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하루키의 렉싱턴의 유령에 나오는 단편 중의 하나인 <토니 타키타니>를 읽지는 않았지만 영화는 봤었다. 외곬으로 자란 사람의 외로움이 느껴지고, 그런 고독감을 기계적인 그림을 그리는 일로 상쇄시키는 토니 타키타니에게 연민을 느꼈었다. 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매일 방에 혼자 틀어박혀 그림을 그렸었다. 연필심을 바늘처럼 뾰족하게 깎아 자전거니 라디오니 엔진이니 하는 것들의 세부를 정교하게 그리는 것. 꽃 그림을 그릴 때도 잎맥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누가 뭐라하든 그렇게밖에 그릴 수 없었다.

"이 소설의 후반부는 주인공이 벽 쌓는 일을 하는 동안 노동에서의 성취감을 찾고 심경이 변해 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는데, 그가 일에 매달린 것은 단지 일을 마치려는 강박 관념에서가 아니라 감금된 상황이 그에게 해방의 한 형태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

이 이야기의 주인공도 그렇다. 차를 몰아 돌아다니는 동안 그는 자유롭고 책임이 없었지만 갇혀서 강제 노역을 할 때는 유대와 책임감이 있었고, 그것은 또 다른, 더 깊은 자유였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존재의 불확실성 가운데 내던져진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떠나 이리저리 떠돌다가 노름꾼과 한패가 되어 한 장의 카드에 미래를 건 뒤, 결과는 무참했으나 기실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어떤 규칙성이랄까 침착함을 찾게 된다.

전직 소방관인 주인공 짐 나쉬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아버지에게서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는다. 그러나 그 당시 상황이라는 것이 이렇다.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나고 하나 있는 피붙이 딸은 누이집에 맡긴 후라서 소방관 일을 때려치우고 돈다발을 흘려보내기 위해 무작정 도로로 나선 나쉬에게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 거액의 유산을 길에서 쓰기로 한다. 멋진 자동차를 한 대 사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삶. 그 일은 뜻밖에도 멋졌다. 뉴욕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쓰러져 가는 도박사 청년 잭 포지를 구해 준다.

나쉬는 그를 그냥 가던 길 가게 놔두지 않고, 잭 포지의 노름돈을 대어 주겠다면서 자기 삶에 한 발 들어오게 했던 부분까지 별반 긴박감이랄지 신선함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며 읽었다.  이미 포기를 했고 더 이상 아무것도 내어 줄 것이 없다 싶은, 가보는데까지 가 본다는 식의 자포자기 태도를 갖은 주인공, 이미 폴 오스터의 다른 작품에서도 만끽(?)한 상태이므로....

뭐, 그래서 잭 포지가 설령 나쉬의 기대대로 대박을 터뜨리고, 그래서 설령 목돈 거머쥐게 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흐를지라도, 정말 뻔할 뻔자라는 생각만 들 거라고....

나쉬의 인생에서의 고독과 무의미가 어떤 우연의 음악에 의해... 책임을 수반하는 실존적 행위로 바뀌었는지
따라가다 보니, 마지막은 제법 속도가 붙어서 책장을 덮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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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6-04-2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흥미로운데요. 제목도 멋지고,,,
ㅎㅎ 무기력하고 게으른 사람이 읽으면 어떨까여??^^;;

icaru 2006-05-0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오스터는 음악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인 듯 해요~
웬지 리드미컬~ 한 게..

무기력하고 게으른 사람이 읽기에 좋습니다... 제게 좋았듯~ ^^

2006-05-02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6-05-0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한잔 하시면~ 말투가 더 화끈해지는 속삭님!!
폴 오스터는 단연코 제가 젤로 좋아하는 외국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반딧불,, 2006-05-1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안읽었네요^^

2006-05-14 1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15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15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05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