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동물을 키워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아마 시골에 살았다면 달랐을테지만,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입에 풀칠할 일을 걱정해야 할 집안에 애완동물은 상상할 수 조차 없었을 것이다. 우리 처럼 방 한 칸 얻어 사는 집들이 십여가구 있었던 우리 집(하나의 대문을 사용하는 건물로서의)에도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은 전혀 없었다. 또한 좁은 골목마다 수십가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살던 동네 전체에서도 동물을 키우는 집을 본 기억은 없다. 그러니 살면서 마주친 (인간 이외의)동물이라고 해봐야 바퀴벌레와 이와 모기, 파리 따위의 곤충들이 대부분이었고, 참새들, 비둘기들 등의 조류들이 가끔 마주치는 존재들이었다. 흔히 우리가 딱 '동물'이라고 떠올리는 포유류 중에서는 아주 가끔 만나는 길고양이들이 전부였고, 개를 길에서 마주친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될 때까지 만났던 친구들 중에서도 동물을 기르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자라면서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과 교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다른 동물과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참으로 어색하고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 고등학교 때였다. 한 친구가 집에서 고양이를 두 마리 길렀는데, 교복에 자주 고양이 털이 붙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그것이 무척 보기 싫었고, 외출할 때마다 늘 고양이 털을 신경써야하는 일이 무척 귀찮게 보여서 더욱 기억난다) 그 집에 놀러갔다가 고양이이가 손등을 할퀴었던 일도 기억난다.
한때 사귀었던 후배는 개를 정말 좋아했다. 아직 제대로 입맞춤도 해보지 못한 연애 초기에 후배가 어디선가 나타난 개를 보고 반가워하며 쪼르르 달려가서는 쓰다듬고, 안고, 심지어 뽀뽀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놀랐다. 속으로 나도 아직 느껴보지 못한 입술의 감촉을 웬 X개가 먼저 느끼다니 라고 생각하며 짜증이 나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그 후배가 참 신기했다. 어쩜 저렇게 개를 좋아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요즘은 동물을 기르는 집이 많은 듯 하다. 그리고 개와 고양이 뿐 아니라 햄스터, 고슴도치, 카멜레온, 토끼, 거북이, 사슴벌레 등등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해졌다. 길을 걷다 개와 고양이를 한번쯤 안만나는 일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동네에는 길고양이들도 많고, 사람들이 데리고 나온 개들도 많다.
아마 녹색당 활동을 하면서 그렇게 된 듯 하지만, 지금 내 주위에도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 분들은 반려동물들의 엄마나 아빠(혹은 언니, 오빠)가 되어 정말 가족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 문화에 익숙치 않은 나는 역시나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신기하게 느껴졌다.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도 인간과 똑같이 소중한 생명체이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사실, 지금껏 머리로만 알고 있던 그 사실을 이제 몸으로 알게 되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동물권,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가?] 이다. 피터 싱어로부터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사회운동인 '동물권 운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동물권 운동의 역사와 현황 그리고 쟁점들을 알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마음에 남는 건, 4장 '잔인한 오락' 부분이다. 사냥, 투우, 로데오, 경마, 서커스, 해상공원, 동물원, 애완동물 등의 인간 문화가 동물들에게는 잔인한 오락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그 중 몇몇 부분은 이제껏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라서 더 맘에 남는다.
또한 6장 '잔혹한 패션' 부분도 역시 인상적이다. '잔인한 오락', '잔혹한 패션' 이 책에서 만난 소제목들이 자꾸만 아프게 와닿는다.
다음에 읽을 책으로 보관함에 담아둔 책. 1975년 피터 싱어의 문제작 [동물 해방]의 개정판이 마침 최근에 나왔다. 동물권 운동을 이해하는데 있어 고전이라고 부를만한 필독서이다.
얼마전 이 책을 읽고 뜬금없이 거미를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통 같은 것에 가둬놓지 않고 그냥 집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반려 동물로서 거미를 길러보는 것. 어떨까? 물론 우리 집 세 여우가 비명을 지르며 반대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지만, 거미는 모기나 파리 등 우리를 귀찮게 하거나 피해를 주는 곤충들을 잡아주고, 인간에게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 게다가 거미줄은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지만 모든 거미가 다 징그럽고 무섭게 생긴 것은 아니다.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주홍거미 같은 녀석은 제법 예쁘장하게 생겼다. 이런 거미가 우리 집 한켠에 거미줄을 치고 함께 살아간다면 나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역시 아무래도 무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