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이산의 책 8
조너선 스펜스 지음, 정영무 옮김 / 이산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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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해 겨울이었나보다. 'TV 책을 말한다' 라는 프로그램에서 조너선D 스펜서의 저작 <현대 중국을 찾아서1, 2>를 소개해 준 적이 있다. 그때 잠깐 저자의 인터뷰도 함께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량하고 성실해 뵈는 학자의 모습을 한 조너선D 스펜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중국의 장구하고 도도한 현대 역사의 흐름을 보여 주고 있는 사람이 중국인도 아니고, 동양인도 아니고, 한 서양 역사학자라는 것, 그 학자가 중국의 현대사를 시원시원하고도 문학적인 필치로 서술한 이 책을 읽어내는 일은 정말이지 아이러니였던 것이다.

중국이 이웃 나라이기는 하지만 사실 나는 너무나도 중국에 대해서 몰랐던 듯 싶다. 예를 들면, 태평천국의 난은 왜 일어났는지, 청나라는 어째서 그토록 무기력하게 서양 열강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는지,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장제스의 국민당군은 마오쩌둥의 공산당군에게 왜 패하여 타이완으로 쫓겨났는지, 뿐만 아니라 신해 혁명이나 5, 4 운동 또는 사회주의 혁명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도.

그러나 단순히 이 책은 위의 사실을 주지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책 속에서 빛나는 부분은 바로, 매우 복잡한 상황에 처해 매일 같이 대단히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는 데에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여러 인물들 중에서도 중심 인물로는 다음과 같다. '첫번째 인물은 유교 교육을 받고 19세기말 청조가 쇠퇴할 무렵 급진적인 개혁의 대변자 노릇을 하다가 정치적 실패를 겪고 망명 생활을 한 뒤에 유토피아적 사변 속에서 삶의 애환을 달랬던 유학자 캉유웨이이며, 두번째 인물은 젊은 시절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문학에 빠져 든 뒤 1920년대 국민과 학생들의 좌절된 열망을 가장 또렷이 표출한 루쉰이다. 세번째 인물은 청조의 멸망으로 등장한 해방된 `새로운` 중국이라는 세계 속에서 성장한 딩링이다. 작가이자 정치행동주의자인 그녀는 국민당 민족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강요한 창작활동의 기준이 자신의 창작 의욕과 얼마나 맞지 않는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스펜서의 서문에서 발췌

위의 세 인물을 중심으로 또다른 조연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 중국 역사에 대한 웬만한 관심이 아니었다면 알수 없었을 많은 빛나는 인물들이 함께 등장하여 중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면 관통한다. 아!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힘주어 말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책의 표지 디자인이 갖는 통찰력이다. 쏠티디자인 스튜디오의 작품이라는 이 책 표지는 다음에 이어지는 이 책의 구성 방식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미리 집약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천안문 광장을 멀리 뒷배경으로 하고, 루신과 딩링 캉유웨이의 사진을 크게 배치하였다. 셋의 주변으로 쑨원, 량치차오, 원이둬, 추진 등의 인물 사진을 곳곳에 배치한 것이다.

나는 역사서를 읽는데 확실히 취미가 없는 사람이다. 심지어는 드라마도 사극은 보질 않는다. 현재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고루함에서 쉽게 흥미를 잃고 마는 것일텐데, 그런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던지. 이 책에서는 중국 현대 인물사가 시와 소설의 인용 글들 즉, 문학과 만난다. 게다가 단 몇 줄로 소개되는 인물이더라도 실체를 만나 눈빛을 주고 받은 것과 같은 실존감을 불어넣고 있다는 데에 있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울러 문학과 문화에도 조예가 깊으면 이렇게 훌륭한 저서가 나올 수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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