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노엄 촘스키 지음,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어, 강주헌 옮김, 레미 말랭그레 그림, / 시대의창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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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7 15:06


 

 

바츨라프 하벨이 제 7회 서울 평화상에 수상되었다고 한다. 서울(?)의 평화(?)를 주는데 저 외국인이 상당히 일조를 했나? 허울좋은 세계화!!! 구호 속에 묻혀 과연 '서울 평화상'의 의미는 무언지.......!!

나는 그 사람을 잘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한번 주말에 하는 퀴즈 프로(검색 문제로 저 상과 저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를 보고, 서울평화상 수상자라는 하벨이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본적이 있다.

찾아보니...하벨은 공공연하게 김정일을 “세계 최악의 독재자”라면서 “그는 핵과 미사일 등으로 세계를 협박해 받아 낸 식량을 군대 등 자신의 충성 세력에 나눠줄 뿐 주민들은 굶어죽어도 상관하지 않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는 내용의 기사들(하벨과 부시는 토시 하나 안 틀리고 같은 말을 이구동성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을 접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벨이 왜 미국이 가장 높이 받드는 ‘유럽의 양심’으로의 상징적 존재인가 라는 점이다. 하벨은 공산주의 치하에서 체코의 민주주의 체제로 바꾼 사람으로, 미국이 대놓고 칭찬하기에 딱 좋은 지식인 계층이다. 그런데 당시 하벨과는 반대 급부(미국의 입장에서)의 엘살바도르 지식인 6명이 소리 소문없이 미국이 훈련시킨 코만도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것은 거의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고.


이 쯤에서 드는 생각은 언론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하는 것이다.


촘스키는 1966년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지식인의 책무’에서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미국이 자신을 향해 어떤 비난과 질시를 하든 개의치 않고 미국의 ‘외교정책- 언론-지식인’의 유착 관계에 주목하여 그 본질을 폭로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촘스키는 말한다. 통찰력 있는 지식인이라면 대중을 그저 무기력한 구경꾼으로 만드는 이런 흐름을 충분히 꿰뚫어 보았을 것이나, 대부분의 지식인은 입을 다문 채 대중을 국가에 종속시키려는 이런 음모에 가담한다. 왜? 그것이 이들의 밥줄이기 때문이다.


촘스키는 현재의 경제 체제는 엄청난 권력을 지닌 개인 기업들이 서로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강력한 국가 권력에 의존하면서 위험과 비용을 분산시키는 체제라고 말한다. 대중의 각성과 경계 이외에 현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은 없는 것이다.


아니 그렇다면,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 그리고 나는 일순 무정부주의자처럼 지배구조와 계급구조는 어떤 형태를 띠더라도 의혹의 대상으로 삼아 그 정당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같은 일개 개인이 무슨 힘으로, 어떻게. 알고는 있지만 어찌해 보지 못하는 방관자로..... 남게 된다.


때때로 국민은 세상사를 완벽하게 꿰뚫어보고 있지만, 혁명 세력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앞장서서 기존 질서를 뒤바꾸려 한다면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노동 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신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치면, 나의 동료들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나는 절대 그 열매를 즐길 수 없다. 오히려 나는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행동하고 싶다면 주변의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한다.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자유롭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촘스키는 이런 곤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조직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노동 조합을 조직화된다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수월하게 넘길 수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민주화의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정치 발전의 결과를 이뤄낸 것들로 생각하기 쉬운 여성 권리 신장이라던지, 인권 개선과 같은 법안들 하나하나는 사실 정치적 공백을 메우려는 의원의 노력으로 이뤄낸 결실이 결코 아닌 것이다. 일개 개인들이 피흘린 희생의 결과물이고 인권을 보호하려는 여론들의 거센 압력을 통해 통과된 것이다. 사회에 영합하지 않는 반체제 인사들의 투쟁물들인 것이다.


대중을 얌전한 방관자로 만드는 정책에 편승하지 말아야겠다. ‘대중은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데 전념할 것이고,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비재와 같은 피상적인 것에 열중하게 될 것이다. 모든 단계의 정책 결정에서 ‘참여자’가 아니라 구경꾼에 머물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 따위 여지없이 깨 주어야 한다.  


“대중이 저항하고 싸워서 때때로 승리를 거둘 때에야 진정한 변화가 있을 뿐이다.”


밑줄 그은 문장


“정치 투쟁은 거짓말을 폭로하고, 그에 관련된 주역들과 꼭두각시들을 구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관련된 문제를 합리적으로 제기하면서 그 문제를 현실적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도 정치 투쟁의 한 부분이다.


“세계화는 결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점을 지향해서 정치적으로 고안된 현상입니다.”


“군부가 이처럼 특별 대우를 받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가 자유로워질수록 지배 계급이 공포심을 조장하고 선전에 열을 올리기 때문이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산다. 범죄자를 두려워하고, 마약 밀매자를 무서워한다. 심지어 흑인과 외국인까지 무서워한다. 미국의 테러에 대한 두려움을 유럽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


“코소보 사태의 경우 인공 청소를 종식시키기 위해  그랬을까...미국과 유럽은 발칸 반도의 국가들이 제 3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일치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값싼 노동력을제공하는 국가여아 한다는 뜻이다. 보스니아를 원조하면서 외국인의 투자를 개방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 것이 그 증거이다. 요컨대 발칸 반도의 국가들은 유럽의 멕시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조만간 세르비아의 산업기지와 광산이 다국적 기업의 소유가 될 것이다. 경제 정책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금융기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독립을 쟁취한 후에도 수십 년 동안 실질적으로 식민 지배를 받았던 세계의 다른 지역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구 소비에트 연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토 군이 주도한 전쟁은 미국이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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