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유쾌한 정신장애인들의 공동체 '베델의 집' 이야기
사이토 미치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삼인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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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이나 사회 복귀는 대부분 이른바 정상인이 주창하고 계획하며 추진하는 것이 아닐까? (...) 조금이라도 정상인에게 다가가는 것, 병을 치료하는 것, 환각이나 망상을 없애는 것, 훌륭한 사람이 되어 의젓하게 제 몫을 하는 것, 그런 이미지가 정착되어 있다. 그러한 모든 것은 "병에 걸려서는 안 된다", "지금 이대로의 당신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질리도록 발산하는 것이 아닐까? (...) 많은 사람들이 평생 이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병을 고치라, 정상인이 되라, 이런 말을 계속해서 듣는 것은 그 사람이 평생 "지금의 당신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계속 듣는 일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병이 있든 없든 "그대로도 괜찮다"는 생활 방식도 있지 않을까?

-p.80쪽

충돌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거기에는 어느새 느릿하고 불확실하며 변덕스럽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결코 강고한 연대로 지탱된 장도, 명석한 이념으로 지탱된 장도 아니었다. 그저 약한 사람이 그 약함을 유대로 연결된 장이었다. (...)
하지만 거기에는 누가 정한 것도 아니고 또 목표로 한 것도 아닌, 처음부터 변함없이 관통해온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결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뒤처진 채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생활 방식이다. 애당초 그들 안에는 배제라는 말이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여러 겹으로, 그리고 몇 번이고 이 사회에서 배제되어 밀려난 사람들이었으니까. 서로가 더 이상 밀려날 수 없는 사람들의 무리가 약함을 유대로 연결되어 결코 배제하지 않고 또 배제당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만들어왔을 때, 거기서 나타난 것은 한없는 평등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관계였다.


-p.86~ p.87쪽

그대로도 괜찮다는 것은 결코 그 사람을 내버려둔다거나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사람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며, 또한 그 사람의 문제나 말썽거리, 사귀기 힘든 그 사람의 성격 등을 남김없이 모두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것은 실로 성가신 일이다. 품이 드는 일인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그런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정상적인 사회는, 문제를 막고 말썽의 싹을 잘라버리며 불거져나온 부분을 억누르는 등 모든 것을 관리하기 쉽게 하려고 온갖 수단을 궁리해 쌓아올린다.

-p.226쪽


정신장애인이란 누구보다도 정밀도가 높은 센서를 가진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한편 정상인이라는 사람들은 그 센서의 감도가 낮은 것일까? 그 때문에 분발하고 마는 것일까? 아니면 감도가 낮아 인간관계를 애매하게 하고 얼버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병에 걸릴 수 없는 사람들은, 겉과 속마음을 약삭빠르게 구분해서 대응하고 타인에 대해 가면을 쓰며 어느새 갑옷을 걸치고 있다. 정신장애인은 그런 요령 좋은 생활 방식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위로 오르고 성공하고 계속 상승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이 사회에서 그것을 할 수 없어 뒤처지고 밑바닥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다.


-p.265~266쪽

거기서 살아가는 것은 항상 하나의 질문을 품고 있다.
어떤 부조리로 자신은 정신병이라는 병에 걸렸고, 절망 속에서 여전히 이 세상에 살아 있어야 하는가. 병을 안고 사는 인생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프랭클린의 말을 인용.
"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이 인생이 자신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p. 281쪽

만약 베델의 집이 절망이 아니라 희망에서 시작되었다면, 그 길은 전혀 다른 길이 되었을 것이다. 구성원은 내일을 믿고 서로를 격려하며 병을 치료하고 생활을 제대로 갖춰 기술을 익혀 일에 도전하고,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계속 상승하여 사회 복귀를 이뤄내는 일을 목표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절망에서 시작된 접근을 정반대 길을 걸으려고 한다. 거기서는 최후에는 죽어야 할 존재인 인간이,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고생하고 고민할 것을 요구받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살기 힘든 것을 살지 않으면 안 되며, 약함을 유대로 해 서로 관계를 맺고, 한없이 내려가 넓은 대지에 내려서려고 한다.
절망에서 시작해 깊은 환멸을 빠져나가 오로지 내려가기만 하는 생활 방식이기 때문에 베델의 집에서는 고생이 주어지고 고민이 권유된다. 절망하는 것이 원조를 받고, 병이라는 것이 긍정되며, 그대로도 괜찮다는 생활 방식, 또는 그대로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활 방식이 제창된다. 신기하게 아니면 당연하게 그렇게 되는 것일까.

-p.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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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3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6-05-2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달리 교정쟁이 인가요? ㅎㅎ
단순한 게 가장 어려운 거 같아요...
이 책을 읽고, 아주 조금은... 옹졸해지려는 마음이... 느슨하게 풀리는 느낌을 받았고, 또 그것이 좋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