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ked out of office
우리 회사가 있는 건물은 밤에 번호키가 달린 전자자물쇠로 문을 잠근다. 정문과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후문과 각 층의 출입문에 모두 번호키가 달려있다. 아침에 건물 관리인이 문을 열면, 낮에는 모두 열어놓는다. 밤에만 관리인이 퇴근하면서 다시 잠그는 것 같다. 간혹 야근을 하다 보면 낮에는 잠겨있지 않던 각 문들이 모두 잠겨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문제는 내 기억력이 최악이라는 점이다. 분명히 몇 해 전에 전자자물쇠를 처음 달았을 때, 각 번호키의 비밀번호를 들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특히나 숫자를 잘 외우지 못한다. 주민등록번호를 외우는데에도 무척 애를 먹었고, 대학 학번과 군대에서 받은 군번도 잘 못 외웠다. 삐삐번호나 집 전화번호도 잘 외우지 못했다. 나중에 휴대전화가 생겼을 때에도 내 전화번호를 몰라서 늘 전화기를 열어보고 나서야 상대방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지금도 내 전화번호와 아내의 전화번호 단 두 개만 기억할 뿐 다른 가족들이나 친구들 번호는 아예 외우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여기저기 번호키로 여는 전자자물쇠가 너무 많다. 우리 사무실과 우리 집 비밀번호를 외우는 것만 해도 나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그런데 건물 정문과 후문 그리고 사무실이 위치한 2층 출입문 비번을 모두 어떻게 외우란 말인가!
몇 주 전, 혼자 야근을 하고 있었다. 빨리 끝내고 가려 했건만, 일은 자꾸 늦어지고 결국 자정을 넘겨버렸다. 너무 피곤해서 잠시 휴식을 할 겸 편의점에 음료수를 사러 나갔다. 전화기와 지갑은 놓고, 천 원짜리 두 장에 동전 몇 개만 주머니에 넣고 슬리퍼를 끌고 내려갔다. 평소라면 자동으로 잠기는 전자자물쇠를 의식해서 각 출입문이 모두 닫히지 않도록 조심했을 텐데, 그날은 너무 피곤해서 그랬는지 아무 생각 없이 편의점에 가서 에너지 음료를 사서 돌아왔다. 정문은 무의식중에도 열어뒀는데, 계단을 올라가 보니 2층 출입문이 저절로 닫혀 있었다. 아무리 손잡이를 돌려도 열리지 않고, 번호키를 이것저것 눌러봐도 소용이 없었다. '진정하자! 잘 생각해보면 뭔가 떠오를지도 몰라!' 라고 되뇌며 몇 개의 숫자 조합을 눌렀는데, 갑자기 이 녀석이 큰 소리로 삑삑삑! 경보음을 내더니 아예 작동을 멈춰버린다. 틀린 비번을 몇 회 이상 누르면 아예 작동이 안 되도록 설정이 된 모양이다.
이거 참 난감했다. 누구에게 연락할 전화기도 없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 해도 지갑을 놓고 와서 택시비조차 없었다. 한가지 생각이 난 것은 우리 사무실이 건물 제일 뒤쪽이고, 아주 작은 베란다 같은 공간이 있어서 건물 뒤편 주차장에서 벽을 타고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이었다. 베란다 바로 밑에 자주 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자동차 위에 올랐다가 다시 벽을 타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싶었다. 막상 주차장에 가보니 늘 서 있던 차들이 이 밤에는 모두 가버린 것을 발견했다. 2층이라곤 해도 베란다는 무척 높은 곳에 있었다. 대략 내 키의 2배 이상 될 듯했다. 이 건물은 구조가 좀 독특해서 2층이 유난히 높다. 외벽은 미끄러운 타일이 붙어 있어서 타고 오를 수도 없었다.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이라면 단번에 올랐을 텐데 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주차장을 뱅글뱅글 돌았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집까지 걸어갈까? 밤을 새워 걸으면 도착하려나? 주차장 구석에 쭈그리고 자고 있다가 아침에 관리인이 출근해서 문을 열어주면 들어가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 꼴이 무척 우스꽝스럽고 한심했다. 정말 별일이 다 생기는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해답을 찾았다. 한참을 주차장을 서성이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옆 건물 한 켠에 쌓아놓은 잡동사니들 틈에서 사다리를 발견했다. 다리를 벌려 세우니 대략 2미터 높이쯤 되어 보인다. 균형을 잘 잡으며 그 끝에 올라서니 베란다 난간 기둥 아래쪽을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이대로 내 몸무게를 끌어올릴 수 있을까? 벽이 미끄러워 조심스러웠다. 자칫 실수로 떨어지면 큰 사고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솔직히 겁이 났지만, 내 팔의 근육을 믿어보기로 했다. 힘을 꽉 주고 발로 벽을 디디면서 몸을 끌어올렸다.
간신히 몸의 절반 이상을 난간 안쪽으로 밀어 넣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베란다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오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한 십여 분 가량 밖에 갇혀 있었는데(이게 어법적으로 말이 되나 모르겠지만, 영어엔 locked out of 라는 표현이 있더라.) 정말 십 년 감수한 느낌이다. 만약 우리 사무실이 건물 제일 뒤쪽에 있지 않았다면, 아주 작은 베란다 공간이 없었다면, 옆 건물 잡동사니 틈에 사다리가 없었다면 다시 돌아오기는 불가능했다.
그 일을 겪은 후 나는 반드시 건물 각 출입문의 비밀번호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늘 그렇듯이 잊어버리고 지내왔다. 그리고 어젯밤 나는 또 야근을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경과는 거의 똑같았다. 자정이 조금 지난 무렵 나는 또 에너지 음료를 사러 천 원짜리 두 장만 들고 나왔고, 휴대전화와 지갑은 책상 위에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2층 출입문은 단단히 고정해두고 내려왔는데, 정문이 자동으로 잠겨있음을 발견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멀리 돌아서 주차장을 통해 후문으로 가봤으나 역시 잠겨있었다. 몇 주 전과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것까지 똑같았다. 제발 옆 건물에서 사다리를 치우지 않았기를 바라며 어두운 건물 그림자 속으로 향했다. 다행히 사다리는 그대로 있었다. 지난번에 한번 해봐서 이번에는 다소 여유 있을 줄 알았는데, 사다리 끝에 서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난간 기둥 아래쪽을 손에 쥐고 나니 다시 겁이 났다. 머릿속에서는 발을 끌어올리려다 실수로 몸의 균형을 잃으면서 뒤로 떨어지는 내 모습이 영화에서처럼 느린 화면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좁은 사다리 위에서 도움닫기나 반동을 주지 못하고 순전히 팔힘으로만 몸을 끌어올렸다. 역시 한 번의 경험은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는 좀 더 부드럽게 무게 중심을 난간 안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다시 내려가서 사다리를 치우고, 더러워진 손을 씻고, 옷과 머리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에너지 음료를 단숨에 마시고 나니 시간은 한 시가 가까웠다. 일을 마무리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도저히 일할 기분이 아니었다. 에이! 그냥 집에나 가야겠다. 내일 아침에 반드시 건물 비밀번호를 물어봐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컴퓨터를 껐다.
산 책, 읽을 책, 읽고 있는 책
페이스 북을 통해 알라딘에서 이 책의 독자북펀딩 소식을 접했다.
어머! 이건 완전 내 책인데!
없는 살림에 많이 보태지는 못했지만,
이 의미 있는 책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탰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책을 받아들고 판권 페이지에 있는 펀드 참가자 명단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보니 더욱 자부심이 느껴진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는 이름들이 제법 있다. 반갑다!
그들도 내 이름을 보고 반가워하겠지.
어서 읽고 널리 알려야겠다!
알라딘 서재에는 글 잘 쓰는 분들이 제법 많다.
저마다 문체와 분위기가 다 달라서 비교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건 재미있고, 흥미롭고,
하고 싶은 얘기를 읽는이에게 잘 전달한다는 점에서
다들 잘 쓴다고 말할 수 있다.
불량주부님의 글은 처음 읽었을 때부터
흥미로웠고, 그 주제와 내용에 공감했다.
결혼, 가사노동, 육아, 일상
민감하고 중요한 주제를 생활 속에서 풀어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재밌게 읽고 아내에게도 권해야겠다.
마태우스님을 알기 전에는 기생충이란 존재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마태우스님을 알았어도 기생충을 연구하는 분이시구나.
그러고 말았을 뿐, 기생충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은 이유도 사실 기생충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마태우스님의 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글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기생충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이젠 마태우스님 때문이 아니라,
이 책이 훌륭한 교양과학서 이기에 널리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외에도 여러 책들을 샀고, 읽었고, 또 읽고 있는 중이다.
이사 준비로 책을 정리해야 하는데, 덥다고 계속 미루고 있다.
그래놓고 책은 사무실로 배달시키고 있다.
사무실에 쌓여 있는 책이 너무 많아서 내가 최근에 산 책을 찾기가 힘들다.
어제는 보관함에 있는 책들을 살피다가 이 책이 집에 있었던가?
사무실에 있었던가? 아님 아직 사지 않은 책이었던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을 고민하기도 했다.
내일은 휴일이다!
남은 오후는 열심히 일하고, 저녁엔 열심히 놀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