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이 서재에도 야구와 관련한 많은 글을 썼었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대화를 통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야구는 경기 진행방법과 세부 룰을 자세하게 잘 알아야 즐길수 있다. 그리고 그 용어와 룰이 생각보다 어렵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하고 보아왔던 나는 야구 용어들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작년에 아이들을 야구장을 데려가기 위해 그 사전 지식으로 야구 보는 방법을 알려주다가 깨달았다. 야구 경기를 제대로 보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고 어렵구나. 그래도 큰 아이는 쉽게 잘 따라오고 금방 이해했다. 예전에 [스토브 리그] 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어서 좀 더 수월하게 받아들였으리라 본다.
요즘 [야구여왕]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어서 찾아보고 있다. 과거 각기 다른 종목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국가대표이거나 스타 선수들을 데려와 여자 야구팀을 만들어 경기를 치뤄가며 더 좋은 기량을 쌓아가고 승리를 만들어가는 내용이다. 거기 참여한 여러 선수들 중에 이미 야구를 좋아하고 제법 잘 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야구 실력, 그러니까 공을 받고 던지고 타격하는 실력은 탁월한데 야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선수도 있었다. 야구는 몇 명이 하는 스포츠인지 아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엉뚱한 숫자로 답할 정도로 상식적인 수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를 비난할 의도로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야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잘 말해주는 장면이라 적어놓는 것이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로야구가 인기 있는 스포츠이지만, 세계적으로 야구라는 종목을 즐기는 나라는 많지 않다. 특히 유럽과 아프리카 쪽의 많은 국가에서는 야구가 어떤 종목인지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축구가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대중적인 운동 종목이라면, 야구는 비교도 안되는 비인기 종목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에서 야구의 인기는 정말 대단하다. 수치로 보면 축구는 야구에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인기가 없다. 우리나라 축구는 국가대표 경기 정도 되어야 그나마 관심을 끌 수 있을뿐, 프로축구 경기는 소수의 팬들만 즐기는 수준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
나는 야구, 농구, 배구 등의 프로 스포츠 경기를 가끔씩 찾아보는데, 축구 경기는 거의 보지 않는다. 내 기준에서 별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축구팬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새벽잠을 포기하고 프리미어리그 경기 생중계를 보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앞서 말한 것은 각 프로 팀의 경기장을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는 관중이 적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에 반해 작년부터 시작한 야구장 열풍은 대단했다. 작년에 최초로 천만 관중을 돌파했고, 매번 각 구장의 예매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예매가 시작되는 시각에 정확히 접속을 해도 잠시 렉에 걸렸다가 대기번호가 수천번대에서 시작한다. 이건 거의 대부분의 구장이 마찬가지다. 내가 직접 고척, 잠실, 문학, 사직 야구장에서 표를 예매해보려고 엄청나게 노력해봐서 알게 된 것이다.
요즘 AI를 활용한 어학 앱들이 많다. 이것저것 깔아서 해보고 있다. 대체로 유료 결제를 해야 기본 기능들을 이용할 수 있는 앱들이 많은데, 이런 앱들은 며칠 써보고 지워버린다. 몇몇 앱들은 그래도 기본은 무료로 쓸수 있게 해주는데, 그중 두세개 앱을 써보고 있다. 오늘은 에이아이(영타로 바꾸기 귀찮은데, 이렇게 한글로 쓰니까 느낌이 너무 안 사네)와 대화하다가 winding down 이란 표현을 쓰는 것을 들었다. 몰랐던 표현이라서 따로 메모를 해두고 번역기도 돌려보고, 사전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구글 재미나이에게 이 표현의 뜻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얼마전에 한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는데, 특정한 단어들을 빠르게 떠올릴 수 없어서 사전과 번역기를 활용했는데 내가 원하는 만큼 표현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하는 생각에 재미나이에게 물어보았는데 의외로 굉장히 많은 예시와 다양한 상황을 포함한 답을 알려주어서 유용하게 썼던 것이 기억났던 것이다. 재미나이는 재미있게도 한국어로 질문하면 한국어로 답하고, 영어로 질문하면 영어로 답하더라. 그게 재미있어서 일본어로 질문했더니 일본어로 답했다. 딱 여기까지가 한계라 더 다른 언어를 시도해보지 못해 아쉽다.
암튼 이 wind down 이란 표현을 재미나이에게 물어보고 그가(인공지능을 인격 대명사 ‘그‘ 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지만, 일단은 이렇게 부르자.) 영어로 알려주는 표현들을 여러번 반복해서 듣고 따라 읽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와인드 업 이란 표현이 떠올랐다. 야구에서 투수가 투구를 하기 위한 준비동작으로 발을 들어올려 힘을 모으는 자세를 말한다. 저 wind down 과 wind up 은 연결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그리고 다시 재미나이의 답변을 살펴보니 긴 답변의 끝부분에 이 wind down 이란 표현이 시계 태엽의 스프링이 감기고 풀리는 것에서 나왔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재미나이에게 질문했다.
˝So both expression of wind down and wind up are related from clockwork spring?˝
어, 근데 이번에는 영어로 질문했는데, 재미나이가 우리말로 답했다.
˝네, 정확한 통찰입니다! Wind up과 wind down은 모두 태엽(clockwork spring)을 감고 풀리는 원리에서 그 의미가 파생되었습니다.˝ 이러고 추가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순간적으로 떠오른 내 예상이 맞은 것은 기분이 좋았지만, 통찰이란 표현까지 등장하며 인공지능에게 칭찬을 받는 것은 썩 기분좋은 상황은 아니다.
재미나이는 아주 친절하게 와인드 업 동작의 운동 역학적인 원리도 설명했고, 효과적으로 와인드 업 동작을 하기 위한 팁이 담긴 유튜브 영상도 알려줬다. 나도 한때 투수를 해본 적이 있고, 당연히 투구 연습도 해봤으니 와인드 업 자세는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야구 경기를 실제로 할 일도 없으니 이런 영상까지 볼 필요는 없는데, 나는 단지 이 표현의 유래와 쓰임이 궁금한 것인데, AI는 쓸데없이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그리고 이건 절대 공짜가 아니다. 내 간단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 멀리 어딘가의 데이터 센터에서는 무지막지하게 많은 양의 전기를 쓰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에너지와 기후위기 등 강의를 할 때마다 챗지피티 등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하는 행위가 엄청나게 많은 전기를 쓰는 것이라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무턱대고 많은 질문을 하기 보다는 잘 생각해보고 적절히 활용하면 좋겠다는 뜻으로 당부한 말씀이었다. 그런데 이젠 이런 말씀도 강의에서 드리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저 지브리 풍 프로필 사진이 유행했던 시기부터 점점 더 많은 인공지능들이 앞다투어 쏟아지는 시기에 이런 이야기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결국 나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어학 앱을 쓰고, 자주는 아니고 아주 가끔이지만 구글 재미나이를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친하지는 않지만 지인 중에 인공지능 전문가가 있다. 그는 정말 다양하고 많은 인공지능들을 사용한다. 그 활용 수준이 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더라. 그는 하루에도 수백건씩 쏟아져 나오는 인공지능 관련 기사들과 영상들을 인공지능에게 집어넣고 요약해달라고 하고, 그 결과만 본다고 했다. 이제 자신은 시간이 없어서 원본을 일일이 직접 볼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수많은 영상들의 요약본들을 다시 인공지능에게 맡겨 더 정밀한 작업들을 한다고도 말했다.
나는 무엇을 보더라도 비판적 시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고, 어떤 사회적 현상들에 본능적으로 반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인공지능을 과도하게 활용하는 현재의 세상이 내 눈에는 좀 웃긴 코메디 프로그램의 장면처럼 보인다. 얼마 전에는 대학에서 활용하는 인공지능,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의 인공지능 표절 비율을 측정하는 인공지능이 가진 한계를 비판하는 칼럼을 읽었다. 너도 나도 모두 챗지피티를 비롯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시대에 대학생들이 리포트를 쓰면서 인공지능에게 맡기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행왜에 대한 스스로의 어떤 반발이나 반성도 없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이 그렇다고 요즘 세태를 표현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 인공지능을 전혀 참고하지 않고 직접 본인이 쓴 과제물을 앞서 언급한 그 인공지능, 대학에서 인공지능을 배껴 쓴 과제물을 가려내기 위해 활용하는 바로 그 인공지능에 넣고 돌려보니 오히려 표절률이 너무 높게 나왔다고 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분명 내가 직접 스스로 아무런 인공지능도 참고하지 않고 쓴 글인데 표절이라고? 그래서 저 칼럼을 쓴 저자는 본인 글을 인공지능이 쓴 것 같지 않은 말투와 내용으로 바꾸는데에 원래 과제를 쓴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고 적었다. 이것이야 말로 주객전도이자, 배 보다 배꼽이 더 커진 상황이다.
저 위에 언급한 인공지능 전문가 지인의 경우로 돌아가보자.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중 가장 먼저 들었던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인공지능을 그 정도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유료 결제를 해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내가 직접 시험해 본 무료 버전의 여러 인공지능들은 모두 그 한계가 명확했다. 전문적인 내용의 질문에 거의 대다수가 엉뚱한 답을 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내용들이나, 웹 상에 정보가 많은 내용들은 그래도 정확도가 떨어지지 않겠지만, 인공지능이 검토해서 찾아볼 수 있는 원 소스가 별로 없는 정보에는 인공지능으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짧은 시간안에 많은 정보들을 검색해서 그 중에 적절한 정보들을 제공하는데, 그 안에 꼭 정확하게 옳은 혹은 내가 원하는 답에 잘 맞는 그런 정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인공지능이 참조하는 원소스가 잘못되었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에 속은 셈이 된다.
그리고 수많은 기사나 영상을 집어넣고 요약하는 일도 나로서는 그 결과를 믿기 어렵다. 요약도 관점과 기준이 명확해야 할 수 있다. 요약을 잘 하려면 그 분야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걸 인공지능한테 맡긴다고? 그 요약본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여기 서재에 글로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몇 달전부터 각 기업에 상담전화를 걸거나 받으면 인공지능으로 연결되고 있는데, 이 멍청한 인공지능들이 아주 간단한 상담을 제대로 하지 못해 엄청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 있다. 이건 내가 겪은 것만 해도 몇 건이 되는데, 정말 어이없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인공지능 상담사가 답할 수 없는 상담인데, 먼저 인공지능에게 상담하지 않으면 인간 상담사에게 연결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시스템 때문에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몇 번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끊었다가 다시 통화하고 별의 별 방법을 다 써봐도 해결되지 않았다. 인공지능은 내가 해결하기를 원하는 내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엉뚱한 이야기만 반복했다. 나는 그날 안에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1시간이 넘게 이 바보같은 짓을 반복했다. 결국 반복되는 문제를 드디어 인공지능도 인지한 것인지 몰라도 인간 상담사를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인간 상담사는 내 문제를 2분도 안 되어 해결해주었다. 나는 이미 1시간 넘은 시간을 인공지능 상담사에게 허비해 버렸는데, 내 아까운 시간과 노력은 누가 보상해주나?
내가 아무리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지금 그리고 앞으로 인류가 훨씬 더 많고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할 것은 명백하다. 이건 절대 되돌리거나 막을 수 없는 흐름일 것이다. 휴대폰이 이미 존재하는 시대에 태어나 자란 사람은 집에 전화기도 잘 없던 시절을 상상하기 어렵다. 스마트폰이 일상적으로 누구나 사용하는 시대에 태어나 자란 사람은 컴퓨터란 것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주판으로 복잡한 계산을 하던 시절을 알 수 없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많아지고 더 많은 분야에서 사용하는 시대가 곧 온다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더는 인공지능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을 잊을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분명 아니지만, 지금 여기에서, 그러니까 인류가 인공지능에게 더 많이 의존하기 전에 다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적절하게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는 제도와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무턱대고 겪어가면서 시행착오를 거치기에는 이 상황이 너무 거대하고, 이 문제가 너무 심각하고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쓰다보니 영어 표현 하나에서 출발해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까지 넘나들며 좀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역시 즉흥적으로 쓰는 글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최근에 읽은 책들과 영화 이야기도 쓰려고 남겨둔 메모들이 있는데, 과연 언제 또 자판을 두드릴 것인가? 올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어느 종교에서 신의 아들로 여기는 어떤 이의 생일이라는 날이 다가온다. 사람들이 왜 그날을 기념일로 여기며 즐기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뭐 상관없다. 이것도 그냥 받아들여야 할 사회현상일테니.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조기교육을 시켰다.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는 날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이 아니며, 산타는 존재하지 않으며, 빨간 색 로고를 가진 아주 유명한 음료수 회사가 만들어 낸 이미지를 전 세계 사람들이 그냥 따르고 있는 거라고. 겨울에 교회마다 화려하게 불을 밝혀놓는 저 조명에 엄청나게 많은 전기를 쓰고 있고, 그 전기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내뿜은 온실가스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인류는 멸종할 거라고. 우리 아이들은 산타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아주 편안하게 받아들였고, 겨울에 길가다 마주치는 교회의 화려한 조명 장식을 보면 왜 저런 짓을 하냐고 저건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라고 화를 냈다. 가끔 미디어에서 보면, 어린이들에게 산타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지켜주는 것을 인류애 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써가며, 어른들이 꼭 배려해줘야 하는 덕목처럼 포장하던데, 너무 웃기고 멍청한 짓이다. 왜 우리가 거대 기업이 만들어 낸 그 이미지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아니 백번 양보해서 산타 클로스 라는 실재했던 성인의 이야기를 잘 전파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시각적으로 만들어진 그 산타 말고 정말로 고증이 잘 된 현실적인 산타 이야기라면 그것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이 믿고 있는 그 산타는 아니다. 크리스마스의 산타 클로스 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과 그 이야기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다는 망상에 빠진 상황을 지켜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걸 착각하는 것이 인류애라면 나는 인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