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생일에 기뻐해야 해?

북플에 들어와서 지난 오늘 메뉴를 열어보기도 전에 홈에서 친절히 과거 오늘 쓴 글입니다. 라며 보여줬다. 클릭해보니 두 개가 있었다. 2013년에 쓴 글은 오해와 상처 등을 거론하며 당시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이야기하다가 매년 똑같은 연말 술자리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날이라고 다들 들떠있는 것에 대해 누군지도 모르는 서양인의 진짜 생일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날 왜 다들 난리인지 모르겠다는 글을 썼다. 그리고 댓글들을 읽었다. 가끔 내 서재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어느 이웃님의 첫댓글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3년 연속 서재의 달인을 축하한다고 쓰셨다. 그랬구나. 그 시절엔 그런 것에 선정되어 알라딘에서 보내주는 선물 상자를 받기도 했었다. 그 상자 안에는 머그컵과 달력, 다이어리 등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크리스마스 라는 날에 대한 내 반감은 사실 뿌리가 깊다. 일단 전세계 어린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사기 행각이 너무 싫다. 산타 할아버지라는 코카콜라가 만든 상술에 휘둘리는 것이 한심해보인다. 최근에 제이티비씨 뉴스 여성 앵커와 궤도라는 이름을 쓰는 과학커뮤니케이터 라는 사람이 나눈 대화의 요약본 같은 짧은 영상을 보았다. 산타가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하루 밤 안에 선물을 준다는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이렇다. 뭐 이런 류의 이야기였다. 산타가 타는 썰매의 무게와 이걸 루돌프 사슴인지 뭔지가 끌려면 몇 백마리? 몇 천마리? 스쳐 지나가서 단위는 기억나지 않지만 암튼 어마어마하게 많은 숫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산타가 전세게 어린이들의 집을 방문하려면 초속? 아니 광속이었던가 그 몇 배로 움직여야 한다고. 지붕으로 들어와 선물을 놓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우주에서? 암튼 선물을 쏘는 거라고. 그 선물을 잘못 맞으면 죽기 때문에 아이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런가 하고 그저 그렇게 흘려듣고 말았는데, 그 여성 앵커는 정말 웃음이 터져서 진행을 제대로 못 할 지경으로 보였다. 어쩌면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주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아버지께서 종합과자세트를 우리 머리 위에 두고 가는 것을 보았다. 사실 그걸 보기 전에도 산타와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지는 않았지만, 어렸던 나는 선물이 어디서 났을지가 궁금했다. 가난했던 우리집에서 아버지처럼 엄격한 분이 쓸데없이 비싸기만한 종합과자세트 따위를 돈 주고 샀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 둘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산타는 어른들이 지어낸 거짓말이고 선물은 엄마랑 아빠가 주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산타가 입고 있는 저 빨간색 옷은 코카콜라가 만든 것이고, 왜 하필 크리스마스 라는 날, 그러니까 예수인지 뭔지 어떤 사람이 진짜로 태어났는지 아닌지도 모를 그런 날에 왜 선물을 주고 받아야하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다른 아이들도 다들 선물을 받는 날이니 일단 선물은 줄게. 뭐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사실 크리스마스 라서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막 그런 건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날이 휴일이라 좋기는 했다. 하루라도 더 쉴 수 있어서. 그래서 예수의 생일과 석가모니의 생일을 축하하거나 기념할 마음은 없지만, 휴일이라 고마운 마음이기는 하다. 왜 마호메트의 생일은 휴일이 아닌가? 아니면 다른 종교의 다른 성자는 더 없나? 이런 생각도 했었다. 만약 다민족 다종교 국가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류의 기념일이 훨씬 더 많았을까? 조선시대 선비들은 공자의 생일을 기념했을까?

연말에 다들 바쁘다고 일정 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할때, 50대 중반의 어느 선배 활동가가 이럴 때는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잡으면 다들 시간 비어있을 거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 이미 중년이 된 나는 크리스마스에 딱히 할 일이 없다. 아이들은 친구들이랑 놀기 바쁘고, 달리 만날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휴일에 그런 류에 일에 동원되는 것도 싫다. 왜 내가 휴일까지 당신들과 만나야하나 하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무리 다들 그날이 비어있어도 결국 그날로 일정을 잡지는 않을 것을 알기에.

기억 오류

이어 2021년에 쓴 두번째 글에는 삼성 불매가 깨진 이야기가 써있었다. 우연히도 바로 얼마 전에 시공사 책 불매 이야기에 붙여서 아쉽게도 최근에 삼성 불매가 깨진 이야기를 썼었는데, 딱 그 이야기였다. 이 글을 다시 읽고 확실히 사람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고 깨달았다. 나는 2021년 이맘때쯤 얼마되지 않는 시간을 두고 삼성 태블릿과 휴대폰을 사면서 긴 시간 이어온 삼성 불매를 깨트렸는데, 그 이유를 휴대폰 교체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실은 태블릿을 구매한 것이 먼저였다. 당시에도 지금도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늘 회의가 많았던 나는 매번 출력된 종이 안건지에 기록을 남기고 그걸 잘 정리해서 보관하는 것이 어려웠고, 자주 그 기록을 찾지 못해 곤란해하곤 했다. 일단 출력하는 종이도 너무 아깝다. 간혹 회의자료 양이 많을 때에는 백쪽, 이백쪽을 넘기기도 하는데 고작 두세시간 회의를 위해 이정도 양의 종이 안건지를 출력하는 건 너무 큰 낭비였다. 그래서 더 늦기전에 태블릿을 구매해서 앞으로 모든 회의자료는 전자파일로 받아서 기록하고, 다양한 회의 성격에 따라 카테고리를 지정해 회의자료를 저장해두면 나중에 필요할 때 찾으려고 했다. 그러려면 펜이 포함된 태블릿이 필요했고, 여기저기 회의장소를 옮겨다니려면 크기도 작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가격도 비싸지 않았으면 좋겠지. 이에 딱 맞는 태블릿이 하나 있었는데, 삼성 제품이었다.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구매했다. 이 태블릿은 지금까지도 여러 회의를 다닐 때 잘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에 문제가 생겼다. 이 역시도 내 기억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가격 대비 성능이 괜찮은 중국산 폰을 쓰고 있었는데, 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일 때문에 경기도를 다닐 일도 많은 편인데,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가면 내 전화기로 통화가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 날 서너 명의 일행과 일종의 출장을 가는 길에 전철로 이동하는 동료와 소통할 일이 있었는데, 이 동료가 내 전화기로 통화 연결이 안 된다고 나와 같이 있던 다른 사람에게 연락했다. 당시 내 전화기는 멀쩡히 잘 켜져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내가 내 전화기로 같이 있던 다른 일행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내 전화기에서는 신호가 갔지만, 그 사람의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반대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일행이 내게 전화를 걸면 그의 전화기에 신호는 가고 있었지만, 내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아니, 어느 전화기가 서울을 벗어나면 통화가 안 된다는 말인가! 그럼 나는 평생 서울에서 한발도 안 나가고 살아야 하나?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아이티 전문가와 함께 알아보니 그 기종이 그런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과 함께 해결책을 찾아봤다. 하루종일 몇 가지 방법을 찾아보고 시도도 해보았는데 모두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니 전화가 잘 되었다. 그후로 경기도로 나갈 일이 생길 때마다 연락이 되지 않는 불편을 겪었고, 매주 적어도 두 번 이상 경기도로 다녀올 일이 생긴 내가 어쩔수 없이 전화기를 바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어보니 아니었다.

사실 2021년 크리스마스 이브 며칠 전에 실수로 전화기를 변기에 빠뜨렸고, 곧바로 꺼내서 끄고 잘 말리고 나중에 다시 켰는데, 전화통화 기능이 안 된다고 적혀 있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그제서야, 아, 그때 저런 일이 있었지 하고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저 중국산 가성비 괜찮은 폰은 서울에서는 사용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경기도만 나가도 통화가 안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한동안 사용했었고, 어느날 폰을 빠뜨렸다가 다시 살렸더니 이번엔 아예 전화통화 기능 자체가 안 되는 상태였다고. 전화통화를 할 수 없는 전화기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급하게 새로운 전화기를 알아봤다. 그 전까지 계속 써왔던 엘지는 휴대폰 시장에서 철수했고, 아이폰은 가격도 비쌌고, 내가 잘 활용할 자신도 없었다. 결국 삼성 밖에 답이 없었다. 이게 내가 바로 직전에 태블릿을 사면서 견고한 담장이 한번 허물어진 후라서 좀 더 쉽게 삼성으로 기울어진 측면이 있다.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아이폰을 고려해봤을 것이다. 단 한번도 아이폰을 써본적은 없지만, 주위에 아이폰을 쓰면서 이게 불편하다 혹은 저게 잘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었다. 물론 제대로 잘 쓰는 사람들도 보았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고, 아이폰을 제대로 잘 쓰기 위해 뭔가 알아보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그냥 좀 쉽게 타협했다. 처음으로 삼성 휴대폰을 구매했다. 예전에 엘지 저가형 전화기들이 대체로 오래가지 못하고 딱 약정기간 지나면 어딘가 망가지곤 하길래, 이번에는 저가형 모델 말고 좀 제대로 된 제품을 사서 오래 쓰자고 생각했고 그렇게 지금 쓰는 이 폰을 사서 쓰던 유심을 끼워 썼다.

아마 오늘 우연히 북플에 들어와 21년 오늘 내가 썼던 글을 읽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긴 시간 이 건에 대한 내 기억은 오염된 상태로 머물렀을 것이다. 이것도 내 기준에서는 신기한 일이긴 하다.

설마가 맞아떨어질 확률은?

엊그제 밤에 모 유통회사의 물류창고로 야간 알바를 하러 갔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좀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 일단은 넘어가자. 4시간 반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식사시간 겸 휴식 시간이 1시간 주어진다. 끝나면 다시 4시간 반 쉼없이 일해하 한다. 총 10시간. 휴식은 딱 한 번 한 시간. 이걸 식사시간 30분과 두세시간마다 10분 정도씩 해서 여러 번 쉴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4시간 반 동안 어떻게 화장실도 한 번 안가고 일을 할 수 있나? 한 두 시간 정도 일을 열심히 하면 잠시라도 한 5분이라도 앉아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심지어 그날은 전체 작업장에 일괄 1시간 연장 근무 지침이 내려왔다고 했다. 그럼 휴식 이후 5시간 반 동안 쉬지 못하고 일해야 했다. 만약 연장 근무가 싫으면 먼저 퇴근해도 되지만, 그때는 셔틀버스가 제공되지 않았다. 주로 도시 외곽에 있는 물류센터로 셔틀버스 없이 출퇴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주 운이 좋게 물류센터 근처에 살아서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하거나 아니면 차를 운전해야 하는데, 거리도 멀고 차도 없는 나로서는 그 새벽에 집에 갈 방법이 없었다. 결국 강제는 아닐지만 어쩔수 없이 한시간 연장에 따라야 했던 나는 그 마지막 한 시간이 너무 너무 힘들었다.

사실 그날 하루만 일했다면 그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을텐데, 그 전날도 같은 조건으로 일했고, 그때는 전체 일괄 30분 연장 근무였고 그때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즉, 나는 이틀 연속으로 총 21시간 30분 일을 했다. 이건 딱 센터에서 업무에 들어간 시간만 그렇고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했다가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온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27시간 30분이다. 첫날 오후 4시 반에 집에서 출발해, 4시 50분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탔고, 5시 20분이 채 되지 않아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저녁 6시부터 일을 시작해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을 마치는데, 30분 연장근무를 했으니 4시 반에 끝났고, 셔틀버스를 타고 출발시간인 5시까지 기다렸다가 5시 반쯤 셔틀버스를 내렸고 집에 도착한 것은 거의 6시였다. 자, 일단 여기까지 첫날 출근에서 퇴근까지 13시간 30분 걸렸다. 편의점에서 사온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고, 간단히 씻고 잠든 것이 대략 7시, 잠에서 깬 것이 오후 2시였다. 7시간 잤는데도 너무 피로가 가시지 않아 잠을 잔 것 같지도 않았다. 자는 동안 일어난 일들과 연락온 것들을 확인하고 간단히 할 일들을 좀 하고 나니 한시간 반쯤 휙 지나 있었고, 이제 씻고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다시 오후 4시 반에 집에서 나서기까지 집에 머문 시간은 10시간 30분이었다. 둘째날도 4시 50분에 셔틀버스를 타고 5시 20분쯤 센터에 도착해, 6시에 일을 시작했다. 아까 말했듯이 이날은 1시간 연장근무를 해서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을 마쳤고 5시 반에 셔틀버스가 출발해 6시쯤 내렸고, 집에 도착한 것은 6시 반이었다. 14시간 걸린 것이다.

센터에서 유일하게 주어지는 1시간의 휴식이 또 마냥 쉴수만은 없는 시간이다. 이것도 어찌보면 약간 전쟁같다. 쉬는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엄청 서둘러서 움직인다. 출입구 보안대를 통과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사람들이 엄청 길게 줄을 서야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5분 안에 나가기도 하지만 운이 나쁘면 여기서 10분을 지체하기도 한다. 그리고 식당에 가면 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다른 층에도 식당이 있다는데, 사람이 좀 덜 몰리는 식당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리다 식판에 음식을 담아 나오면 이제 빈 자리를 찾아 헤매어야 한다. 멀리서 보고 빈자리인가 싶어사 가보면 가방이나 옷이 의자에 놓인 경우도 있다. 사실 모르는 사람들과 바짝 붙어서 밥을 먹기가 부담스러워 적어도 한 칸씩은 띄우고 앉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그야말로 사치다. 첫날은 몰랐는데 둘째날 좀 더 늦게 움직였더니 식당 입구에서 대각선 반대편으로 창가에 창을 바라보고 한명씩 앉을 수 있는 자리들이 몇 개 있었다. 많지는 않았다. 이 자리가 딱 좋겠다고 생각했고, 음식을 담아서 돌아왔다. 다행히 그때 마침 빈 자리가 몇 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빈자리들은 다 찼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열심히 밥을 먹고 있었는데 창문으로 내 바로 뒤에 누군가 서있는 모습이 비쳐보였다. 밤이라 창 밖은 깜깜하고 실내는 밝으니 이렇게 거울처럼 비쳐보인다. 그런데 저 여성은 왜 밥을 안 먹고 저렇게 내 뒤에 서 있는 건가? 혹시 자리가 없어서? 주위를 둘러보니 창을 바라보고 앉을 수 있는 몇 개 되지 않는 자리는 다 차있었지만, 다른 테이블들에는 그래도 빈자리가 꽤 있었다. 왜 저기로 가서 먹지 않는 거지? 꼭 굳이 여기 창가 자리에 앉아야겠다는 것인가? 그래서 내 뒤에 서서 나보고 빨리 먹고 비키라고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인가? 이때부터 갑자기 입맛이 확 사라지고, 남은 음식들을 얼른 입에 쑤셔박고 일어서서 나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 뒤에 저러고 서있다고 해서 내가 꼭 비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일단 한 번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사라진 입맛과 나빠진 기분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자가 배식을 하는 식당에서 나는 절대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안그래도 아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어떤 젊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남은 밥이 담긴 식판을 들고 일어나서 퇴식구 쪽으로 걸어가길래 속으로 엄청 욕을 퍼부었다. 아니, 나는 정말 먹지도 못할 음식을 산더미처럼 담아와서는 결국 저렇게 버리는 짓거리를 이해할 수 없다. 육체노동은 고되고 배가 고플테니 많이 먹고 싶었겠지. 그럼 실제로 많이 먹어야 할게 아닌가. 왜 ˝저걸 다 먹어?˝ 싶을 양을 퍼담아 와서는 다 못 먹고 버리는 건지? 진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다들 엄청 많이 퍼가는데, 나중에 보면 대체로 음식들을 남기더라.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보니 어쩌다 보면 많이 펄수도 있다. 그럼 어쨌거나 본인이 퍼왔으니 다 먹어야지. 안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많이 담지말고, 적당양만 담아온 후에 먹다가 부족하면 더 담으면 될 일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나는 대개 밥풀 하나, 국물 한 숟갈, 반찬 한 조각도 남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라 뒤에 그렇게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도 어쨌든 식판을 비워나갔다. 아무 맛도 못 느끼고 그저 꾸역꾸역 음식을 입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일어섰다. 일어서면서도 생각했다. 설마 나보고 비키라고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거야? 아니겠지? 설마 아니지? 그랬는데, 그 설마는 결국 맞았다. 그 여성은 내가 일어서자 잽싸게 테이블 빈 자리에 놓여있던 자신의 식판을 들고 내가 앉아있던 자리로 향했다.

일어서기 전에는 몰랐는데, 분명 그 사람은 테이블 빈 자리에 자신의 식판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럼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먹으면 될 일 아닌가? 빈 자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제법 많았는데 밥 먹고 있는 사람 뒤에 서서 눈치를 주면서 기다린다? 왜?

일이 고되고 힘든데다가 휴식 시간도 한 번 뿐인데 그 귀한 휴식시간이 이렇게 힘들게 다 지나가버린다. 밥을 다 먹고 내 작업장으로 돌아오면 정말 한 시간 중 거의 50분 가까이 지나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줄을 덜 서고 좀 일찍 밥을 먹은 날에는 40분 가까이 지나있더라.

머리카락 길이와 성별 사이의 편견

사람들이 남자 화장실에서 자꾸 내 긴 머리를 보고 놀라서 요즘 출근할 때는 아예 작업복처럼 입고 다니는 후드집업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데도 화장실은 몇 개 있지도 않고 또 좁다. 짧은 휴식 시간에 화장실에서도 줄을 서느라 시간을 낭비하면 짜증나는데, 나 때문에 누군가 놀라서 시간을 지체하면 그것도 민폐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저번에 한번 내가 임원으로 활동하는 조합에서 워크숍을 갔는데 일행인 남성들 중 머리를 길러서 묶고 다니는 사람이 나 포함 세명이었다. 나머지 머리가 짧은 남성이 더 소수였다. 그리고 여성 일행들은 모두 머리가 짧았다. 휴게소나 식담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우리 일행들을 보고 저 몇 안되는 사람들 중에 머리 긴 남성이 셋이나 포함된 일행은 뭐하는 그룹인가 궁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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