다시 쓸 뻔 했다.

물론 중간부터는 내용이 달랐다. 당시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아침에 작은 아이를 한 팔에 안고, 다른 손으로 큰 아이 손을 잡고 눈이 내린 후 얼어붙은 빙판길이 되어버린 비탈길이자 골목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다가 미끄러질 뻔하고 다칠 뻔한 내용들이었다. 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큰 아이를 학교로 데려다주다가 교문 근처에서 결국 아이가 미끄러지면서 무릎을 찍고 울어버린 내용이었다. 나는 아이가 미끄러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올리며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했으나 간발의 차로 아이는 먼저 무릎을 다쳤다. 우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간신히 달래어 학교에 들여보내고 나서 시간을 보니 이제 나는 일터에 지각할 상황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정확히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뿐 아니라 해마다 겨울마다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나이와 학년이 조금씩 바뀔 뿐 늘 그렇게 아이들을 안고 걸려서 데려다주고 데려오곤 했었다. 하루종일 해가 들지 않아 겨울 내내 녹지 않는 빙판길이자 경사가 급한 비탈길을 그렇게 오르내렸었다.

이젠 아이들이 자랐고, 아이들과 함께 살지 않으니 그 내용으로 글을 쓸 일은 없어졌다. 그 시절 당시에는 참 힘들었을텐데 지금은 그저 그 때가 그립다. 아직 어렸던 귀여운 아이들이 다시 보고 싶지만, 그건 기억과 사진으로만 가능하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기억 어딘가에 묻어둔 그리운 어떤 사람도 마찬가지다. 평생 그리워하는 일만 가능할 뿐 현실에서 다시 그를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어제의 내가 중간 이후에 쓰려고 했던 눈에 대한 이야기를 무었이었을까? 하루가 지나니 그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아니 어렴풋이 한 두가지 키워드는 떠오르기는 하는데, 거기에 살을 붙여 이야기가 바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날이 춥고, 몸도 춥고, 마음도 춥다. 과연 이 겨울을 무사히 지날 수 있을까? 겨울잠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오늘 잠 들었다가 내년 봄에 날이 풀릴 때쯤 깨어나면 안 될까? 제발 내일 눈을 뜨면 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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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12-06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따뜻한 나라로 여행 한 번 오셔야겠네요..

감은빛 2025-12-10 17:21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가고 싶어요.
이 짜증나고 복잡한 상황 다 잊어버리고 맘껏 놀고 싶은 마음입니다.

잉크냄새 2025-12-07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장에 나타나는 개성, 어떤 사건을 계기로 살아나는 기억도 지문과 같나 봅니다.
따뜻한 겨울 나기를 바랍니다.

감은빛 2025-12-10 17:22   좋아요 1 | URL
지문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콕 박히네요.
잉크냄새님 말씀 덕분에 아주 조금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5-12-09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쓰려고 구상했던 것이, 북플에 이미 십 몇 년 전에 썼다는 문구가 뜨는 거예요. 같은 소재로 내가 이미 썼다고? 하며 놀랍니다. 참 신기했답니다. 또 전혀 기억에 없었는데 북플에 뜨는 문구를 보고 클릭해 들어가면, 내가 이런 글도 썼다고? 하고 놀랄 일이 있어요. 북플 기능, 참 좋습니다.^^

감은빛 2025-12-10 17:31   좋아요 0 | URL
페크님도 그런 경험이 있으시군요. 그럼 저만 그런 것은 아니네요.
갑자기 동지를 만나 안도가 되는 느낌입니다.
저는 좀 많이 놀랐거든요.
사실 제가 쓰는 글이 좀 뻔하기는 한데,
이렇게 긴 시간 차를 두고, 이렇게 똑같은 경우는 처음이라서.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당연히 마약 같은 건 아니고, 진통제와 감기약이다. 둘 다 먹으면 무지 졸리다. 11월부터 몇가지 상황들이 겹치면서 몸과 마음이 무지 힘들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이 마음의 상처라는 것이 참 알다가도 모르겠는 오묘한 것이더라. 다 늙어서도 이렇게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할 줄은 몰랐다. 그 와중에도 늘 굳건하게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힘든 시간을 어렵게 버텨가고 있다.

지난 주는 거의 집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하고 다 지나가버렸다. 월요일, 중요한 회의와 몇가지 일처리를 위해 사무실에 나가야 했는데,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얼굴 통증이 심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씻고 나갈준비를 마치고 괄사로 통증 부위를 부드럽게 마사지하며 통증의 추이를 살폈다. 극심하게 아프다가도 또 금방 괜찮아지기도 하고, 점점 더 심해지기도 하는데, 밖에서 갑자기 통증이 심해지면 너무 힘들어서 통증이 심한 날엔 밖에 나가는 일 자체가 두렵다. 통증은 나아지지 않고 더 심해졌다. 사무실 나가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통증 때문에 뭔가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진통제를 먹고 자려고 했다. 내가 먹는 진통제는 먹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엄청 졸려서 금방 잠에 빠져든다. 사고 이후 긴 시간동안 먹었는데, 일상적으로 먹는 것은 아니고 통증이 무지 심한 날에만 고민 끝에 먹는다. 한동안은 통증이 좀 있어도 약을 안 먹고 일상생활을 좀 해보려고 했고, 실제로 오랫동안 약을 안 먹고 지냈었다. 약을 먹고 급하게 두어 명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통증 때문에 지금 약을 먹었고, 오늘 회의에 못 나가서 미안하다는 말과 나중에 회의 내용과 해야할 일들 챙기겠다는 말을 적어 보냈다.

화요일, 중요한 서류를 제출하러 어딘가 방문해야 했다. 이날도 새벽부터 통증이 있었다. 일부러 약을 먹지 않고 버티다가 일단 서류를 내러 갔다. 담당자 말로는 3층에 와서 본인을 찾으면 된다고 했는데, 3층에 들어서니 안내하는 사람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라고 했다. 대기자가 많았고, 상담하는 사람은 적었다. 그리고 한 사람 당 상담시간이 엄청 길었다. 나는 딱히 상담할 용건이 아니고 서류만 제출하면 되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깝고 싫기도 했고 조금 약해졌다가 은근히 세지기를 반복하는 통증이 신경쓰여서 그 사람 많은 곳에서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조금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직원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그 직원은 알아봐주겠다고 했고 한참 후에 나와 통화했던 담당자가 곧 나올거라고 전해줬다. 여기까지도 제법 긴 시간이었는데, 대기자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만약 그냥 번호표 순번대로 기다리고 있었다면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렸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담당자는 한참 더 지나서 나타났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서류 제출은 금방 끝났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으며 고민했다. 사무실을 나갈 것인가? 아니면 집으로 갈 것인가? 통증이 좀 오락가락 하고 있는데 억지로 사무실을 나갈 수는 있지만, 긴 시간 머물기는 부담스러운 상황. 아무래도 무리하는 건 좋지 않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버스 안에서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수요일, 이날도 중요한 회의가 있었고, 지난 이틀동안 놓진 상황들 때문에 꼭 얼굴을 보고 논의할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통증은 지난 이틀보다 더 심했다. 그때는 좀 무리가 되더라도 참고 버티려면 어찌어찌 버틸 수준이었는데, 이날은 오랜만에 참기 어려울 지경의 통증이었다. 이건 고민할 수준이 아니어서 그냥 약을 먹고 잠들었다. 하나 실수는 지금 약 먹는다는 그래서 회의 참석이 어렵다는 연락을 못한 것. 거기까지 생각할 여력도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상황들은 당연히 급여를 받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급여를 받고 출근하는 입장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월요일과 수요일의 중요한 회의들은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다른 두 개 조직의 일이다. 나는 평생 이렇게 무급으로 여러 조직에서 활동하며 살았다.

수요일에 내가 미리 연락도 하지 않고, 회의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몇 통의 전화와 메시지가 와 있는 걸 나중에 확인했다. 다음날인 목요일에는 종일 외부에서 태양광발전소 부지 조사하는 일이 예정되어 있었다. 요건 단기 프로젝트 같은 성격의 일로 일당을 받고 참여하고 있다.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얼굴 통증보다 목이 더 심하게 아파서 좀 놀랐다. 그러고 보니 코도 막히고, 온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것이 감기몸살 증상이었다.

평소 감기에 잘 걸리는 편은 아니다. 가장 최근에 걸린 것이 아마 작년 이맘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먹고 있는 감기약을 그때 샀었다. 자주 걸리지는 않지만, 한번 걸리면 좀 고생했던 것 같다. 이건 어지간하면 약 안 먹고 버텨서 지나가고 싶은 내 고집 때문이다. 진통제도 어지간하면 안 먹고 버티는 편이지만, 감기약도 마찬가지다. 내가 급하게 꼭 할 일이 있다면 약을 먹고 빨리 나으려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약 없이 하루이틀을 지나보는 편이다. 그 사이 저절로 나으면 정말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때 약을 먹는다.

목요일에는 얼굴 통증과 감기 몸살 증상이 겹쳐서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도저히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이런 날에 잠으로 도망쳐야한다. 감기약은 먹지 않고 진통제만 먹고 잠들었다.

금요일, 얼굴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이틀동안 강도가 심했다가 조금 나아졌는데, 통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조금 나아진 정도만으로도 기분이 꽤 좋아졌다. 살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감기는 더 심해졌다. 이때의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계속 통증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약 먹고 잠자는 일만 반복하며 며칠을 보냈는데, 왜 감기에 걸린 것일까?라는 문제였다. 도대체 왜?

금요일 낮에는 진통제도 감기약도 없이 집에서 몇 가지 간단한 일들을 처리했다. 금요일 저녁이 되자 목이 붓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작년에 여유있게 사놓았던 감기약을 찾아서 먹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그 경계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휙 지나갔다. 열이 심해서 오한이 오기도 했고 목이 너무 아팠고 콧물이 줄줄 흐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목감기 약을 먹다가 중간에 코감기 약으로 바꿨다. 어제 월요일 오후쯤에야 감기약이 내 감기 증상을 이겨낸 느낌이었다. 감기가 심할 때 하나 장점은 덕분에 얼굴 통증에 대해서는 잊을 수 있다는 것. 감기기운이 조금 잡히는 느낌이 되자 다소 통증이 신경쓰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한번에 두 알씩 먹던 감기약을 내 맘대로 한 알만 먹었다. 약을 정량대로 먹으면 또 졸려서 오늘 하루도 아무것도 못 할것 같아서. 오늘 잘 쉬고 내일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불 속에서 책을 읽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적게 먹어도 감기약이 졸린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졸다가 깨기를 수십번 반복했다. 아니 아예 자려고 눈을 감으면 또 잠이 달아난 느낌이고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이 아까워 책을 집어들면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졸고 있다. 그래서 다시 자려고 누으면 또 정신이 또렸하다. 이게 몇 번째 반복인지 모르겠다.

일주일 정도 두문불출하며 약에 취해, 그러니까 약 기운 때문에 잠에 빠져들기를 반복하며 살다보니 짧은 꿈들을 엄청 많이 꾸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도 꿈 내용을 잘 기억하는 편이고, 가끔 꿈 속에서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편인데 요 며칠 꾸었던 꿈들 이야기를 쓰려고 이렇게 폰을 두드린다.

1. 꿈 속의 시간
잘 때 유튜브로 음악을 틀어놓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튜브는 재생목록을 만들지 않아도 알고리즘이 알아서 다른 음악을 이어서 선택해주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밤새 음악이 계속 나온다. 아마 내가 평소 즐겨듣는 스타일을 알고리즘이 반영하는 것 같다. 영미권 팝 음악을 며칠간 죽 들었다면, 내가 재생목록까지 만들어두고 주기적으로 듣는 8~90년대 팝음악들이 주로 나오고, 중국 노래를 한참 들을 때에는 가수 이름도 노래 제목도 읽기 어려운 낯선 중국 노래들이 계속 이어졌다. 작년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일본 노래들을 꾸준히 듣고 있는데, 확실히 최근에는 영미권 팝송들도, 중국 노래들도, 가끔 듣던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인도네시아 음악들도 다 밀어내고 거의 절대 다수가 일본 노래들이 알고리즘을 차지하게 된 것 같다. 아, 이주전쯤부터 예전에 즐겨보던 인도영화들의 맛살라 장면들, 즉 신나는 음악에 맞춰 단체로 춤추는 장면들을 유튜브로 찾아보곤 했는데, 그래서 가끔 인도 음악으로 이어지기도 하더라.

약을 먹었던 그렇지 않고 자연스레 잠들던 상관없이 잠이 오면 딱 느낌이 온다. 이건 곧 잠에 빠져들기 직전이다. 하는 느낌. 그때 태블릿을 열어서 유튜브를 켜고 음악 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바른 자세로 누워 눈을 감는다.

꿈 속에서 나는 누군가와 만나 대화를 하고, 어딘가로 긴 시간 운전을 해서, 어떤 식당을 방문해 회를 먹고 있었다. 아마 일부러 바닷가 횟집을 찾아간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화 상태는 누군지 기억나지 않지만 여성이었다. 어쩌면 꿈 속의 나는 데이트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참 대화가 이어지는 도중에 내가 실수로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떨어진 젓가락을 주으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실내에 앉아있었던 내가 갑자기 자갈이 깔린 해변 야외 테이블로 옮겨졌다. 순식간에. 그리고 눈 앞에 있었던 대화상대가 사라졌다. 아니 식당에 있던 다른 손님들과 종업원들도 모두 사라지고 나와 내가 앉아있던 의자 그리고 테이블만 남았다. 놀라서 주위를 돌아보는데 큰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곧 저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잠에서 깼다.

딱 깨자마자 귀로 들리는 음악을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닫아두었던 테블릿을 열어보았다. 분명 잠들기 직전에 요즘 자주 듣는, 그래서 유튜브를 켜자마자 맨 위에 떴던 타무라 메이미의 [無形有形] 이란 곡을 틀어놓고 눈을 감았었다. 그리고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는데, 아직 그 곡이 끝나지 않았다. 채 5분도 되지 않는 노래가 끝나기 전에 나는 잠에 푹 빠져들었다가 금방 깨버린 것이다. 분명 꿈 속에서 나는 긴 시간을 보냈었다. 어떤 여성을 만나 운전해서 바닷가로 갔었다. 운전한 시간만 서너시간 이상이었고, 회를 먹으며 대화한 것도 꽤 긴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잠이었다고.

2. 아빠는 어디 계신가요?
사실 이 글은 이 꿈 이야기를 쓰기 위해 시작했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꾸었던 꿈이었고, 깨자마자 이건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꿈 속에 나온 집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과는 달리 매우 넓었다. 그런데 집이라기 보다는 창고 같기도 하고, 아니 교실 같은 느낌도 좀 있었다. 클릭해서 본 적은 없지만 폐교를 구입해서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같이 살고 있다는 영상의 썸네일을 본 적이 있었다. 꿈 속의 집이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공간이 넓은데 어디가 어딘지 좀 정신이 없고 산만한 곳. 결정적으로 출입문이 그 옛날 교실의 미닫이 문이었다.

나는 집에 혼자 있었다. 노트북을 여러대 켜놓고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뭘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생각해보자면 여러 노트북을 켜놓고 그때 그때 생각나는대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노트북 하나로는 소설을 쓰던 중이고, 또 다른 노트북은 시를 쓰던 중, 또 다른 것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면. 뭐 노트북은 하나만 있어도 이걸 다 할 수 있는데,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데, 마치 노트북이 모자라서 다 못하는 것처럼 연출된 장면 같네.

암튼 그때 누군가 미닫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작업하던 노트북들을 그대로 두고 문이 아닌 천으로 된 막을 열어 젖히며 내 방을 나섰다. 문을 닫으며 신발을 벗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오셨어요? 라고 인사를 건네며 아버지 손에 든 짐을 받으러 다가섰다. 뭔가 무거운 것이 든 종이봉투였다. 아버지는 뭔가 말씀하시며 마치 거실같은 공간으로 올라서셨고, 내가 짐을 받아들려고 내민 손을 말없이 거절하고 아마도 부엌인 것 같은 공간으로 향하셨다. 우리는 선 채로 몇마도 짧은 단답형 대화를 나눴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고 나는 전화기를 찾아 아까 노트북들이 있던 공간으로 돌아갔다. 전화기는 있어야 할 곳에 없었나보다. 벨은 계속 울리는데 나는 전화기를 찾을수 없었다. 벨이 계속 울리자 저쪽에서 아버지가 한 소리 하셨다. 안 받고 뭐하냐고. 나는 네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고 계속 전화기를 찾았지만, 전화가 저절로 끊어질 때까지 찾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노트북을 살피다가 내가 하던 작업들이 저장되지 않은 채 사라져버린 것을 발견했다. 아, 저 순간의 감정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저런 일을 워낙 많이 겪었으니. 뭐라고 불러야 하나? 빡침? 꿈속의 나는 순간 너무 화가 나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은 내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혀있었고, 나는 폰을 열었다. 엄마였다.

엄마는 요며칠 서울은 무지 춥다는데 조심하라고, 옷 좀 따시게 입고 댕기라고 하셨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전화로 외삼촌 이야기를 비롯해 몇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나는 통화가 길어지자 무선 이어폰을 꺼내어 귀에 꽂고 폰은 다시 뒷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노트북 중 하나로 돌아가 마우스로 뭐가를 찾았다. 내가 건성으로 듣고 있다는 걸 깨달은 엄마는 바쁘면 끊자 했고, 나는 이따 다시 전화드릴게요 라고 하고 통화를 마쳤다.

한참 노트북을 만졌지만 날아간 작업은 결국 살릴수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향했고, 아버지가 뭔가 음식을 만들려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아~들은?˝ 이라고 아이들이 언제 집에 오는지 물었고, 나는 ˝몰라요. 이따 오겠죠.˝ 하고 건성으로 답했고, 아버지는 ˝다 오면 같이 먹자.˝ 하고는 다시 뭔가를 만드는데 집중하셨다.

나는 잠시 집안 여기저기를 치우고 있었다. 뭔가 치워도 치워도 정돈되지 않는 이상한 집이었다. 그때 다시 폰이 울렸다. 무선 이어폰을 아직 끼고 있었기에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다시 엄마였다. 엄마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바로 말씀을 못하고 한참 다급한 숨소리만 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니 잘 들으래이. 있잖아.˝ 하고 다시 엄마가 말씀하셨는데,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급한 상황인데, 무슨 뜸을 그리 들이냐며 채근하는 듯한 느낌의 큰소리를 내셨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분명 전화기 저쪽에서 들렸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개수대 앞에 서서 서툰 몸짓으로 뭔가 음식을 만들려고 애쓰는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이쪽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꿈속의 나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목소리를 줄이며 아까 내 공간으로 돌아갔다. 나는 목소리를 줄여 속삭이듯 그러나 다급하게 물었다. ˝엄마, 아빠 지금 거기 부산에 계세요? 엄마랑 같이 있어요?˝ 엄마는 갑자기 뜬금없이 아빠 얘기는 왜 하냐며,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잘 들으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언성을 높였다. ˝아니, 아빠가 지금 우리 집에 있다고. 지금 요리를 한다고 주방에 있다고!˝ 그 말을 하면서 꿈속의 나는 깨달았다. 우리 아버지는 요리를 하시는 분이 아니다. 라면 정도를 끓이는 것을 제외하면 뭔가를 만드실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러니 여기 우리 집에 있는 아버지는 가짜이고, 진짜 아버지는 부산에 엄마 옆에 계시겠지. 근데 자꾸 아까부터 엄마가 중요한 얘기라고 하면서 말을 못하는 건 대체 무슨 얘기지?

나는 다시 엄마에게 여기 있는 아빠가 가짜인 것 같다고, 거기 잘 계시는지 물었다. 그런데 엄마는 ˝야가 와 자꾸 뜬금없이 아빠 얘기를 하노! 아이고 야야. 니 어쩔라고 이라노.˝ 마치 내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럼 내가 모르게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내가 모르게라고 하면 내가 기억을 잃었나?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있는 사이에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데 내가 인지를 못하는 건가? 짧은 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데, 주방으로 나가보니 가짜 아버지는 ˝누고? 뭔 통화를 그래 오래하노?˝ 라고 하셨다. 그럼 이건 내가 만든 환상인가? 이 환상은 왜 지금 이 시점에 내 앞에 나타난 건가?

나는 엄마에게 옆에 아빠 좀 바꿔 달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왜 갑자기 아빠를 찾느냐며 탄식만 하시고, 바꿔줄 마음이 없어보였다. 옆에 계시다면 엄마가 이렇게 하실 이유는 없으니 지금은 옆에 안 계신 것이 분명하다. 그럼 아까 내가 통화 중에 들었던 그 목소리는 또 뭐지? 그게 환청인가? 그럼 오히려 여기 계신 아버지가 진짜인가?

나는 그제서야 누구랑 통화하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엄만데, 아빠, 엄마랑 언제 마지막으로 통화했어요?˝ 라고 답하면서 물었다.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몰라. 너거 엄마한테 전화할 일이 뭐 있노˝ 하고 답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드르륵 미닫이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추위에 뺨이 빨갛게 변한채 서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모습이 언젠가 내가 사진으로 찍어두고 자주보는 겨울 사진과 똑같았다. 아이들이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있었다. 이때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꿈이라고 생각한 순간,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모든 상황들이 다 이해가 되었다. 나는 꿈에서 깨기 전에 다시 어려진 아이들을 안아보고 볼에 입을 맞춰보고 싶었다. 현실에서는 다시는 해볼 수 없는 일이니. 아이들을 향해 몸을 돌려 뛰어가려는 순간 다시 전화가 왔다.

잠을 깼는데 실제로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화면에는 스팸으로 의심된다는 문자가 나타나있었다.

3. 몇 개 국어까지 가능할까?
가끔 꿈에서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원어민들의 말들을 쉽게 알아듣고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현실의 나처럼 잘 못 알아듣고 말도 떠듬떠듬 잘 못 한다. 어쩌다 꿈에서 외국어를 잘 했던 날에는 깨고 나서도 참 기분이 좋다. 며칠 전에 꾸었던 꿈에서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함께 어떤 시설에서 생활했는데, 각기 다른 여러 나라 언어들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꿈 속에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라 못 느꼈는데, 꿈에서 깰 무렵 어떤 사건이 터지면서 지금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때 내가 지금까지 외국어를 너무 잘 알아들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 꿈 속에서의 내 생활은 마치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의 삶 같기도 했고, 전장에서 잡혀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외계인에게 잡혀 수용소에 갇힌 지구 상에 몇 남겨지지 않은 소수의 생존자였을지도 모른다. 왜 그 시설에 갇혀있었는지, 누가 우리를 가두고 통제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안에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각 나라의 언어들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꿈 속의 나는 유난히 여러 말들을 잘 이해해서 언어 천재 소리를 들으며 주위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엔 단순히 언어 소통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주목을 받았던 것이 나중에는 거기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에도 해결을 요구받게 되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인데, 마치 내가 다 해결해줄 것처럼 기대하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모른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상황을 악화시켰고 결국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비참한 상황에 이르러 잠에서 깨어났다.

꿈의 뒷부분은 너무 허무하고 한심하고 짜증나는 상황이었음에도 꿈에서 깼을 때의 나는 앞부분의 나, 그러니까 여러 외국어를 능숙하게 알아듣는 내 모습이 좋았어서, 현실의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정말 그런 삶을 한번이라도 살아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려나.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꿈의 기억들은 더 있는데, 오늘은 여기서 줄여야겠다. 알라딘 서재에 정말 오랜만에 들어왔다. 여러가지 힘든 상황들을 좀 이겨내고 나면, 좀 더 자주 들어올 수 있겠지. 몸도 마음도 추운 이 상황을 잘 이겨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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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03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꿈을 꾸다 깨어 늦잠이라도 잔 듯 화들짝 놀라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의 꿈은 너무도 오래 이어져 며칠이 지나는 때도 있고 다시 든 잠에서 꿈이 연속극처럼 이어지는 때도 있더군요. 또 그런 날은 자주 깨어 피곤할 것 같지만 의외로 꿈 속의 시간 만큼이나 오래 휴식을 취한 듯 몸과 마음이 아주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도끼 자루 썩던 무릉도원의 꿈이 이럴까요.

감은빛 2025-12-05 18:01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정말 다양한 꿈이 있죠.
저도 마치 연속극처럼 이어지는 꿈도 자주 꾸는 편이고,
거의 비슷하게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데, 미묘하게 조금씩 다른 그런 꿈도 자주 꾸네요.

무릉도원의 꿈이라면 정말 깨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