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콘서트 KTV 한국정책방송 인문학 열전 1
고미숙 외 지음 / 이숲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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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육에서 통섭의 필요성 

                                                         최재천 

제가 하버드에서 생태학을 가르칠 때 2차 방정식만 풀어도 못 따라오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핀잔도 주고, 한시간 내내 2차 방정식을가르친 적도 있어요. 그래서 학기 초 첫 시간에 '생태학'이라는 학문을 소개하면서 일부러 미분 방정식 문제를 하나씩 냅니다. 그러면 땅이 꺼지도록 한 숨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던 아이들이 학기 중간쯤 되면 제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간단한 미분방정식은 다 풉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도서관에 가서 미분방정식 책을 펴놓고 공부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생타학 강의실에 철학과 학생이 있었다고 가정합시다. 그 학생이 도서관에 가서 미분방정식을 한 달 공부하면 수업을 따라올 수 있나요? 어림도 없습니다. 국문과 학생을 물리학과 교실에 앉혀 놓고 양자역학 원서를 주면 한 쪽도 못 읽습니다. 이게 우리 교육의 현실입니다. 실제로 미국 대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복잡한 수학 문제를 내주면, 그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고, 자기에게 부족한 부분이 뭐고, 그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워서 따라가야 하는지를 알아요. 왜? 고등학교 떄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기본기를 갖추고 대학에 들어왔기 때문이죠.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가 만나서 소통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단계까지 간다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 학계 수준으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노력을 포기해야 할까요? 제가 윌슨 선생님의 컨실리언스를 '통섭'이라고 번역했다고 해서 비판을 하시는 분 중에는 제가 잘못 번역했다고 말씀하시는 분까지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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