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크셔테리어 기르기
조광원 / 삼호미디어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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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츄프라 카치아'라는 식물은 아프리카 깊은 밀림에서 공기중에 소량의 물과 햇빛으로만 사는 음지 식물과의 하나라고 하는데, 그 식물은 사람의 영혼을 갖고있다고도 합니다... 누군가 건드리면 금방 시들해져 죽어버리는...그러나 한번 만진 사람이 계속해서 애정을 가지고 만져 줘야만 살아갈 수 있다 합니다... '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떠돌던 글이었다. 나에게 유츄프라 카치아라는 식물이 있다. 바로 우리 강아지 복순이.

요크셔테리어는 18세기 말경 영국의 요크셔지방 방직공장 노동자들이 쥐잡는 개로 기르기 시작했다가 이후에 귀족 부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애완견으로 정착했다고 한다. 요크셔 테리어를 기르다보면 가끔 정말, 경쟁심도 강하고 흥분도 잘하며 더더군다나 너무나 민첩하고 날쌘 동작들을 보여 주는 이 동물을 보면서 '예전에 쥐를 잡았다더니 그 말이 맞는가보군' 하게 된다.

이 책은 요크셔 테리어의 매력과 애완견을 키우면서 잊지 말아야 할 '규칙'과 '관리'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짜임새 있는 구성과 다양한 일러스트로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애완견과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길들이기의 기본은 물론 건강 관리와 걸리기 쉬운 질병에 대한 지식이나 예방, 치료까지를 망라해 놓았다.

크게 네 가지 테마로 나뉘어 있는 이 책의 콘텐츠 구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요크셔 테리어에 대해 알기(요키의 매력, 역사, 적합한 주인 조건, 견종 표준 ), 둘째, 강아지를 맞이한다.(자신에게 맞는 강아지 찾기, 계절에 따른 사육시 주의점), 셋째, 요크셔 테리어와의 생화(신생아기, 유년기 청년기, 노견이 되면..) 넷째 요크셔 테리어와 더욱더 쾌적한 생활을..(훈련 및 손질의 기본, 출산 시 알아 둘 점, 주의해야 할 사항)등이다.

이 책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너무 신생아기와 유아기에만 치우쳐져 있어서, 청년기(두 살 이후)와 노년기의 패턴에 대한 부분에서는 신생아기에 비해 대략 훑는 수준에 그치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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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
에티엔 바랄 지음, 송지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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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맨 앞의 장자크 베넥스의 서문을 접하고는, 아무런 주저함없이 고르게 된 책이다. 장자크 베넥스는 서문에서, '어린 시절과 성년 사이에 머물러 있는 퇴행적인 면모를 보이는' 오타쿠들을 보다 생산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평가한다. 그들은 소프트웨어의 혁명이 낳은 새로운 풍경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존재들로서, 고안하고 검증하고 수집하면서 종종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이해에 필요한 열쇠를 제공하는 인물들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서문 다음에 이 책의 진짜 저자인 에티엔 바랄의 글을 본격적으로 읽으면서, 이 책의 정체는, 일본의 근대화의 산물이며, 근대화의 피해자이기도 한 '오타쿠'들을 일례로 들어 일본 사회의 천태만상의 현상들에 대해 조목조목 칼을 들이대고 있는 날카로운 비판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필자는 글을 재밌게 쓰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냉소적이며, 필요 이상으로 신랄함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 신랄한 지적들 중에서 한국 사회에도 해당이 되기에, '남의 얘기하는구나'라며 흘려 들을 수 없었던 한가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일본의 학력 경쟁은 '헨사치', 곧 '편차값'이 없다면 그렇게까지 첨예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한다. 이 시험은 일본의 중고등 학생들의 성적을 국가적 차원에서 측정하는 시스템인바 공사립 구별 없이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시행되는 월말 시험의 평균 산출 수치이다. 이 헨사치에 따라 각 학생은 같은 학년에 속한 전체 학생들 가운데서 자기 학력을 가늠하고, 또 상급 학교 합격 가능성을 예상한다. 헨사치의 처음의 의도는 모든 학생들이 시험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원칙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원칙이 오히려 역효과를 부른 셈이 되었고 아이들은 단순한 학력의 범주를 훨씬 넘어서서 경쟁심을 키우게 되고 전국적 단위에서 평가된 점수가 자기들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학생들은 자기보다 나은 점수를 얻은 다른 학생들에게 잔혹한 태도를 취한다. 즉, 일본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었던 이지메, 즉 왕따 현상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에티엔 바랄의 또한가지 그럴싸한 분석이 있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야오이 만화에 열광하는 것에 대한 것인데, 여성들은 야오이 만화(남자들의 동성 연애를 주제한 만화)를 열광적으로 읽거나 줄거리를 만듦으로써 남성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사회에 대해 항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오이 만화는 미디어를 통해 나타나는 천편일률적인 여성의 이미지(육감적이게 예쁘고, 착한 소녀들)에 대한 반항인 것이다.

하지만 에티엔 바랄이 말한 다음과 같은 부분은 좀 다르게 억지스러운 도식화가 느껴진다. '일본인들은 집단 생활을 좋아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집단을 벗어나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이건 앞의 이야기와 조금 다른 경우지만, 얼마전에 출장을 갔던 동경, 시부야 역 근처에서 늦은 밤에 일행들과 라면에 간단히 맥주 한 잔씩 들기 위해 간이 음식점을 찾은 적이 있다. 그런데 식당 내부의 구조가 한 사람씩 먹을 수 있도록 각각 칸막이가 되어 있어 꼭 사설 독서실을 연상시켰다. 혼자씩 와서 각각의 칸막이 안에 들어가 앉아 무언가를 후루룩거리며 들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식당에서 밥도 혼자 못 먹는 사람이 일본인인양 기술하고 있는데 말이다. 난 이 식당에서 고독한 일본인들의 모습을 본 거 같다.

다시 오타쿠들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만 미쳐 있는 이들은 어떻게 보면, 굉장한 사회적 에너지로 전환될 가능성이 많음에도, 이들을 대하는 일반인들의 의식은 '비정상적이고 병적이며 퇴페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들의 겉모습은 정말로'운동 부족으로 인해 비만하고 여드름투성이에 돗수높은 안경을 끼고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정작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야 말로, 자기들에게 남아 있는 아직도 신뢰할 만한 유일한 세계, 유년기의 세계와 거기에서의 감동으로 계속 살고 싶은 순수한(?)사람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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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이다 - 2000 제2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만교 지음 / 민음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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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 소설을 두고, 심심한 일요일에 읽어보라 했었던가, 어제가 바로 그 심심한 일요일이었기에, 나는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구한 이 책을 읽었다. 그 지인은 '이 책 어떼?'라고 묻는 나에게 '그냥그래.'라고 답해 주었다. 내가 물었듯, 누군가가 나에게 이 책을 읽은 소감을 한마디로 말해보라 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거 같다. '별로야.'

'별로인데, 왜 서평을 쓰고 앉았다지.' 라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나는 또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궁색한 변명을 대신할까 한다.

최근에 알게 된 한 친구가 말하기를,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책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라기보단 자기 얘기를 하기 위한 핑계라고 했다. 그리고 책을 읽는 행위는 바로, 어떻게 해서든 타인의 글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려는 무의적 본능의 반복이며 지극히 생물학적인 노력이라고도 했다. 따라서, 이런 독서 행위를 한 마디 쉬운 말로 정의하면 '혼자 노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했다.

각설하고, 책 읽는 행위가 글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려 했던 거였다면, 나는 도데체 조금은 파격적이고 과격한 제목의 이 소설에서, 어떤 글귀가 나에게 말을 걸어 오길 바라며, 이 책을 읽었던 것일까.

작가가 나에게 '결혼은 이러이러하기에 미친 짓이라고 하는거야, 나의 이러이러하기에를 들을 소감이 어떼? 내 말이 살벌하게 들어 맞지?'라는 목소리를 내지르기를, 아니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사실은 엄청 울겠다는 의미이면서도 겉으론 죽어도 눈물 안 흘리겠다고 했던 그 방식대로, 이 소설의 제목이 '결혼은 미치(도록 행복한)ㄴ 짓이야. 라고 말해주길 바랬나... .

사실, 이 소설에, 소피스트들의 괘변같이 인문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독특한 언어 유희 또한 곳곳에 보임에도, 나에게 별로 남을 게 없는 소설쯤으로 전락되어버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인간이 만나 티격태격이나마, 결국에는 하나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의미의 (결혼) 생활에 대한 어떤 함축이나 은유 같은 것은 쏙 빠진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시니컬한 입장을 보인다는 점. 둘째, 주인공 나(그 남자) 포함, 모든 등장 인물들은 진실(적어도 사랑의 유무에서)되어 보이지 않는 남녀 관계망(일례로, 주인공 남자의 친구인 규진은 유리와 결혼을 한 상태이고, 신혼이다. 표면적으로는 유리와 어떤 불만과 갈등이 있는지 독자인 나는 정보 하나 주어듣지 못한채, 옛친구인 지영과 바람을 피고 있는 규진을 보게 된다. 게다가 아내인 유리는 임신 중인데...)을 갖는다는 점.

성인에게 있어, 결혼이란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는 선택 사항이긴 하다. 그럼에도 성인 남녀라면 누구나 당면한 현실이다. 따라서 글을 쓰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누차 다루고, 공공연하게 말해지는 것이 바로 '결혼이라는 제도의 모순'과 같은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 것에 대해 작가가 풀어낸 방식이 어쩐지 한물 간 농담처럼 여겨지니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아무리 그럴싸한 문학적 장치로 포장하여 내놓았다해도,) 재탕삼탕 반복해서 듣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는 내 내부의 소리를 듣는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그렇다.

이 소설에서 보면, 주인공 그 남자가 또다른 주인공 그 여자(두 주인공 모두 작중에서 이름이 나오지 않아, 옮길 수 없음.)에게 이렇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봤어? <정사>는? .....'

이 소설 또한 영화로 만들어졌다하니, 아마도 위의 작중 인물들이 나누던 대화 속에 열거된 우리 나라 영화의 아류작 한 편이 또 나온 모양이다. 비디오로나 나오면 소설과 비교도 해 볼겸 한번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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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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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요일 저녁, 마지막 장을 덮은 책은 아마존의 밀림을 배경으로 하는 이 책,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이고, 어제 오후에 본 비디오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부제 : 부에노스아이레스)'이며, 어그제 본 텔레비젼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파라과이에서 있었던 한인 남매 살인 사건(파라과이의 졸속 형사 사법 처리 제도에 관한 고발이랄까)에 관한 것을 다루었다.

지리적으로, 우리 나라와 가장 반대편에 있는 남미는, 인천에서 출발하는 비행길 직항 노선으로 그 거리감을 따지자면 대략 서른두 시간이라는 간격을 두고 있다. 이런 남미는 당연히 나에게는 신비로운 미지의 영역이다.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이 책의 작가 루이스 세풀바다에게 붙는 수식어는 무척 많다. 작가이자, 반체제 운동가, 망명길에 올랐다가, 연극단도 꾸린 적이 있으며, 기자로도 활동했고, 왕성한 여행가에다가 환경 운동가이기까지 하다니. 작가가 무척 바쁘고, 고단하며 험난하고 모험적인 인생을 살아왔으리란 건 눈감고도 알 거 같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의 문체는 약동적이며, 플롯은 분명하고 선이 굵다. 한마디로 읽는 재미가 나는 소설이랄까. 게다가 마지막 부분의 노인과 살쾡이의 대결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이 소설이 재미있는 것은 아마도 두 등장 인물(?)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으로 대변되는 참으로 매력적인 한 사람(노인)과 동물(살쾡이)이 나온다. 노인은 그림 속에나 남겨진 다정했던 몇십년 전에 죽은 마누라를 가슴 속에 간직하며 살아가는 순애보이자,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읽을 수는 있으며 단어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전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내는 방식의 연애 소설 읽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는 아내가 죽자, 이후 수십년을 인디오들과 함께 자연과 어울려 살아온 탓에 밀림과 자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이 소설에 언급된 것 중, 인상적인 것 중에 하나는, 소리에 민감한 박쥐들이 위험을 느끼면 재빨리 몸을 가볍게 하고 날기 위해 뱃속에 있는 걸 몽땅 쏟아낸다는 거였다. 즉, 박쥐들을 놀래키면 여지없이 배설물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매력적인 두 번째 주인공(?)은 읍장 뚱보나 밀렵군 양키들 같은 시종잡배, 여타의 인간들보다 훨씬 위풍당당한 살쾡이이다. 물론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살쾡이가 노인과 생사를 가름하는 사투를 벌여야 했고, 결국엔 살쾡이의 죽음으로 이 대결은 막을 내린다. 그러나 이 싸움은 지구상에 잡다구리하게 존재하는 오만한 인간들의 치졸한 대결들과는 비할 수가 없다. 이 싸움의 발단은 무엇이었나? 싸움을 먼저 걸어온 쪽은 암살쾡이의 어린 자식들과 수컷살쾡이 마저도 무심코 쏘아 죽게 만든 개발업자이자 밀렵꾼들인 양키들이다. 이 동물은 인간들이 걸어 온 싸움에 맞서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인 후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려 하고 있다. 이 싸움에서 살쾡이는 짐승들 또한 헤아리기 어려운 지혜를 소유하고 있음을 몸소 보여 주고 있다. ('양키들 대 살쾡이'의 대결이면 대결이지, 왜 우리의 다크 호스인 '노인'과 위풍당당 '살쾡이'의 대결이 되어야 하는지 이 역설적인 모순은 이 책을 읽고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다.)

이 책을 번역한 정창이라는 역자는 꽤 실력있는 번역가인 것 같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 취향의 견해이다. 그럼에도 내가 실력있는 번역가라고 단언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의 번역서 바르가스 요사의 <궁둥이>와 로사 몬테의 <시대를 앞서 간 여자들의 거짓과 비극의 역사>를 그의 무난한 번역 덕분으로 꽤 수월하고도 쉽게 읽어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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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이산의 책 8
조너선 스펜스 지음, 정영무 옮김 / 이산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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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이었나보다. 'TV 책을 말한다' 라는 프로그램에서 조너선D 스펜서의 저작 <현대 중국을 찾아서1, 2>를 소개해 준 적이 있다. 그때 잠깐 저자의 인터뷰도 함께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량하고 성실해 뵈는 학자의 모습을 한 조너선D 스펜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중국의 장구하고 도도한 현대 역사의 흐름을 보여 주고 있는 사람이 중국인도 아니고, 동양인도 아니고, 한 서양 역사학자라는 것, 그 학자가 중국의 현대사를 시원시원하고도 문학적인 필치로 서술한 이 책을 읽어내는 일은 정말이지 아이러니였던 것이다.

중국이 이웃 나라이기는 하지만 사실 나는 너무나도 중국에 대해서 몰랐던 듯 싶다. 예를 들면, 태평천국의 난은 왜 일어났는지, 청나라는 어째서 그토록 무기력하게 서양 열강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는지,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장제스의 국민당군은 마오쩌둥의 공산당군에게 왜 패하여 타이완으로 쫓겨났는지, 뿐만 아니라 신해 혁명이나 5, 4 운동 또는 사회주의 혁명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도.

그러나 단순히 이 책은 위의 사실을 주지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책 속에서 빛나는 부분은 바로, 매우 복잡한 상황에 처해 매일 같이 대단히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는 데에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여러 인물들 중에서도 중심 인물로는 다음과 같다. '첫번째 인물은 유교 교육을 받고 19세기말 청조가 쇠퇴할 무렵 급진적인 개혁의 대변자 노릇을 하다가 정치적 실패를 겪고 망명 생활을 한 뒤에 유토피아적 사변 속에서 삶의 애환을 달랬던 유학자 캉유웨이이며, 두번째 인물은 젊은 시절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문학에 빠져 든 뒤 1920년대 국민과 학생들의 좌절된 열망을 가장 또렷이 표출한 루쉰이다. 세번째 인물은 청조의 멸망으로 등장한 해방된 `새로운` 중국이라는 세계 속에서 성장한 딩링이다. 작가이자 정치행동주의자인 그녀는 국민당 민족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강요한 창작활동의 기준이 자신의 창작 의욕과 얼마나 맞지 않는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스펜서의 서문에서 발췌

위의 세 인물을 중심으로 또다른 조연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 중국 역사에 대한 웬만한 관심이 아니었다면 알수 없었을 많은 빛나는 인물들이 함께 등장하여 중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면 관통한다. 아!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힘주어 말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책의 표지 디자인이 갖는 통찰력이다. 쏠티디자인 스튜디오의 작품이라는 이 책 표지는 다음에 이어지는 이 책의 구성 방식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미리 집약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천안문 광장을 멀리 뒷배경으로 하고, 루신과 딩링 캉유웨이의 사진을 크게 배치하였다. 셋의 주변으로 쑨원, 량치차오, 원이둬, 추진 등의 인물 사진을 곳곳에 배치한 것이다.

나는 역사서를 읽는데 확실히 취미가 없는 사람이다. 심지어는 드라마도 사극은 보질 않는다. 현재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고루함에서 쉽게 흥미를 잃고 마는 것일텐데, 그런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던지. 이 책에서는 중국 현대 인물사가 시와 소설의 인용 글들 즉, 문학과 만난다. 게다가 단 몇 줄로 소개되는 인물이더라도 실체를 만나 눈빛을 주고 받은 것과 같은 실존감을 불어넣고 있다는 데에 있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울러 문학과 문화에도 조예가 깊으면 이렇게 훌륭한 저서가 나올 수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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