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한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외모도 변하고, 성격도 조금은 변한다. 생각도 행동도 옷차림도 변한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싫어하는 음식이 새로 생기거나 없어지기도 하고 바뀌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하는 책, 영화, 음악, 작가, 감독, 배우, 가수, 연주가 등이 바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체중이 바뀌고 미세하게 키가 늘었다가 줄기도 한다. 뱃살이 나왔다가 들어가기도 하고, 발이 퉁퉁 부었다가 붓기가 빠지기도 한다. 입안이 헐었다가 낫기도 하고, 입술이 부르트거나 입 주위에 뭔가 솟았다가 없어지기도 한다. 손톱이, 머리카락이, 수염이, 몸 여기저기 체모들이 조금씩 자란다. 모르던 지식을 배우기도 하고, 외우고 있던 전화번호나 숫자들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기타를 익숙하게 칠 수 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코드나 주법을 다시 못 치게 되기도 하고, 팔굽혀펴기를 백 개도 넘게 하다가 부상 당한 후에 오십 개도 채 못 하게 되기도 한다. 지독하게 혐오하던 코메디 영화를 보고 낄낄 거리며 웃을 수도 있고, 여러 차례 보아도 감명깊었던 에스에프 영화를 보고 문득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익숙하고 정겨운 산책길 풍경을 보고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고, 매번 같은 길을 걷는 것에 싫증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늙어가며 외모가 조금씩 변해도 인상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성격도 조금은 변할 수 있지만, 큰 틀에서는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20년도 더 지난 대학 시절이에도 MBTI 결과는 INTP 였는데, 궁금해서 온라인으로 약식 검사를 해보니 여전히 INTP 가 나온다. 생각이나 행동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변화가 생길 수도 있지만, 대체로는 큰 변화가 없이 어떤 범주 안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떠올리고, 어떤 장소에서 어떤 행동을 할 지 예측 가능하다. 옷차림도 그렇다. 나는 대학시절에 구매했던 몇몇 옷들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입는다. 시간이 지나면 취향도 조금씩 바뀌어 좋아하는 책과 영화, 음악 등이 바뀌기도 하지만, 어쩌다 다시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나 작품을 다시 접하면,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다시 좋아지곤 한다. 어쩌면 취향이 바뀐다는 말도 맞겠지만, 달리 말하면 취향이 더 풍성해진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어제 우연히 데비 깁슨의 80년대 노래들을 들었는데, 그의 노래에 푹 빠져있었던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져 그 노래들이 더 좋게 느껴졌다.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한다.
이런 식이면 하루종일도 쓸 수 있다. 사람은 변한다고 해놓고 변하지 않는 증거를 백 개도 넘게 댈 수 있고, 변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변한다는 증거를 백 개도 넘게 댈 수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한다는 얘기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다. 누가 옳고 누가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언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짧은 시간에 꽤 많은 일이 나를 치고 지나갔다. 좋은 시간이라고 기억될만한 일도 있었고, 그저 그런 별 감흥이 없었던 기억들도 있었고, 그닥 좋지 않다고 생각할만한 일들은 좀 많았다. 그리고 최악이라고 할만한 아주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그 결과를 전해듣기 전까지 단 한 번도 그런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가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다시 듣고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막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대체 뭐가 왜 어떻게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화는 좀 나중에 따라왔는데,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화를 내야할 지 몰랐다. 상대를 찾지 못한 화는 나 자신에게 향했고,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화를 받아 안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른채로 주말을 보냈다.
왜? 가 중요한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나은가?
고민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이 많다. 고민을 해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고민을 계속 해야할까? 그냥 받아들이기만 해도 될 일이 있지 않을까? 언젠가부터 맛있게 먹어왔던 어떤 특정한 과자를 먹다가 갑자기 맛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 입맛이 변한 걸까? 과자 공장에서 잘 못 만든 걸까? 과자 공장에서 재료를 바꾼 걸까? 만약 내 입맛이 변한 거라면 왜 변한 걸까? 이런 걸 고민한다고 과연 그 답을 찾을 수 있나? 그냥 단순히 이젠 이게 별로 맛이 없네. 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 그냥 이제 먹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답을 모르는 상태가 너무 답답하고 싫은 경우가 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 혹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고 슬픈 일이 되기도 한다. 가령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싫증을 느낀다면 그건 이유를 따져야 하는 걸까?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걸까? 어떤 경우에는 여전히 사랑스러울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싫증이 날 수도 있다.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한다는 말처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 같은 거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다. 어떤 선을 넘어가면 하나의 단계로 고착된다.
악순환 그리고 시도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서 한 달하고 반이 지났다. 집에서 오래 쉬고 있던 몸과 머리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일단 체력이 받쳐주지 못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만 했는데도 너무 힘들고 지쳤다. 다른 무언가를 할 에너지가 없었다. 나는 운동을 하고 싶었고, 책을 읽고 싶었고, 글도 쓰고 싶었는데, 그냥 출근과 퇴근만 하는 것도 힘겨웠다. 집에 돌아오면 지친 몸을 누이기 바빴고, 그만큼 체력은 더 나빠졌다. 악순환이다. 어떻게든 운동을 하고 체력을 더 길러야 하는데,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는 불가능했다. 어디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
꽤 오랫동안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숨만 쉬며 살아온 것 같았는데, 요즘은 생각이란 걸 조금씩 해본다. 더 늙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내 존재가 점점 작아져 없어져 버리기 전에 뭔가를 하고 싶다는, 아니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생각이 들면 일단 해봐야겠지. 좋고 나쁘고는 해보고 따져볼 일이다. 이를테면 지금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기르고 있는 것도, 수염을 기르고 있는 것도 모두 생각이란 걸 해본 결과 중 하나다. 누군가는 수염이 보기 싫다 하고, 누군가는 꽁지 머리가 꼴 사납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냥 내 존재 자체가 싫은 모양이지만,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내 못난 외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머리카락이 어중간한 길이라서 너무 지저분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배우처럼 수염이 멋지게 자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괜찮다고 느낀다. 나는 안다. 내가 잘난 외모가 아니란 것도, 어느 멋진 배우처럼 멋진 수염을 가질 수 없음도, 제멋대로 뻗치는 반곱슬 머리에 숱이 적어서 이렇게 길러봐야 멋진 스타일을 만들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어떤가? 그냥 내가 괜찮으면 된 것 아닌가? 내가 괜찮지 않은 때가 온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머리카락을 자를 것이고 면도를 깔끔하게 할 것이다. 누가 억을 준다고 해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마는 사람이다.
더 늙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시도들을 더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란 걸 해봤다. 이런저런 상황을 떠올려봐도 그닥 나쁠 건 없어 보인다. 해보면 좋겠다. 문제는 체력이다.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을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다. 한번에 좋아질 수 없다는 건 잘 안다. 뭐든 그저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지금은 일단 뒤집어 볼 수 있는 수 하나가 필요하다. 어쩌면 주말 동안의 길고 긴 불면의 밤이 그 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악수가 될지도 모르지만. 일단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 없다. 게다가 내 탓이 아니다. 나는 분명 불면이 두려워 초저녁부터 불을 끄고 누워서 온갖 노력을 다 동원했다.
날이 밝아온다. 너무나도 싫은 월요일 아침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학창시절에도 나는 월요일 아침이 싫었다. 사람은 변한다. 월요일 아침이 싫지만, 이렇게 밤을 지새우고 맞이하는 월요일 아침은 또 그렇게까지 싫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