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결국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무슨 일인지 이 글 속의 '나'인 롤랑 기는 자신의 과거를 전혀 알지 못했다.  최근에는 흥신소에서 위트라는 사내를 도와 일을 했다는 것이 그가 알고 있는 자신의 신상의 전부다. 하지만 위트도 흥신소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고향인 니스로 떠난다. 이제 기 그가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선다.  그가 ‘나’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을 - 한 사람의 일생으로부터 남은 것과 남겼던 것이 무언지를 생각해 보면서 - 조용히 따라가 보았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몇몇 사람들이 건넨 과자통이나 낡은 상자 속에 담겨 있는 사진에는,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나’로 추정되는 인물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물었다.

“이 사진 속에 보이는 남자는 나와 닮은 것 같지 않습니까?”

“아뇨,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는데요. 그렇지만 어쩌면......”


과거를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기’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러나 살지 않는다면 추억해서 무엇하나? 지금 이 순간을 찬란한 감동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은 그저 무심히 흘러 망각의 무(無 )로 변해갈 것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이 작품은 마치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언뜻 지나쳐본 장면, 창에서 내려다본 낯익은 거리의 풍경, 어렴풋이 들리는 소리에서 포착하는 과거 한 때의 체험, 끊어진 한 토막의 대화들이 무채색의 그림처럼 사람을 매료시킨다. 신문지상에 나왔던 모 작가의 말처럼, 참 매혹적인 소설이다. 


“과연 이것은 나의 인생일까요?

아니면 내가 그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어떤 다른 사람의 인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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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5-3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파트릭 모디아노를 좋아했다가 도라 부르더를 읽고 실망해서 지금 다른 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이는 중입니다...

icaru 2004-05-31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렇군요...책 날개를 보니, 이 작가의 그 뭐랄까......어렴풋한 기억의 실루엣을 예민하게 포착해내는 이 책과 유사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도라 브루더>를 꼽았던데...말이죠..
<외곽도로>는 좀 괜찮을 것도 같습니다.... 약력을 보니, 상복은 많은 작가로구나 싶네요...

호밀밭 2004-05-3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아하는 책이에요. 이런 분위기의 책, 너무 좋아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참 큰 공포라는 걸 느끼게 해 줘요. <도라 브루더>나 <외곽 도로>는 읽지 못했네요.

icaru 2004-05-3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저두 이런 분위기의 책을 좋아하죠...뉴욕 삼부작처럼요..ㅋㅋ
<도라 브루더>나 <외곽 도로>는 저도 읽지를 못했네요... 이 작가의 작품은 이게 처음이죠~!

물만두 2004-05-3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라 부르더를 싫어하는 이유는 요즘의 이팔관계와 상관있습니다. 제가 감정적이라서요...

icaru 2004-05-31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구낭.. 그런 역사적인 맥락의 것이 나오는군요..음... 저도 감정적인 편이라...<도라 부르더>를 잘못 읽었다간 자칫...혈압이 오르거나 빈정이 상할 수도 있겠구뇽...