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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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 전 안개 속에 있고 싶어요. 정원을 반만 내려가도 이 집은 보이지 않죠. 여기에 집이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거죠. 이 동네 다른 집들도요. 지척을 구분할 수가 없어요. 아무도 만나지 않았죠.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들렸어요. 그대로인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바로 제가 원하던 거였죠. 진실은 진실이 아니고 인생은 스스로에게서 숨을 수 있는, 그런 다른 세상에 저 홀로 있는 거요. 저 항구 너머, 해변을 따라 길이 이어지는 곳에서는 땅 위에 있는 느낌조차도 없어졌어요. 안개와 바다가 마치 하나인 것 같았죠. 그래서 바다 밑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오래전에 익사한 것처럼. 전 안개의 일부가 된 유령이고 안개는 바다의 유령인 것처럼. 유령 속의 유령이 되어 있으니 끝내주게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미친놈 보듯이 그렇게 보지 마세요. 맞는 말이니까. 세상에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인생은 고르곤(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들로 세 자매이며 머리카락이 뱀으로 이루어져 있는 등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형상을 하고 있다. 메두사가 그중 하나이다. 셋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과 같아요. 얼굴을 보면 돌로 변해 버린다는 그 괴물들 말예요. 아니면 판이거나. 판을 보면 죽게 되고- 영혼이 말예요. - 유령처럼 살아가게 되죠.


-160 쪽


에드먼드 : (시몬즈가 번역한 보들레르의 산문시 <취하라>를 신랄하고 풍자적으로 멋지게 낭송한다.) 늘 취해 있어라. 다른 건 상관없다. 그것만이 문제이다. 그대의 어깨를 눌러 땅바닥에 짓이기는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쉼 없이 취하라.
무엇에 취하느냐고? 술에든, 시에든, 미덕에든, 그대 마음대로 그저 취해 있어라.
그러다 이따금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가 풀밭에서나, 그대 방의 적막한 고독 속에서 깨어나 취기나 반쯤 혹은 싹 가셨거든 바람에게나 물결에게나. 별에게나, 새에게나, 시계에게나, 그 무엇이든 날아가거나, 탄식하거나, 흔들리거나, 노래하거나, 말하는 것에는 물어보라. 지금 무엇을 할 시간인지 그러면 바람은, 물결은, 별은, 새는, 시계는 대답하리라. ‘취할 시간이다! 취하라. 시간의 고통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거든 쉼 없이 취하라! 술에든, 시에든, 미덕에든, 그대 원하는 것에.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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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31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31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 아직 정확히는 몰라도~ 아마...히히 ^^

2005-07-31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3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역쉬...프랑스통!!
전요...사실은... 베를레느(랭보랑 얼레리꼴레리 좋아지냈던 그...사람..ㅋㅋ)와 보들레르가 항상 헷갈려서리...

비로그인 2005-08-0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이 깊어지면 지금 비워진 시골집이 있는 제 고향도 아주 숨이 막힐 정도로 자욱해져요. 강가를 끼고 있는 곳이라면 안개는 더 짙어지더라구요(바다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전, 이 알라딘 마을도 유진 오닐이 표현한 안개마을 같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해요. 뭐, 그런 거 있쟎아요. 그의 말대로 '진실은 진실이 아니고 인생은 스스로에게서 숨 쉴 수 있는, 다른 세상..' 표현 쥑여요!

icaru 2005-08-0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익산 가고 싶네요 ^^ 강을 끼고 있는 님의 고향 동네~
익산은 변산반도 간다고 버스 타고 내려 갈 때,.... 지나간 기억이 나는데? 제 기억 맞아유? 안개는 참...문학적으로 좋은 소재인 거 같아요...아슴프레한 게...

비로그인 2005-08-0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익산 지나고 김제 지나고 그 담이 부안이죠. 캬..익산이 목뒷덜미살 굵직한 오야붕들 때문에 폭력의 도시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데 알고보면 사실 매우 아담하고 조용한 동네거든요. 언제든 함 오세요! 우리, 보신탕 한 그럭 때리게요!

비로그인 2005-08-05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1학년 여름 방학 때 웃기지도 않게 가출한 적이 있어요. 그때 가장 먼저 간 곳이 이리(지금은 익산이겠지만)였어요. 원광대 공대 건물 뒤에 벤치에 앉아 하룻밤을 노숙했죠. 크흐흐. 근데, 여보야 말쓈 들어보니께 제가 큰일날 뻔 했구먼요. 목뒷덜미살 굵직한 오야붕덜 안 만났으니 다행이지만.

2005-08-11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