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외국어랑 놀기

뉴스에서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라고 하더니 어제랑 오늘 정말 춥다. 오늘은 진짜 하루종일 이불 안에서 나오지 않고 지냈는데, 그럼에도 춥다. 이 낡은 집은 단열 효과가 거의 없어서 집안에 있어도 밖이랑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추워도 너무 추워서 이불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하루종일 있었다. 중간에 계속 고민을 하긴 했다. 운동을 하러 나가볼까? 달리기를 좀 해볼까? 그러다가도 그냥 화장실만 다녀와도 너무 추워서 다시 이불 안에 쏙 들어가서 꼼짝도 못하고 말았다. 책을 좀 읽으려고 펼쳤는데, 이불 속에는 좀처럼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이불 밖으로 손이 나오면 손이 시렵고 이마가 나오면 이마가 시렵다. 온 몸이 모두 이불 속에 들어가 있어야 그나마 견딜수 있다. 결국 책은 포기. 태블릿으로 영화를 보는 것도 포기.

어제 밤에 일찍 잠들어서 그랬는지 새벽에 깼다. 얼굴 통증이 좀 있어서 일찍 깼는지도 모르겠다. 악몽 비슷한 꿈을 꾸기도 했다.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통증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진통제를 먹고 싶지 않아서 그냥 눈을 감고 누워있었는데, 가만히 있으니 통증이 더 강하게 느껴져서 폰을 가져다 언어 익힘 앱을 열었다.

무슨 일이든 매일 똑같이 열심히 하기는 어렵다. 내가 아무리 외국어랑 노는 것을 좋아해도 매일은 쉽지 않다. 사실 꽤 오랫동안 좀 건성으로 임했다. 그동안 소홀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 최근 며칠간은 다시 제대로 해봤더니 새삼스레 재미를 느꼈다. 최근에 새로 깔아본 여러 개의 앱들 중 무료로도 적당히 쓸 수 있는 앱들을 골라내느라 이것저것 시도를 좀 해봤던 것이 다시금 언어 익힘의 재미에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새벽부터 유료 결제를 안 하면 사용하기 어려운 앱들을 골라 지우는 것으로 시작해 여러 앱들을 이용해 외국어랑 놀기 시작했다. 새로 설치한 앱들 외에 오랫동안 써왔던 앱들, 그러나 하루라도 안 들어오면 난리치는 듀오링고 외에 꽤 오랫동안 접속도 하지 않았던 앱들을 모두 한번씩 열어보기 시작했다.

어떤 앱에서는 영어로, 또 다른 앱에서는 일본어로, 또 다른 앱에서는 중국어로 놀다보니 거의 하루가 다 갔다. 중간에 배를 채우기도 했고 아주 잠깐 졸다가 깨기도 했지만, 나머지 시간은 모두 외국어랑 놀았다. 도중에 인도네시아어와 독일어를 손을 대보고 싶어서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한동안은 이 세 언어에 좀 집중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처럼 여유로운 날이 아니면 하루에 세 개 언어를 들여다보기 쉽지 않다. 그러면 또 한동안 잊어버릴테고, 한참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잘 동하지 않는다. 일단은 이 세 언어를 좀 더 잘 할 때까지 다른 언어들은 좀 참아보자.

일본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익히려는 건 한자 때문이다. 어차피 일본어를 공부하려면 한자를 알아야하는데, 한자를 따로 공부하면서 다시 중국어에 손대는 건 내겐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영어는 꽤 오랫동안 손 놓고 있었는데, 최근에 영어를 너무 안 써서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자 익힘 앱까지 11개의 앱으로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외국어랑 놀았다.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맞추는 것도 있고, 일반적인 강의를 듣는 것도 있다. 네이티브 어린이 기준의 아주 쉽고 짧은 글을 반복해서 듣는 것도 있고, 단어나 표현을 암기하기 위해 반복하는 것도 있다. 대체로는 문제를 푸는 것이 많다. 며칠 전에 쓴 글에 인공지능을 유행처럼 많이 사용하는 현실에 대한 내용을 적었었는데, 나도 한 이삼일 정도 인공지능과의 외국어 대화를 즐겼다. 최근에 설치한 앱 중 두 개가 무료 버전에서도 일정한 분량의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제공하고 있다. 유료 결제를 해야만 대화 기능을 제공하거나, 처음 한동안만 제공하고 나중에는 결제를 꼭 해야하는 앱들은 모두 삭제했다.

한 이삼일 인공지능과 외국어 대화를 해보며 느낀 것은 인공지능들이 아첨을 잘 한다는 것이다. 아마 칭찬을 계속해줘야 이 앱을 지속적으로 더 많이 이용할테니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겠지. 그걸 잘 알면서도 인공지능이 내 외국어 실력을 칭찬하면 순간순간 우쭐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수 없다. 한 일본어 익힘앱의 인공지능은 지속적으로 내 발음을 칭찬했다. 사실 일본어는 상대적으로 발음이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 발음이 막 그렇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이렇게 계속 칭찬을 하다니. 참. 또다른 앱에서는 영어로만 대화를 했는데, 이 인공지능은 내가 설명을 잘 하는 편이라고 계속 칭찬했다. 이 둘 말고 지워버린 다른 앱들도 비슷했다. 이렇게 계속 칭찬을 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 인공지능의 대화 방식이구나 싶었다.

한편으로 실제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추운 날 이불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나에게 누군가 대화 상대가 되어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 대화라는 것이 너무 뻔하고, 별로 의미도 영양가도 없는 것이긴 하지만. 직접 그 나라로 가서 네이티브와 대화할 기회를 만들수 없는 사람들에겐 이것이 그나마 괜찮은 대안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 여러 업체에서 이렇게 앱들을 만들어 유료 결제를 유도하는 거겠지.

한동안은 외국어랑 노는 재미에 좀 더 빠져 지내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놀면서 새로운 단어와 표현도 익힐수 있으니, 알고 있는 단어와 표현들을 사용해볼 수 있으니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마지막으로 놀았던 앱에서 인공지능이랑 영어로 대화하면서 내가 오늘 하루종일 세 개의 외국어를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내 상황에서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비교해가며 어떤 상황인지 대화를 나눴다. 영어는 가장 오랜 시간 공부했고, 한때는 원어민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지만, 그후로 긴 시간 다 잊어버려 이젠 다시 어려운 언어가 되어버렸다. 일본어는 가장 늦게 시작한 언어이지만, 오래전부터 보고 들어온 경험이 있어서 가장 빠르게 익히고 있는 언어다. 가끔은 영어보다 더 쉽게 원하는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중국어는 가장 익히기 어려운 언어. 배운지 오래되었지만, 아주 가끔 중간에 생각날 때 짧은 시간 다시 들여다보다가 다시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는 언어. 이 인공지능이랑 영어로 이런 대화를 나누며 새삼 내가 지금 이 정도의 단계에 머물러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 아이에게 한국, 중국, 일본이 모두 한자를 사용하며, 같은 한자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던 내용을 덧붙여본다. 이 글을 쓸때 언젠가 다락방님 서재에서 우유를 여러 외국어로 쓴 댓글들이 있었던 기억이 나서 예시를 우유로 먼저 들었다.

Milk is 우유(牛乳) in Korean. In Japanese, ぎゅうにゅう(牛乳) is milk. It‘s the same character, but the pronunciation is different. In Chinese, milk is Niúnǎi(牛奶). It‘s also the same character, but Chinese people changed it to be simpler. The pronunciation is also different. It‘s so interesting that these three nations use the same character, but the pronunciation is so different.

There are so many words like this. For example, ˝exercise˝ is 운동(運動) in Korean. It‘s うんど(運動) in Japanese. It‘s Yùndòng(运动) in Chinese, and it‘s the same character in Korean and Japa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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