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ked out of office

 

우리 회사가 있는 건물은 밤에 번호키가 달린 전자자물쇠로 문을 잠근다. 정문과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후문과 각 층의 출입문에 모두 번호키가 달려있다. 아침에 건물 관리인이 문을 열면, 낮에는 모두 열어놓는다. 밤에만 관리인이 퇴근하면서 다시 잠그는 것 같다. 간혹 야근을 하다 보면 낮에는 잠겨있지 않던 각 문들이 모두 잠겨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문제는 내 기억력이 최악이라는 점이다. 분명히 몇 해 전에 전자자물쇠를 처음 달았을 때, 각 번호키의 비밀번호를 들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특히나 숫자를 잘 외우지 못한다. 주민등록번호를 외우는데에도 무척 애를 먹었고, 대학 학번과 군대에서 받은 군번도 잘 못 외웠다. 삐삐번호나 집 전화번호도 잘 외우지 못했다. 나중에 휴대전화가 생겼을 때에도 내 전화번호를 몰라서 늘 전화기를 열어보고 나서야 상대방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지금도 내 전화번호와 아내의 전화번호 단 두 개만 기억할 뿐 다른 가족들이나 친구들 번호는 아예 외우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여기저기 번호키로 여는 전자자물쇠가 너무 많다. 우리 사무실과 우리 집 비밀번호를 외우는 것만 해도 나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그런데 건물 정문과 후문 그리고 사무실이 위치한 2층 출입문 비번을 모두 어떻게 외우란 말인가!

 

몇 주 전, 혼자 야근을 하고 있었다. 빨리 끝내고 가려 했건만, 일은 자꾸 늦어지고 결국 자정을 넘겨버렸다. 너무 피곤해서 잠시 휴식을 할 겸 편의점에 음료수를 사러 나갔다. 전화기와 지갑은 놓고, 천 원짜리 두 장에 동전 몇 개만 주머니에 넣고 슬리퍼를 끌고 내려갔다. 평소라면 자동으로 잠기는 전자자물쇠를 의식해서 각 출입문이 모두 닫히지 않도록 조심했을 텐데, 그날은 너무 피곤해서 그랬는지 아무 생각 없이 편의점에 가서 에너지 음료를 사서 돌아왔다. 정문은 무의식중에도 열어뒀는데, 계단을 올라가 보니 2층 출입문이 저절로 닫혀 있었다. 아무리 손잡이를 돌려도 열리지 않고, 번호키를 이것저것 눌러봐도 소용이 없었다. '진정하자! 잘 생각해보면 뭔가 떠오를지도 몰라!' 라고 되뇌며 몇 개의 숫자 조합을 눌렀는데, 갑자기 이 녀석이 큰 소리로 삑삑삑! 경보음을 내더니 아예 작동을 멈춰버린다. 틀린 비번을 몇 회 이상 누르면 아예 작동이 안 되도록 설정이 된 모양이다.

 

이거 참 난감했다. 누구에게 연락할 전화기도 없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 해도 지갑을 놓고 와서 택시비조차 없었다. 한가지 생각이 난 것은 우리 사무실이 건물 제일 뒤쪽이고, 아주 작은 베란다 같은 공간이 있어서 건물 뒤편 주차장에서 벽을 타고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이었다. 베란다 바로 밑에 자주 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자동차 위에 올랐다가 다시 벽을 타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싶었다. 막상 주차장에 가보니 늘 서 있던 차들이 이 밤에는 모두 가버린 것을 발견했다. 2층이라곤 해도 베란다는 무척 높은 곳에 있었다. 대략 내 키의 2배 이상 될 듯했다. 이 건물은 구조가 좀 독특해서 2층이 유난히 높다. 외벽은 미끄러운 타일이 붙어 있어서 타고 오를 수도 없었다.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이라면 단번에 올랐을 텐데 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주차장을 뱅글뱅글 돌았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집까지 걸어갈까? 밤을 새워 걸으면 도착하려나? 주차장 구석에 쭈그리고 자고 있다가 아침에 관리인이 출근해서 문을 열어주면 들어가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 꼴이 무척 우스꽝스럽고 한심했다. 정말 별일이 다 생기는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해답을 찾았다. 한참을 주차장을 서성이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옆 건물 한 켠에 쌓아놓은 잡동사니들 틈에서 사다리를 발견했다. 다리를 벌려 세우니 대략 2미터 높이쯤 되어 보인다. 균형을 잘 잡으며 그 끝에 올라서니 베란다 난간 기둥 아래쪽을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이대로 내 몸무게를 끌어올릴 수 있을까? 벽이 미끄러워 조심스러웠다. 자칫 실수로 떨어지면 큰 사고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솔직히 겁이 났지만, 내 팔의 근육을 믿어보기로 했다. 힘을 꽉 주고 발로 벽을 디디면서 몸을 끌어올렸다.

 

간신히 몸의 절반 이상을 난간 안쪽으로 밀어 넣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베란다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오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한 십여 분 가량 밖에 갇혀 있었는데(이게 어법적으로 말이 되나 모르겠지만, 영어엔 locked out of 라는 표현이 있더라.) 정말 십 년 감수한 느낌이다. 만약 우리 사무실이 건물 제일 뒤쪽에 있지 않았다면, 아주 작은 베란다 공간이 없었다면, 옆 건물 잡동사니 틈에 사다리가 없었다면 다시 돌아오기는 불가능했다.

 

그 일을 겪은 후 나는 반드시 건물 각 출입문의 비밀번호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늘 그렇듯이 잊어버리고 지내왔다. 그리고 어젯밤 나는 또 야근을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경과는 거의 똑같았다. 자정이 조금 지난 무렵 나는 또 에너지 음료를 사러 천 원짜리 두 장만 들고 나왔고, 휴대전화와 지갑은 책상 위에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2층 출입문은 단단히 고정해두고 내려왔는데, 정문이 자동으로 잠겨있음을 발견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멀리 돌아서 주차장을 통해 후문으로 가봤으나 역시 잠겨있었다. 몇 주 전과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것까지 똑같았다. 제발 옆 건물에서 사다리를 치우지 않았기를 바라며 어두운 건물 그림자 속으로 향했다. 다행히 사다리는 그대로 있었다. 지난번에 한번 해봐서 이번에는 다소 여유 있을 줄 알았는데, 사다리 끝에 서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난간 기둥 아래쪽을 손에 쥐고 나니 다시 겁이 났다. 머릿속에서는 발을 끌어올리려다 실수로 몸의 균형을 잃으면서 뒤로 떨어지는 내 모습이 영화에서처럼 느린 화면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좁은 사다리 위에서 도움닫기나 반동을 주지 못하고 순전히 팔힘으로만 몸을 끌어올렸다. 역시 한 번의 경험은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는 좀 더 부드럽게 무게 중심을 난간 안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다시 내려가서 사다리를 치우고, 더러워진 손을 씻고, 옷과 머리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에너지 음료를 단숨에 마시고 나니 시간은 한 시가 가까웠다. 일을 마무리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도저히 일할 기분이 아니었다. 에이! 그냥 집에나 가야겠다. 내일 아침에 반드시 건물 비밀번호를 물어봐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컴퓨터를 껐다.

 

 

산 책, 읽을 책, 읽고 있는 책

 

 

페이스 북을 통해 알라딘에서 이 책의 독자북펀딩 소식을 접했다.

어머! 이건 완전 내 책인데!

없는 살림에 많이 보태지는 못했지만,

이 의미 있는 책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탰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책을 받아들고 판권 페이지에 있는 펀드 참가자 명단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보니 더욱 자부심이 느껴진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는 이름들이 제법 있다. 반갑다!

그들도 내 이름을 보고 반가워하겠지.

 

어서 읽고 널리 알려야겠다!

 

 

 

알라딘 서재에는 글 잘 쓰는 분들이 제법 많다.

저마다 문체와 분위기가 다 달라서 비교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건 재미있고, 흥미롭고,

하고 싶은 얘기를 읽는이에게 잘 전달한다는 점에서

다들 잘 쓴다고 말할 수 있다.

 

불량주부님의 글은 처음 읽었을 때부터

흥미로웠고, 그 주제와 내용에 공감했다.

결혼, 가사노동, 육아, 일상

민감하고 중요한 주제를 생활 속에서 풀어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재밌게 읽고 아내에게도 권해야겠다.

 

 

 

마태우스님을 알기 전에는 기생충이란 존재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마태우스님을 알았어도 기생충을 연구하는 분이시구나.

그러고 말았을 뿐, 기생충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은 이유도 사실 기생충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마태우스님의 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글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기생충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이젠 마태우스님 때문이 아니라,

이 책이 훌륭한 교양과학서 이기에 널리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외에도 여러 책들을 샀고, 읽었고, 또 읽고 있는 중이다.

이사 준비로 책을 정리해야 하는데, 덥다고 계속 미루고 있다.

그래놓고 책은 사무실로 배달시키고 있다.

사무실에 쌓여 있는 책이 너무 많아서 내가 최근에 산 책을 찾기가 힘들다.

어제는 보관함에 있는 책들을 살피다가 이 책이 집에 있었던가?

사무실에 있었던가? 아님 아직 사지 않은 책이었던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을 고민하기도 했다.

 

내일은 휴일이다!

남은 오후는 열심히 일하고, 저녁엔 열심히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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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녹조라떼의 귀환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이름하여 녹조라떼!

 

최근 이명박과 그 일당들이 대운하 사업을 4대강 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추진한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감사원은 감사 과정에서 대량으로 파기된 관련 자료들을 컴퓨터 하드에서 복원했다고 밝혔다. 이제 대운하 사기극, 대국민 사기극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올해 1월 이명박이 박근혜 정권 끝난 뒤, 차기 정권때 4대강을 대운하 사업으로 완성할 뜻을 밝혔다는 조선일보 기사(4월 22일자)도 눈에 띈다. 역행침식이 계속 일어나고, 여름마다 녹조가 창궐하고, 부실공사로 인한 댐(저들은 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댐이다.)의 누수, 해마다 악화된 수질을 관리하고 댐을 유지 관리하기 위한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결국 5~6년쯤 버티다가 다시 대운하를 시도하겠다는 저들의 계획은 참 황당하다.

 

더 말이 필요없다. 지금이라도 당장 댐을 허물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과 4대강 전도사를 비롯해 여기에 연루된 사람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조사해서 그에 걸맞는 댓가를 치뤄야 할 것이다.

 

낙동강 물을 식수원으로 쓰는 수많은 국민들은 저 녹조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까?

 

녹조라떼의 귀환 ⓒ정수근(대구환경운동연합)

 

녹조라떼 3종 세트 ⓒ정수근(대구환경운동연합)

 

강정고령보에 창궐한 녹조 ⓒ정수근(대구환경운동연합)

 

2. 강정 평화대행진

 

올해도 강정 평화대행진이 시작되었다. 작년과 거의 비슷한 기간인 듯하다. 작년과 올해 모두 마음은 함께 걷고 싶으나, 일터와 가족에게 매인 몸을 빼내기가 쉽지 않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따져보면 이만한 기회가 없다. 걷기 좋아하고, 제주의 경치를 좋아하고, 강정 마을을 살려야 한다는 대의에 공감하고, 해군기지를 반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여름을 가장 재미있고 바람차게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비록 몸은 사무실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평화대행진을 걷고 있다. 함께 가자고 권했던 사람들.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페이스북 사진들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3. 정전 60주년

 

몰랐는데, 올해가 정전 60주년이란다. 종전도 아니고 정전협정을 맺은 걸 굳이 기념해야하나 생각이 들었다가 그 악몽같은 전쟁이 멈춘 것 자체가 큰 의의가 있겠다 싶었다. 재밌는 사실 하나는 우리나라는 정전협정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니 이승만 정권이 고의적으로 빠진 것이 아닐까 싶다. 미국(연합국)과 중국과 북한, 이 3자가 맺은 정전 협정이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전쟁을 끝내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북으로 올라가서 영토를 넓히기를 원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읽고 또 들었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서울 시민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남으로 도망갔던 주제에 전쟁이 길어지고, 국민들의 목숨과 삶 따위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연합국 덕택에 조금이라도 더 영토를 넓히고자 했다니! 정말 이승만과 그 똘마니들은 역사앞에 죄인이 아닐 수 없다!

 

철책선 근무를 섰던 건 겨울에서 봄까지 였다. 그래서 여름의 철책선은 기억에 없다. 함박눈이 내리는 철책선 너머로 어두운 북녘땅을 바라보던 기억과 날씨가 풀려 얼음이 녹고 푸른 초원이 펼쳐진 DMZ를 바라본 기억은 선명하다. 밤새 근무를 서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몸은 힘들고 마음은 아프지만, 이렇게 멋진 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은 기쁘고, 아무나 누리기 힘든 행운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상상을 해봤다. 푸른 군복과 방탄모에 군화 차림이 아니었다면, 실탄 75발과 수류탄 1발 수령을 복창하고, 총구를 앞세워 지뢰지대 푯말과 철책선을 따라 걸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와 망원경과 수첩과 연필을 들고 느긋하게 걸어다니면서 산과 초원과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들을 보고, 그리고, 기록하면서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정전 60주년, DMZ가 만들어진 지 60주년을 맞아

 DMZ 주변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해

 조곤조곤 들려주는 책이 나왔다.

 

 60년간 인간이 발길이 닿지 않아,

 비밀의 숲이 되어버린 DMZ 안에는

 어떤 생명들이 살고 있을까?

 궁금해?

 궁금하면 (5백원....이 아니라) 읽어 보시라! ^^

 

 

 제목처럼 DMZ에서 함부로 공을 차다가는

 지뢰밭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절대 공을 차면 안된다!

 (거기서 근무했던 짧은 기간동안  사고사례 전파를 통해

 전해들은 지뢰 사고가 여러 건 있었고,

 그 중에는 축구하다가 여러명이 희생된 사고도 있었다.)

 

 물론 이 책이 비무장지대 안에서 공을 차자는 의미는 아니다.

 DMZ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오늘날 DMZ의 존재 의의에 대해 알아보는 책이다.

  

 

 

 

4. 7월의 마지막 날

 

시간 참 빠르다! 벌써 7월의 마지막 날이라니!

7월의 단어를 꼽아보자.

 

① 이사준비

지겹고 또 지겨운 이사. 시간이 날때마다 집을 알아보러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중간중간 비대하게 늘어난 짐 정리(주로 책정리)도 해야했다. 더운 날씨와 쉼없이 쏟아붓는 비에도 불구하게 이사갈 집을 구해야 했다. 하도 집을 많이 봐서 나중에는 이 집이 이랬는지, 저 집이 저랬는지 헷갈렸다. 살면서 가장 많은 집을 보러 다닌 시기였다.

 

② 맥주

여름이라 그랬는지, 비가 많이 와서 그랬는지 맥주를 참 많이도 마셨다. 운동을 시작하면서는 자연스레 술도 줄겠지 싶었는데, 밤 늦게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맥주와 안주를 사는 나를 발견했다. 집 주인과의 마찰과 이사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도 한 몫 했다.

 

③ 운동

그렇게 맥주를 마셨음에도 운동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몸매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하루 이틀 운동을 해나갈수록 몸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몸매를 위해서 하는 운동이 아닌, 몸을 위해 하는 운동으로 생각도 바꿨다. 명품 복근을 만들어준다는 운동보다는 기본부터 차근차근 다지는 운동 위주로 하고 있다. 그랬더니 몸매는 정말 덤으로 따라온다는 느낌이다.

 

 ④ 비

올해 7월을 한 글자로 정리하려면 '비'라고 하면 된다. 지겹게 쉼없이 내리기도 했지만 짧은 시간에 어마어마한 양을 쏟아붓기로도 대단했다. 덕분에 날마다 술이 땡기는 시간이었고, 비를 핑계로 사람들 불러내기 좋은 시기였다. 물론 나는 운동 덕분에 많이 자제했지만, 운동이 아니었다면 아마 날마다 취해서 지냈을 듯하다.

 

 

5. 책 읽기

 

이사를 위해 책정리를 하다보니, 구석구석 숨겨져 있던 책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 이 책도 샀었지. 아, 이 책은 한참 찾아도 안보여서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여기 있었네. 어, 이런 책도 집에 있었나? 책 정리를 하다말고 한 권을 펼쳐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기 일쑤다. 이 책, 저 책 조금씩 야금야금 읽다 말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운동과 맥주 덕분에 평소보다 더 책을 많이 읽었다. 평소라면 밖에서 사람들과 술을 마실 일이 더 많았을텐데, 저녁 시간에 운동을 하다보니 운동을 마치고 밤 늦게 혼자 맥주와 책을 붙들고 보낸 시간이 꽤 있었다.

 

쓰다보니 자꾸 길어지네. 이만 마무리하고 빨리 일을 마저 해야겠다. 오늘과 내일만 버티면 휴가다. 대신 월말, 월초에 몰리는 바쁜 일들과 휴가기간 동안의 업무 인수인계 준비까지 정신없이 바쁜 시간이다.(바쁘다며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뭐냐?) 빡세게 일하고 뜨거운 휴가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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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7-31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조라떼, 기발합니다.
맥주를 마시며 책을 보시다니... 취하지 않는 음주 실력인 듯... ㅋ
올해 7월을 한 글자로 정리하면 '비'이군요.
즐거운 휴가 보내세요. ^^

감은빛 2013-08-01 01:07   좋아요 0 | URL
작년 여름의 녹조라떼도 아주 심각했습니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좀 괜찮으려나 싶었는데,
남쪽에는 이른 폭염과 함께 녹조라떼가 아주 극심했나 봅니다.

맥주 뿐 아니라 가끔 소주를 비롯한 여러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어요.
저번 글에도 썼지만, 술 마시며 책을 읽다보면
책에 빠져서 술을 마시던 사실조차 잊게 되기도 합니다.

페크님은 휴가 안가시나요?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겠습니다.

yamoo 2013-07-31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거가 녹조라떼군요! 아주 끔찍합니다. 저렇게 담아놓으니 맛있게는 보이네요..ㅡㅡ;; 운동 못한지 2년이 넘어갑니다.ㅜㅜ 대신 살이 오르고 있어요~ 제갠살이 필요하거든요..ㅋ 대신 뱃살도..ㅠㅠ

감은빛 2013-08-01 01:09   좋아요 0 | URL
아주 끔찍하죠!
명바기의 계획에 의하면 앞으로 매년 여름마다 저 지경이 될겁니다.
살이 필요하신 분이라니!
이 살과의 전쟁 시대에 아주 희귀한 분이시군요!

Mephistopheles 2013-08-02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XVIII...!!!!

감은빛 2013-08-06 02:11   좋아요 0 | URL
어머! 이건 무슨 뜻일까요?
로마자로 17인가요?
궁금해요!!!!

Mephistopheles 2013-08-06 10:43   좋아요 0 | URL
XVIII = 18 (본의아니게....근데 정말 욕나오는 상황이다 보니...)

감은빛 2013-08-13 17:37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뜻이었군요!
네, 누구라도 욕이 나올 수 밖에 없죠!

마녀고양이 2013-08-14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조 라떼, 색은 이쁘구만요.... ㅠㅠㅠㅠㅠㅠㅠㅠ(깊은 한숨)

더운 날 이사 잘 하셨나요?
정말 더워도 너무 덥네요, 그래도 운동도 하시고 기초 체력도 차근차근 쌓으신다니,
참 좋네요. 알차게 생활하시는 모습이 그려져요. 운동 하나 안 하고 살찌는 저는 어쩜 좋을까요?

오늘 하늘이 참 맑습니다.

감은빛 2013-08-14 11:47   좋아요 0 | URL
색은 예쁘죠! ㅠ.ㅠ

이사 아직 안했어요.
날이 더우니, 9월 말에 이사하자고 주인을 설득했어요.
지금 책 정리와 짐 정리를 해야하는데,
날씨가 더워서 암 것도 못하고 있어요.

마녀고양이님, 오늘도 즐거운 날 되시길 바랍니다! ^^
 

아침이 오는 소리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 '너를 사랑해(한동준)'는 "아침이 오는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라고 시작한다. 이 '아침이 오는 소리'라는 표현이 참 좋아서 오래 자주 흥얼거리곤 했다. 아침이 오는 소리는 과연 뭘까?

 

오랫동안 내게 아침이 오는 소리는 어머니가 깨우는 소리였다. 혹은 어머니가 아침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였다. 밤잠이 없고 아침잠이 많은 나는 전형적인 야행성 인간이었다. 늘 새벽까지 깨어서 책을 읽거나 뭔가를 끄적였고, 아침에 누군가 깨워주기 전에는 일어나지 못했다. 아침을 먹지 않는 습관도 이미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늦게 일어난 주제에 아침까지 챙겨먹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자취할 때부터 아침이 오는 소리는 달라진다. 물론 생활 패턴 상 아침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 때가 더 많았지만, 집안에 있는 누군가가 내는 소리가 아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침과 함께 찾아왔다. 우선 새소리. 그 유명한 일찍 일어나는 새에 대한 경구처럼 새들은 정말 일찍 일어나나보다. 날이 채 밝기도 전부터 새 소리가 들렸다. 분명 주택가였고, 주변에 나무가 많지 않았음에도 새 소리는 매일 아침 들렸다. 산 아래 마을이었고, 거리가 좀 있긴 했지만 저 위로 숲과 공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땐 깨닫지 못했지만 아침마다 새소리를 듣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그리고 분주하게 비탈길을 내려가는 사람들 소리가 이어진다. 출근길과 등교길. 소리만 들어도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알수 있다. 운동화, 남성 구두, 뾰족구두, 통굽구두, 슬리퍼 다양한 신발들이 콘크리트 바닥을 밟으며 비탈길을 내려갔다. 매일 들리는 소리는 아니지만, '재첩국 사이소~!' 재첩 아지매 소리도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갈 때 종종 듣는 소리다. 밤새 술을 마신 날엔 슬리퍼를 끌면서 나가 한 그릇 사 마시고 잠이 들기도 했다. 커다란 들통을 머리에 이고 그 경사가 급한 골목길을 어찌 다니시는지 참 대단한 분이셨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에는 고시원에서 지냈다. 이때 아침이 오는 소리는 뭐였을까? 고시원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가는 소리였겠지. 좁은 방, 얇은 벽 덕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옆방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다 알수 있다. 대학 근처였기에 학생들도 많았고, 나처럼 사회생활 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아침이면 공동 화장실과 공동 세면장을 다른 사람보다 빨리 쓰려고 경쟁이 치열했다.

 

지금 아침이 오는 소리는? 휴대전화 알람 소리다. 아내와 나 그리고 큰 아이의 휴대전화에서 각각 다른 시간에 다른 소리로 알람이 울린다. 우리 식구들 모두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여러번 알람이 울려도 금방 깨지 않는다. 아니 설마 깼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끄겠지. 난 조금이라도 더 잘래. 하고 다시 기절하듯 잠이 든다. 세 개의 전화기가 경쟁하듯 시끄럽게 한참을 울고 나서야 아내와 나 둘 중 하나가 깨서 알람을 끈다. 그제서야 이웃 집 나무에서 울어대는 새소리도 들리고, 계단을 쿵쾅거리며 내려가는 윗집 사람들의 발 소리도 들린다.

 

한동준의 저 달콤한 노랫말에 어울리는 아침이 오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역시 새소리가 제일 어울리지 않을까? 아직 이사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제발 빵빵거리는 차 소리나 쿵쾅거리며 지나가는 열차소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음주 독서!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맥주와 함께 책을 읽을 계획이다. 지난 주에 읽었던 [통역사]는 정말 재미있었다. 그 문체와 분위기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맘에 쏙 들었다. 다만 결말이 좀 아쉬웠는데 전개 과정에서 던져진 이야기들을 다 수습하지 못하고 끝낸 듯한 느낌이 든다. 사실 거의 끝 부분에서 집중력이 좀 떨어졌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다. 나중에 맨 뒷부분만 한번 더 읽어볼 생각이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어볼까? 쌓아놓은 책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 되는데, 일단 뽑는 기준은 무조건 재미다. 한 주간 머리 아프고, 신경쓰이는 일들이 너무 많았는데, 주말에도 공부와 정보를 위해 책을 읽고 싶진 않다. 이런 성향은 최근 영화를 선택할 때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예전에는 오락물이나 가벼운 영화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뭔가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고 스토리가 탄탄한 영화에만 눈길을 보냈다. 요즘은 그저 시간 때우기용(킬링 타임이라고 하던데) 영화도 괜찮다 싶다. 생각할 꺼리와 탄탄한 스토리를 갖추면서 재미도 있는 영화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이젠 지향이 재미로 바뀌었다. 오락물 자체의 재미와 영화를 보면서 이런 방법으로 재미를 쫓는구나.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구나 등 분석하는 재미도 있으니 굳이 영화 자체가 철학적일 필요는 없겠다 싶다.

 

이야기가 영화로 새버렸는데, 오늘의 후보 도서를 골라보자. 운동을 마치고 맥주를 사와서 책상에 앉은 순간 제일 끌리는 책으로 선택할테다.

 

 

 다락방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의 추천도서였다.

 워낙 소개 글을 많이 봐서 내용은 대충 알고 있는데,

 잔뜩 기대를 갖고 읽었다가 실망하면 어쩌나?

 

 

 

 

 

 

 

 

 

 

 

 더글라스 케네디 책이 재밌다고 하길래

 오래전에 사 놓았는데, 여태 묵혀두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기욤 뮈소랑 비슷한 느낌이란

 글을 보고 살짝 망설여진다.

 아내가 사놓은 기욤 뮈소 책을 두 권 읽었는데,

 너무 뻔한 스토리에,

 문체나 구성이나 하나도 맘에 드는 게 없었다.

 

 어쨌거나 일단 읽어보고 판단해야겠지.

 

 

 

 

 

 이 책도 재밌다고 추천을 여러 번 받았다.

 사놓고 묵혀두다가 아주 뒤늦게 펼쳐든 게

 대략 1년 전쯤이었던가?

 그때 조금 읽다 말고 다시 묵혀두는 중.

 

 이번에 붙잡으면 한방에 끝내야지.

 과연 오늘 선택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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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3-07-2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픽쳐 뻔~ 하진 않아요. 재밌어요. 어딘가 슬프기도하지만 ^^

감은빛 2013-07-30 15:53   좋아요 0 | URL
네, 북극곰님의 말씀을 믿고 조만간 도전해보겠습니다. ^^

다락방 2013-07-27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읽고 후기 써주실건가요? 저 후기 읽고 싶어요!!

감은빛 2013-07-30 15:55   좋아요 0 | URL
제가 어떤 책을 읽었으리라 생각하고 후기를 바라신 건가요?
후기를 쓰고 싶긴 한데, 이번 주는 많이 바쁘네요.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한번 시도해보겠습니다.

다락방 2013-08-05 07:52   좋아요 0 | URL
당연히, 새벽 세시요!

감은빛 2013-08-06 02:13   좋아요 0 | URL
네. 그 책을 선택해서 단숨에 읽어버렸어요.
그리고 후기를 쓰고 싶지만, 손을 못 대고 있네요.
노력해보겠습니다!

따라쟁이 2013-07-2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후기!

감은빛 2013-07-30 15:56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님께서도 기대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노력해볼게요! ^^
 

반바지

 

더위과 장마는 서로 다른 의미에서 내게 반바지를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무더운 날에 긴바지를 입고 출근하면 일단 답답하고 땀이 찬다. 움직임이 많지 않은 날엔 그래도 견딜만하지만 많이 돌아다녀야 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곤욕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의 선택은 반대여야 한다. 사무실에 앉아만 있는 날에는 반바지를 입어도 뭐라할 사람이 별로 없지만, 외근을 나가야 할 날에 반바지를 입고 나갔다간 당장 거래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할 게 틀림없다. 아니! 상의는 여름이라고 반팔을 입으면서 바지라고 반바지를 못 입을 건 또 뭔가? 비오는 날에도 마찬가지다. 특히 오늘 아침처럼 그야말로 억수같이 퍼붓는 날에는 신발과 양말과 허벅지 아래 바짓단이 모두 젖는다. 뻔히 젖을 것을 알고도 긴바지를 입어야할까? 그냥 간편하게 반바지에 샌들 신고 가면 안되는 걸까? 오늘은 잠시 고민하다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바지와 샌들을 신고 출근했는데, 반바지의 3분의 2가 다 젖은 채로 사무실에 도착했고,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옷이 말랐다. 만약 긴바지였다면 퇴근시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옷이 덜 말랐을지도 모른다.(물론 옷의 소재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날엔 DJ. DOC의 노래 '반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텐데~'라는 노래가 자꾸 생각난다. 물론 요즘은 '쿨비즈'라고 말하면서 넥타이도 풀고, 양복(수트)을 입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데, 일반적인 회사에서 반바지까지 허용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정부와 한전이 워낙 '예비전력'을 강조하고, 에너지 절약을 부르짖은 덕분에 생긴 바람직한 변화라고 보는데, 여기에도 나름의 맹점은 보인다. 이 맹점은 실천의 지점이 아니라 전력산업의 구조 때문에 생기는데, 이 부분은 다음에 자세하게 한번 짚어보고 싶다. 일단 오늘은 패쓰!

 

반바지 얘기를 하면 늘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어느 중소도시의 환경단체 활동가로 일하던 시절이다. 여름이었다. 당연히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습한 날씨에 빨래를 자주 하지 못해 옷이 부족해서 하필이면 후즐근하게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갑자기 시청 문화국장과 중요한 면담이 잡혔다. 옷차림이 맘에 걸렸지만, 그렇다고 집에 다녀올 여유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그대로 시청을 방문했다. 당연하겠지만 문화국장은 제법 나이가 있는 분이었다. 나는 문화국장을 만나기전부터 문화국 공무원들에게 눈총을 받기 시작했는데, 문화국장과 둘이 마주 앉으니, 국장은 무척 황당해하며 내 옷차림을 노골적으로 쳐다본다. 나는 아무 문제 없다는 듯 태연하게 행동했지만 그는 이미 나를 정상적인 대화상대로 두고 있지 않았다. 마치 학생 다루듯 하대하는 태도가 눈에 보였다. 조금 대화를 시도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표정을 바꾸었다. 다음 순간 나는 강한 어조로 태도를 바로하고 면담에 임할 것을 요청했다.

 

나는 지금 정확한 용무를 갖고 시청 문화국장과 면담을 하러 방문한 시민이지, 당신 부하직원이나 친인척이 아니다. 당신이 나를 하대할 이유는 전혀 없으며, 이는 공무원 복무규정에 어긋난다. 제대로 자세를 갖춰 면담에 임하지 않는다면 이 면담은 없었던 것으로 할 것이며, 동시에 공무원으로서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뭐 이런 말들을 쏟아내고 나니, 그는 아주 당황한 표정을 보였고, 이후에는 딱 해야할 말만 무뚝뚝하게 하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 상대에 따라 기본적으로 옷차림을 갖춰야 할 필요는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옷차림만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무시하는 언행은 부당하다. 그리고 그 옷차림의 기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름에 반바지를 입고 여기저기 거래처를 다니면서도 눈치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민어복달임

 

모 동물권단체 활동가로 있는 지인과 만날 약속을 잡다가 곧 다가오는 중복에는 저녁 늦게까지 정신없이 바쁘다는 말을 들었다. 복날엔 그냥 대박으로 바쁜 날이라고 했다. 그렇구나! 그쪽 단체는 그 날이 피크타임이겠구나. 모르고 지날 뻔 했는데, 덕분에 중복이 언제인지 알게 되었다. 최근에 만난 어느 선생님은 복날에는 '삼계탕'이나 '보신탕' 보다는 '민어복달임'이 더 맛있고 몸을 보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옛부터 삼복더위에 양반은 '민어'를 먹고, 상놈은 '보신탕'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민어는 평소에는 구경하기 힘들고, 제삿날에야 겨우 한번 접할 만큼 귀하고 비싼 생선이다. '민어복달임'이란 말은 김준 박사님의 [바다맛 기행]에서 처음 보았는데, 직접 먹어본 사람을 만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과연 양반들만 먹었다는 그 민어복달임이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복날에 삼계탕을 끓여 주셨다. 집을 나와 혼자 살면서부터 복날을 따로 챙겨 본 적은 별로 없는데, 대개 모르고 지나갔거나, 알았더라도 가난한 자취생이 삼계탕과 같은 비싼 음식을 먹을 여유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아, 한번은 근처에 자취하는 선배 두어명과 함께 저 멀리 농협 하나로 마트까지 걸어가서(버스비는 있었으나 버스노선이 없었고, 택시는 있었지만 택시비는 없었다.) 생닭과 마늘 등 재료를 산 후 다시 먼 길을 걸어와서 삼계탕을 끓여 먹은 적이 있었다. 나는 물론이고 선배들 모두 삼계탕을 끓여본 경험은 없었다. 게다가 가스레인지도 없는 집에서 휴대용 버너를 이용했고, 마땅한 큰 냄비가 없어서 코펠에 넣어 끓였다. 맛은? 뭐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냥 그저 삼계탕을 먹는 다는 것 자체의 의미를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무더운 복날 재료를 마련하려고 먼 길을 장보러 갔다 오면서 흘린 땀이 엄청났기에 효율로 따지면 차라리 안 먹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보신탕은 거의 먹어보지 못하다가(친척들 모였을 때 맛만 본적이 있었다.) 잠시 농사짓는 마을 빈 집에 살던 시절에 여러 번 먹었다. 그땐 일 때문에 여러 마을 어른들과 교류가 있었다. 여름에는 마을마다 서로 다른 날에 수시로 개를 잡는다고 했다. 그래서 어제는 ㄱ마을에서 보신탕을 얻어먹고, 오늘은 ㄴ마을에서 얻어먹고, 내일은 ㄷ마을에서 또 얻어먹는 식이었다. 그해 여름에 평생 먹어본 것보다 많은 아니 앞으로 평생 먹을 양보다 더 많은 보신탕을 먹었다.

 

어쨌거나 중복을 맞아 무언가를 먹거나 혹은 안먹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민어복달임이 뭔지, 그렇게 맛있다는데 한번 맛이라도 보고 싶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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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07-22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들 교복을 반바지로 만들어 주면 좋겠어요. 남학생들은 긴바지에 허덕이고, 여학생들은 치마 속 안감이 무척 더워서 또 힘들어 하거든요. 반바지를 교복으로 입는 학교도 있다 들었는데 보지는 못했어요. 저도 반바지 입고 출근하고 싶어요.(>_<)

감은빛 2013-07-24 17:01   좋아요 0 | URL
저도 반바지 교복이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보지는 못했네요.

여학생들 치마는 좀 시원할 줄 알았더니 안감 때문에 덥군요.

학교 선생님들도 반바지를 못 입게 하나요?
교장 선생님(혹은 교감)이 무척 보수적인가보네요.
안타깝습니다!

조선인 2013-07-23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여름에 남자들은 긴바지에 와이셔츠 입고 있는 거 보기만 해도 더워요. 게다가 남자들은 실컷 껴입고 에어컨을 있는대로 틀어대니 여자들은 오히려 가디건 덧입고 이런 낭비가 없지요.

감은빛 2013-07-24 17:03   좋아요 0 | URL
그죠? 저 처럼 반바지입고 일하면 에어컨 덜 켜도 될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노출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여성들이 부러운 계절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07-23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어는 목포나 신안에서 많이 먹어요.민어가 고급생선이긴 하죠.목포에는 민어전문점들이 있어서 맛기행 같은 방송에 가끔 언급됩니다.

감은빛 2013-07-24 17:09   좋아요 0 | URL
네, 저기에 언급한 [바다맛 기행]에서는
태이도(신안군 임자면 타리섬) 일대에서 많이 잡힌다고 하네요.
일제 시대에 민어 파시가 들어섰던 얘기도 언급하구요.

언제 목포가서 민어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blanca 2013-07-24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들 양복 입은 것 보면 너무 더워 보여요. 저번에 뉴스에서 사무실에 반바지 차림도 괜찮다고 하니까 어떤 분이 인터뷰로 사십 넘으면 반바지 입기 좀 뭣하다,는 이야기에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좀 다들 시원하게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입는 문화가 형성되면 좋을 텐데요. 우아, 민어복달임은 어떤 맛일까요?

감은빛 2013-07-24 17:12   좋아요 0 | URL
제 주위엔 사십이 아니라 오십이 넘어도 반바지 입고 다니는 분들 많은데,
물론 반바지를 입고 출근할 때는 좀 민망할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인 의식이 바뀌면 괜찮지 않을까요?

저도 민어복달임이 무척 궁금합니다.
복날은 지났지만 꼭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14주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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