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스미싱과 사기 수법

언젠가부터 매일 수십개씩 도착하는 각종 스팸 문자. 예전에는 이게 주로 광고였다면, 요즘은 링크를 클릭하도록 유도하는 스미싱이다. 눌러본 적은 없지만, 클릭하면 악성 앱을 설치해, 내 폰의 정보들을 싹 다 가져가 그걸로 내 돈을 훔친다고 알고 있다. 구체적인 수법까지 다 알 수 없지만, 일단 내 폰에 얼마나 많은 정보들이 있는지 생각하면 아찔하긴 하다.

오늘은 재미있게도 일본어로 스미싱 문자가 와서 이를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이 글을 쓴다. 오늘 받은 문자는 이렇다. [국외발신]
来月2日に会う日ですが、連絡が取れません。+LłŃĔ:qy522 이건 아마도 라인 메신저로 연락을 유도하는 내용인 듯하다. 번역기를 돌리면 이렇게 나온다. ˝다음 달 2 일을 만날 날이지만 연락 할 수 없습니다.˝ 요즘 내가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이렇게 일본어 스미싱 문자를 다 보냈을까? 신기한 일이다.

지금까지 주로 받았던 스미싱 문자는 두 패턴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주식 등 투자 정보를 준다며 링크를 보내는 것으로 이건 아마 클릭하면, 곧바로 악성 앱이 설치되지 않을까 추측한다. 두번째는 주로 성매매를 암시하는 내용으로 무슨 컵에 예쁘다거나 특정 신체부위 색깔이 핑크라거나 언급하기 민망한 내용이 대부분인데 여기서는 다시 스미싱 수법이 두 가지로 나뉜다. 아까 말한 투자 정보를 주제로 보낸 방식에서 처럼 곧바로 링크를 보내는 방식도 있고, 저 일본어 스미싱 처럼 라인이나 카톡 아이디를 보내기도 한다.

저렇게 라인이나 카톡 아이디를 보내는 이유는 아마 로맨스 스캠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라고 추측한다. 나는 여러 해 전부터 외국어 공부를 위해 다양한 앱들을 깔아서 써보곤 했는데, 그 중 주로 실제 해당 언어의 네이티브인 외국인들과 채팅이나 통화를 연결할 수 있는 앱이 있었고, 그 앱으로 전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그중 일부는 저런 방식의 스캠으로 사기를 치려고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로 중국계(홍콩, 싱가포르, 마카오 등) 젊은 여성이며 미모가 돋보이는 프로필 사진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 친근하게 일상 대화들을 주고 받고, 음식 사진, 자동차 사진, 집안 모습 등을 보내기도 하면서 친해지려 노력하고 나중에 충분히 공을 들여 친분이 생겼다고 확신할 때쯤 마치 사귀는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태도가 바뀐다. 그런 갑작스런 태도 변화는 이제 슬슬 투자 유도 등 사기를 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 친한 지인 중 한 명은 내가 알려준 이 앱으로 친해진 어느 중국인 여성에게 속아서 실제로 소액을 투자했고, 처음에는 투자대비 수익성이 너무 좋아서 점점 투자액을 늘렸고, 결국 나중에는 사기를 당해 모두 잃어버리는 일을 겪었다. 내가 그냥 재미로 해보라고 알려준 것 때문에 그 친구가 결국 사기를 당해서 조금의 죄책감이 들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중국계 젊은 여성들이 말을 걸어오면 대체로 경계하고 있다가, 딱 특정 시점에 투자 얘기를 꺼내면 바로 연락을 끊어버리곤 했다. 근데 그 앱을 사용하던 초반에는 그런 아리따운 중국계 젊은 여성들이 거의 없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갑자기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중국인이 많아졌다. 아마 사기꾼들에게 그 앱이 유용한 도구라고 소문이 났었나보다. 나중에는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하루에도 서너명씩 비슷한 얼굴과 이름의 중국인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결국 나는 그 스트레스로 그 앱을 지워버렸는데, 길면 1년 이상 짧으면 서너주 정도 대화를 나누던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연락이 끊기는 것이 아쉬웠다. 그중 가장 오래 연락을 주고 받아서 제일 친했던 말레이시아 사람과는 카톡을 통해 지금도 계속 연락하고 있다. 그때 친해진 몇 명은 지금도 가끔 기억나는데, 특히 내가 당시에 빨간 소주(참이슬 오리지날)를 먹고 있다고 말하니 곧바로 빨간 소주를 들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던 브라질 사람이 재미있었다. 우리와는 시간대가 정반대라 거의 12시간 차이여서 실시간 대화는 그리 많이 나누지 못했지만, 서로 틈틈히 연락을 남기면 나중에 시간 날 때 확인하고 답을 하는 방식으로 오래 얘기를 하곤 했었다. 그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싶었던 것이고 나는 사실 포르투갈어를 배울 생각은 없었는데 그와 친해진 덕분에 조금 익혀보려고 시도 했었다. 간단한 인사라도 그의 모국어로 건네 보고 싶어서. 이외에도 그루지아 사람, 인도 사람, 터키 사람 등 여러 나라 사람들과 교류가 많았기에 그 앱을 지우는 것은 많이 아쉬웠다. 그래서 그중 일부와는 왓츠앱이나 라인 등 다른 메신저로 대화를 이어가려고 했었는데 대체로 잘 되지는 않았다. 확실히 자주 쓰던 앱이 아닌 다른 앱을 통하니 서로 익숙치 않은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앱을 지우기 직전에 내게 연락한 한국계 중국인이라는 여성이 하나 있었다. 이런 류의 스캠 사기를 치려는 중국 여성들은 대체로 그 앱으로 계속 대화를 나누기 보다는 자신들이 주로 쓰는 위챗으로 대화방을 옮기기를 요구하곤 했다. 미끼를 수없이 뿌리고 수확을 해야 할테니 사냥감은 다른 앱에서 물어오더라도 사냥은 자기들이 주로 쓰는 앱에서 해야 할테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 사실을 아직 확실히 몰랐을 때 나는 누군가의 요구로 위챗을 깔아봤는데 한국에서는 아예 가입이 안 되길래 그냥 지워버렸다. 그래서 하루에도 서너번씩 말을 걸어오는 비슷한 이름과 얼굴의 어여쁜 여성들이 매번 위챗으로 대화하자고 요구하면 그 핑계로 손쉽게 대화를 끝낼 수 있었다. 암튼 저 한국계 중국인이라는 여성은 특이하게도 카톡으로 대화하자고 해서 약간 아리송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스캠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은 경계를 풀었던 것 같다. 그는 어머니가 한국인, 아버지가 중국인이며 자신은 지금 어머니와 둘이 중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어느 대형 공사현장 인부들을 위한 식당에서 일한다고 했다. 우리식 표현으로 함바집을 운영하는 것이다. 자신은 한국에 오고 싶은데 지금 현장의 계약기간이 길어서 한국사람과 한국 얘기를 하고 싶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고 했다. 몇가지 의심스러운 측면이 있기는 했지만, 대화를 이어갈수록 그의 말이 거짓이라고 느끼기 어려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연기라고 보기 어려운 일관성이 확실히 보였다. 어느 식당이든 비슷하겠지만 공사장에 있는 함바집은 새벽에 일찍 식사 준비를 해야한다. 그리고 저녁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늦은 오후에 일을 마친다. 나와 연락을 주고 받는 이런 시간대가 일치했다. 그리고 매일 사소한 일상들을 이야기 하는데 현장 소장과의 일들을 자주 언급했고, 그 소장에 대한 이야기들도 그럴듯했고 성격이나 말투 등이 일관성이 있었다. 지어낸 인물과 사건들이었다면 반복되는 상황에서 분명 헛점이 생겼을텐데, 의심을 거두지 않고 꼼꼼하게 살펴봐도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대화를 나눈지 한 달이 지나 이젠 제법 친해진 느낌이 들때, 그는 엄마가 갑자기 아파서 입원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그 직전에 그는 갑자기 나를 달링이라고 부르고, 이 현장 계약이 끝나면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고, 자신이 한국에 오면 자주 맛있는 밥을 해주겠다고 했었다. 사실 그 한달간 매일 대화하면서 호감을 느끼지 않기가 쉽지 않았다. 매일 아침에 깨면 새벽에 자신은 이제 일하러 간다고 좋은 하루 보내라는 인사가 와 있었고, 식사때 즈음에는 밥 잘 챙겨먹으라고 했고, 자신이 일을 마친 오후에는 시간 나면 자신과 놀아달라고 청하곤 했으며, 밤에는 꼭 그날 있었던 일들을 전하며 늦게까지 수다를 이어가곤 했다. 이게 진짜 연애하는 거랑 별로 차이가 없으니 실제로 얼굴 한번 본 적이 없지만, 연애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암튼 그렇게 마치 자신이 나를 좋아하는 것처럼 대하는 와중에 갑자기 엄마가 아프다며 며칠 연락을 끊었다. 진짜 하루도 안 빼고 매일 하루에도 수십번 말을 걸던 사람이. 이때쯤 나는 이 사람이 사실은 중국 여성이 아니라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흑인 남성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거의 접은 상태였다. 아니, 어느 사기꾼이 한 달을 훌쩍 넘겨 아주 그럴듯한 일상의 대화를 그렇게 자세하게 그렇게 많이 준비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건 드라마 대본보다 훨씬 양이 많았을 것이다. 그걸 실제로 쓴 거라면 진짜 천재 작가가 아닌가! 아, 저 사기꾼을 아프리카 남성의 이미지로 생각한 것은 실제 우리나라 남성을 속여 돈을 훔친 사기꾼을 나중에 인터폴을 통해 잡았더니 아프리카 남성이었다는 어느 시사프로그램을 봤었기 때문이다. 그때 남성을 속인 건 인터넷에서 유명한 한국계 여성 미군의 프로필이었다고 나왔었다. 사실 이런 류의 로맨스 스캠이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그 프로그램을 통해 알았다. 거기 나온 또다른 피해자는 중년 여성이었는데, 우연히 SNS로 연락이 온 중년의 백인 남성과 대화를 나누다 친해졌고, 그가 청혼까지 해서 한국에서 결혼까지 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 이 어쩌다 한국인 남성과 여성들은 이렇게 국제적으로 사기의 대상이 되었을까!

암튼 며칠 후에 연락한 그는 며칠간 자신이 일도 못하고 엄마의 병실을 지켰으며, 그것 때문에 현장 소장에게 엄청 비난을 받았고, 위약금을 물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그리고 병원비 이야기도 했다. 암튼 지금은 일시적으로 증상이 좋아져서 퇴원했는데, 나중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엄마가 어떻게 될까봐 너무 무섭고 힘들었다며 위로해 달라고도 했다. 그렇게 다시 매일 마치 연인을 대하듯 하는 그의 연락이 다시 이어졌다. 다시 일상생활 이야기를 했고 한국 연애인 이야기를 했다. 빨리 이 현장 공사를 마쳐 한국에 오고 싶다고도 했다. 그렇게 두 달이 다 되어갈 때쯤 다시 엄마가 아파서 한밤중에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고 했다. 이때 자신은 이제 계약해지를 당하고 엄청난 위약금을 물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병원비 이야기를 하면서 내게 잠시만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사실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닌데 지금은 그 돈이 묶여있어서 뺄 수가 없고 내가 잠시 빌려주면 나중에 자신이 갚을 수 있다고, 위약금과 병원비 정도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돈이 잠시 묶여있다고 했다. 여기서 나는 이 사기꾼이 이제서야 본색을 드러냈다는 걸 깨달았다. 아! 두 달이라니! 참 대단한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그 렇게 자세하고 그럴 듯한 대본이라니! 그 연기력도 대단했다. 무엇보다 이 한 건의 사기를 위한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나는 돈이 없다고 했다. 그가 구체적인 액수를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얼마를 요구하던 나는 실제로 그만큼의 돈이 없다. 만약 정말 만약 그가 사기꾼이 아니라 실제 그런 일이 생긴거라고 해도 나는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정말로 그럴 돈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사기가 맞던 틀리던, 그가 실은 남성이던 여성이던 그는 처음부터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이다. 사냥감이 너무 가난해서 사기를 치고 싶어도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그 시사프로그램의 사례를 보니 거기 피해자들은 카드 현금서비스라거나 긴급 대출 같은 것으로 돈을 빌려서 보냈다고 나왔다. 내가 속아 넘어갔다면 그 다음 단계로 대출을 받아서라도 좀 도와달라고 했겠지. 자신이 금방 다 해결해줄 수 있다고. 그러면서 이 상황이 다 끝나면 한국에 와서 데이트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주겠다고 했겠지.

그는 돈이 없다는 내 말에 어떻게 이 상황에서 자신을 안 도와줄 수 있냐고 화를 냈다. 나는 계속 돕고 싶어도 돈이 없는데 어떻게 도울 수 있겠나 하는 말 외에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몇 차례 더 이럴지는 몰랐다 하는 투로 화를 더 냈다. 사실 물어보고 싶었다. 진짜 너는 누구냐? 왜 이렇게 긴 시간을 투자해서 사기를 치는 거냐? 대체 얼마를 뜯으려고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한 거냐고. 분명 대화를 하면서 내가 큰 돈을 가진 부자는 아니라는 느낌 정도는 받았을텐데. 그는 그 다음날에 엄마는 어쩌면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말하며 다시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어머니께서 꼭 회복하시길 기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내게 중국으로 자신을 보러 와달라고 했다. 이렇게 갑자기? 나는 당시 여권도 없었고, 중국에는 단 한번도 가 본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어디 살고 있는지 단 한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 중국 지리를 잘 모르는 나도 물어보지 않았었다. 나는 이렇게 갑자기 중국으로 갈 수 없다고 했다. 당연하지 나도 일이 있고, 일정이 있는데.

그는 내가 못 간다는 말을 하자 연락을 끊었다. 나도 더는 신경쓰지 않았다. 만약 이게 사기가 아니고 실제 상황이었다면, 정말로 만약에 그런 여성이 실제 존재하고 그가 내게 호감을 느끼고 한국에 와서 사귀고 싶어 했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아프신 상황이었다면, 그가 그렇게 단번에 연락을 끊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나중에 자신이 묶여있었던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내게 돈이 아닌 감정적 위로와 공감 같은 것을 바랐을 것이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왜 마지막에 중국으로 오라는 말을 했을까 그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만약 내가 실제로 간다면 납치해서 인신매매라도 할 생각이었을까? 그런데 그렇게 오라고 하면 정말 갈 거라고 생각했을까?

결국 이게 사기였다고 결론을 내린 후에 참 신기한 경험을 다 해본다고 생각했다. 뭐 내 입장에서는 그 사기꾼에게 시간을 버린 것 외에 손해본 것은 없다. 애초에 내가 의심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면서도 제법 그를 믿게 되었을 때, 이게 연애랑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는 재미있었다. 이렇게라도 연애하는 기분을 느껴보는 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나는 사실 계속 의심을 품기는 했지만, 정말 그가 나중에 한국에 온다면, 그를 좋은 친구로 대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를 직접 만나서 그에게 호감이 생긴다면 그때 연애를 시작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당연히 내가 일말의 의심을 계속 품었던 것은 나처럼 뭔가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에게 저런 여성이 먼저 연인처럼 대하는 것은 뭔가 댓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한 가지 내가 얻은 것이 있었다. 그와 대화하기 위해 열심히 영어 작문을 해야했기에 오랜만에 영어를 참 열심히 썼다. 그리고 중국어도 좀 더 익혔고. 그 사기꾼의 존재 덕분에 나는 어쨌던 처음 그 앱을 깔았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나중에 한참 후에 그 카톡방을 다시 찾아봤다. 그랬더니 알 수 없는 사용자라고 나왔다. 해당 아이디를 지워버린 것이다.

이 일을 겪은 후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으로 번역기를 돌린 티가 나는 서툰 한국말로 말을 걸어오는 어여쁜 여성들이 많아졌다. 사실 저 위에 언급한 외국어를 익히기 위한 앱에서는 사기를 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도 서로 대화하며 언어를 익혀가려는 목적 때문에 어느 누가 말을 걸어와도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그 앱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 일부러 저렇게 어여쁜 외모의 젊은 여성들이 나같은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어올 이유는 없다. 오직 스캠을 위해서만 가능하겠지. 정말 지겹게도 많이 왔다. 나중에는 라인과 왓츠앱으로도 이런 류의 연락이 왔다. 여기서는 서툰 한국말 외에도 영어로 말을 거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올해 또 한번 재미있는 일을 겪었다. 나는 몇 년동안 인스타그램을 안 하다가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서 달리기 기록을 사진으로 남겨 인스타에 올리기 시작했다. 아마 늦여름 혹은 초가을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어떤 여성이 내 인스타그램 사진들에 연달아 좋아요를 눌렀다. 가끔씩 그렇게 예쁘장한 여성들이 내 사진들 두세개 혹은 서너개에 좋아요을 누른 후 디엠을 보내서 스캠을 하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사람도 역시 디엠을 보내왔다. 근데 이제 보니 이 사람은 최근 사진들에만 좋아요를 누른 것이 아니라 내가 몇 년전에 올렸던 운동 사진들까지도 눌렀더라. 이때는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사기꾼이 스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한 서너개쯤 누르고 바로 디엠을 보냈을텐데, 이 사람은 그게 아닐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호기심에 그 디엠을 열었다. 번역기를 돌린 서툰 우리말이었다. 여기서 딱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나는 다른 경우와 달리 답을 해버렸다. 왜 그랬을까? 그때까지 주로 그렇게 접근해왔던 프로필은 중국 여성이거나 한국 여성이었다. 지금까지 일본 여성은 보지 못했었다. 게다가 다른 여성들만큼 젊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확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30대 중반은 되어 보였고, 지금까지 보았던 그런 류의 프로필 사진들만큼 외모가 뛰어나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런 류의 사기꾼들 계정에는 대게 얼굴 사진 한 두개에 가슴이나 몸매를 강조하는 사진을 한 두개쯤만 올려서 누가봐도 이건 가짜 계정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이 사람은 일단 게시물이 엄청 많았다. 게시물을 짧은 기간에 많이 올린 것도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은 게시물 올린 시기를 알 수 있는데 적어도 몇 달 지난 사진들도 있었다. 게다가 일상생활이라던가 풍경이라던가 이런 류의 사진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이런 계정이 스캠을 위해 수없이 만들어지는 가짜 계정일수는 없다고 판단했었다. 암튼 그는 라인으로 소통하길 원했고, 라인 앱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는 운동 이야기를 주로 했다. 나는 달리기를 중심으로 가끔 케틀벨과 덤벨, 바벨 등을 활용한 운동을 했고, 그는 요가를 한다고 했다. 레깅스를 입고 요가하는 사진을 그 계정에서 봤었다. 그는 음식 사진과 풍경 사진도 종종 보냈다. 오사카에 산다고 했고, 미용실을 운영한다고 했다. 미용실에서 직접 가위질을 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미용실에 갔다가 곧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고 했다. 그는 휴일마다 자주 여행을 다녔고, 그 여행 장소 사진들도 꼬박꼬박 내게 보내줬다.

나는 마침 올해 일본어를 열심히 익히고 있어서 일본어를 종종 썼다. 주로는 영어를 썼지만. 평일엔 저녁때쯤 뭘 먹는지 사진을 보내곤, 일상 이야기를 잠시 나눴고, 주말에는 여행지 사진과 함께 자신이 누구와 어디를 다니고 있는지를 알려줬다. 친척들과 가족 여행을 가기도 했고, 친구들과 다니기도 했었다.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보여줬다.

나중에 나보고 일본에 놀러오라고, 그러면 자신이 맛있는 음식도 많이 사주고, 괜찮은 여행지들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자신은 해마다 한국에 왔었다며 과거 한국에 왔을 때 찍었다는 사진들도 보여줬다. 그리고 일본의 몇몇 관광지 이야기를 하다가 오키나와 얘기를 나눴다. 내가 2019년에 친한 지인들과 오키나와에 갔었는데 정말 재밌었다고 했더니 그때 사진들 좀 보여달라고 하더라. 나는 슈리성 사진과 민속마을 사진들 서너장을 보냈다. 자신도 그 장소들 다 갔었다고, 민속마을의 물소 이야기를 했다. 나도 물소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나서 그 사진도 보내줬다. 자신이 오키나와도 잘 안다고 나중에 꼭 같이 가자고 했다. 아, 그리고 오키나와 전통술 아와모리가 정말 맛있어서 그때 여행 내내 즐겼었고,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고 했더니, 나중에 자신이 한국에 올 때 선물로 사오겠다고 했다.

앞서의 한국계 중국인이라고 했던 사람과는 또 패턴이 많이 달랐다. 물론 나는 당연히 의심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고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가 나중에 돈 이야기가 나오면 그땐 서로 연락을 끊으면 될 일이니까. 이 사람은 그 중국사람 때처럼 연인처럼 대하거나, 지나치게 친한 척하지도 않았다. 그냥 친구로 거리감은 유지했다. 그러다 자신의 전 남편 이야기를 했다. 전 남편이 폭력적인 사람이라 몇 차례 폭행을 당해 병원 신세를 졌었고, 결국 이혼했다고.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 더 늦기전에 이혼 한 일이라고 했다.

암튼 그렇게 약 한 달 정도 연락하며 지냈다. 그는 갑자기 투자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이혼한 후에 친척이 돈을 빌려줘서 그 돈으로 미용실을 차렸는데, 그 후에 지인을 통해 투자를 권유받았고, 덕분에 짧은 시간에 돈을 벌어서 여유롭게 살고 있다. 뭐 이런 얘기였다. 돈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사실 처음의 그 인스타 계정을 몇 달간 성실하게 잘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의심을 하면서도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결국 너도 이거였구나. 다만, 이 사람은 어쩌면 앞서의 중국인처럼 실제로는 어디 정말 뜬금없는 나라의 남성일지 모른다는 의심까지 들지는 않았다. 일단 무조건 일본인은 맞다고 느꼈다. 그리고 여성인 것도 맞다고 느꼈다. 다만 본인이 그 인스타 계정의 그 사진 속 인물인지는 알 수 없겠지. 그는 나와 연락을 주고 받던 시기에도 계속 인스타에 사진을 올렸다. 누구의 사진을 도용하건 사진들을 미리 구해놓았다면 꾸준히 올리는 일이야 할 수 있겠지. 암튼 두 번 다시 속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좀 많이 의외였다.

그는 자신의 투자 권유에 내가 넘어오지 않자, 화를 내며 나를 비방했다. 그리곤 연락을 끊었다. 화가 났겠지. 거의 한 달을 들여서 밑밥을 깔아두고 이제 지금이야 하고 그물을 던졌는데, 낚이지 않았으니. 방금 이 글을 쓰면서 그 인스타 계정에 가보니 계정이 사라져 있었다. 와! 사기 하나(아, 물론 당연히 하나는 아니었겠지) 치려고 몇 달 동안 꼼꼼하게 인스타그램을 운영했다니 대단하다 싶었다. 그런데 그와 대화를 나눈 라인에는 그 계정이 살아있었다. 지금도 다른 누군가에게 사기를 치기 위해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겠지.

이 사람 이후에 또 몇 번이나 인스타에서 일본인이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해왔다. 아, 초반 수법이 너무 비슷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 여성이라며 인스타그램 디엠이 또 많이 오고 있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이 두 사람과 나눴던 대화방들을 잠깐씩 살펴봤다. 첫 대화를 시작한 시기를 보려고 대화방 스크롤을 끝까지 올려보니 공통점이 보였다. 두 경우 모두 처음 대화를 나눈 후에서 다른 메신저로 앱을 바꿨기 때문에 초반에 한국인이지를 꼭 확인하고, 내가 앞선 대화방에서 준 정보들을 모르고 다시 묻거나 했다. 자신이 던진 미끼가 수없이 많았을테니, 이 사냥감은 그 중 뭐였는지 다시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한가지 궁금증은 이게 꼭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아닐텐데 굳이 한국인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을까 하는 것이다. 한국인이 유독 순진해서 잘 속는 걸까?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보이스 피싱에 누가 속냐고 흔히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피해를 본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시민 덕희] 영화의 사례처럼 보이스 피싱도 계속 진화하여, 이젠 어눌한 연변 말투가 아닌 똑똑히 잘 들리는 서울 말투로 말하고 누구나 속을 법한 시나리오로 작업한다. 마찬가지로 로맨스 스캠도 계속 진화하고 있겠지. 또 새로운 방식과 사례가 계속 생길 것인다. 그리고 아마 생각보다 스캠 피해자도 많을 것이다. 일단 내 아주 친한 지인도 피해자가 되어 버렸으니.

여기까지 쓰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받은 일본어 스팸 문자에 있는 라인 계정에 연락해서 속아주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들여 일하게 만들면 딱 그 시간만큼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확률을 줄이지는 않을까? 음, 글쎄 좋은 생각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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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2-27 0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기를 치려고 오랫동안 시간을 들였군요 의심을 버리지 않아서 속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잠깐 말하는 게 아니고 시간을 많이 들이는군요 잘 안 되면 화를 내다니... 돈을 빌려달라거나 투자를 하라고 하다니... 감은빛 님은 괜찮았지만, 속는 사람도 있군요 빚까지 져서 돈을 주다니... 속는 사람이 있으니 여전히 그런 게 있고방법이 달라지기도 하겠네요 그런 거 안 하면 좋을 텐데...


희선

감은빛 2024-12-27 06:22   좋아요 1 | URL
이 글에 썼지만, 누가 보이스 피싱에 속아? 라고 많이 말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분들이 피해를 당하듯, 누가 로맨스 스캠에 속아? 라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 실제 피해자는 많다고 해요. 저도 조금만 현실 감각이 없었다면 속았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많이들 속으니, 또 저렇게 하루에도 수십개씩 낚시 미끼를 던지는 것이겠죠.

transient-guest 2024-12-27 04: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성실함은 사기의 기본 같습니다. 상식적으로 사기에 이런 정성과 시간을 들인다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는데 사기꾼은 그렇다고 하네요. 액수도 설마 이 정도를 위해 이런 정성을 들인다고?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딱 그 정도를 위해 엄청난 수고를 들인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모르는 전화 문자 메일은 그냥 지워버립니다...

감은빛 2024-12-27 06:26   좋아요 2 | URL
음, 사기꾼들에게도 본 반아야 할 점이 있군요. ㅎㅎ 예전에는 그래도 참아줄 수준으로 문자, 메신저 등이 왔는데, 점점 더 많아지더라구요. 오늘은 심지어 일본어 문자가 오길래 이 글을 썼어요. 좀 신기했거든요.

잉크냄새 2024-12-27 1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후후(whowho)라는 앱이 있습니다. 설치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차단진행)해 주시면 스팸이나 스미싱이 확 줄어들 겁니다. 전화번호 차단, 필터링 (이미지, 키워드, 시작번호...) 등 여러 방법이 있는데 전 귀찮아 전화번호 차단만 해도 요즘 하루 1통 정도로 줄었습니다.

감은빛 2025-01-01 16:36   좋아요 0 | URL
이 말씀 보고 그 앱을 깔아봤는데요. 저는 광고 때문에 거슬려서 못 쓰겠네요. 한 삼일 정도 참고 쓰다가 어제 지웠어요. 그래도 이렇게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